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말로 믿음의 배짱이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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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536회 작성일 2009-06-27 11:12본문
창세기 13 : 8 - 18 지금이야 말로 믿음의 배짱이 필요한 때입니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영원히 풀지 못할 것 같은 숙원의 문제가 있었는데 지금은 해결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자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입니다.
저도 지금까지 이문제로 고민을 많이 합니다.
영원히 풀지 못할 것 같았던 숙제가 깨끗이 해결 받았습니다.
자장면을 반(半), 짬뽕을 반씩 나눠주는 식당이 있어서 무엇을 먹을까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세상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모든 문제들이 자장면 짬뽕같이 해결이 쉬운 것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는데 심각성이 있습니다. 사람은 태어나서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지각이 생기는 시기 이후로 죽을 때까지 순간순간 선택과 결단을 요구를 받습니다.
한 번의 선택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만들거나 평생을 두고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는 선택도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자신이 선택한 길에 축복이 따라 주길 소원하며 기도합니다.
특히 믿음의 사람들도 하나님의 뜻이 과연 어느 쪽인지 보여 달라고 간구하여 그 길로 가기를 원하지 않습니까?
특이나 오늘날과 같이 어려운 이 시기에는 더욱 선택이 중요합니다.
본문에서도 삼촌과 조카사이 혈육지간에서 생사화복의 삶의 조건을 두고 서로가 헤어져야 할 선택을 하여야만 하는 운명적인 시간이 왔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선택은 기준이 달라서 서로가 다른 선택을 하였는데 한 사람 아브라함의 선택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선택이 되어서 하나님의 위로와 자자손손 축복의 약속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왕 세상을 살아가려면 하나님의 관심을 받는 선택을 하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자기 마음대로 선택해 놓고서 찡찡 짜지 말고 하나님을 생각하는 선택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참으로 멋있는 말을 했습니다.
사람이 그 마음에 품은 것을 겉으로 드러낸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생각하는 것조차도 예수님이 생각을 가지고 마음에 품은 뜻도 예수님의 심장을 가지고 말을 하더라도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같이 행하더라도 예수님이 주시는 힘으로 라고 하였습니다.
이게 일상의 생활입니다.
오늘의 나의 문제는 내 마음대로의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의 선택의 특징은 이런 성격이 있습니다.
꼭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유가 없습니다.
한쪽으로 밀어 붙이기 때문에 충돌을 가지고 오고 상처를 가져 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요사이는 초등학생도 자살을 한다고 합니다.
공부 때문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선택은 2가지입니다.
내 욕심을 따르는 것 하나
그리고 또 하나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바울은 이것을 육신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라고 말했습니다.
선택에는 항상 결과가 따르게 마련입니다.
육신의 소욕은 사망
성령의 소욕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내 마음에 평안이 없다는 것은 내가 너무 육신적인 소욕에 치우쳐져 있구나를 생각해 보면 맞습니다.
조카의 선택을 봅니다.
여러 사정이 있고 이유가 있겠지요
누가 이런 것을 유추하여 말을 합니다.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삼촌먼저 조카 먼저 하다가 조카 먼저가 되어 롯이 합리적인 선택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먼저 하든지 나중 하든지 내가 어떤 의도를 하였는가? 에 따라 결정이 지어지는 것입니다.
선한 결과를 내는 대는 먼저 나중이 없습니다.
사람은 그 마음에 품은 대로 그 모습이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이 먼저하고 롯이 나중에 땅을 선택하여도 그 결과는 같습니다.
저와 우리 집사람이 고기 집에 가서 고기를 먹게 되면 항상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언제든지 저는 배불리 먹고 우리 집사람은 많이 먹지를 않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 집사람이 가위를 잡았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제가 가위를 잡아도 제가 많이 먹더라고요
그 사람의 성격입니다.
평상시에 가졌던 신앙의 습관이 나로 하여금 그 믿음의 선택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습니다.
롯은 땅을 분배하는데 소알 땅을 보니 자기에게 적격이었습니다.
이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야
그 땅이 어떤 땅인지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내가 원하는 육신의 욕심을 따라서 선택의 여지가 없고 여유도 없습니다.
착각은 자유라고 이게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자기가 평상시의 신앙이 얼마나 정욕 적이고 자기중심적인지 모릅니다.
아예 보따리를 싸서 그곳으로 옮겼습니다.
그 곳이 어떤 곳인지 예고를 합니다.
13절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아브람은 하나님의 관심을 가지게 하는 선택을 할 수 있음은 무엇입니까?
혈육의 욕심을 따라 가기보다는 그래도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신안 생활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새벽기도회도 나오고 철야도 나오고 수요 예배도 구역 예배도 그리고 공적 예배를 참여 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았다고 합니다.
인간은 누구든지 모두 육신적인 욕심이 가득차 있습니다.
누구하나 의인이 없고 도토리 키를 재듯이 비슷비슷합니다.
그런데 달리 생각 할 수 있음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입니다.
저도 오늘 새벽에 기도가 없었다면 육신적인 일과 생각에 사로잡혀 죽게 생기겠고 그러다가 죄를 짓게 될 수밖에 없는 인간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 이름을 부르고 기도를 하니 웬일입니까?
육신적인 일에서 자유 함을 얻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제가 살아 난 것입니다.
그러니 무엇인가 여유가 생기고 하나님의 은혜가 머무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여유가 있습니다.
육신의 선택은 소알로 가야하고 그것을 소유하지 않으면 패배하는 것 같고 이것 아니면 죽음을 달라라고 할 것이지만 그렇지 않아도 그를 위하여 예비된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멋은 여기에 있습니다.
육신의 소욕을 따르지 않더라도 살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신비는 하나님의 뜻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멋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밀림의 성자라고 불렀던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는 젊은 나이에 철학, 신학, 의학 세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정도로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음악에도 천부적인 소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30세에 이미 슈트라스브르그 대학의 신학부장으로 초청되어 고액의 연봉과 멋진 주택을 받고 오르간 연주자로써도 명성을 떨쳤습니다.
그러나 그는 대학시절부터 하나님의 부르심에 귀를 기우렸습니다.
이것이 그의 삶이 아니라 아프리카로 가서 미개하고 식인종 문명지대를 떠나서 가난하고 외롭고 버림받고 고통당하는 아프리카에 가서 일생을 헌신하라는 것입니다.
그는 그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서 자기를 준비하기 위해 무려 8년간 의학공부를 하고 그냥 떠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보장된 미래를 단연히 버리고 아프리카로 건너가 복음전도, 진료에 일생을 바쳤습니다.
가장 열악한 아프리카, 말라리아가 들끓고 도마뱀, 사나운 짐승들이 들끓는 곳에 가서 일생을 바쳤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다 비웃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총명하고 지혜 있는 사람이 어리석은 결정을 하느냐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세상을 버렸습니다.
많은 사람을 주께로 인도하고 많은 사람을 치료해 주었으며 그 결과로 나중에 그는 노벨 평화상까지 수상하게 된 것입니다.
교과서에 그의 삶이 기록될 정도로 그의 삶은 아름다운 삶이었습니다.
어쩌면 왜 내가 삶이 이렇게 힘이 들까를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까?
내가 힘들어 하는 것은 육신의 소욕을 이루기 위한 선택만을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내가 힘들게 하는 것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육신의 소욕에 목을 매달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은 그것을 버려야 할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 것이 나를 만족시키는 줄로 알지만은 그렇지 않습니다.
탐욕을 버리지 않으면 시련도 떠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도 들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를 수치스러운 자로 만들고 나를 죽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육신의 소욕에서 나를 자유 할 때에 무슨 귀한 일을 이룰 수 있는 소리를 들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어떤 학교의 교훈에 이런 말을 기록한 곳을 보았습니다.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우려라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IOC 위원이 두 명이 있습니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과 또 한 사람 문대성 위원이 있습니다.
삼성 회장은 경제가 배경이 되어 그렇다 치더라도 문대성 위원은 아테네 올림픽 때 금메달 리스트 중에 하나라는 것 외에는 특별하지를 못했습니다.
금메달리스트가 어디 한두 명입니까?
그런데 그가 될 수 있었던 남이 듣지 못한 내면의 음성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낯선 베이징 땅에서 남몰래 흘린 눈물, 하루 15시간 동안 선 채로 선수들의 가슴에 호소를 할 수 있었습니다. 문대성은 지난 8월 5일부터 20일까지 진행한 IOC 선수위원 선거에서 총 투표수 7216표 중 3220표를 얻어내 압도적으로 1위에 당선됐다.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인 호주의 수영 선수 그랜트 해켓과 주최국 중국의 육상 선수 류상 등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그가 당선됐을 때, IOC 안팎에서‘이변이 일어났다’는 반응이 분분했는데 그만큼 실제로 그가 해낸 일은 인간승리에 가까웠던 것입니다.그는 그동안 자신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담담하게 말을 이어 갔지만,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음이 분명합니다.
2004년 금메달리스트가 되고 난 뒤부터 꿈꿔 온 IOC 선수위원으로 뽑히기 위해 그는 뉴질랜드로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등 꾸준히 영어 공부를 했지만, 뒤늦게 시작한 공부는 만만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선수위원이 되려면 자신의 의견을 영어로 말할 수 있는 수준까지는 돼야했기에 고민 끝에 그는 이번 선거를 위해 80개의 영어 문장을 준비해 그것을 모두 외웠다. 예상 질문과 답변을 통째로 머릿속에 집고 다른 후보들에 비해 인지도가 낮은 점을 고려해 발로 뛰며 자신을 알리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한국 선수들을 제외하고 10명 남짓한 사람들만 그가 누구인지 알 정도로 그의 인지도가 턱없이 낮았기 때문. 7월 28일, 중국으로 건너간 그는 그 후 25일 동안 새벽부터 밤까지 올림픽 선수촌 식당 앞에 서서 자신을 알렸다. 8월 베이징의 뙤약볕 아래, 하루 15시간을 꼬박 서서 인사하는 것은 중노동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육체적 고통보다 힘든 건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이었다. 미쳤다고 말하는 건 기본이고, 그가 손을 잡자 뿌리치며 더럽다는 듯 자기 손을 닦는 외국 선수들도 있었는데 인간적인 모멸감을 느끼고 게다가 한국 사람들마저 너무 오버한다 절대로 안 된다 고 말할 때면, 온몸의 기운이 빠지는 것 같았습니다.몸이 지치다 보니 한때는 이렇게 하지 않아도 살 수 있는데, 내가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나하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저절로 나더라고요. 내가 처한 입장에서만 생각하면 자신이 처한 상황에 화가 나고 자기 연민에 빠지기 쉽지만, 자신을 멀리서 바라보면 헤쳐 나갈 방법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결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1위로 당선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의 선택이 인간적이 그 무엇이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지만 세상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얻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눈을 들어 보라 보이는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영원히 주리니 할렐루야!
야곱의 축복 이라고 말들을 하는데 다 아브라함의 축복의 줄입니다.
여러분이 축복 축복이라고 하는데 다 아브라함의 축복의 줄을 잡아야 합니다.
창12:2-3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처럼 세상에서 믿음의 길을 걷는 모든 성도들에게도 하나님께서는 계속하여 약속의 말씀을 주시고 새 힘을 주셔서 용기 있게 세상을 살아가도록 하십니다.  
어쩌면 나의 삶은 너무나도 육신적인 욕심에 메여 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여유도 없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귀가 다 막혀져 있습니다.
이제 너무나도 육신적 인 이유로 메여 있던 것을 다 내려놓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살 길을 바라보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영원히 풀지 못할 것 같은 숙원의 문제가 있었는데 지금은 해결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자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입니다.
저도 지금까지 이문제로 고민을 많이 합니다.
영원히 풀지 못할 것 같았던 숙제가 깨끗이 해결 받았습니다.
자장면을 반(半), 짬뽕을 반씩 나눠주는 식당이 있어서 무엇을 먹을까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세상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모든 문제들이 자장면 짬뽕같이 해결이 쉬운 것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는데 심각성이 있습니다. 사람은 태어나서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지각이 생기는 시기 이후로 죽을 때까지 순간순간 선택과 결단을 요구를 받습니다.
한 번의 선택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만들거나 평생을 두고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는 선택도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자신이 선택한 길에 축복이 따라 주길 소원하며 기도합니다.
특히 믿음의 사람들도 하나님의 뜻이 과연 어느 쪽인지 보여 달라고 간구하여 그 길로 가기를 원하지 않습니까?
특이나 오늘날과 같이 어려운 이 시기에는 더욱 선택이 중요합니다.
본문에서도 삼촌과 조카사이 혈육지간에서 생사화복의 삶의 조건을 두고 서로가 헤어져야 할 선택을 하여야만 하는 운명적인 시간이 왔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선택은 기준이 달라서 서로가 다른 선택을 하였는데 한 사람 아브라함의 선택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선택이 되어서 하나님의 위로와 자자손손 축복의 약속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왕 세상을 살아가려면 하나님의 관심을 받는 선택을 하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자기 마음대로 선택해 놓고서 찡찡 짜지 말고 하나님을 생각하는 선택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참으로 멋있는 말을 했습니다.
사람이 그 마음에 품은 것을 겉으로 드러낸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생각하는 것조차도 예수님이 생각을 가지고 마음에 품은 뜻도 예수님의 심장을 가지고 말을 하더라도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같이 행하더라도 예수님이 주시는 힘으로 라고 하였습니다.
이게 일상의 생활입니다.
오늘의 나의 문제는 내 마음대로의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의 선택의 특징은 이런 성격이 있습니다.
꼭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유가 없습니다.
한쪽으로 밀어 붙이기 때문에 충돌을 가지고 오고 상처를 가져 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요사이는 초등학생도 자살을 한다고 합니다.
공부 때문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선택은 2가지입니다.
내 욕심을 따르는 것 하나
그리고 또 하나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바울은 이것을 육신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라고 말했습니다.
선택에는 항상 결과가 따르게 마련입니다.
육신의 소욕은 사망
성령의 소욕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내 마음에 평안이 없다는 것은 내가 너무 육신적인 소욕에 치우쳐져 있구나를 생각해 보면 맞습니다.
조카의 선택을 봅니다.
여러 사정이 있고 이유가 있겠지요
누가 이런 것을 유추하여 말을 합니다.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삼촌먼저 조카 먼저 하다가 조카 먼저가 되어 롯이 합리적인 선택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먼저 하든지 나중 하든지 내가 어떤 의도를 하였는가? 에 따라 결정이 지어지는 것입니다.
선한 결과를 내는 대는 먼저 나중이 없습니다.
사람은 그 마음에 품은 대로 그 모습이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이 먼저하고 롯이 나중에 땅을 선택하여도 그 결과는 같습니다.
저와 우리 집사람이 고기 집에 가서 고기를 먹게 되면 항상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언제든지 저는 배불리 먹고 우리 집사람은 많이 먹지를 않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 집사람이 가위를 잡았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제가 가위를 잡아도 제가 많이 먹더라고요
그 사람의 성격입니다.
평상시에 가졌던 신앙의 습관이 나로 하여금 그 믿음의 선택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습니다.
롯은 땅을 분배하는데 소알 땅을 보니 자기에게 적격이었습니다.
이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야
그 땅이 어떤 땅인지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내가 원하는 육신의 욕심을 따라서 선택의 여지가 없고 여유도 없습니다.
착각은 자유라고 이게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자기가 평상시의 신앙이 얼마나 정욕 적이고 자기중심적인지 모릅니다.
아예 보따리를 싸서 그곳으로 옮겼습니다.
그 곳이 어떤 곳인지 예고를 합니다.
13절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아브람은 하나님의 관심을 가지게 하는 선택을 할 수 있음은 무엇입니까?
혈육의 욕심을 따라 가기보다는 그래도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신안 생활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새벽기도회도 나오고 철야도 나오고 수요 예배도 구역 예배도 그리고 공적 예배를 참여 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았다고 합니다.
인간은 누구든지 모두 육신적인 욕심이 가득차 있습니다.
누구하나 의인이 없고 도토리 키를 재듯이 비슷비슷합니다.
그런데 달리 생각 할 수 있음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입니다.
저도 오늘 새벽에 기도가 없었다면 육신적인 일과 생각에 사로잡혀 죽게 생기겠고 그러다가 죄를 짓게 될 수밖에 없는 인간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 이름을 부르고 기도를 하니 웬일입니까?
육신적인 일에서 자유 함을 얻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제가 살아 난 것입니다.
그러니 무엇인가 여유가 생기고 하나님의 은혜가 머무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여유가 있습니다.
육신의 선택은 소알로 가야하고 그것을 소유하지 않으면 패배하는 것 같고 이것 아니면 죽음을 달라라고 할 것이지만 그렇지 않아도 그를 위하여 예비된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멋은 여기에 있습니다.
육신의 소욕을 따르지 않더라도 살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신비는 하나님의 뜻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멋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밀림의 성자라고 불렀던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는 젊은 나이에 철학, 신학, 의학 세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정도로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음악에도 천부적인 소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30세에 이미 슈트라스브르그 대학의 신학부장으로 초청되어 고액의 연봉과 멋진 주택을 받고 오르간 연주자로써도 명성을 떨쳤습니다.
그러나 그는 대학시절부터 하나님의 부르심에 귀를 기우렸습니다.
이것이 그의 삶이 아니라 아프리카로 가서 미개하고 식인종 문명지대를 떠나서 가난하고 외롭고 버림받고 고통당하는 아프리카에 가서 일생을 헌신하라는 것입니다.
그는 그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서 자기를 준비하기 위해 무려 8년간 의학공부를 하고 그냥 떠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보장된 미래를 단연히 버리고 아프리카로 건너가 복음전도, 진료에 일생을 바쳤습니다.
가장 열악한 아프리카, 말라리아가 들끓고 도마뱀, 사나운 짐승들이 들끓는 곳에 가서 일생을 바쳤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다 비웃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총명하고 지혜 있는 사람이 어리석은 결정을 하느냐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세상을 버렸습니다.
많은 사람을 주께로 인도하고 많은 사람을 치료해 주었으며 그 결과로 나중에 그는 노벨 평화상까지 수상하게 된 것입니다.
교과서에 그의 삶이 기록될 정도로 그의 삶은 아름다운 삶이었습니다.
어쩌면 왜 내가 삶이 이렇게 힘이 들까를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까?
내가 힘들어 하는 것은 육신의 소욕을 이루기 위한 선택만을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내가 힘들게 하는 것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육신의 소욕에 목을 매달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은 그것을 버려야 할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 것이 나를 만족시키는 줄로 알지만은 그렇지 않습니다.
탐욕을 버리지 않으면 시련도 떠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도 들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를 수치스러운 자로 만들고 나를 죽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육신의 소욕에서 나를 자유 할 때에 무슨 귀한 일을 이룰 수 있는 소리를 들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어떤 학교의 교훈에 이런 말을 기록한 곳을 보았습니다.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우려라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IOC 위원이 두 명이 있습니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과 또 한 사람 문대성 위원이 있습니다.
삼성 회장은 경제가 배경이 되어 그렇다 치더라도 문대성 위원은 아테네 올림픽 때 금메달 리스트 중에 하나라는 것 외에는 특별하지를 못했습니다.
금메달리스트가 어디 한두 명입니까?
그런데 그가 될 수 있었던 남이 듣지 못한 내면의 음성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낯선 베이징 땅에서 남몰래 흘린 눈물, 하루 15시간 동안 선 채로 선수들의 가슴에 호소를 할 수 있었습니다. 문대성은 지난 8월 5일부터 20일까지 진행한 IOC 선수위원 선거에서 총 투표수 7216표 중 3220표를 얻어내 압도적으로 1위에 당선됐다.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인 호주의 수영 선수 그랜트 해켓과 주최국 중국의 육상 선수 류상 등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그가 당선됐을 때, IOC 안팎에서‘이변이 일어났다’는 반응이 분분했는데 그만큼 실제로 그가 해낸 일은 인간승리에 가까웠던 것입니다.그는 그동안 자신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담담하게 말을 이어 갔지만,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음이 분명합니다.
2004년 금메달리스트가 되고 난 뒤부터 꿈꿔 온 IOC 선수위원으로 뽑히기 위해 그는 뉴질랜드로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등 꾸준히 영어 공부를 했지만, 뒤늦게 시작한 공부는 만만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선수위원이 되려면 자신의 의견을 영어로 말할 수 있는 수준까지는 돼야했기에 고민 끝에 그는 이번 선거를 위해 80개의 영어 문장을 준비해 그것을 모두 외웠다. 예상 질문과 답변을 통째로 머릿속에 집고 다른 후보들에 비해 인지도가 낮은 점을 고려해 발로 뛰며 자신을 알리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한국 선수들을 제외하고 10명 남짓한 사람들만 그가 누구인지 알 정도로 그의 인지도가 턱없이 낮았기 때문. 7월 28일, 중국으로 건너간 그는 그 후 25일 동안 새벽부터 밤까지 올림픽 선수촌 식당 앞에 서서 자신을 알렸다. 8월 베이징의 뙤약볕 아래, 하루 15시간을 꼬박 서서 인사하는 것은 중노동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육체적 고통보다 힘든 건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이었다. 미쳤다고 말하는 건 기본이고, 그가 손을 잡자 뿌리치며 더럽다는 듯 자기 손을 닦는 외국 선수들도 있었는데 인간적인 모멸감을 느끼고 게다가 한국 사람들마저 너무 오버한다 절대로 안 된다 고 말할 때면, 온몸의 기운이 빠지는 것 같았습니다.몸이 지치다 보니 한때는 이렇게 하지 않아도 살 수 있는데, 내가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나하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저절로 나더라고요. 내가 처한 입장에서만 생각하면 자신이 처한 상황에 화가 나고 자기 연민에 빠지기 쉽지만, 자신을 멀리서 바라보면 헤쳐 나갈 방법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결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1위로 당선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의 선택이 인간적이 그 무엇이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지만 세상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얻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눈을 들어 보라 보이는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영원히 주리니 할렐루야!
야곱의 축복 이라고 말들을 하는데 다 아브라함의 축복의 줄입니다.
여러분이 축복 축복이라고 하는데 다 아브라함의 축복의 줄을 잡아야 합니다.
창12:2-3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처럼 세상에서 믿음의 길을 걷는 모든 성도들에게도 하나님께서는 계속하여 약속의 말씀을 주시고 새 힘을 주셔서 용기 있게 세상을 살아가도록 하십니다.  
어쩌면 나의 삶은 너무나도 육신적인 욕심에 메여 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여유도 없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귀가 다 막혀져 있습니다.
이제 너무나도 육신적 인 이유로 메여 있던 것을 다 내려놓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살 길을 바라보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