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하나님과 단독으로 만나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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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575회 작성일 2009-06-27 11:11본문
창세기 32 : 24 - 29 당신은 하나님과 단독으로 만나야 할 때입니다.
미국의 한 여론조사 기관이 당신의 외모를 바꿀 수 있다면 바꾸겠는가? 라는 설문조사를 하였는데 남자 응답자의 94%, 여자 응답자의 99%가 바꿀 수 있다면 바꾸겠다고 하였답니다.
그만큼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외모를 포함하여 자신의 존재나 자신의 삶과 인생에 대하여 대체로 만족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은 높은 산과 바다의 거대한 파도와 굽이치는 강물과 광활한 태양과 무수히 반짝이는 별들을 보고는 경탄하면서 정작 가장 경탄해야 할 자기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별로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다 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무엇인가? 내 존재의 의미가 없는 것 같은 그렇다고 자기 스스로 만족하지도 못하고 그래서 무엇인가 변화가 되어야만 잘 살아 것 같은데 어떻게 변화가 되어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내가 진정 바꾸어야 할 것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외모입니까? 여기 바꿔야 할 사람 많이 있습니다.
그것도 한번 바꿔 볼 필요를 느낄 것입니다.
어떤 이는 작명가를 찾아가서 이름을 바꾸기도 합니다.
제 주위에도 그런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진작 바꿔야 하는 것은 외모와 이름보다 하나님 앞에서의 가지는 인간의 태도가 바꿔 져야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 설 때에게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 때부터 인생이 제대로 복 받고 살아 갈 길이 새롭게 보이게 됩니다.
시16: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본문에는 야곱이라는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인생의 고민을 안고서 지금까지 살아 온 길이 잘 살아 왔나 못 살아 왔나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 앞에 닥친 일에 대하여도 이렇게 할 것인가? 저렇게 할 것인가? 고민입니다.
이 고민을 가지고 하나님을 만나고 나름대로 변론하고 토론하고 따지고 묻고 답하고 아마 대등한 자격으로 마치 씨름을 하든지 밀고 당기고 있었습니다.
도저히 승부가 나지 않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이겨 보려고 합니다.
나를 왜 이렇게 하였는지 왜 저렇게 하였는지 하고 따지기도 하고
이렇게 해 주지 않으면 하나님도 아니냐? 라고 하고
심지어는 하나님은 나보다 못하다고 제 마음대로 하지 않습니까?
이 모든 것이 잘 못 되었다고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고 경험해 보지를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하나님에 대하여 마음대로 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험해 보면 내 자신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야곱이라는 사람도 하나님을 맛보지 못하고는 하나님이랑 씨름을 하고 서로 밀어 내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일본 씨름 스모처럼 밀어 내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도저히 말로 안 되고 가르쳐도 안 되고 타일러도 안 되고 경고를 해도 안 듣고 ...
그래 너 무얼 가지고 그렇게 큰 소리치노
한번 맛을 볼래 하고 사람이 힘을 쓰는 환도 뼈를 쳐버렸습니다.
환도 뼈(허리 뼈 골반)가 골절이 되면 힘을 더 이상 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제 맛을 보여 주고는 네가 뭐야 하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 이다.
그랬더니 야곱이 말하기를 저는 사기꾼이요 다투는 자입니다. 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제 제대로 자기 자신이 어떤 인물 인지를 알게 된 것입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나는 어떤 존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존재입니까?
나 자신을 나타내기 위해 명함도 내놓고 이력서도 내놓습니다.
그렇다면 나의 이력서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 나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병원에서 종합검사를 통해 나타난 신체적 모습이 나라고 할 수 있습니까?
키가 얼마고 몸무게 혈액형 시력 등등 그것이 정답은 아닐 것입니다.
사람들은 나를 여러 가지로 드러내려고 하지 않습니까?어떻게 보면 나는 가면을 쓰고 사는 사람들이고 나의 모습도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 가지로 나 자신을 위장합니다.
학력, 경력, 지식, 권력, 재력, 체력으로 자신을 위장해보지만 하나님 앞에 나를 정직하게 대면하게 되면 나라는 존재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야곱은 네가 누구냐? 는 물음에 내 이름은 야곱입니다. 고 고백하였습니다.
야곱이 어떤 사람입니까?
야곱은 태어날 때부터, 쌍둥이로 배속에서 싸웠고, 그리고 형에서의 발뒤꿈치를 잡고 나왔습니다.
그래서 야곱이라고 하는 이름의 뜻은 발꿈치를 붙잡는 자 약탈자 사기꾼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야곱은 무엇이든지 움켜쥐면 놓지 않고 좋은 것이 있으면 빼앗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욕심의 사람이었습니다.
이게 인생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한번 잡으면 놓을 줄 모르고 아무 것이라도 잡고 보자는 식이 아닙니까?
그런 욕심이 형에서의 장자 권과 축복 권을 빼앗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강한 의지와 욕심으로 인해 야곱은 힘겨운 인생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에서와 야곱은 이삭의 쌍둥이 아들로서 이 둘 사이에는 사실 태어나기 전에 벌써 어미의 태속에서 싸우고 있었습니다(창 25:22).
에서와 야곱이 장성하였을 때 사냥에서 돌아온 베고픈 형의 약점을 이용하여 죽 한 그릇으로 아우는 장자의 명분을 사게 되고(창 25:33), 야곱은 급기야 어머니 리브가와 함께 눈이 어두운 아버지 이삭마저 속이면서 장자의 축복을 가로채게 됩니다.(창 27:27-29).이 사건으로 인하여 에서와 야곱의 갈등은 극에 달하게 되고 마침내 에서의 분노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야곱을 죽이겠다는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창 27:41).
그리하여 야곱은 할 수 없이 에서를 피하여 외삼촌 집으로 떠나게 됩니다.
이게 인간의 이력서요 인간의 본질입니다.
어느 정도 치면 되겠습니까? 한 대도 안 때렸으면 좋겠는데 10-20대를 때려도 안 됩니다
손가락 하나 정도로 안 되는 것 같아요
손을 들어서 환도 뼈를 쳤습니다. 환도 뼈가 어그러지니까 그 자리에서 쓰러져서 절름발이가 되었지요. 절단 났습니다. 꿈이 다 깨졌습니다.
도망을 쳐야 되는데 이제는 환도 뼈가 어그러졌으니까 이러고 어떻게 도망을 칩니까?
이제는 큰일 났거든요.
내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님을 절실하게 알게 된 것입니다.
내 힘으로는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내 인생의 모든 바른 결정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나는 더 이상 인간적인 야곱으로 사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이스라엘로 사는 자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 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야곱이라는 이름으로는 축복을 받을 수가 없다.
당신이 살아온 인생관으로는 성공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멘
이름을 바꾸라. 인격의 태도를 바꾸라 삶의 사고방식을 바꾸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으로는 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기꾼, 약탈자라는 이름으로 축복을 받을 수가 있겠습니까?
내 이름이 바뀌기를 원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사고방식, 가치관, 삶의 방식으로는 미래가 없다는 것입니다.
성공과 행복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안에서 성령으로 거듭나라는 것입니다.(벧전1:3)
고린도후서 5장17절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에베소서 4장 22-24절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기도의 내용도 바뀌게 됩니다.
생활의 태도 바뀌게 됩니다.
말도 생각도 걸음걸이도 바라보는 시각도 바꿔야 합니다.
여태까지는 다른 사람과 다른 것들이 바꿔지기를 원했다면 이제는 내가 바꿔 버리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20년 전의 야곱이라면 에서를 떠나게 해달라든가, 에서에게 어떤 장애를 일으키게 해달라든가, 그것도 아니라면 형의 기억이 없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하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야곱은 이제 더 이상 이런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두려움을 덜어줄 것과 다음 날 벌어질 일에 대하여 잘 대응할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내게 주어진 만사를 내 수준에서 보지 않고 하나님의 심정으로 보게 됩니다.
과거에는 모든 것을 혈과 육으로만 하였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인도하심으로만 합니다.
여러분 참으로 이상하지 않습니까?
과거에는 모든 것을 내 힘으로만 살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지 않습니까?
그러면 되었습니다.
그러한 삶의 현장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하심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 인생 모든 축복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하나님을 부여잡았습니다.
부여잡고 당신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복을 주십시오.
나에게 복을 안주면 당신 절대 놓지 않겠습니다.
나는 이제 허벅다리가 어긋났으니 절름발이가 되어서 형이 오면 도망도 못치고 이제 죽게 되었습니다.
도망치겠다는 인간적 계획이 허물어졌습니다.
성경에 보면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세상이 인간의 계교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없이는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좀 하나님께 매달리시기를 바랍니다.
나오지 않던 새벽기도회도 나오시고 공적인 예배도 철야기도도 나오셔야 합니다.
그리고 홀로 밤을 지새우며 기도도 해야 합니다.
교회에 가장 일찍 와서 가장 늦게 가시기를 바랍니다.
창세기 32장 26절에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축복이 있어야 안 무너지지 하나님의 축복이 없으면 무너지는 것입니다.
가정도 하나님의 축복이 있어야 되고, 자식을 기르는 것도 하나님의 축복이 있어야 되고, 사업을 하는 것도 하나님의 축복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환도 뼈를 쳐서 어그러져서 인간의 힘으로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안 됩니다.
이제 큰 일 났습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 하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이제는 처자들과 같이 갈수도 없고 도망칠 수도 없고 하나님이 복을 받아 하나님이 같이 했어야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을 반드시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떠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복을 받아야 하지 않습니까?
복을 받기 전에는 제발 먼저 떠나지 마시기 바랍니다.
처자식을 다 보내놓고, 인간의 모든 물질과 소유를 다 내려놓고 형 에서에게 용서를 얻기 전에 먼저 그 성품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했던 것입니다.
그의 모든 인간적인 생각을 먼저 내려놓고, 지금 형에서를 만나기에는 인간적으로는 너무 두렵고, 답답한 마음을 어떻게든 하나님을 통해서 위로 받고, 용기를 얻어야만 그는 형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으로는 형 앞에 설 용기가 감히 나지 않습니다. 죽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형이 용서의 마음을 품지 않고 그를 죽이려 든다면 그의 모든 20년의 노력과 수고와 비전이 한 거품의 방울처럼 없어집니다.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그는 하나님을 붙잡고, 먼저 그 자신이 형을 담대하게 만날 수 있는 용기를 얻어야 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형에서의 마음에 감동을 주셔서 용서의 마음을 갖도록 해 주셔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도 살아남을 수 있고, 그 처자식도 살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그의 미래를 멈추지 않으시고, 요셉을 통하여서 부어주실 자손의 복도 받을 수 있으려면 이 만남과 용서는 반드시 지나가야 할 관문이었습니다.
나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를 돌아보는 것과 회개와 그리고 용서의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을 합당한 자로 인정하시고 은혜와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나의 간절한 고백과 기도와 마음의 태도를 전제로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그의 모든 문제를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겨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입니다.
여러분은 몇 년이 된 문제가 있습니까?
스스로 인간적인 것을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안되면 하나님이 쳐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되십시오 하나님은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미국의 한 여론조사 기관이 당신의 외모를 바꿀 수 있다면 바꾸겠는가? 라는 설문조사를 하였는데 남자 응답자의 94%, 여자 응답자의 99%가 바꿀 수 있다면 바꾸겠다고 하였답니다.
그만큼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외모를 포함하여 자신의 존재나 자신의 삶과 인생에 대하여 대체로 만족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은 높은 산과 바다의 거대한 파도와 굽이치는 강물과 광활한 태양과 무수히 반짝이는 별들을 보고는 경탄하면서 정작 가장 경탄해야 할 자기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별로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다 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무엇인가? 내 존재의 의미가 없는 것 같은 그렇다고 자기 스스로 만족하지도 못하고 그래서 무엇인가 변화가 되어야만 잘 살아 것 같은데 어떻게 변화가 되어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내가 진정 바꾸어야 할 것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외모입니까? 여기 바꿔야 할 사람 많이 있습니다.
그것도 한번 바꿔 볼 필요를 느낄 것입니다.
어떤 이는 작명가를 찾아가서 이름을 바꾸기도 합니다.
제 주위에도 그런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진작 바꿔야 하는 것은 외모와 이름보다 하나님 앞에서의 가지는 인간의 태도가 바꿔 져야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 설 때에게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 때부터 인생이 제대로 복 받고 살아 갈 길이 새롭게 보이게 됩니다.
시16: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본문에는 야곱이라는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인생의 고민을 안고서 지금까지 살아 온 길이 잘 살아 왔나 못 살아 왔나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 앞에 닥친 일에 대하여도 이렇게 할 것인가? 저렇게 할 것인가? 고민입니다.
이 고민을 가지고 하나님을 만나고 나름대로 변론하고 토론하고 따지고 묻고 답하고 아마 대등한 자격으로 마치 씨름을 하든지 밀고 당기고 있었습니다.
도저히 승부가 나지 않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이겨 보려고 합니다.
나를 왜 이렇게 하였는지 왜 저렇게 하였는지 하고 따지기도 하고
이렇게 해 주지 않으면 하나님도 아니냐? 라고 하고
심지어는 하나님은 나보다 못하다고 제 마음대로 하지 않습니까?
이 모든 것이 잘 못 되었다고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고 경험해 보지를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하나님에 대하여 마음대로 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험해 보면 내 자신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야곱이라는 사람도 하나님을 맛보지 못하고는 하나님이랑 씨름을 하고 서로 밀어 내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일본 씨름 스모처럼 밀어 내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도저히 말로 안 되고 가르쳐도 안 되고 타일러도 안 되고 경고를 해도 안 듣고 ...
그래 너 무얼 가지고 그렇게 큰 소리치노
한번 맛을 볼래 하고 사람이 힘을 쓰는 환도 뼈를 쳐버렸습니다.
환도 뼈(허리 뼈 골반)가 골절이 되면 힘을 더 이상 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제 맛을 보여 주고는 네가 뭐야 하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 이다.
그랬더니 야곱이 말하기를 저는 사기꾼이요 다투는 자입니다. 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제 제대로 자기 자신이 어떤 인물 인지를 알게 된 것입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나는 어떤 존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존재입니까?
나 자신을 나타내기 위해 명함도 내놓고 이력서도 내놓습니다.
그렇다면 나의 이력서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 나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병원에서 종합검사를 통해 나타난 신체적 모습이 나라고 할 수 있습니까?
키가 얼마고 몸무게 혈액형 시력 등등 그것이 정답은 아닐 것입니다.
사람들은 나를 여러 가지로 드러내려고 하지 않습니까?어떻게 보면 나는 가면을 쓰고 사는 사람들이고 나의 모습도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 가지로 나 자신을 위장합니다.
학력, 경력, 지식, 권력, 재력, 체력으로 자신을 위장해보지만 하나님 앞에 나를 정직하게 대면하게 되면 나라는 존재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야곱은 네가 누구냐? 는 물음에 내 이름은 야곱입니다. 고 고백하였습니다.
야곱이 어떤 사람입니까?
야곱은 태어날 때부터, 쌍둥이로 배속에서 싸웠고, 그리고 형에서의 발뒤꿈치를 잡고 나왔습니다.
그래서 야곱이라고 하는 이름의 뜻은 발꿈치를 붙잡는 자 약탈자 사기꾼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야곱은 무엇이든지 움켜쥐면 놓지 않고 좋은 것이 있으면 빼앗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욕심의 사람이었습니다.
이게 인생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한번 잡으면 놓을 줄 모르고 아무 것이라도 잡고 보자는 식이 아닙니까?
그런 욕심이 형에서의 장자 권과 축복 권을 빼앗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강한 의지와 욕심으로 인해 야곱은 힘겨운 인생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에서와 야곱은 이삭의 쌍둥이 아들로서 이 둘 사이에는 사실 태어나기 전에 벌써 어미의 태속에서 싸우고 있었습니다(창 25:22).
에서와 야곱이 장성하였을 때 사냥에서 돌아온 베고픈 형의 약점을 이용하여 죽 한 그릇으로 아우는 장자의 명분을 사게 되고(창 25:33), 야곱은 급기야 어머니 리브가와 함께 눈이 어두운 아버지 이삭마저 속이면서 장자의 축복을 가로채게 됩니다.(창 27:27-29).이 사건으로 인하여 에서와 야곱의 갈등은 극에 달하게 되고 마침내 에서의 분노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야곱을 죽이겠다는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창 27:41).
그리하여 야곱은 할 수 없이 에서를 피하여 외삼촌 집으로 떠나게 됩니다.
이게 인간의 이력서요 인간의 본질입니다.
어느 정도 치면 되겠습니까? 한 대도 안 때렸으면 좋겠는데 10-20대를 때려도 안 됩니다
손가락 하나 정도로 안 되는 것 같아요
손을 들어서 환도 뼈를 쳤습니다. 환도 뼈가 어그러지니까 그 자리에서 쓰러져서 절름발이가 되었지요. 절단 났습니다. 꿈이 다 깨졌습니다.
도망을 쳐야 되는데 이제는 환도 뼈가 어그러졌으니까 이러고 어떻게 도망을 칩니까?
이제는 큰일 났거든요.
내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님을 절실하게 알게 된 것입니다.
내 힘으로는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내 인생의 모든 바른 결정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나는 더 이상 인간적인 야곱으로 사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이스라엘로 사는 자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 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야곱이라는 이름으로는 축복을 받을 수가 없다.
당신이 살아온 인생관으로는 성공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멘
이름을 바꾸라. 인격의 태도를 바꾸라 삶의 사고방식을 바꾸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으로는 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기꾼, 약탈자라는 이름으로 축복을 받을 수가 있겠습니까?
내 이름이 바뀌기를 원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사고방식, 가치관, 삶의 방식으로는 미래가 없다는 것입니다.
성공과 행복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안에서 성령으로 거듭나라는 것입니다.(벧전1:3)
고린도후서 5장17절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에베소서 4장 22-24절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기도의 내용도 바뀌게 됩니다.
생활의 태도 바뀌게 됩니다.
말도 생각도 걸음걸이도 바라보는 시각도 바꿔야 합니다.
여태까지는 다른 사람과 다른 것들이 바꿔지기를 원했다면 이제는 내가 바꿔 버리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20년 전의 야곱이라면 에서를 떠나게 해달라든가, 에서에게 어떤 장애를 일으키게 해달라든가, 그것도 아니라면 형의 기억이 없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하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야곱은 이제 더 이상 이런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두려움을 덜어줄 것과 다음 날 벌어질 일에 대하여 잘 대응할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내게 주어진 만사를 내 수준에서 보지 않고 하나님의 심정으로 보게 됩니다.
과거에는 모든 것을 혈과 육으로만 하였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인도하심으로만 합니다.
여러분 참으로 이상하지 않습니까?
과거에는 모든 것을 내 힘으로만 살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지 않습니까?
그러면 되었습니다.
그러한 삶의 현장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하심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 인생 모든 축복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하나님을 부여잡았습니다.
부여잡고 당신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복을 주십시오.
나에게 복을 안주면 당신 절대 놓지 않겠습니다.
나는 이제 허벅다리가 어긋났으니 절름발이가 되어서 형이 오면 도망도 못치고 이제 죽게 되었습니다.
도망치겠다는 인간적 계획이 허물어졌습니다.
성경에 보면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세상이 인간의 계교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없이는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좀 하나님께 매달리시기를 바랍니다.
나오지 않던 새벽기도회도 나오시고 공적인 예배도 철야기도도 나오셔야 합니다.
그리고 홀로 밤을 지새우며 기도도 해야 합니다.
교회에 가장 일찍 와서 가장 늦게 가시기를 바랍니다.
창세기 32장 26절에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축복이 있어야 안 무너지지 하나님의 축복이 없으면 무너지는 것입니다.
가정도 하나님의 축복이 있어야 되고, 자식을 기르는 것도 하나님의 축복이 있어야 되고, 사업을 하는 것도 하나님의 축복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환도 뼈를 쳐서 어그러져서 인간의 힘으로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안 됩니다.
이제 큰 일 났습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 하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이제는 처자들과 같이 갈수도 없고 도망칠 수도 없고 하나님이 복을 받아 하나님이 같이 했어야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을 반드시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떠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복을 받아야 하지 않습니까?
복을 받기 전에는 제발 먼저 떠나지 마시기 바랍니다.
처자식을 다 보내놓고, 인간의 모든 물질과 소유를 다 내려놓고 형 에서에게 용서를 얻기 전에 먼저 그 성품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했던 것입니다.
그의 모든 인간적인 생각을 먼저 내려놓고, 지금 형에서를 만나기에는 인간적으로는 너무 두렵고, 답답한 마음을 어떻게든 하나님을 통해서 위로 받고, 용기를 얻어야만 그는 형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으로는 형 앞에 설 용기가 감히 나지 않습니다. 죽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형이 용서의 마음을 품지 않고 그를 죽이려 든다면 그의 모든 20년의 노력과 수고와 비전이 한 거품의 방울처럼 없어집니다.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그는 하나님을 붙잡고, 먼저 그 자신이 형을 담대하게 만날 수 있는 용기를 얻어야 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형에서의 마음에 감동을 주셔서 용서의 마음을 갖도록 해 주셔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도 살아남을 수 있고, 그 처자식도 살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그의 미래를 멈추지 않으시고, 요셉을 통하여서 부어주실 자손의 복도 받을 수 있으려면 이 만남과 용서는 반드시 지나가야 할 관문이었습니다.
나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를 돌아보는 것과 회개와 그리고 용서의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을 합당한 자로 인정하시고 은혜와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나의 간절한 고백과 기도와 마음의 태도를 전제로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그의 모든 문제를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겨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입니다.
여러분은 몇 년이 된 문제가 있습니까?
스스로 인간적인 것을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안되면 하나님이 쳐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되십시오 하나님은 자신을 드러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