(나의) 존재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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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370회 작성일 2015-05-17 19:45본문
에스더4:13-17 (나의) 존재의 의미
3살 난 쌍둥이와 5살 난 아이 등 어린 세 자녀를 둔 20대 미국 여성이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에 맞서 싸우려고 이라크로 떠났다고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가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사는 미국 여성 사만사 존스턴(25)은 최근 이라크 북부 등지에서 IS에 맞서 싸우는 쿠르드족 페시메르가 민병대에 합류했다.
존스턴은 인터넷매체 데일리콜러에 IS에 맞서 싸우는 것이 나의 의무라고 생각해 이라크에 왔다며 이곳에서는 여성들이 강간당하거나 팔려가고 있으며 아이들은 집을 잃고 고아가 됐다고 말했다.
이라크에 머문 지 2주 됐다는 그는 벌써부터 미국에 있는 아이들에게 돌아가고 싶지만 나에게는 목표가 있다며 이라크행 비행기를 타러 공항으로 가는 순간에도 거의 포기할 뻔 했지만 만약 그랬더라면 내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군복을 입은 채 소총을 들고 있는 존스턴의 사진은 쿠르드족 공동체와 미국의 IS에 대한 강경론자들 사이에서 외국인 전사들을 모집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더타임스는 전했다.
도저히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것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돌아가고 싶지만 나에게는 목표가 있다 그것은 여성들이 강간당하거나 팔려가고 있으며 아이들은 집을 잃고 고아를 만드는 IS에 맞서 싸우는 것이 나의 의무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사만사 존스턴(25)은 자신의 비록 자녀들이 있지만 다른 이들의 생각과 다른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자기 정체성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현대는 정체성을 찾으려고 무던히 노력을 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그의 행동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잠언23:7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무릇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의 사람됨도 그러하니
본문에 그 생각이 바꿔 정체성이 바꿔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찾는 여자가 있습니다.
에스더라는 여인입니다
고생 끝에 얻는 왕후의 자리에서 인생은 그 지위를 누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자가 오히려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도 괜찮은 자기 존재감을 알게 되었습니다.
Jack Zavada의 변하지 않는 자존감(self-esteem)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직업에서?
당신의 외모에서?
당신의 학력에서?
당신의 집이나 아파트에서?
당신의 옷에서?
당신의 차에서?
당신의 가족, 친구들, 취미 또는 특별한 재능에서?
이러한 것들 중의 어떤 것들로부터 자존감을 얻으려고 하는 것의 문제는 그것들 모두 견고하지 못한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자존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통해서 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당신의 최고의 우선순위와 당신의 자존감의 원천으로 만드십시오.
그것이 당신의 삶에 어떤 것이 일어나든 당신을 강하게 해줄 것입니다.
그 자존감 존재감을 위하여 에스더 외쳤습니다.
16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귀한 존재들입니다.
비록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들이 파괴되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금 회복시켜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바라봐야 합니다
나의 전체 존재감을 가지고 힘입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인생은 자신 만을 하여 사는 것이 아닙니다.
13절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에스더는 페르샤의 왕 아하수에로의 왕후로 선택 될 정도로 수려한 미모를 가진 아름다운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왕후라는 신분을 마음껏 만끽하면서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 앞에 중요한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아각 사람 하만의 흉계에 의해 모두 죽게 된 것입니다.
아각의 왕이 역사적으로 유대인들과 사무친 원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무엘 당시에 사울 왕에게 아각 왕과 그 곳에 코로 숨을 쉬는 것은 짐승까지라도 진멸하라는 엄명에 의해 아각에 속한 사람들이 진멸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에스더로서는 중요한 선택의 순간을 맞닥뜨리게 된 것입니다.
에스더에게 아버지 같은 사촌 오빠 모르드개가 던지는 질문은 그녀의 정체성을 되새기게 만들었습니다.
네가 왜 이렇게 좋은 자리에 앉게 된 줄 아느냐라는 질문에 많은 사람들은 보통 나를 위한 축복이 아닐까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 기분, 내 주장, 내 입장, 내 돈, 내 권력…. 내 것만을 강조하는 인생은 허무합니다.
역사는 그걸 말해주고 있습니다.
구원 역시 오직 내가 받은 구원만 즐거워하고 다른 사람이 구원받지 못한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우리의 믿음은 온전한 믿음이 아닙니다.
모르드개의 질문을 통해 에스더는 자신의 아름다운 용모도, 왕후가 된 신분도 민족을 구원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생각합니다.
오직 나만을 위하여가 아니라 내 민족을 위하여, 다시 말해 이웃의 구원을 위하여 일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사람의 뇌세포 중에는 거울신경시스템 (mirror neuron system)이 있다고 합니다.
1990년대에 이탈리아의 과학자들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거울신경 시스템이란 다른 사람이 어떤 동작을 하는 모습을 관찰할 때와 자신이 똑같은 동작을 실행할 때 활성화되는 신경세포를 말합니다.
사람은 이것을 통해 상대방의 의도를 이해하고, 자신의 행동에도 영향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과학자들은 원숭이의 뇌를 통해 이것을 발견했는데, 실험 조교가 원숭이 앞에서 아이스크림을 든 손을 입으로 가져갔는데, 원숭이의 뇌에서 동일한 세포가 작용을 한 것입니다.
원숭이가 직접 동작을 하지 않고 다른 존재의 행동을 본 것으로도 같은 반응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거울신경시스템을 공감 뉴런이라고도 합니다.
다른 사람이 하품을 하면 자기도 모르게 하품이 나온다.
TV에서 맛있는 음식이 나오면 입에 침이 고인다.
다른 사람의 몸에 벌레가 기어가는 것을 보면 소름이 돋는다.
이런 것들이 거울신경시스템에 의한 공감 작용 때문이라고 합니다.
최근에는 자폐아의 사회성 결핍이유가 뇌의 거울신경 시스템이 활성화 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도 나왔습니다.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할 줄 모르고, 가족이나 국가나 교회의 어려움을 외면하고 혼자만 생각한다면 이런 정신적, 영적 자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정한 자존감은 내 인생의 지난 모든 과정은 선을 위함의 준비다
14절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미국의 유명한 여성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는 미국에서 많은 영향력을 끼치는 여자입니다.
그녀가 방송에서 내가 무슨 책을 읽었다 하면 그 책은 바로 미국의 베스트셀러가 된다고 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성장 과정은 생각해 보고 싶지 않을 정도입니다.
사생아로 태어나 아홉 살 때 사촌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불우한 환경에 절망하며 청소년 시기에는 마약을 하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어떻게 그 모든 상처를 딛고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여성이 될 수 있었을까?
오프라 윈프리가 쓴 자서전 이것이 사명이다에서 자기 인생의 네 가지 사명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남들보다 더 가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사명이다.
남들보다 아픈 상처가 있다면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사명이다.
남들보다 더 설레는 꿈이 있다면 그것은 망상이 아니라 사명이다.
남들보다 더 부담되는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강요가 아니라 사명이다.
역시 인생은 해석이다.
어떤 환경에 처해 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환경을 해석하는 힘, 이것이 중요하다.
똑같이 어려운 환경을 만나도 어떤 사람은 난 저주받은 인생이야.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사명이다라고 해석하며 인생을 개척해나가는 사람이 있다.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을 올바로 해석하는 힘입니다.
사람들이 행하는 모든 일의 목적이 나 개인의 행복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일자리를 찾는 것이나 열심히 일하는 것,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나 어떤 타이틀을 가지는 것, 그리고 많은 재산을 가지려는 것… 그 어느 것 하나 개인의 행복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개인의 행복이 나쁜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최고의 목적이 되고 사명감 존재감이 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오히려 삶의 참된 의미나 행복을 찾지 못합니다.
개인적인 행복을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삼으면 그 행복을 하나님처럼 섬기게 되고, 결국 그 행복 안에 자기를 가두게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목적과 다르기 때문에 삶의 참 의미가 될 수 없고, 참 행복도 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의 중심에 에덴동산을 지으시고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자, 이제 모든 것이 갖추어 졌으니 그 안에서 너희들 마음대로 너희들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일러 주었습니다.
창세기2:16-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애초부터 인간은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살도록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지에 자신을 드리는 존재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본래의 목적에 맞춰 살아갈 때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사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진정한 자존감은 선을 위하여 자신을 드리는 일이다
사람이 사명을 깨닫는 순간보다 아름다운 순간은 없습니다.
종은 울릴 때까지 종이 아닙니다.
노래는 불릴 때까지 노래가 아닙니다.
내가 바로 그 사람이고 지금이 바로 그 때임을 깨달은 사람은 그것보다 더 귀한 것이 없음을 알게 됨으로 내 자신을 기꺼이 그 뜻에 드리는 것입니다.
에스더는 왕후로의 삶이 최고의 삶이 라고 여겨 여기까지 이르렀으니 그 조건을 즐기면 행복이 됩니다.
그러나 모르두개의 말을 들었을 때에는 그게 불행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니 내 존재감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왕후의 자리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위하여 드립니다.
자신의 생명까지도 존재감을 위하여 드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인생은 나만을 위하여 사는 삶이 아닙니다.
신앙생활 역시 나만을 위한 신앙생활에 만족할 수 없습니다.
받기 위하여 혹은 받은 것으로 그것 자체로 목적으로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이제 이만하면 밥 먹고 살겠다
편안하고 풍족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만을 추구하고 그것 자체로 목적이 되기에는 부족합니다.
그것이 인생을 진실로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부자의 생각이 얼마나 잘 못 되었습니까?
누가복음12:16-21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하나님이 그냥 불러 간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참으로 의미가 없는 삶이 되고 존재감이 없는 인생이 되고 만 것입니다.
한 마디로 인생 헛살았다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인생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세상을 섬기는 일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항상 무엇을 구하는 기도에는 이런 질문을 해야 합니다.
나에게 이런 복을 주시고 소유와 자리나 힘을 허락하신 것이 무엇을 위한 것이고 어느 때를 위한 것인지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그 질문을 가지고 주어진 삶을 가지고 사람들을 섬기며 주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나의 자존감입니다.
나의 인생입니다.
에스더는 모르드개가 던진 이때를 위함이 아니냐? 는 질문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정직하게 자신의 존재를 드림으로 응답했습니다.
자신의 존재감을 찾았습니다.
아직도 내 존재감을 나를 위한 것에만 찾는 어리석음이 없어야 합니다.
지금이라도 내 자신을 전 인격을 드리시기를 주저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자존감을 찾을 것입니다.
그리고 인생을 살아가는데 가치와 보람과 그리고 장래에 소망이 있을 것입니다.
3살 난 쌍둥이와 5살 난 아이 등 어린 세 자녀를 둔 20대 미국 여성이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에 맞서 싸우려고 이라크로 떠났다고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가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사는 미국 여성 사만사 존스턴(25)은 최근 이라크 북부 등지에서 IS에 맞서 싸우는 쿠르드족 페시메르가 민병대에 합류했다.
존스턴은 인터넷매체 데일리콜러에 IS에 맞서 싸우는 것이 나의 의무라고 생각해 이라크에 왔다며 이곳에서는 여성들이 강간당하거나 팔려가고 있으며 아이들은 집을 잃고 고아가 됐다고 말했다.
이라크에 머문 지 2주 됐다는 그는 벌써부터 미국에 있는 아이들에게 돌아가고 싶지만 나에게는 목표가 있다며 이라크행 비행기를 타러 공항으로 가는 순간에도 거의 포기할 뻔 했지만 만약 그랬더라면 내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군복을 입은 채 소총을 들고 있는 존스턴의 사진은 쿠르드족 공동체와 미국의 IS에 대한 강경론자들 사이에서 외국인 전사들을 모집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더타임스는 전했다.
도저히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것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돌아가고 싶지만 나에게는 목표가 있다 그것은 여성들이 강간당하거나 팔려가고 있으며 아이들은 집을 잃고 고아를 만드는 IS에 맞서 싸우는 것이 나의 의무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사만사 존스턴(25)은 자신의 비록 자녀들이 있지만 다른 이들의 생각과 다른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자기 정체성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현대는 정체성을 찾으려고 무던히 노력을 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그의 행동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잠언23:7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무릇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의 사람됨도 그러하니
본문에 그 생각이 바꿔 정체성이 바꿔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찾는 여자가 있습니다.
에스더라는 여인입니다
고생 끝에 얻는 왕후의 자리에서 인생은 그 지위를 누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자가 오히려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도 괜찮은 자기 존재감을 알게 되었습니다.
Jack Zavada의 변하지 않는 자존감(self-esteem)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직업에서?
당신의 외모에서?
당신의 학력에서?
당신의 집이나 아파트에서?
당신의 옷에서?
당신의 차에서?
당신의 가족, 친구들, 취미 또는 특별한 재능에서?
이러한 것들 중의 어떤 것들로부터 자존감을 얻으려고 하는 것의 문제는 그것들 모두 견고하지 못한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자존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통해서 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당신의 최고의 우선순위와 당신의 자존감의 원천으로 만드십시오.
그것이 당신의 삶에 어떤 것이 일어나든 당신을 강하게 해줄 것입니다.
그 자존감 존재감을 위하여 에스더 외쳤습니다.
16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귀한 존재들입니다.
비록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들이 파괴되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금 회복시켜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바라봐야 합니다
나의 전체 존재감을 가지고 힘입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인생은 자신 만을 하여 사는 것이 아닙니다.
13절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에스더는 페르샤의 왕 아하수에로의 왕후로 선택 될 정도로 수려한 미모를 가진 아름다운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왕후라는 신분을 마음껏 만끽하면서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 앞에 중요한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아각 사람 하만의 흉계에 의해 모두 죽게 된 것입니다.
아각의 왕이 역사적으로 유대인들과 사무친 원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무엘 당시에 사울 왕에게 아각 왕과 그 곳에 코로 숨을 쉬는 것은 짐승까지라도 진멸하라는 엄명에 의해 아각에 속한 사람들이 진멸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에스더로서는 중요한 선택의 순간을 맞닥뜨리게 된 것입니다.
에스더에게 아버지 같은 사촌 오빠 모르드개가 던지는 질문은 그녀의 정체성을 되새기게 만들었습니다.
네가 왜 이렇게 좋은 자리에 앉게 된 줄 아느냐라는 질문에 많은 사람들은 보통 나를 위한 축복이 아닐까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 기분, 내 주장, 내 입장, 내 돈, 내 권력…. 내 것만을 강조하는 인생은 허무합니다.
역사는 그걸 말해주고 있습니다.
구원 역시 오직 내가 받은 구원만 즐거워하고 다른 사람이 구원받지 못한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우리의 믿음은 온전한 믿음이 아닙니다.
모르드개의 질문을 통해 에스더는 자신의 아름다운 용모도, 왕후가 된 신분도 민족을 구원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생각합니다.
오직 나만을 위하여가 아니라 내 민족을 위하여, 다시 말해 이웃의 구원을 위하여 일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사람의 뇌세포 중에는 거울신경시스템 (mirror neuron system)이 있다고 합니다.
1990년대에 이탈리아의 과학자들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거울신경 시스템이란 다른 사람이 어떤 동작을 하는 모습을 관찰할 때와 자신이 똑같은 동작을 실행할 때 활성화되는 신경세포를 말합니다.
사람은 이것을 통해 상대방의 의도를 이해하고, 자신의 행동에도 영향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과학자들은 원숭이의 뇌를 통해 이것을 발견했는데, 실험 조교가 원숭이 앞에서 아이스크림을 든 손을 입으로 가져갔는데, 원숭이의 뇌에서 동일한 세포가 작용을 한 것입니다.
원숭이가 직접 동작을 하지 않고 다른 존재의 행동을 본 것으로도 같은 반응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거울신경시스템을 공감 뉴런이라고도 합니다.
다른 사람이 하품을 하면 자기도 모르게 하품이 나온다.
TV에서 맛있는 음식이 나오면 입에 침이 고인다.
다른 사람의 몸에 벌레가 기어가는 것을 보면 소름이 돋는다.
이런 것들이 거울신경시스템에 의한 공감 작용 때문이라고 합니다.
최근에는 자폐아의 사회성 결핍이유가 뇌의 거울신경 시스템이 활성화 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도 나왔습니다.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할 줄 모르고, 가족이나 국가나 교회의 어려움을 외면하고 혼자만 생각한다면 이런 정신적, 영적 자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정한 자존감은 내 인생의 지난 모든 과정은 선을 위함의 준비다
14절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미국의 유명한 여성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는 미국에서 많은 영향력을 끼치는 여자입니다.
그녀가 방송에서 내가 무슨 책을 읽었다 하면 그 책은 바로 미국의 베스트셀러가 된다고 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성장 과정은 생각해 보고 싶지 않을 정도입니다.
사생아로 태어나 아홉 살 때 사촌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불우한 환경에 절망하며 청소년 시기에는 마약을 하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어떻게 그 모든 상처를 딛고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여성이 될 수 있었을까?
오프라 윈프리가 쓴 자서전 이것이 사명이다에서 자기 인생의 네 가지 사명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남들보다 더 가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사명이다.
남들보다 아픈 상처가 있다면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사명이다.
남들보다 더 설레는 꿈이 있다면 그것은 망상이 아니라 사명이다.
남들보다 더 부담되는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강요가 아니라 사명이다.
역시 인생은 해석이다.
어떤 환경에 처해 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환경을 해석하는 힘, 이것이 중요하다.
똑같이 어려운 환경을 만나도 어떤 사람은 난 저주받은 인생이야.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사명이다라고 해석하며 인생을 개척해나가는 사람이 있다.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을 올바로 해석하는 힘입니다.
사람들이 행하는 모든 일의 목적이 나 개인의 행복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일자리를 찾는 것이나 열심히 일하는 것,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나 어떤 타이틀을 가지는 것, 그리고 많은 재산을 가지려는 것… 그 어느 것 하나 개인의 행복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개인의 행복이 나쁜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최고의 목적이 되고 사명감 존재감이 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오히려 삶의 참된 의미나 행복을 찾지 못합니다.
개인적인 행복을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삼으면 그 행복을 하나님처럼 섬기게 되고, 결국 그 행복 안에 자기를 가두게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목적과 다르기 때문에 삶의 참 의미가 될 수 없고, 참 행복도 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의 중심에 에덴동산을 지으시고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자, 이제 모든 것이 갖추어 졌으니 그 안에서 너희들 마음대로 너희들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일러 주었습니다.
창세기2:16-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애초부터 인간은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살도록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지에 자신을 드리는 존재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본래의 목적에 맞춰 살아갈 때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사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진정한 자존감은 선을 위하여 자신을 드리는 일이다
사람이 사명을 깨닫는 순간보다 아름다운 순간은 없습니다.
종은 울릴 때까지 종이 아닙니다.
노래는 불릴 때까지 노래가 아닙니다.
내가 바로 그 사람이고 지금이 바로 그 때임을 깨달은 사람은 그것보다 더 귀한 것이 없음을 알게 됨으로 내 자신을 기꺼이 그 뜻에 드리는 것입니다.
에스더는 왕후로의 삶이 최고의 삶이 라고 여겨 여기까지 이르렀으니 그 조건을 즐기면 행복이 됩니다.
그러나 모르두개의 말을 들었을 때에는 그게 불행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니 내 존재감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왕후의 자리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위하여 드립니다.
자신의 생명까지도 존재감을 위하여 드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인생은 나만을 위하여 사는 삶이 아닙니다.
신앙생활 역시 나만을 위한 신앙생활에 만족할 수 없습니다.
받기 위하여 혹은 받은 것으로 그것 자체로 목적으로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이제 이만하면 밥 먹고 살겠다
편안하고 풍족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만을 추구하고 그것 자체로 목적이 되기에는 부족합니다.
그것이 인생을 진실로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부자의 생각이 얼마나 잘 못 되었습니까?
누가복음12:16-21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하나님이 그냥 불러 간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참으로 의미가 없는 삶이 되고 존재감이 없는 인생이 되고 만 것입니다.
한 마디로 인생 헛살았다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인생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세상을 섬기는 일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항상 무엇을 구하는 기도에는 이런 질문을 해야 합니다.
나에게 이런 복을 주시고 소유와 자리나 힘을 허락하신 것이 무엇을 위한 것이고 어느 때를 위한 것인지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그 질문을 가지고 주어진 삶을 가지고 사람들을 섬기며 주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나의 자존감입니다.
나의 인생입니다.
에스더는 모르드개가 던진 이때를 위함이 아니냐? 는 질문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정직하게 자신의 존재를 드림으로 응답했습니다.
자신의 존재감을 찾았습니다.
아직도 내 존재감을 나를 위한 것에만 찾는 어리석음이 없어야 합니다.
지금이라도 내 자신을 전 인격을 드리시기를 주저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자존감을 찾을 것입니다.
그리고 인생을 살아가는데 가치와 보람과 그리고 장래에 소망이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