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상급(賞給)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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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524회 작성일 2009-06-27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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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3 : 12-14 당신의 상급(賞給)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있습니다.
어김없이 2009년도 한 해가 찾아왔습니다.
지난 12월 31일에는 새해를 맞이하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해맞이를 떠났습니다.
해운대에 100만 명 동해안 200만 명 등이 찾아가서 잠을 자지 않고 기다리다가 해를 맞이하고 제 각기 소원을 빌었다고 합니다. 저는 해맞이를 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해가 찾아 왔더라고요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고 집에서 편안히 늦잠을 자고 있는데 제 침실로 햇빛이 환하게 찾아왔습니다.
제가 찾아가지 않았는데도 새해가 저를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볼 때에 하나님은 누구에게든지 새로운 한 해 365일의 시간을 주셨습니다.
혹시 이 중에 못 받으신 분계십니까? 돈이 없어서 몸이 아파서 시간이 없어서 못 받으신 계십니까?
다 받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지난 한 해도 365일을 주셔서 내 마음대로 다 썼는데 또 이런 기회를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제 마음에는 또 생각하기를 올 해 한번 잘 보내야겠다는 마음을 가져봅니다.
왜냐하면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새해를 맞이하는 기회를 주심은 아직도 내게 대한 기대를 하나님은 가지고 계신다는 뜻이고, 그 뜻을 나를 통해서 이루시기를 원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내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본문의 바울이라는 사람도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가치 있게 보내려고 다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상을 얻기 위하여 목표를 정하고 좇아가노라고 하였습니다.
새해란 해가 바뀌었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 즉 새 인생 그리고 새 역사를 이루기 위하여 주어진 기회입니다.
그러므로 내 나이가 몇 살이다 이게 의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올해부터 나이에 매여 있던 저 자신을 자유하기로 했습니다.
나이에 별 관심을 두지 않으려고 합니다. 내가 무엇을 하느냐? 에 관심을 두려고 합니다.
노인은 과거에 살고 청년은 미래에 산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나이에 묶여서 무엇을 못하는 자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은 나이 때문에 무엇을 못하겠다 하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날마다 미래를 향하여 살아가는 자입니다.
본문의 사도 바울은 지금 나이가 60세 전후이니 당시에는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말은 지나간 과거만을 말하는 노인네가 아니었습니다.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얼마나 진취적이며 희망적이며 건설적이지 않습니까?
이런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이루는 것입니다.
신대륙을  발견한  콜롬부스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습니까?
지구는 둥글다는 확신을 가지고 스페인 여왕에게 간청하여 배 3척과 돈을 받아 내었습니다.
이 말을 믿어주는 사람이 없어요 그러니 그 배에 동승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는 다시 여왕께 요청하여 죄수 120명을 얻어 떠나게 되었습니다.
콜롬부스는 이들을 데리고 먼저 교회로 가서 하나님 앞에 기도를 드리고, 큰 꿈을 반드시 이루겠다는 서약을 했습니다. 
그는 믿음이 강하고  의지가 굳건했으며 결코 매사에 후회하거나 포기하는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죄수들을 데리고 풍랑과 싸우고, 또 동승자와 싸워 가면서까지 기어코 신대륙 발견의 거사를 이룩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멀고먼 항해 길에서 불평하는 죄수 동승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배의 방향을 바꾸지 마세요.  계속 노를 저으시오.
이렇게 해서 결국 인류에게 신대륙을 발견하게 되는 쾌거(快擧)를 얻게 된 것입니다.
올 한해 무엇인가를 이루어 내는 한 해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틀림없이 올 한 해에 역사를 일으키는 일이 일어 날 줄로 믿습니다.
살아 있는 목적의식이 분명해야 합니다.
사람이 무엇을 위하여 사느냐? 입니다.
이게 아직도 방향 감각을 잡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대체로 사람들은 4가지 목적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익에 따라서 사는 사람 이 사람은 언제 변신 할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런 자들을 통하여서는 무슨 일을 이룰 수 없습니다.
편리를 중심으로 사는 사람 힘들고 어려우면 하지 않습니다.
쾌락을 중심으로 사는 사람 동물 같은 본능만 따르는 자입니다.
사명을 중심으로 사는 사람 무엇인가를 이루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익에 따르는 자도 아니요 편리를 추구하는 자도 아니요 쾌락을 추구하는 자도 아니요 사명에 따르는 삶을 사는 자입니다.
아셔야 합니다.
사명 앞에는 마귀도 벌벌 떱니다. 사명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목표가 분명하지 않으면서 무언가를 이루기 원한다면 어리석은 짓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허락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내가 무엇을 원해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번 스스로 자신을 향해 질문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하나님께 무엇을 원하고 있는 지 말입니다.
하나님 이것입니다 하고 지금도 말 할 수 있는 것이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내 이익이나 살피고 내 본능 충족을 가지고서는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것을 얻지 못합니다.
오히려 내 자신이 더 구차해지고 초라해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들어서 일을 이루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내 의지를 드리면 역사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목표를 분명하게 세우고 그것을 하나님께서 이룰 수 있는 능력을 이미 주셨다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내가 그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 이것을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추구하는 목표가 하나님 뜻에 합당한가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힘과 능력을 주십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이 있어야 할 줄을 아는 하나님이 더 하여 주실 것입니다.
앞뒤가 바꿔서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사명만 주시지 않습니다. 그 사명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권능도 함께 주십니다. 할렐루야!믿음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내개 주어진 하나님의 부르심에 내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제 구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복음이요 교회요 영혼 구원이요 하나님의 나라와 의로 말 할 수 있습니다.
푯대를 향하여 좇아가는 신앙 푯대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렇기 위하여 행 할 일은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머물지 말아야 하는 신앙입니다. 13절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잊어버리고 라는 말은 계속 잊어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자꾸 나를 옮겨 메는 것이니 말입니다.바울로 과거로 몰입케 하는 것은 율법주의 곧 유대주의를 가리킵니다. 이들의 사상은 행함으로 구원을 얻겠다는 사상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이제 너무 너무 싫어했습니다. 이것들을 향해 아주 신랄하게 공격하고 있습니다. 18절 이들을 향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십자가의 원수라고 정죄하고 있고, 2절 개들, 행악 자들, 손할례당 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사실 바울도 예수를 믿기 전에는 지나친 율법주의자였습니다. 5절 그는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는 베냐민 지파라고 했으며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라고 했습니다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라고 했습니다6절 그리고 바울은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자였습니다. 이렇게 화려한 과거주의의 종이 되었던 바울은 예수를 만난 뒤 이 모든 것을 다 해로 여겼고(7절), 배설물로 여겼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8절). 과거에 이익으로 보이던 모든 것들이 이제는 무익하게 보이게 되었고, 심지어는 배설물로 보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과거에 대한 바울의 깨끗한 청산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목적을 향해 달려감에 있어서 과거의 기억이 자신의 진보를 방해하지 않도록 전력 질주를 하였습니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은 애굽의 고기 가마를 회상하다가 가나안 진군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출16:3). 성도 여러분 과거에 사로잡혀 날마다 과거에 묶여 사는 사람은 처절하게 실패만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과거에 사로잡혀 있는 자는 진보가 없습니다. 오늘이라고 하는 시간을 낭비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난날의 화려한 경력도, 어두운 이력도 다 잊어야 합니다.
기쁨의 순간도, 슬픔의 시간도, 화려한 성공이나 실패의 순간들을 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 묶여 옛날이야기만 하는 교회나 개인은 결코 성장할 수가 없고, 변화를 가져올 수가 없습니다.
바울은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오직 앞에 있는 것을 바라보고 간다고 했습니다. 달리기 하는 사람이 저 앞에 골인 지점을 보고 오직 그것을 향해 나아가야지, 자꾸만 다른 생각에 마음을 빼앗기면, 반드시 실패하고 말 것입니다. 목표를 정할 때까지는 심사숙고하되, 한번 푯대를 정하면, 오로지 그 생각으로 내 마음을 채워야 합니다.
내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 생각으로 내 머리와 심장을 채우는 것입니다.
어떻게 예수님 말씀대로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바른 신앙인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내 삶을 채워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목표를 정하고 이루려는 사람은 스스로를 단순화시켜야 합니다. 이 생각, 저 생각, 이런 의심, 저런 다른 길을 생각하다가는 푯대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푯대를 정했으면 그 것으로 내 생각과 몸의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푯대를 향하여 좇아가는 신앙은 현실에 빠져 안주하지 말아야하는 신앙입니다. 12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결코 이미 얻었거나 이루었다고 자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신앙의 격전지를 수없이 많이 통과했으나 아직도 완전치 못함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남으로서 자신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완전하게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한 지식인데도 바울은 이런 지식이 다메섹 도상에서 한꺼번에 다 자기의 것이 되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조금 받은 은혜를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다 받은 것으로 착각하고 그것만 붙잡고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는 실수를 범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여러분 현실에 메일수록 우리에게는 결코 진보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현실에 메일수록 그는 푯대를 상실하고 계속해서 퇴보할 것입니다. 이 정도면 됐다라고 자위하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모든 축복들을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과거를 망각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푯대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현실주의자는 스스로 자만과 안일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0:12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또한 현실에 안주하려는 자는 성경에 나타난 한 부자처럼(눅16:19) 향락에 빠져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고 내세에 관심도 갖지 못하는 비극적인 인생으로 전락될 수밖에 없습니다. 현실주의자가 많을수록 교회는 더 이상의 성장이 없습니다. 현실주의자가 많을수록 교회는 하나님의 원대하신 큰일을 감당해 낼 수가 없습니다. 푯대를 향하여 나아가는 자는 상이 보입니다.
노아는 120년 동안이나 미친 사람 취급을 받으면서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노아 나름대로 왜 자기 자신의 생각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이 방주의 건축이 곧 자신의 구원임을 아는 것입니다.
진작 배가 다 만들고 심판이 가까워 왔을 때에는 그 누구도 그 배에 타지를 못했습니다.
그들 식구만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상은 열심히 달려온 자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인디언들이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왔다 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기우제가 신통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들은 비가 올 때까지 멈추지 않고 기우제를 지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잠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끝까지 하는 것입니다.
환경과 형편을 말하지 마십시오
당시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궁극적인 목표를 꿈꾸며 그것에 가까이 접근하려는 근사치적 목적을 정해놓고 그 푯대를 향하여 매진하고 있었다는 것 아닙니까?
뿐만 아니라 바울은 그 푯대를 향한 구체적인 표적으로써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개 그리스도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는 다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끝내 그의 일에 성공했으며, 또 그의 인생도 승리하는 삶으로 마감했습니다
이번 송구영신 예배 시에 선한 목적을 기록하였는데 기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번 이루시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올해는 예수 그리스도를 목표 삼고 앞으로만 달려가시기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나는 이런 상을 받았다고 하는 자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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