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가정에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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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535회 작성일 2009-06-27 20:42본문
히브리서 11:8 - 12 당신의 가정에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다리가 있는데 저녁이 되면 황금색으로 빛나는 금문교가 있습니다.
이 다리는 1933-35년에 완공을 하고 길이는 1280m가 되는 위용을 자랑하는데 지금도 많은 세계인들의 관광의 명소로 다녀갔고 물론 당시에도 세계의 8대 불가사의로 여겨질 정도로 위대한 건축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다리를 건축할 때 초기에 6명이나 바다에 떨어져 생명을 잃는 인명사고가 났습니다. 그 높이가 최대 227m 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명사고를 막기 위해서 밑에 그물망을 쳤더니 한 건의 사고도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이유는 그물망이 없을 때는 인부들이 높은 곳에서 일하면서 떨어지면 죽을까 하는 두려움에 떨다가 떨어져서 사고가 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물망을 쳐놓고 공사를 하니까 인부들이 안심이 되어서 낙마하는 사고가 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의지 할 때가 있고 자신의 생명의 안전을 믿을 때가 있다고 생각하니 공사를 편안하게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떨어져도 그물망이 나의 생명을 지켜 준다는 것입니다.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라는 그물망이 없으면 세상을 염려하고 두려워만 하다가 결국은 세상에 떨어지게 됩니다.
어제도 모 구청장의 부인이 남편이 뇌물수뢰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자 그것을 고민하다가 제초제를 먹고 음독 자살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구청장이 되었을 때는 자살하지 않아도 괜찮았는데 뇌물수뢰라는 이야기가 있으니 밝히기도 전에 자살의 나락으로 떨어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떨어짐을 막을 그물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소이 이제 더 이상 믿을 때가 없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그물망이 있으면 무슨 일을 당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담대한 마음으로 감당해 나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믿음으로 세상의 그물을 치고 있는 한 부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는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입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였는데 하나님을 향한 그 믿음이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나아가는 방향을 잡게 하였습니다.
그 믿고 나아갔더니 약속의 땅이 준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아내 사라 역시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다고 하였습니다. 할렐루야!
사실 오늘 우리 가운데는 살아 갈 길이 없음을 한탄하고 있으며 삶을 능히 감당할 자신도 힘도 없다고 낙망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실상은 길이 없음이 아니요 감당할 힘이 없음도 아닙니다. 다만 믿음이 없을 뿐입니다.
이제 더 이상 길이 없다고 힘이 없다 할 때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아 살길을 찾고 일어설 힘을 용기를 얻어야 할 때입니다.아브라함도 믿음이 없을 때에는 세상의 길로 갔습니다.
세상이 두려워서 사촌동생이 아내가 되었으니 아내라고 해야 하는데 죽을까봐 동생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2번이나 이방의 왕에게 아내를 빼앗길 번한 일도 있었습니다. 믿음이 없기에 길을 찾지 못하고 감당할 수도 없었습니다.그러므로 믿음은 인간의 그 어떤 조건에도 메이지 않고 그 조건에서 자유 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인간적인 조건에다가 가두어 두면 더 이상 믿음이 아닙니다.어느 동내에 교회가 있었고 교회 옆에 술집이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목사님과 성도들이 모여서 술집이 망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한 후에 정말 술집이 망해버렸습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큰일 났어요 술집주인이 교회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걸었습니다. 교회에서 망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한 것을 다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목사님과 성도들은 물어 줘야 하지 않습니까? 술집 망하게 해 달라고 했으니…….
그런데 한결같이 그럴 리가 있느냐? 설마 우리가 기도했다고 해서 망했겠느냐? 내 기도가 그렇게 능력이 있느냐? 고 하면서 극구 부인했습니다. 그때에 이 모습을 바라보던 판사가 이렇게 판결을 내렸습니다.
술집 주인은 손해배상금 100만 불을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니 받으시오. 그리고 덧붙여 더 이상 하나님은 목사님과 성도들의 기도를 들어 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진짜 믿음은 목사님과 성도들이 아니라 술집 주인이오. 라고 판결을 내렸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믿음으로 구원 받고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고 기도하면서도 막상 나의 삶속에서는 믿음 없이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기도한데로 하지 않고 약속한데로 살아가지 않고 너무나도 세상 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기도를 들어주면 뭐하겠습니까?
아브라함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그의 일대기가 어떠하였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고향이 어디며, 나이가 얼마며 집안이 어떻고 성격이 어떻고 이런 조건이 믿음의 아브라함이 되게 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만을 고집하면 인간적인 아브라함입니다.
더 이상 인간적인 조건을 보고 말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모든 면에서 믿음을 말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으시고 그 중심 즉 믿음을 보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서 인간적인 면을 보자는 것이 아니요 믿음으로 사는 삶을 본받아야 합니다.
갈대아 우르 고향 친척을 떠나고 아들이라도 믿음으로 내어 놓은 믿음을 보이시기 바랍니다.
미국 시카고대는 동문들과 교수들 중 노벨상 수상자가 70명이나 되기 때문에 노벨상 왕국이라는 자랑스러운 별명도 갖게 되었습니다. 이 학교가 이렇게 성장하게 된 큰 이유가 있는데 1929년 부임한 로버트 허친스 총장의 리더십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는 교양교육의 일환으로 각 분야 고전 100권을 읽도록 했고 학생들은 고전을 읽으면서 위대한 인물들을 만나 자신들의 역할 모델로 삼았습니다.
모델이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성도의 모델입니다.
마 4:19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신 예수님은 모범입니다.
여기서 내가 무엇이 되게 하겠다고 하신 것은 삶의 주도권은 말씀 하시는 주님에게 있습니다.
내가 내 인생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내 인생을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렇게 믿은 것이 믿음입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믿음의 삶이다. 
아브라함의 경우 삶의 초기부터 이것은 너무나도 분명하게 하나님의 의도가 드러나 있지 않습니까? 내가 너에게 약속된 땅을 주겠다. 지금 발붙일 곳도 없는데 내가 너로부터 큰 민족이 나오게 하겠다. 잉태 할 가능성도 없는데내가 너로 하여금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 제대로 먹을 양식도 없이 방황하고 있는데
믿으시기 바랍니다.
누가 그렇게 하시겠다는 것입니까?
아브라함은 그러한 삶을 만들어 가시는 이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하나님만이 나를 통해서 그렇게 되게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무엇이 되게 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신약 시대의 대표적인 믿음의 사람 바울도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나 되게 하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주도권을 받아 드리며 나의 삶의 모습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언제든지 아브라함의 뒤가 아니라 앞에 계셨습니다. 나를 따라 오라입니다.
그의 소원을 이루어주기 위한 후원자가 아니라 그에게 절대적인 주권을 행사하시는 분으로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나는 어떠한가? 나의 하나님은 앞에 계셔서 나를 주도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나의 뒤에서 내가 저지른 일을 수습이나 하고 계십니까? 믿음의 삶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온 몸으로 따르는 것입니다.
이게 아브라함에게 본받을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삶을 만들어 나가시는 하나님의 주도권을 인정하였기에 기꺼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전혀 새로운 인생의 길을 개척해 나갈 수가 있었습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는 주님의 부르심에 온 몸으로 응답하였습니다.
말로만 고백한 것이 아니라 생애를 걸고 따라 나섰습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산다는 말의 정확한 의미입니다.
사실 나는 온 몸을 드리고 있습니까? 말로만 핑계만 하고 있지 않습니까?
말로 핑계로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를 관철 시키는 것뿐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절대적이라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믿기가 쉽습니다. 오늘날에는 눈에 보여도 안 믿습니다. 너무나도 속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혀 상식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이뤄질 수 없는 불가능한 사실을 믿는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믿음은 내가 주체가 아니라 언제든지 하나님이 주체이십니다.
믿음의 대상이 내 눈으로 확인되어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증거가 뚜렷하게 손으로 확인되어서 믿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그분의 전능하심에 대한 굳건한 확신 위에서 형성된 절대 믿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교인의 의무를 행함에 있어서 철저하다 할지라도, 그의 삶을 자신의 주도로 살아 나가며, 하나님의 부르심 대신 주위의 환경에 지배되어 살아나간다면 그러한 그의 삶을 가리켜 믿음의 일생이라 말하기는 곤란합니다.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서 믿음으로 반응하며 따라 갔습니다. 
교회를 열심히 다녀도 무슨 직책을 가져도 기도를 한다고 해도 믿음으로 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복된 자에게는 믿음을 주십니다.
저는 성도들을 볼 때에 복된 사람들을 발견합니다. 믿어주더라고요 믿더라고요 믿음으로 하더라고요
다른 이는 다 안 믿어도 자신은 믿고 있더라고요 아하 복된 자에게 이렇게 믿음을 선물로 주셨구나 할렐루야!
아브라함도 여러 차례 불 신앙적 행동을 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땅으로 왔지만, 그 곳에 기근이 닥치자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도 않고 그 자신의 결정으로 애굽으로 도피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애굽에서 최악의 거짓말을 했습니다. 자기 아내 사래를 누이라고 속여 애굽왕에게 넘겨주고 자기 생명을 유지 하였습니다. 
약속의 아들이 생각처럼 빨리 주어지지 않자 그는 사래의 여종 하갈과 동침하여 아이를 낳고 그것을 대신하고자 하였습니다.그러나 그 때마다 하나님이 그의 삶에 개입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실수를 교정해 주시고 수렁에서 그를 건지시고 이 같은 허다한 실수를 통해서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자기가 믿는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를 점차 깨달아 가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부단한 교제를 통하여 아브라함의 믿음은 점점 성숙해져 갔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독자 이삭을 번제물로 드리는 믿음의 모습을 보여주게까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아니 내가 복된 자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하나님은 모든 일을 통하여 믿음의 선물을 주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니 믿음을 주시기 위하여 나를 이렇게 까지 하셨구나 하고 감사하면 어떨까요?
아직도 믿음하고 상관이 없는 나의 삶을 고민하고 근심하며 내 믿음 없을 통탄하며 믿음 없음을 도와 달라고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현금 생활 교회 봉사 생활 교제 등등 믿음으로 하지 못함을 안타깝게 여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께서 그의 삶에 개입하셨고, 끝내는 그를 변화시켜 이토록 위대한 신앙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오늘 나를 믿음의 사람으로 하나님이 만드십니다.
만드셨습니다. 믿음을 선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비행기가 떨어지고 있어요.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르겠어요. 기도해주세요 라는 문자 메시지가 성도들에게 날라 왔습니다. 지난 15일 뉴욕 허드슨 강에 불시착한 US에어웨이즈 1549편에 타고 있던 남가주 한인 여성 린다 한(52·애나하임)씨가 비행기가 비상착륙을 시도하던 긴박했던 그 순간 남가주에 있는 교회 지인에게 사고 사실을 알리고 마지막이 될지 모를 작별을 고하는 이 같은 문자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살아났습니다.
♬아무 일을 만나도 예수 의지 합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나 역시 믿음으로 나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시는 동일하신 하나님 이십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살아계시는 생명의 하나님을 일러 성경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이 오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를 부르셨습니다.
그럴진대 아브라함의 삶에 개입하셔서 그를 교정하신 하나님께서, 어찌 나의 삶에 개입하지 않으시며 나의 실수를 그냥 버려두시겠습니까? 
그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멋진 인물로 변화시켜 주셨듯이 나도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시켜 성도라는 이름에 걸맞은 사람이 되게 해 주시지 않겠습니까?세상 적으로 살 수 밖에 없던 별 볼일 없는 나를 불러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드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미국 남부의 앨라배마 주에서는 전통적으로 목화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1895년에 목화벌레가 생겨서 목화농사가 완전히 망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지역이 목화벌레로 인해서 황폐하게 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목화 대신에 땅콩과 옥수수와 감자를 심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목화농사를 지을 때보다 더 많은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그 후에 사람들은 목화벌레 형상의 기념탑을 세워놓고 목화벌레에게 감사를 했습니다. 목화벌레가 와서 목화 농사를 망쳐놨기 때문에 더 많은 수확을 거둘 수 있는 길을 찾게 되었다고 감사를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때로는 내가 원하지 않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실패의 아픔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바라보고 믿음으로 길을 찾고 믿음으로 나가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더 좋은 길, 더 큰 축복의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아브라함이 젊었을 때 자녀를 낳았거나 아브라함이 원하고 기대하던 때에 자녀를 낳았다면 이렇게 귀한 믿음을 소유한 믿음의 조상이 되지 못 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인간적으로 기대하고 소망한 것을 다 버리고 오직 믿음으로 바라고 믿음으로 소망하고 하나님이 이루실 것을 확신 했을 때 하나님이 이루어 주시고 하나님이 견고한 사람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다리가 있는데 저녁이 되면 황금색으로 빛나는 금문교가 있습니다.
이 다리는 1933-35년에 완공을 하고 길이는 1280m가 되는 위용을 자랑하는데 지금도 많은 세계인들의 관광의 명소로 다녀갔고 물론 당시에도 세계의 8대 불가사의로 여겨질 정도로 위대한 건축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다리를 건축할 때 초기에 6명이나 바다에 떨어져 생명을 잃는 인명사고가 났습니다. 그 높이가 최대 227m 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명사고를 막기 위해서 밑에 그물망을 쳤더니 한 건의 사고도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이유는 그물망이 없을 때는 인부들이 높은 곳에서 일하면서 떨어지면 죽을까 하는 두려움에 떨다가 떨어져서 사고가 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물망을 쳐놓고 공사를 하니까 인부들이 안심이 되어서 낙마하는 사고가 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의지 할 때가 있고 자신의 생명의 안전을 믿을 때가 있다고 생각하니 공사를 편안하게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떨어져도 그물망이 나의 생명을 지켜 준다는 것입니다.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라는 그물망이 없으면 세상을 염려하고 두려워만 하다가 결국은 세상에 떨어지게 됩니다.
어제도 모 구청장의 부인이 남편이 뇌물수뢰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자 그것을 고민하다가 제초제를 먹고 음독 자살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구청장이 되었을 때는 자살하지 않아도 괜찮았는데 뇌물수뢰라는 이야기가 있으니 밝히기도 전에 자살의 나락으로 떨어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떨어짐을 막을 그물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소이 이제 더 이상 믿을 때가 없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그물망이 있으면 무슨 일을 당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담대한 마음으로 감당해 나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믿음으로 세상의 그물을 치고 있는 한 부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는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입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였는데 하나님을 향한 그 믿음이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나아가는 방향을 잡게 하였습니다.
그 믿고 나아갔더니 약속의 땅이 준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아내 사라 역시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다고 하였습니다. 할렐루야!
사실 오늘 우리 가운데는 살아 갈 길이 없음을 한탄하고 있으며 삶을 능히 감당할 자신도 힘도 없다고 낙망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실상은 길이 없음이 아니요 감당할 힘이 없음도 아닙니다. 다만 믿음이 없을 뿐입니다.
이제 더 이상 길이 없다고 힘이 없다 할 때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아 살길을 찾고 일어설 힘을 용기를 얻어야 할 때입니다.아브라함도 믿음이 없을 때에는 세상의 길로 갔습니다.
세상이 두려워서 사촌동생이 아내가 되었으니 아내라고 해야 하는데 죽을까봐 동생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2번이나 이방의 왕에게 아내를 빼앗길 번한 일도 있었습니다. 믿음이 없기에 길을 찾지 못하고 감당할 수도 없었습니다.그러므로 믿음은 인간의 그 어떤 조건에도 메이지 않고 그 조건에서 자유 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인간적인 조건에다가 가두어 두면 더 이상 믿음이 아닙니다.어느 동내에 교회가 있었고 교회 옆에 술집이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목사님과 성도들이 모여서 술집이 망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한 후에 정말 술집이 망해버렸습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큰일 났어요 술집주인이 교회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걸었습니다. 교회에서 망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한 것을 다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목사님과 성도들은 물어 줘야 하지 않습니까? 술집 망하게 해 달라고 했으니…….
그런데 한결같이 그럴 리가 있느냐? 설마 우리가 기도했다고 해서 망했겠느냐? 내 기도가 그렇게 능력이 있느냐? 고 하면서 극구 부인했습니다. 그때에 이 모습을 바라보던 판사가 이렇게 판결을 내렸습니다.
술집 주인은 손해배상금 100만 불을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니 받으시오. 그리고 덧붙여 더 이상 하나님은 목사님과 성도들의 기도를 들어 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진짜 믿음은 목사님과 성도들이 아니라 술집 주인이오. 라고 판결을 내렸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믿음으로 구원 받고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고 기도하면서도 막상 나의 삶속에서는 믿음 없이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기도한데로 하지 않고 약속한데로 살아가지 않고 너무나도 세상 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기도를 들어주면 뭐하겠습니까?
아브라함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그의 일대기가 어떠하였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고향이 어디며, 나이가 얼마며 집안이 어떻고 성격이 어떻고 이런 조건이 믿음의 아브라함이 되게 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만을 고집하면 인간적인 아브라함입니다.
더 이상 인간적인 조건을 보고 말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모든 면에서 믿음을 말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으시고 그 중심 즉 믿음을 보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서 인간적인 면을 보자는 것이 아니요 믿음으로 사는 삶을 본받아야 합니다.
갈대아 우르 고향 친척을 떠나고 아들이라도 믿음으로 내어 놓은 믿음을 보이시기 바랍니다.
미국 시카고대는 동문들과 교수들 중 노벨상 수상자가 70명이나 되기 때문에 노벨상 왕국이라는 자랑스러운 별명도 갖게 되었습니다. 이 학교가 이렇게 성장하게 된 큰 이유가 있는데 1929년 부임한 로버트 허친스 총장의 리더십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는 교양교육의 일환으로 각 분야 고전 100권을 읽도록 했고 학생들은 고전을 읽으면서 위대한 인물들을 만나 자신들의 역할 모델로 삼았습니다.
모델이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성도의 모델입니다.
마 4:19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신 예수님은 모범입니다.
여기서 내가 무엇이 되게 하겠다고 하신 것은 삶의 주도권은 말씀 하시는 주님에게 있습니다.
내가 내 인생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내 인생을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렇게 믿은 것이 믿음입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믿음의 삶이다. 
아브라함의 경우 삶의 초기부터 이것은 너무나도 분명하게 하나님의 의도가 드러나 있지 않습니까? 내가 너에게 약속된 땅을 주겠다. 지금 발붙일 곳도 없는데 내가 너로부터 큰 민족이 나오게 하겠다. 잉태 할 가능성도 없는데내가 너로 하여금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 제대로 먹을 양식도 없이 방황하고 있는데
믿으시기 바랍니다.
누가 그렇게 하시겠다는 것입니까?
아브라함은 그러한 삶을 만들어 가시는 이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하나님만이 나를 통해서 그렇게 되게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무엇이 되게 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신약 시대의 대표적인 믿음의 사람 바울도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나 되게 하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주도권을 받아 드리며 나의 삶의 모습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언제든지 아브라함의 뒤가 아니라 앞에 계셨습니다. 나를 따라 오라입니다.
그의 소원을 이루어주기 위한 후원자가 아니라 그에게 절대적인 주권을 행사하시는 분으로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나는 어떠한가? 나의 하나님은 앞에 계셔서 나를 주도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나의 뒤에서 내가 저지른 일을 수습이나 하고 계십니까? 믿음의 삶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온 몸으로 따르는 것입니다.
이게 아브라함에게 본받을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삶을 만들어 나가시는 하나님의 주도권을 인정하였기에 기꺼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전혀 새로운 인생의 길을 개척해 나갈 수가 있었습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는 주님의 부르심에 온 몸으로 응답하였습니다.
말로만 고백한 것이 아니라 생애를 걸고 따라 나섰습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산다는 말의 정확한 의미입니다.
사실 나는 온 몸을 드리고 있습니까? 말로만 핑계만 하고 있지 않습니까?
말로 핑계로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를 관철 시키는 것뿐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절대적이라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믿기가 쉽습니다. 오늘날에는 눈에 보여도 안 믿습니다. 너무나도 속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혀 상식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이뤄질 수 없는 불가능한 사실을 믿는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믿음은 내가 주체가 아니라 언제든지 하나님이 주체이십니다.
믿음의 대상이 내 눈으로 확인되어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증거가 뚜렷하게 손으로 확인되어서 믿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그분의 전능하심에 대한 굳건한 확신 위에서 형성된 절대 믿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교인의 의무를 행함에 있어서 철저하다 할지라도, 그의 삶을 자신의 주도로 살아 나가며, 하나님의 부르심 대신 주위의 환경에 지배되어 살아나간다면 그러한 그의 삶을 가리켜 믿음의 일생이라 말하기는 곤란합니다.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서 믿음으로 반응하며 따라 갔습니다. 
교회를 열심히 다녀도 무슨 직책을 가져도 기도를 한다고 해도 믿음으로 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복된 자에게는 믿음을 주십니다.
저는 성도들을 볼 때에 복된 사람들을 발견합니다. 믿어주더라고요 믿더라고요 믿음으로 하더라고요
다른 이는 다 안 믿어도 자신은 믿고 있더라고요 아하 복된 자에게 이렇게 믿음을 선물로 주셨구나 할렐루야!
아브라함도 여러 차례 불 신앙적 행동을 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땅으로 왔지만, 그 곳에 기근이 닥치자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도 않고 그 자신의 결정으로 애굽으로 도피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애굽에서 최악의 거짓말을 했습니다. 자기 아내 사래를 누이라고 속여 애굽왕에게 넘겨주고 자기 생명을 유지 하였습니다. 
약속의 아들이 생각처럼 빨리 주어지지 않자 그는 사래의 여종 하갈과 동침하여 아이를 낳고 그것을 대신하고자 하였습니다.그러나 그 때마다 하나님이 그의 삶에 개입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실수를 교정해 주시고 수렁에서 그를 건지시고 이 같은 허다한 실수를 통해서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자기가 믿는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를 점차 깨달아 가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부단한 교제를 통하여 아브라함의 믿음은 점점 성숙해져 갔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독자 이삭을 번제물로 드리는 믿음의 모습을 보여주게까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아니 내가 복된 자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하나님은 모든 일을 통하여 믿음의 선물을 주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니 믿음을 주시기 위하여 나를 이렇게 까지 하셨구나 하고 감사하면 어떨까요?
아직도 믿음하고 상관이 없는 나의 삶을 고민하고 근심하며 내 믿음 없을 통탄하며 믿음 없음을 도와 달라고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현금 생활 교회 봉사 생활 교제 등등 믿음으로 하지 못함을 안타깝게 여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께서 그의 삶에 개입하셨고, 끝내는 그를 변화시켜 이토록 위대한 신앙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오늘 나를 믿음의 사람으로 하나님이 만드십니다.
만드셨습니다. 믿음을 선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비행기가 떨어지고 있어요.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르겠어요. 기도해주세요 라는 문자 메시지가 성도들에게 날라 왔습니다. 지난 15일 뉴욕 허드슨 강에 불시착한 US에어웨이즈 1549편에 타고 있던 남가주 한인 여성 린다 한(52·애나하임)씨가 비행기가 비상착륙을 시도하던 긴박했던 그 순간 남가주에 있는 교회 지인에게 사고 사실을 알리고 마지막이 될지 모를 작별을 고하는 이 같은 문자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살아났습니다.
♬아무 일을 만나도 예수 의지 합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나 역시 믿음으로 나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시는 동일하신 하나님 이십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살아계시는 생명의 하나님을 일러 성경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이 오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를 부르셨습니다.
그럴진대 아브라함의 삶에 개입하셔서 그를 교정하신 하나님께서, 어찌 나의 삶에 개입하지 않으시며 나의 실수를 그냥 버려두시겠습니까? 
그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멋진 인물로 변화시켜 주셨듯이 나도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시켜 성도라는 이름에 걸맞은 사람이 되게 해 주시지 않겠습니까?세상 적으로 살 수 밖에 없던 별 볼일 없는 나를 불러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드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미국 남부의 앨라배마 주에서는 전통적으로 목화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1895년에 목화벌레가 생겨서 목화농사가 완전히 망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지역이 목화벌레로 인해서 황폐하게 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목화 대신에 땅콩과 옥수수와 감자를 심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목화농사를 지을 때보다 더 많은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그 후에 사람들은 목화벌레 형상의 기념탑을 세워놓고 목화벌레에게 감사를 했습니다. 목화벌레가 와서 목화 농사를 망쳐놨기 때문에 더 많은 수확을 거둘 수 있는 길을 찾게 되었다고 감사를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때로는 내가 원하지 않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실패의 아픔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바라보고 믿음으로 길을 찾고 믿음으로 나가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더 좋은 길, 더 큰 축복의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아브라함이 젊었을 때 자녀를 낳았거나 아브라함이 원하고 기대하던 때에 자녀를 낳았다면 이렇게 귀한 믿음을 소유한 믿음의 조상이 되지 못 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인간적으로 기대하고 소망한 것을 다 버리고 오직 믿음으로 바라고 믿음으로 소망하고 하나님이 이루실 것을 확신 했을 때 하나님이 이루어 주시고 하나님이 견고한 사람으로 세워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