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구원과 소망은 당신의 삶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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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535회 작성일 2009-06-27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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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62 : 1 -12 하나님의 구원과 소망은 당신의 삶의 모습입니다.
미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스텐포드 대학에 다니던 두 학생이 학자금 때문에 고민을 하다가 그들은 이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폴란드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파데레프스키(Paderewski)를 초청하여 음악회를 열어 티켓을 팔아 그 수익금으로 등록금을 해결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들은 파데레프스키에게 공연료로 2000$를 지불하기로 약속하고 연주회를 열었는데 예상과 달리 총수익금이 1600$밖에 나오지 않아 오히려 400$이나 적자가 났습니다.
이들은 연주회 수익금 1600$ 전부와, 나머지 400$는 앞으로 갚겠다는 서류를 만들어 파데레프스키에게 보냈습니다. 그 후 이 사실을 안 음악가는 가난한 학생들로부터 받은 1600$를 되돌려주면서 저들을 격려하고 학비에 보태 쓰라고 하였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파데레프스키는 폴란드 공화국 대통령이 되었는데 그 당시는 세계 2차 대전이 발발하여 전 유럽이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래서 폴란드 대통령 파데레프스키는 미국에 식량 원조를 요청하기로 결심하고 서류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식량원조 요청서가 미국에 도착하기도 전에 벌써 미국으로부터 뜻밖의 많은 식량이 폴란드에 도착했던 것입니다. 파데레프스키는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후버(Herbert Hoover 미국 31대 대통령)를 찾아 정중하게 감사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후버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천만에 말씀입니다. 식량이 필요한 것 같아서 미리 보내드렸을 뿐입니다. 기억이 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어렵게 대학에 다니던 시절, 당신은 제게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그 당시 저는 정말 곤경에 처해 있었거든요. 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을 청하여 연주회를 열고, 그 수익금으로 대학등록금을 마련하고자 했던 오래 전의 그 두 대학생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후버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을 그때야 알게 되었습니다.
파데레프스키의 그 때의 자신의 삶의 모습이 오랜 후에 자신에게 돌아 올 그 무엇인가를 만들었습니다.
12절 주께서는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심이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런 분이시다 라고 말하는 본문을 기록한 다윗이라는 자는 양치기에서 이스라엘의 대왕이 된 그런 인물입니다.
그는 양치기로 시작하여 왕이 되어 살아가는 동안 그의 삶 가운데서 이런 경험을 많이 하였습니다.
자신이 살아온 삶의 모습대로 그대로 베푸시는 하나님을 자신 있게 말 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삼하22:25-27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내 의대로, 그의 눈앞에서 내 깨끗한 대로 내게 갚으셨도다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악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르심을 보이시리이다
나의 삶이 살아온 대로 내게 다 갚으시는 이런 하나님을 잘 모르고 그냥 살아가고 있으니 아직도 아무렇게나 살아도 괜찮다고 여기고 아무렇게나 살아 가는 게 내 인생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아무렇게나 살아서 안 됩니다.
그냥 잘 되겠지 하고 살아서도 안 됩니다.
어떻게 살았든지 반드시 삶의 결과는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그냥 잘 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렇다 할지라도 아무 쪼록 앞으로 잘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앞으로의 나는 지금의 나의 모습입니다.
학생이 공부 열심히 하지 안하면서 앞으로 잘 되어야지 한다고 잘되는 보장이 없습니다.
지금 중고등 학생들의 생활의 모습이 앞날의 10-20년 후의 여러분 모습입니다.
지금 초등학생의 모습은 벌써 어른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바뀌지 않으면 결정이 났습니다.
성인된 이들의 모습은 내가 살아온 모습입니다.
이제라도 내 가정과 내 자녀와 내 인생을 더 이상 내가 실망하지 않고 새로운 결과를 기대한다면 지금의 내 모습이 그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이 되셔야 합니다.
당연히 하나님 앞에서 내 삶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울며 씨를 뿌리려 나아가는 자가 기쁨으로 거두는 즐거움이 있는 것입니다,
이게 다 누가 주관하십니까?
하나님이 하십니다.
다윗은 내 삶에서 날마다 내가 바르게 살아 갈 수 있음은 하나님이 나의 구원이시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는 삶이어야 합니다.
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고 하십니다.
나의 삶의 구원은 언제든지 하나님께 있습니다.
언제든지 하나님의 구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하나님의 구원을 맛보아야 합니다.
1절 ♬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 할렐루야!
사람들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하여 설명을 요구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나를 이 지경에서 구원 할 수 있느냐? 고 따지십니다.
하나님은 그 지경에서도 구원하십니다. 믿으십시오
아무리 설명해도 내가 믿지 않고는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너희가 믿으면 주의 구원을 보리라 할렐루야!
믿지 않음으로 구원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경험해 본 자만이 하나님의 구원을 말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습니다.
아는 것은 100분의 일 1000분의 일도 안 됩니다.
수십억이 살고 있는 지구가 이 우주에서 바닷가의 모레 한 알에 지나지 않습니다.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없는 것이 훨씬 많습니다.
억 만 분의 일도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미국의 정치가요 웅변가였던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이 작은 씨앗을 두고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나는 수박씨의 힘을 관찰해 본 적이 있다. 수박씨에는 흙을 밀어젖히고 나오는 힘이 있다.
그것은 자기보다 20만 배나 더 무거운 것을 뚫고 나온다. 수박씨가 어떻게 이런 힘을 내는지 알 수 없다.
도저히 모방할 수 없는 색을 껍질 바깥으로 우러나오게 하고, 그 안쪽에 하얀 껍질, 그 안쪽에 다시 검은 씨가 촘촘히 박힌 붉은 속을 어떻게 만들어 낼 수 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그 하나하나의 씨는 또다시 차례차례 자기 무게의 20만 배의 힘을 가지고 뚫고 나올 것이다. 당신이 이 수박씨의 신비를 설명할 수 있다면, 나도 하나님의 신비를 설명해 주겠다.
아시겠습니까?
구원을 설명해 달라고 하지 말고 구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구원을 보는 것입니다.
이 현장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구원이 있다
그러니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봅니다.
잠잠히 인간적인 요소로 말하지 말고 차라리 인간적인 말을 안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말입니다.
구원은 하나님께로부터 난다
그러니 하나님이 나의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이 내 삶을 주장하도록 내 삶이 형성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밤새도록 그물을 던진 것이 중요한 결과가 아니라 던졌지만 말씀에 따라 새로운 삶을 형성시키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여태까지 일어나지 않았던 놀라운 일이 내 일상에서 일어 난 것입니다.
이런 경험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17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파스칼(Blaise Pascal)은 성경 요한복음 16장을 읽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팡세』라는 책을 써서 유명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가운데서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인간의 비참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여 지복에 이를 수 있음을 증명하면서, 파스칼은 인간은 신체와 정신의 질서를 초월하여 하나님과의 깊은 내적 관계를 맺음으로 이성보다 하나님의 은혜이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그러나 과학의 하나님은 아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과학을 하나님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과학은 결코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과학은 우리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때도 있지만 불리하게 작용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진정한 하나님이 되십니다.
그는 일찍 39세에 질병으로 죽었는데 이 병까지도 그는 하나님께 병의 선용을 기원하는 기도라는 유명한 글을 남겼습니다.
그 어떤 것도 하나님에게는 선하게 사용되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
그래서 하나님을 떠난 나라, 하나님을 떠난 회사,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죄악에 파묻힐 수밖에 없습니다. 20세기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Karl Theodor Jaspers)는 인간은 이성만을 가지고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한평생 인간의 능력과 힘에 대하여 생각했습니다.
아! 인간이 어떻게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겠는가? 인간이 어떻게 죄악의 문제를 해결하겠는가? 인간이 어떻게 불안과 갈등의 문제를 해결하겠는가? 인간이 어떻게 전쟁의 문제를 해결하겠는가?그리고 그는 마침내 인간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즉 한계상황에 빠져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인간에게는 한계가 있으며, 하나님께서 주인이 되셔야만 비로소 인생의 문제는 비로소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또한 다윗은 내 삶에서 날마다 내가 바르게 살아 갈 수 있음은 하나님이 나의 구원이시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기대하십시오 당신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살아 갈수록 소망이 없고 절망이지 않습니까? 살아 갈수록 태산인자 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을 소망하시기 바랍니다.
비록 당신에게서 그 어떤 것도 기대치가 없어도 하나님은 당신의 소망이 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하나님이 소망이기 때문에 내 소망을 하나님께서 찾고 하나님께 두고 살아갑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는 당신의 변화된 행위에 있습니다.
지금도 제 집 책상 위에는 모나미 볼펜이 오늘 아침에 보니 2자루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가게에서 팔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모나미 153볼펜은 1963년 5월 1일에 탄생했으니 제가 10살일 때입니다.
제가 중고등 학생회 때 전도한 학생들에게 나누어 준 기억이 있습니다.
도산의 위기에서 송삼석 회장이 회사가 가장 어려웠을 때 제조업체 사장이 하나님께 가서 위하여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하면서 생각해보니 그간 사업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산 것이 아니라 제 좋을 대로의 인생을 살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내 삶을 변화시켜 살아 보자하고 새로운 삶을 결심했습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만날 복을 구한다고 복이 되는 줄 아십니까?
내가 복 받을 자로 살아가면 복이 되는 것입니다.
첫째, 주일을 사업 핑계로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철저히 회개하고 주일을 지키는 생활인으로 바꿔 씁니다.
주일을 지키기 위하여 사업의 스케줄을 바꾸는 것입니다.
둘째, 돈을 많이 벌고도 제대로 십일조 생활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소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라는 고백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마이너스가 되더라도 십일조 생활은 우선적으로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먹을 것 입을 것 없어도 십일조 생활로 바뀌었습니다.
제가 화가 나는 것이 하나 있는데 하나님 앞에서 복을 받겠다는 사람이 어찌 십일조 생활을 하지 않는지 이해가 안갑니다.
이게 다 신앙생활의 기본이 아니겠습니까?
기본도 갖추지 않고 신앙생활을 했으니 그 생활은 뻔 한 뻔자입니다.
그리고 셋째로 기도 생활입니다.
역시 기도의 기본은 새벽 기도입니다.
새벽기도하지 않은 것을 회개하고 기도 생활로 하루를 출발하는 것입니다.
일이 되겠습니까? 안되겠습니까?
되는 길이 보입니다.
길이 안보이면 하나님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보이는데 요한복음 21장 1-14절의 말씀이 보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이 지시한곳에서 그물을 던졌더니 153마리의 고기를 잡았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모나미 153이라는 볼펜을 만들겠습니다.
하나님, 이 볼펜이 모든 사람의 손, 아니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사람의 손에 다 들려지기 원합니다. 기도하고 난 후 그는 목표를 크게 잡고 50억 자루가 팔리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를 마쳤다. 망해가는 회사가 볼펜 50억 자루를 판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텐데 통계에 따르면 50억 자루가 팔렸다고 합니다.
내가 살아온 삶이 나를 말하고 있고 내 갈 길을 인도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 나무라지 말고 나를 보십시오
사냥꾼에게 쫓기고 있던 이리 한 마리가 숲에서 마을로 내려와 부들부들 떨고 있었습니다. 이리는 어떤 문이든 열려 있는 문만 눈에 띄면 당장 뛰어 들어갈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이 열려 있는 집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으므로 이리는 두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그때 마침 담장 위에 앉아 있는 수코양이 한 마리가 눈에 띄었습니다. 여보게, 나 좀 살려주게. 이 마을에서는 어느 농부가 제일 마음씨가 좋은가? 들리지 않은가? 개 짖는 소리와 저 나팔 소리 말일세. 저건 모두 나를 노리는 것이란 말일세! 스테판에게 부탁해 보게 그는 아주 착한 사람이니까. 고양이가 말했습니다.그렇지만 나는 그 집에서 숫양 한 마리를 도적질했는걸. 그래? 그럼 데미안한테 가 보게. 그도 날 미워할 거야. 내가 염소 새끼를 훔쳤거든.그럼 빨리 트로피임에게 가 보게. 트로피임 집에? 안 돼, 그 역시 날 잡으려고 할 걸.
그런가? 그렇다면 끄림은 자네를 숨겨 줄 걸세. 안 돼! 그 집에서 송아지 한 마리를 훔쳐왔다네.고양이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네는 그러고도 어떻게 살기를 바라고 있나?
그러는 순간에 포수가 왔다는 것 아닙니까?
이제 자네 일은 자네가 처리하게. 자네가 뿌린 씨는 자네가 거두어들이란 말일세.하나님께서는 내가 이 땅에서 어떠한 삶을 사느냐에 따라 각기 행한 대로 갚아 주십니다.
자신의 살아온 삶은 말하지 않고 내 자신만 알아 달라는 어리석음의 변론이 없으시기 바랍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나의 구원을 이룬다는 바울과 같은 심정으로 내게 주어진 삶을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날마다 구원이요 그 생활은 장래에 소망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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