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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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540회 작성일 2009-06-27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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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3: 16-17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삽시다.
오늘은 참으로 즐거운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비를 내리시고 햇빛을 주시므로 인간이 먹고 살 수 있도록 각종 양식을 주심을 감사하는 추수 감사절입니다.
교회가 지키는 추석 명절입니다.
더욱 감사한 것은 온 세계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물론 우리나라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만은 모든 곡식을 땅에 심은 것마다 대풍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경제가 어려운데 흉년이 들면 얼마나 사람들의 마음이 흉융하겠습니까?
생각해보니 하나님 감사합니다 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그리고 우리 화평교회도 하나님께서 또 주신 것이 있는데 150평이나 되는 새 성전을 주셨고 지금 예배를 드리는 이곳입니다.
2-3달 만에 주셨습니다.
그리고 100평이나 되는 카페 식당을 주셨습니다.
이 카페 식당은 주중에 주민들을 위하여 카페로 사용 할 것입니다.
내 마음 천국이라는 이름인데 이 카페에 오는 자마다 천국 같은 즐거움과 행복이 있기를 기원하는 이름입니다. 이와 같은 것은 보이는 하나님의 주신 선물이고 우리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귀한 선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인데 오늘 이것을 모두 받고 가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인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크신 사랑으로 주셨으니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는 사랑이 없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집에서 키우는 개도 주인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개가 목메어 죽을 수는 없고 그 집을 띠쳐 나가 버립니다.
가난한 한 청년 하숙생이 있었는데 마침 그 옆에는 벽을 하나두고 아름다운 처녀가 있었는데 이 청년이 옆방에 있는 처녀를 짝사랑했습니다.
이 청년은 연말이 되고 성탄절 캐럴송이 울리지만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술 한 잔하고 비디오 한편보고 그 날도 갈 곳이 없어 홀로 자기 방에 방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따라 벽 너머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침대가 삐꺽거리는 소리와 이상한 신음소리였습니다.
벽에 귀를 대고 그 소리를 듣던 청년은 엄청난 슬픔과 배신감에 사로잡혀서 그 처녀에 대한 환상이 깨졌습니다. 잠시 후 그 방이 조용해졌습니다. 다음 날, 경찰은 그 하숙집에서 두 구의 시체를 발견합니다.
침대에 목을 맨 청년과 옆방에서 비소(살충제)중독으로 침대에 엎딘 채 죽은 처녀였습니다.
처녀 역시 유서에는 고독의 고통과 삶에 대한 혐오감이 구구절절이 배어 있었습니다.
두 영혼이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외로움에 견디다 못해 자살한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나와 당신의 이야기 입니다. 태초에 인간이 죄를 지어 생긴 것이 이 벽이 하나님과의 벽이었습니다.
하나님과의 벽이 생김으로 인간 사이에도 벽이 생겼습니다.
또한 자연 환경과의 벽도 생겼고, 자기 자신과의 벽도 생겼습니다.
자기 자신을 받아드리지 못하고 용서해 주지 못하지 않습니까?
이 벽이 있는 한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행복하게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을 사랑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벽을 넘을 수 있는 방법으로 독생자 예수님을 지금부터 약 2천 년 전에 이 땅에 보내심으로 그 죄의 벽을 완벽히 넘어 하나님께로 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선물로 받아 드릴 때에 하나님과의 벽을 무너짐으로 사람과의 벽을 허물고, 자기와의 벽을 허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아들을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아무런 조건이 없는 사랑입니다.
그냥 사랑하시기 때문에 아들을 십자가상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보통 부모들은 자기 아이를 자기 생명과 같이 사랑합니다.
그것도 독자라면 애지중지하며 끔찍이 사랑하겠지요?
어느 누가 자기 아이를 희생하면서까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기 위해 당신의 독생자를 아낌없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12여 년 전에 텔렌트 최 모 양은 고등학생 야구 선수인 조 모 군의 우상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조군이 야구로 유명해지면서 최 모 양에게 편지를 해서 누나를 삼고 싶다고 했는데 결국 두 사이는 결혼까지 합니다.
그런데 부부싸움을 하다가 이혼을 하고 최 모 양은 자살을 하고 말았습니다.
남자는 여자가 하기 나름입니다 는 말로 인기 몰이를 했는데
그렇게 서로 배신자라고 하니까 네티즌들도 편이 갈라져서 들끓고 있습니다.
자기가 직접 배신당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사람들은 배신을 보면 자기가 당사자가 아니어도 분노합니다. 그런데 우리 자신을 살펴보면 우리는 그 이상으로 얼마나 하나님을 얼마나 배신합니까?
하나님은 인간에게 모든 것을 다 주셨습니다.
자연을 주시고 내 생명을 주시고 가정을 주시고 그리고 생업도 주시고 그것도 부족하여 예수 그리스도까지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큰 사랑을 감사하기는커녕 하나님을 향하여 욕을 하고 하나님이 계시면 내 손에 장을 지져 하늘로 올라간다고 하는 말을 하는데 얼마나 벌을 받아야 마땅하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하나님은 멸망치 않고 영생을 주시려고 아들을 주신 것입니다.
아들을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하나님이 이 세상에 찾아 오셨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여자의 몸을 빌려 태어나신 것입니다.
어느 날 밤, 양 우리에 이리 떼가 나타나 양들을 무참히 찢어 죽였습니다. 양들은 깜짝 놀라 사방으로 도망쳤습니다. 아침에 주인은 양떼를 찾아 나섭니다. 그런데 양들은 이리 때문에 너무 놀라서 인기척이 나면 다 도망갑니다. 강제로 한두 마리 붙잡았지만 주인도 몰라보고 앙탈을 부렸습니다. 양들을 사랑했던 주인은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 마음 아파하는 모습을 주인의 아들이 아버님! 제가 양들을 찾아오겠습니다. 하고는 아들은 양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양을 찾아다녔습니다.
양을 만날 때 놀라게 하지 않으려고 양처럼 소리를 내고, 양처럼 기어 다녔습니다.
그렇게 찾다가 머리는 가시에 찔려 피투성이가 되었고, 목은 쉬었고, 손과 발은 찢겨져 나갔습니다.
그렇게 해서 한 마리, 한 마리 찾아 12마리를 찾았지만 결국 아들은 양을 찾다가 입은 상처 때문에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 모습을 그냥 지켜봤던 아버지는 너무 매정했습니다.
어떻게 양 몇 마리 때문에 아들을 죽게 놔둡니까?
또한 그런 모습을 자행했던 아들은 너무 어리석어 보였습니다. 어떻게 양 몇 마리 때문에 자기 목숨을 버립니까?
그렇게 했던 이유는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양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셨습니다.
오늘 이 예수님을 감사하게 받아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망하지 않습니다.
감사는 산수에서 더하기와 같아서 모든 것에 감사하면 거기에 하나님의 축복이 더해집니다.
어떤 일이든지, 어디서든지 감사하면 플러스의 축복이 주어지지만 그러나 반대로 원망과 불평은 빼기와 같아서 있는 것까지 다 빼앗기고 없어집니다. 오늘은 여태까지 감사해 보지 못한 자가 감사 할 이유를 찾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날입니다.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 드릴 수 있나 하고 고민을 하고 불평을 하고 있는 자가 있다면 믿으면 됩니다.
어떻게 믿느냐? 그 사실을 믿으면 됩니다.
만유인력을 발견한 아인슈타인은 과학의 근거는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과학도 믿음의 바탕에서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우주선에 사람을 태워서 우주로 쏘아 올립니다.
그때 우주선에 태워져 달나라로 가는 사람도, 보내는 사람도 별로 긴장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우주선이 다시 지구로 무사히 돌아올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과학조차도 믿음에 기초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 같은 이치는 우리들의 생활 속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비행기를 타고 공중에 높이 올라가서도 편안히 잠을 잡니다. 왜냐하면 이 비행기가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데려다 준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들이 기차를 타고 그 좁은 레일 위를 마구 달리면서도 단잠을 잡니다. 그것도 믿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좋은 믿음입니까?
그래서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라고 한 것입니다.
어떻게 믿습니까? 알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고로 믿음은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무지한 사람입니다.
성경은 무지가 죄라고 했습니다. 모르면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무지하면 세상을 살아가기가 더 힘이 듭니다.
같은 길을 걸어가도 느낌이 갈 때 다르고 올 때 다릅니다.
갈 때는 모르는 길을 가게 되니까 더 멀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올 때는 아는 길을 오기 때문에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사람이 세상을 알고 살아가는 것과 세상을 알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이렇게 큰 차이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세상이 무엇이 어떻다는 것을 알고 살아갑니까?
그냥 살아가지 않습니까?
그러니 얼마나 답답하고 얼마나 힘들고 얼마나 불안하고 얼마나 죽게 생겼는지 나중에는 다 죽고 말지 않습니까?
그래서 지식의 근본이 되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 곧 나를 아는 길이고, 세상을 아는 길이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아는 길입니다.
특히 나의 생사화복이 전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문제에 달려 있습니다.
아는 일이 곧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모르는데 무슨 믿음이 생기겠습니까?
우리가 이렇게 예수님을 알고, 믿게 되면 맨 먼저 변화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목적의 변화입니다.
나 중심에서 예수 중심으로 목적이 변화됩니다.
또 소속이 바뀌는 변화가 오게 됩니다. 이것이 믿음의 힘입니다.
저주 받을 자가 복을 바는 체질로 망할 자가 구원을 얻고 죽을 자가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라이플리(Ripley)의 믿거나 말거나(Believe it onr Not) 기사 중에 쇠막대기에 대한 기사가 나옵니다.
가공하지 않은 쇠막대기는 5 달러에 불과하지만 말의 신발인 편자를 만들면 50 달러의 가치가 되고 그리고 그 쇠막대기로 바늘을 만들면 5,000 달러의 가치가 된다.
그리고 그 쇠막대기로 세계적인 스위스 시계의 평형스프링을 만들면 그것은 500,000 달러의 가치가 된다는 것입니다.
쇠막대기 하나도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부가 가치가 달라지는데 인간이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사용되어 지느냐? 에 따라 엄청 가치가 달라집니다.
인간이 최고의 가치를 발휘 할 수 있음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인 예수님을 어떻게 영접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는 전혀 달라집니다.
어떤 자들에게는 예수와 잘 사귀지 못하여 오히려 그 인생길이 오히려 심판을 받는 것 같고 저주의 삶을 사는 것 같이 인생을 사는 자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그 예수님이 그들의 심판과 정죄가 됩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을 받고 멸망을 면하도록 길을 열어 주셨는데도 받아 드리지 못한다면 무슨 할 말이 없지 않겠습니까?
어디 가서 하소연 하겠습니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들에게는 그 예수님이 영생이 되고 부활이 되고 축복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예수님을 잘 활용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예수를 감사함으로, 기쁨으로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와 축복을 받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해군 제독 이였던 데오도르 루즈벧트 주니어(Brigadier General Theodore Roosevelt Jr.)가 한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수병이 비행기 표를 파는 창구에 와서 그가 어머니를 보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서 그러니 자기 제독이 탈 그 비행기의 표를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창구에서 표를 파는 직원이 그 말에 조금도 감동되지 않고서 당신은 지금이 전쟁 중이란 것을 모르시오하면서 표를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루즈벧트 제독이 일어나서는 그 창구로 가서는 그 여인에게 이 수병에게 내 비행기 표를 그에게 주시오 하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루즈벧트의 친구가 깜짝 놀라서 테디, 자네 너무 경솔하게 행동하는 것 아니야 ?
해군 제독이 수병과 같이 비행을 타다니 하고 나무라자 그러자 루즈벧트가 대답하기를 그것은 계급의 문제야. 나는 제독이지만 그는 나의 아들이야 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이기 때문에 자격이 없는 수병이 제독과 같은 비행기를 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이런 놀라운 권세가 우리에게 주어진다.
우리는 감히 존귀하신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우리는 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담대하게 나갈 수 있는 권세가 주어집니다.
나를 그렇게도 힘들고 괴롭던 문제가 더 이상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해 져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 추수 감사절에 좋으신 예수님을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로 감사하게 받아 드리기만 하면 여러분은 참으로 놀라운 신분의 변화가 올 것입니다.
사랑이 메말라 있는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하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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