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환경을 지배 할 때 구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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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509회 작성일 2009-06-27 11:08본문
열왕기상 17: 8 -16 말씀이 환경을 지배 할 때 구원이 있습니다.
지금 온 세계는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에 처하여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역시 지난 구제 금융 시절인 IMF 때를 연상하기도 합니다.
사실 모두가 이 어려움을 피부에 느끼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한결같이 어떻게 하면 여기에서 벗어 날 것인가를 여러 가지 처방을 내리고 애쓰고 있지 않습니까?
어느 때나 마찬가지라고 생각이 듭니다.
어려울 때 일수록 약자들이 더 힘들게 마련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어려움을 당한 한 약자가 있습니다.
3년이라는 긴 시간에 하늘에서 우로가 내리지 않아 큰 흉년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오늘인가 내일인가 하면서 이 어려움을 벗어나기를 바라는 홀로된 여인이 이제는 더 버틸 모든 희망이 끊어지고 더 이상 생존 할 수 있는 근거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아들과 함께 인생의 모든 꿈을 접고 죽음을 생각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새로운 살길이 제시가 되었습니다.
이 방법은 여태까지 자신이 고민하고 생각해 보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길이었습니다.
여태까지 자신의 생존방법은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내 자신을 위하여 다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온 결과는 지나고 보니 자신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순전히 육신적인 생각이 사는 길이 아니라 죽을 수밖에 없는 길이 되고 말았습니다.
새롭게 제시된 살 길은 자신만을 위하는 길이 아니라 남을 생각하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서의 결과는 사는 길이 열린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 내가 왜 가정이 왜 내 인생이 죽게 생겼는가?
나를 위하여 살아오지 않았기 때문인가? 그 이유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나만을 위하고 나 가정만을 위하고 내 인생에 공을 너무나도 많이 드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방향전환 사고 전환의 때가 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만 나와 내 가정 내 인생이 살아야 할 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어떤 길이 살 길입니까?
저희 집 현관은 먼저 발을 현관에 한발자국 내 디뎌야지 전등에 불이 들어옵니다.
만약 발을 디디지 않으면 불은 절대로 들어오지 않고 그냥 캄캄하기만 합니다.
오늘 사르밧 홀로된 여인의 모습에서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먼저 발을 디디시기를 원하십니다.
엘리야라는 선지자를 보내시고 그녀의 소유를 그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엘리야를 위한 것으로 하나님을 위한 것으로 먼저 방향전환을 요구한 것입니다.
11절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이 말에 두려워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그녀에게 재차 하는 말이
13절 두려워하지 말고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고 내게로 가져오고
이것은 엘리야가 원하기 전에 벌써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8-9절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이것은 어떻게 하든지 홀로된 그녀에게 가서 음식을 대접 받으라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때때로 목회자의 고민이 여기에 있습니다. 왜 하필이면 이 사람에게 입니까?
능력이 있는 자들에게 하심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더 생각을 해보면 하나님의 관심이 그 사람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망할 아합 왕에게 대접을 받기를 원하시지 않고 비롯 한 끼의 식사 해결에 고민을 하는 홀로된 여인의 접대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와 성도들을 그리고 저 같은 사람을 받으시겠다고 하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당시에 시돈의 사르밧 지경에는 흉년 가운데 이 여인과 같이 어려운 자들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당신이라는 것입니다.
기분이 나쁜 일일까요? 참으로 감사하고 영광된 일이 아닙니까?
하나님은 지금도 끊임없이 말씀 하시고 계십니다. 누가 나를 위하여 나서겠느냐? 고요
아무나 그 말을 알지를 못 할 것입니다.
내 자신에게 라고도 생각을 못 할 것입니다.
아무리 아무리 일러 주어도 내가 아니라고 하고 있지 않습니까? 안 들려 안 들려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사야 선지자는 이 백성이 망하는 이유는 내가 지금 나설 때가 아니라는데 있다고 하였습니다.
복은 지금 받아야 하고 나설 때는 지금이 아니라는 말입니까?
지금이 내가 나서야 할 복된 때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6:8-9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보니 누가 나를 위하여 갈꼬 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알고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라고 자신을 드리기로 헌신이 되었지만
망 할 백성들에게는 듣기는 들어도 자신들과 전혀 상관이 없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백성이 망하게 되었도다 여호와의 말씀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서형선 목사의 하나님의 휘파람소리에서 어느 목사와 이발사가 시카고의 빈민 거리를 나란히 걷게 됐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그 주변은 몹시 지저분하고, 악취를 풍기고 있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계시고, 그분이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면 세상에 어찌 저렇게 처참하게 살도록 내버려 두신단 말입니까? 라고 회의론자인 이발사가 말했습니다.
우리들 중에도 이런 말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계신다면 왜 이렇게 되었느냐? 는 것입니다.
그 때, 머리털이 어깨까지 내려오고, 너덜거리는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지나가는 것을 본 목사는, 저 친구를 보시오. 저 친구는 수염도 깎지 않고, 머리털은 어찌나 긴지 어깨를 완전히 덮어 버렸군요. 어찌 당신같이 훌륭한 이발사가 청년들이 저렇게 이발도 하지 않고, 거리를 활보하도록 내버려 두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이발사는 그야, 저 친구가 이발해 달라고 이발소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죠. 이발해 달라고 들어오기만 하면이야 모두 미남자를 만들어 줄 텐데 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는 하나님께서도 당신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다. 인간들이 하나님께로 나와 하나님께 기회를 드린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삶을 완전히 바꿔 놓으실 겁니다. 할렐루야!
이제 하나님의 음성을 자세히 들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무엇을 주시겠다는 말이 아니라 나를 원하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나에게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명이 있고 나 같은 자도 사명자라는 것입니다.
그냥 왔다가 나를 위하여 살다가 그냥 가는 인생이 아니란 말입니다.
나의 문제는 나만 위하여 살겠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초신 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믿은 지 오래된 성도도 아직도 자신만을 위한 기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리빙스톤은 사명을 위해서 내가 태어났는데, 사명이 있는 한 결코 나는 죽지 않는다고 말하였습니다.
이제 아니 이 시간 나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응답으로 들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말씀이 환경을 이기게 하십니다.
사업하거나 직장 생활을 할 때, 가정을 이루고 모든 계획을 할 때 무엇을 먼저 생각하십니까?
수입이 얼마나 많을까 적을까, 이것이 나에게 얼마나 유익이 되는가?
나를 위한 것으로만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모든 것이 내 생각 속에 갇혀 버리는 것입니다.
결과는 여태까지 살아온 결과가 죽겠다는 것입니다.
환경을 결코 이길 수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 가운데 죽겠다고 하는 마음에서 헤매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것을 먼저 생각하기 전에 이것이 하나님의 사명에 관계가 있는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 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는가?
다른 이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 생각 속에 하나님의 역사가 함께 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조금만 한 번 생각을 바꾸어 보세요.
Change mind 마음을 한 번 바꾸어보세요. 마음을 바꾸면 세상이 바꿔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생각을 바꾸면 환경과 여건이 바꿔지는 것입니다.
내 인생관이 바꿔지고, 철학이 바꿔지고, 내 모든 삶의 의미가 바꿔집니다.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있어서 무엇이든지 하나님을 위한 것으로 한 번 접목을 시켜 보세요. 하나님께서 분명히 아주 지극히 작은 하나에도 하나님은 크게 역사하시고, 큰 능력으로 부여해줄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이 환경을 지배 할 것입니다.
사55:10-11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사렙다 과부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의 목숨보다, 심지어 자기 아들의 목숨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귀함을 알았습니다.
사실 말씀에 죽고 살고 해야 하는데
돈에 죽고 살고 자존심에 죽고 살고 세상적인 것으로 하나님의 의를 저버리면 되겠습니까?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갔고..... 누가만 남았느니라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계속 교제를 함으로 지속적인 말씀의 경험을 하게 됩니다.
가루 독에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기름병에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소이 말씀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천지가 만들어 졌음을 알게 되고 말씀으로 다스림을 알게 되고 말씀대로 그 결과가 오는 것을 경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니 말씀이 길이요 말씀이 생명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주님 말씀만 하십시오 하시기를 바랍니다.
제아무리 말씀을 골백번 들려줘도 나와 상관이 없는 줄로만 여기고 있는 고집과 교만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말씀은 경험은 점점 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심지어 그 여인은 부활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자기 아들이 병이 죽게 되었는데, 엘리야가 살리는 놀라운 기적을 행하지요.
이스라엘의 다른 모든 과부는 영적인 암흑 상태에 있으면서, 하나님의 말씀과는 전혀 상관없이 살아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에게는 말씀인한 역사가 없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일 뿐이지요
예수님은 자기 백성에게 배척을 받았는데 탄생시 베들레헴에서도 날 곳이 없어서 배척을 받았습니다.
자기 고향 나사렛에서도 배척을 받고 결국은 자기 백성에게 배척을 받아서 십자가에서 버림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배척하면, 예수님은 그곳을 떠나십니다.
고향과 그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기적을 행하시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렙다 과부처럼 자기 목숨보다 주의 말씀을 사모하는 자들을 찾으시고, 그들과 함께 하시고 교제하고 부활과 영생의 큰 영적인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시작은 나의 죽음으로 시작합니다.
나의 전부를 사르밧 과부처럼 드리면 ,하나님은 나의 남은 전 생애를 보장해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전부는 무엇일까요?
사르밧 과부의 전부 즉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이 내게는 어떤 것일까요?
결국 하나님이 내게 요구하는 것은 헌신입니다.
나의 모든 것을 요구하십니다. 사실 내 육신에 있는 것은 죄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가진 전부 즉 육신을 원하십니다.
인간의 육신에게 있는 것이란 죄 밖에 없는데 나는 이것을 내놓는 것이 아깝고 두려워 덜덜 떱니다.
하나님은 내가 전부를 하나님께 드릴 때 까지 말씀하시다가 안 들으면 들을 때까지 끝까지 코너로 모십니다.
왜요 사랑하시니까?
인간에게 있는 부, 명예, 인기 등은 모두 하나님께는 배설물과 같은 것인데 이것을 포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스스로 내려놓지 못하니 하나님이 내려놓게 하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아프고 얼마나 힘들까요? 이제 스스로 내려놓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국 사르밧 과부에게서 배우는 것은 자신에게 속한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므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사실 인간의 육신에서 나오는 것은 하나님께는 아무 가치가 없는 쓰레기 같은 것입니다.
사실 대단한 것도 아닌데 내려놓는다고 야단이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썩어질 그것을 달라고 하는 것은 정말 가치가 있는 하늘의 것으로 주시기 위함입니다.
즉 인간이 소유하고 자랑하고 붙잡고 있는 부귀 명예 인기 학벌들이 바로 이런 가치 없는 쓰레기들임을 말해줍니다.
인간에서 나오는 이런 모든 것들은 십자가를 통과하여 새롭게 되어야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 3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반면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는 삶이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부족함이 없는 그리스도안의 풍성한 삶을 예표합니다.
만약 내가 나를 부인하고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헌신하면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는 풍성한 삶을 영육 간에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나를 부인하지 않고 나의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리지 않고 움켜쥔다면 나의 삶은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의 삶처럼 늘 부족한 삶이 될 것입니다.
나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곤핍한 것은 환경 때문이 아니라 ,내 내면에서 이러한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즉 하늘의 것을 붙잡지 않고 땅의 배설물 같은 것을 붙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내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은 나에게 하나님 자신을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날마다 죽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이 사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지금 온 세계는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에 처하여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역시 지난 구제 금융 시절인 IMF 때를 연상하기도 합니다.
사실 모두가 이 어려움을 피부에 느끼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한결같이 어떻게 하면 여기에서 벗어 날 것인가를 여러 가지 처방을 내리고 애쓰고 있지 않습니까?
어느 때나 마찬가지라고 생각이 듭니다.
어려울 때 일수록 약자들이 더 힘들게 마련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어려움을 당한 한 약자가 있습니다.
3년이라는 긴 시간에 하늘에서 우로가 내리지 않아 큰 흉년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오늘인가 내일인가 하면서 이 어려움을 벗어나기를 바라는 홀로된 여인이 이제는 더 버틸 모든 희망이 끊어지고 더 이상 생존 할 수 있는 근거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아들과 함께 인생의 모든 꿈을 접고 죽음을 생각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새로운 살길이 제시가 되었습니다.
이 방법은 여태까지 자신이 고민하고 생각해 보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길이었습니다.
여태까지 자신의 생존방법은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내 자신을 위하여 다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온 결과는 지나고 보니 자신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순전히 육신적인 생각이 사는 길이 아니라 죽을 수밖에 없는 길이 되고 말았습니다.
새롭게 제시된 살 길은 자신만을 위하는 길이 아니라 남을 생각하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서의 결과는 사는 길이 열린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 내가 왜 가정이 왜 내 인생이 죽게 생겼는가?
나를 위하여 살아오지 않았기 때문인가? 그 이유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나만을 위하고 나 가정만을 위하고 내 인생에 공을 너무나도 많이 드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방향전환 사고 전환의 때가 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만 나와 내 가정 내 인생이 살아야 할 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어떤 길이 살 길입니까?
저희 집 현관은 먼저 발을 현관에 한발자국 내 디뎌야지 전등에 불이 들어옵니다.
만약 발을 디디지 않으면 불은 절대로 들어오지 않고 그냥 캄캄하기만 합니다.
오늘 사르밧 홀로된 여인의 모습에서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먼저 발을 디디시기를 원하십니다.
엘리야라는 선지자를 보내시고 그녀의 소유를 그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엘리야를 위한 것으로 하나님을 위한 것으로 먼저 방향전환을 요구한 것입니다.
11절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이 말에 두려워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그녀에게 재차 하는 말이
13절 두려워하지 말고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고 내게로 가져오고
이것은 엘리야가 원하기 전에 벌써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8-9절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이것은 어떻게 하든지 홀로된 그녀에게 가서 음식을 대접 받으라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때때로 목회자의 고민이 여기에 있습니다. 왜 하필이면 이 사람에게 입니까?
능력이 있는 자들에게 하심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더 생각을 해보면 하나님의 관심이 그 사람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망할 아합 왕에게 대접을 받기를 원하시지 않고 비롯 한 끼의 식사 해결에 고민을 하는 홀로된 여인의 접대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와 성도들을 그리고 저 같은 사람을 받으시겠다고 하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당시에 시돈의 사르밧 지경에는 흉년 가운데 이 여인과 같이 어려운 자들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당신이라는 것입니다.
기분이 나쁜 일일까요? 참으로 감사하고 영광된 일이 아닙니까?
하나님은 지금도 끊임없이 말씀 하시고 계십니다. 누가 나를 위하여 나서겠느냐? 고요
아무나 그 말을 알지를 못 할 것입니다.
내 자신에게 라고도 생각을 못 할 것입니다.
아무리 아무리 일러 주어도 내가 아니라고 하고 있지 않습니까? 안 들려 안 들려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사야 선지자는 이 백성이 망하는 이유는 내가 지금 나설 때가 아니라는데 있다고 하였습니다.
복은 지금 받아야 하고 나설 때는 지금이 아니라는 말입니까?
지금이 내가 나서야 할 복된 때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6:8-9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보니 누가 나를 위하여 갈꼬 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알고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라고 자신을 드리기로 헌신이 되었지만
망 할 백성들에게는 듣기는 들어도 자신들과 전혀 상관이 없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백성이 망하게 되었도다 여호와의 말씀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서형선 목사의 하나님의 휘파람소리에서 어느 목사와 이발사가 시카고의 빈민 거리를 나란히 걷게 됐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그 주변은 몹시 지저분하고, 악취를 풍기고 있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계시고, 그분이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면 세상에 어찌 저렇게 처참하게 살도록 내버려 두신단 말입니까? 라고 회의론자인 이발사가 말했습니다.
우리들 중에도 이런 말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계신다면 왜 이렇게 되었느냐? 는 것입니다.
그 때, 머리털이 어깨까지 내려오고, 너덜거리는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지나가는 것을 본 목사는, 저 친구를 보시오. 저 친구는 수염도 깎지 않고, 머리털은 어찌나 긴지 어깨를 완전히 덮어 버렸군요. 어찌 당신같이 훌륭한 이발사가 청년들이 저렇게 이발도 하지 않고, 거리를 활보하도록 내버려 두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이발사는 그야, 저 친구가 이발해 달라고 이발소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죠. 이발해 달라고 들어오기만 하면이야 모두 미남자를 만들어 줄 텐데 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는 하나님께서도 당신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다. 인간들이 하나님께로 나와 하나님께 기회를 드린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삶을 완전히 바꿔 놓으실 겁니다. 할렐루야!
이제 하나님의 음성을 자세히 들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무엇을 주시겠다는 말이 아니라 나를 원하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나에게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명이 있고 나 같은 자도 사명자라는 것입니다.
그냥 왔다가 나를 위하여 살다가 그냥 가는 인생이 아니란 말입니다.
나의 문제는 나만 위하여 살겠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초신 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믿은 지 오래된 성도도 아직도 자신만을 위한 기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리빙스톤은 사명을 위해서 내가 태어났는데, 사명이 있는 한 결코 나는 죽지 않는다고 말하였습니다.
이제 아니 이 시간 나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응답으로 들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말씀이 환경을 이기게 하십니다.
사업하거나 직장 생활을 할 때, 가정을 이루고 모든 계획을 할 때 무엇을 먼저 생각하십니까?
수입이 얼마나 많을까 적을까, 이것이 나에게 얼마나 유익이 되는가?
나를 위한 것으로만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모든 것이 내 생각 속에 갇혀 버리는 것입니다.
결과는 여태까지 살아온 결과가 죽겠다는 것입니다.
환경을 결코 이길 수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 가운데 죽겠다고 하는 마음에서 헤매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것을 먼저 생각하기 전에 이것이 하나님의 사명에 관계가 있는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 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는가?
다른 이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 생각 속에 하나님의 역사가 함께 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조금만 한 번 생각을 바꾸어 보세요.
Change mind 마음을 한 번 바꾸어보세요. 마음을 바꾸면 세상이 바꿔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생각을 바꾸면 환경과 여건이 바꿔지는 것입니다.
내 인생관이 바꿔지고, 철학이 바꿔지고, 내 모든 삶의 의미가 바꿔집니다.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있어서 무엇이든지 하나님을 위한 것으로 한 번 접목을 시켜 보세요. 하나님께서 분명히 아주 지극히 작은 하나에도 하나님은 크게 역사하시고, 큰 능력으로 부여해줄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이 환경을 지배 할 것입니다.
사55:10-11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사렙다 과부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의 목숨보다, 심지어 자기 아들의 목숨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귀함을 알았습니다.
사실 말씀에 죽고 살고 해야 하는데
돈에 죽고 살고 자존심에 죽고 살고 세상적인 것으로 하나님의 의를 저버리면 되겠습니까?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갔고..... 누가만 남았느니라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계속 교제를 함으로 지속적인 말씀의 경험을 하게 됩니다.
가루 독에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기름병에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소이 말씀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천지가 만들어 졌음을 알게 되고 말씀으로 다스림을 알게 되고 말씀대로 그 결과가 오는 것을 경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니 말씀이 길이요 말씀이 생명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주님 말씀만 하십시오 하시기를 바랍니다.
제아무리 말씀을 골백번 들려줘도 나와 상관이 없는 줄로만 여기고 있는 고집과 교만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말씀은 경험은 점점 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심지어 그 여인은 부활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자기 아들이 병이 죽게 되었는데, 엘리야가 살리는 놀라운 기적을 행하지요.
이스라엘의 다른 모든 과부는 영적인 암흑 상태에 있으면서, 하나님의 말씀과는 전혀 상관없이 살아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에게는 말씀인한 역사가 없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일 뿐이지요
예수님은 자기 백성에게 배척을 받았는데 탄생시 베들레헴에서도 날 곳이 없어서 배척을 받았습니다.
자기 고향 나사렛에서도 배척을 받고 결국은 자기 백성에게 배척을 받아서 십자가에서 버림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배척하면, 예수님은 그곳을 떠나십니다.
고향과 그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기적을 행하시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렙다 과부처럼 자기 목숨보다 주의 말씀을 사모하는 자들을 찾으시고, 그들과 함께 하시고 교제하고 부활과 영생의 큰 영적인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시작은 나의 죽음으로 시작합니다.
나의 전부를 사르밧 과부처럼 드리면 ,하나님은 나의 남은 전 생애를 보장해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전부는 무엇일까요?
사르밧 과부의 전부 즉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이 내게는 어떤 것일까요?
결국 하나님이 내게 요구하는 것은 헌신입니다.
나의 모든 것을 요구하십니다. 사실 내 육신에 있는 것은 죄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가진 전부 즉 육신을 원하십니다.
인간의 육신에게 있는 것이란 죄 밖에 없는데 나는 이것을 내놓는 것이 아깝고 두려워 덜덜 떱니다.
하나님은 내가 전부를 하나님께 드릴 때 까지 말씀하시다가 안 들으면 들을 때까지 끝까지 코너로 모십니다.
왜요 사랑하시니까?
인간에게 있는 부, 명예, 인기 등은 모두 하나님께는 배설물과 같은 것인데 이것을 포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스스로 내려놓지 못하니 하나님이 내려놓게 하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아프고 얼마나 힘들까요? 이제 스스로 내려놓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국 사르밧 과부에게서 배우는 것은 자신에게 속한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므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사실 인간의 육신에서 나오는 것은 하나님께는 아무 가치가 없는 쓰레기 같은 것입니다.
사실 대단한 것도 아닌데 내려놓는다고 야단이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썩어질 그것을 달라고 하는 것은 정말 가치가 있는 하늘의 것으로 주시기 위함입니다.
즉 인간이 소유하고 자랑하고 붙잡고 있는 부귀 명예 인기 학벌들이 바로 이런 가치 없는 쓰레기들임을 말해줍니다.
인간에서 나오는 이런 모든 것들은 십자가를 통과하여 새롭게 되어야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 3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반면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는 삶이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부족함이 없는 그리스도안의 풍성한 삶을 예표합니다.
만약 내가 나를 부인하고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헌신하면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는 풍성한 삶을 영육 간에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나를 부인하지 않고 나의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리지 않고 움켜쥔다면 나의 삶은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의 삶처럼 늘 부족한 삶이 될 것입니다.
나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곤핍한 것은 환경 때문이 아니라 ,내 내면에서 이러한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즉 하늘의 것을 붙잡지 않고 땅의 배설물 같은 것을 붙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내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은 나에게 하나님 자신을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날마다 죽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이 사실 것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