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성령으로 당신은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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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497회 작성일 2009-06-27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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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37 : 1 -14 말씀과 성령으로 당신은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1984년 롤랑조페 감독이 만든 킬링필드라는 죽음의 땅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의 배경은 1975 년의 캄보디아의 혁명을 성공한 크메르 루즈는 미국에 충성을 보인 지식인과 시민들 10만 명을 처형하고 또 기아와 질병으로 죽은 이들이 80만 명을 웃돌았습니다. 또 그 이전 1969년에서 73년에 미국의 폭격으로 죽은 양민의 수까지 합하면 10년 동안 150-160만 명의 양민들이 살해당했습니다.
이것이 킬링필드의 전모인데 땅을 파면 죽은 자의 뼈가 무더기로 쏟아지는 곳을 킬링필드 즉 죽음의 땅이라 합니다.
생명은 온데 간데없고 죽음만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바로 이 킬링필드가 배경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를 주검이 가득한 골짜기로 인도하셨는데 바짝 마른 뼈가 가득하였습니다.
죽고 비바람을 맞아 기름기와 수분이 다 말라 거의 흙으로 돌아가기 직전의 상태 거의 흙인 상태의 뼈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하시는 질문입니다.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런데 그는 무엇이라고 대답합니까?
주께서 아시나이다 이 말은 죽음 가운데 생명을 말 할 수 있는 분은 주님이시고 그리고 생명을 주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분도 주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은 왜 이 사망의 자리에서 생명을 말하십니까?
이 뼈는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이스라엘이 사망에 있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마른 뼈가 되어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절망적이라 할지라도 그 이름이 이스라엘이라 그냥 방치 되어 죽음에 거할 수가 없는 이름입니다.
11절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지금의 이스라엘에게 소망이 없고 다 망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그냥 둘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성도들을 절망의 자리에 그냥 두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본심은 재앙이 아니라 마침내 복을 주시기 위하심입니다. 할렐루야!
노벨 문학상을 받은 20세기의 작가 솔제니친은 소련의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반체제 운동가입니다.
그래서 수배를 받고, 결국에는 강제 수용소에 가지 않습니까?
그는 모진 고문 끝에 추위와 굶주림으로 점점 죽어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강한 정신력으로 버티어 보지만 그만 암에 걸리게 됩니다.
온 몸이 암이 번져 나가면서 일어설 수 있는 힘조차 없이 쓰러질 때에 그 몸에는 뼈만 남아 있었습니다.
모든 생각이 없어지고 마지막 순간에 눈을 떠보니 흰옷을 입은 분이 서 있었는데 예수님이 서 계셨습니다.
그 순간 그에게는 놀라운 힘이 생겼습니다. 어두움이 물러갑니다. 근심이 떠나갑니다. 놀라운 평안이 주어집니다.
그의 마음에 그렇게 고통스럽던 아픔도 사라집니다. 그는 은혜를 받고 치료를 받습니다.
그곳에서 나오게 되었고 일 년 만에 그는 몸도 회복되고 자유를 얻고 미국 땅에 가서 작품 활동도 크게 하고 세계를 향해 큰일을 하게 됩니다.
이처럼 죽은 자와 같은 존재에 예수님이 찾아오시면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주님이 오늘 이 시간에 죽을 것 같은 나를 살리시려 찾아오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살리시는 방법은 말씀이십니다. 말씀이 생명의 양식이 됩니다.
마른 뼈들을 향해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할렐루야!
자꾸 엉뚱한 소리에 관심이 빼앗기지 말고 말씀에 귀를 기우시기를 축원합니다.
그 말씀을 가만히 들어 보십시오
죽인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살린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세상의 소식은 죽겠다는 사망의 소식만이 가득한 것 같습니다.
최악의 소리만 여러분의 가슴을 철렁하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그렇지 않습니다.
4-6절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
너희가 죽지 않고 살리라
이스라엘의 모습을 볼 때, 가망이 없었습니다. 말 안 듣는 이스라엘 볼 때에 절망적이었습니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신앙적으로 어느 면을 보아도 소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부정의 메시지를 원하시지 않았습니다.
에스겔아 소망의 메시지를 전해라 부흥의 메시지를 전하길 원하셨습니다.
저 역시 하나님께 어려움을 당하는 성도 이 민족과 세계만방의 족속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은 매우 긍정적이십니다.
그리고 소망의 메시지를 전하시기를 원했습니다.
12절 너희 무덤을 열고 나오라
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무덤의 나사로를 향하여 나사로야 나오너라
에스겔이 마른 뼈들에게 전해야할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가 살리라
말씀을 들으면 마른 뼈들도 산다는 메시지입니다.
마른 뼈들도 살 수 있다는 소망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은 생명이십니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불가능 하지만 말씀은 가능케 하십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안 되는 것을 되는 것 같이 죽은 자를 산자같이
말씀을 받아 드리면 살아나는 것입니다.
1972년 10월 13일 우루과이의 몬테비데오 떠난 전세 비행기가 칠레의 산티아고로 가던 중 악천후로 안데스 산맥에 불시착을 합니다. 눈에 덮인 산허리에 동체 착륙을 한 것입니다. 그 비행기 안에는 모두 45명이 탑승하고 있었는데 그 중 더러는 불시착 때 즉사하고 더러는 부상을 입고 산 위에서 죽어갔습니다.
눈에 덮인 안데스 산맥은 전문가들도 꺼려하는 죽음의 계곡입니다.
정부는 10일간 수색 비행을 하고는 그들을 포기해 버렸습니다.본문의 에스겔처럼 죽음의 골짜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67일후에 비행기가 발견되었는데 45명의 탑승자중 16명이 굶주림과 싸우면서 에스겔과 같은 죽음의 계곡에서 기적적으로 구출 받은 것입니다.
16명이 안데스 산맥의 추위와 굶주림에서 67일간의 생명을 이어가면서 구출 받았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비행기 안에는 먹을 양식이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죽은 이들의 살을 뜯어 먹으면서 연명했다고 합니다.
그 증거로 부상으로 여러 주간을 앓다가 죽은 한 청년이 아버지 앞으로 다음과 같은 메모를 남겼습니다.
아버지도 전혀 믿기 어려우실 일이 이곳에서 벌어졌습니다. 죽은 친구의 살을 쪼개어 내는 일입니다.
쪼개어 낸다는 말은 꽁꽁 얼었다는 말입니다.
이것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으니까요. 저도 이제 오래 살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내각 죽은 뒤 나의 살이 친구들을 살리는 양식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67일 동안 인육을 먹으면서 에스겔과 같은 즉음의 계곡에서 생존한 청년 한 명이 목사님에게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합니다.
저는 학생 시절에 교회에 한 주일도 빠져본 일이 없습니다.
부모님이나 동네 어른들은 모두 저를 칭찬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저 죽음의 산 위에서 새로운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동안 교회에 다녔으나 신앙이 나에게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교회에서 수없이 성찬식에 참여했으나 떡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살과 피로 내 가슴에 전해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산 위에서 죽은 친구의 살 조각을 뜯어서 손에 들었을 때 그것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것을 알았으며 정말 사랑이 무엇이며 십자가가 무엇임을 깨달았습니다.  
마른 뼈들이 어떻게 살아난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난 것입니다.
시편19:7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는 능력입니다.
눅1:37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한 것이 없습니다.
요5:25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는 어떠한 자든지 살아납니다.
사실 이스라엘이 절망하고 있는 것은 바벨론에 포로가 되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지도자가 없고 돈이 없기 때문도 아니고, 능력이 없기 때문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기 때문에 절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 있으면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고 해도 소망이 생깁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 백성이 여호와의 말씀이 없어서 망하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너희가 어찌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과 금을 달아 주느냐?
너는 내게 와서 들어라 그러면 내 영혼이 살리라
사무엘이 어려서 엘리 제사장 앞에서 하나님을 섬길 때,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엘리 제사장은 하는 일없이 빈둥거리며 시간만 때웠습니다.
이런 아버지를 둔 아들들은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분간하지 못하다가 결국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빈둥거리다가 죽고 맙니다. 그러므로 절망적인 것입니다.
이런 절망적인 순간에 하나님은 사무엘을 부르시며 사무엘을 통해 말씀을 주셨습니다.
사무엘이 말씀을 전하자 빈둥거리던 이스라엘이 살아났습니다.
중세시대를 암흑의 시기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교회가 말씀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없는 교회는 아무런 영향력이 없었습니다.
이런 절망적인 순간에 소망의 역사를 이룬 사람이 루터였습니다.
루터의 케치프래이즈가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으로 돌아가자 라는 것이었습니다.
말씀이 루터에게 임했고, 루터는 마른 뼈와 같은 그 시대에 말씀으로 도전장을 냈던 것입니다.
그에게 임한 말씀은 살아서 사람들의 마음에 소망을 심었습니다.
말씀이 역사하자 중세의 암흑기가 희망의 시대로 변화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면 제아무리 말라 비틀어진 뼈라도 견딜 수 없습니다.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 서로 연결이 되고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고 가죽이 덮이게 됩니다.
그러므로 메마른 이 시대를 살릴 수 있는 것도 말씀입니다.
절망적인 내 가정 내 생업을 살릴 수 있는 것도 말씀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돈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정말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달러가 문제가 아니라 한마디 말씀이 문제입니다.
한 개인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도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합니다. 또 마음의 생각과 뜻까지도 감찰하십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사랑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마른 뼈들과 같이 보이는 사람에게도 말씀을 전할 수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말씀으로 사람의 겉모습은 갖춰졌는데 살아 있지만 죽은 자 같습니다.
오늘날 제일 견디기 힘든 것은 말씀으로 구원을 얻었지만은 그 구원을 삶 속에서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허우대는 멀쩡하여 성경의 지식도 아는데 그러나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고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자 뼈들에게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고 가죽으로 덮였습니다. 그런데 생기가 없었습니다. 생기가 없으니 살았으나 죽은 사람과 같았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하셨다 하라
에스겔이 생기를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사방에 흩어져 있던 생기들이 마네킹과 같던 그들에게 들어가자 숨쉬기 시작했습니다.
꿈틀거리며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엄청난 규모의 군대였습니다.
군인의 생명은 싸움에서 이기는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군인은 신속하고 정확한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싱싱했습니다. 강하고 믿음직했습니다. 끊임없이 도전해도 지칠 줄을 몰랐습니다.
그들을 이렇게 역동적으로 만든 것은 바로 생기였습니다.
생기는 무엇입니까?
창2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셨습니다. 생기가 들어가자 사람은 살아있는 존재요, 영혼을 소유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사람에게 영혼을 불어넣어 주는 생기는 바로 성령을 말합니다.
성령이 임하면 죽은 자가 살아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젊은이는 vision을 보게 되고, 성령이 역사 하시면 나이 먹었다고 절망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성령이 임하면 새로운 소망을 덧입게 됩니다.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됩니다.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부흥이 되시기를 원하십니다.
진작 내가 부흥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보십니다.
하나님은 부흥을 주시고자 말씀하십니다.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어라
죽음 절망의 바이러스는 다양한 이름으로 나를 공격합니다.
실패라는 이름으로 찾아오기도 하고, 실수라는 이름으로 찾아오기도 합니다.
절망이라는 바이러스는 인간관계의 갈등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오고, 우울증으로 찾아오기도 합니다.
때로는 영적 침체라는 이름으로 찾아오기도 합니다.
절망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러나 너무 두려워하지는 마십시오.
절망의 바이러스를 이겨낼 수 있는 말씀과 성령을 선물로 받으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으로 성령의 사람으로 큰일을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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