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을 이기시고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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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734회 작성일 2009-06-27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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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4 : 1 - 6 사망을 이기시고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
어제 아침 2009년 4월 11일자 미주 중앙일보 USA인터넷 신문을 보는 가운데 2가지 한국인의 사연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는 한 한인 여성의 사망의 소식이었고 또 하나는 활짝 웃는 얼굴의 한 한인 남성의 모습이었습니다.
죽음의 소식은 캘리포니아 얼바인에 사는 36세의 한인 여성이 교통신호 위반한 뒤 경찰의 추격을 받고서 도망을 가다가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을 거두었는데 안타까운 사연은 차의 뒷 자석에는 13개월 된 딸아이가 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여성이 왜 사소한 신호 위반에 경찰의 요구에 응하지 못하고 도망을 가야 했는가?
마약을 했는가 알코올을 했는가 여러 가지 유추를 하겠지만 자신의 신분이 미국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이 신호 위반으로 자신에게 주어지는 엄청난 불이익이 너무나도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프리웨이를 110마일 180키로의 속도로 30분간 질주를 하였지만 결국은 사살이 되고 말았다는 소식입니다.
그러나 웃는 얼굴을 한 남성은 39세로서 벌써 제대를 해도 오래 될 나이에 미군에 입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왜 늦은 나이에 군 입대가 웬일이냐고 생각을 하겠지만 군 입대를 함으로서 그는 미국에서 부 자유로운 신분이 자유로운 신분으로 회복이 되기 때문에 웃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제 그는 미국 시민권의 획득과 직장을 얻게 되어 아내와 2자녀의 생활의 보장이 확보되었으니 그의 얼굴에는 만년의 웃음이 피었습니다.
두 사람의 대조적인 모습 한 사람의 웃는 얼굴에 반해 아이를 두고 교통 위반 사고 하나에도 자유롭지 못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이 여성의 운명과 남겨진 딸아이를 생각 할 적에 가슴이 아파서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여러분 나를 억압하고 죽음으로 몰아넣는 구속된 법에서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릅니다.
이것은 자유를 얻은 자 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입니다.
오늘 사망에서 생명의 자유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의 값을 치루시고 이루어 주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그 누구도 죄에서 자유 할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자유롭지 못하다는 그 증거가 사람은 누구든지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죄의 값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죄의 영향을 받아 오염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죄의 오염의 영향은 내가 원하든지 원치 않든지 나를 오염 시키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황사가 날아와서 한국의 봄 하늘을 더럽히는데 그 영향은 누구에게나 미치지 않습니까?
그 죄의 오염된 증거가 사람들에게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람들 마음속에 온갖 더러운 것들로 가득차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오염 된지 말해 볼까요?
간음과 음란과 거짓증거, 비방, 부정, 사욕, 탐심, 시기, 도적질, 미움, 원한, 원망, 살인, 분쟁, 질투, 분리, 수군수군, 당 짓기, 속임, 교만, 온갖 더러운 것, 우상숭배, 등등 이루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있습니다.
가만히 보십시오
처음 듣는 소리입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나와 아주 친한 것들 아닙니까?
이런 것들에서 자유롭지 못하니 결코 인생의 삶이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닙니다.
사람은 2번 태어나고 3번 죽습니다.
한번은 육신의 부모로부터 태어나고요 이것은 누구나 경험하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김씨, 이씨, 박씨, 다 그 씨를 따라 태어났지 않습니까?
그래서 김씨 이씨 박씨인 것입니다.
또 한 번은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영적인 출산입니다.
이것은 누구나 경험하지 못합니다.
육신은 부모의 혈육인 김씨, 이씨, 박씨, 씨앗으로 태어나지만 영적인 출산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태어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한번만 태어 난 사람은 태어나기는 한번 이지만 죽기는 3번 죽습니다.
여러분들은 사람이 한번만 죽는 줄 알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왜 나를 두 번 죽이느냐? 고요 그러지요 두 번 3번까지 죽습니다.
한번은 당연히 육신적인 죽음을 죽습니다.
또 한 번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영적인 죽음을 죽습니다.
정신적인 죽음이라고 하면 이해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육은 살아 있지만 하나님과의 단절입니다.
또 한 번의 죽음은 영원한 죽음인 지옥의 형벌의 죽음입니다.
이렇게 죽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죄의 값인 사망으로 그 값을 치루기 때문입니다.
한 여자는 교통 위반 하나에도 자유하지 못하고 자신의 신분의 노출등 때문에 자신이 자유롭지 못함으로 도망을 가다가 개죽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한 남성은 그의 자유로운 신분을 얻음으로 지나온 과거의 어두움을 청산하고 앞으로의 행복을 바라 볼 수가 있으니 웃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제 지나온 내 인생의 온갖 어두움의 삶이 이 정도로서 족하다고 생각이 되십니다.
여기에서 정리 할 때가 되었습니다.
더 이상 죄에서 자유롭지 못하여 죄의 값을 치루는 그 두려움과 그 공포와 불행함 그리고 지옥행의 자리에서 벗어나셔야 하지 않습니까?
오늘 이 죄짐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그 값을 대신 치르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죽음의 값을 치루고 이기셨다는 그 증거로 오늘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 할렐루야!
오늘 몇몇 여자들이 십자상에서 죽어 무덤에 장사하신 예수님의 시신에 향유를 바르기 위하여 가서 보니 무덤이 비어 있었습니다.
시신이 없는 거예요
깜짝 놀라워하는데 천사가 일러 주었습니다.
He is not hear for He is risen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계시지 않고 살아 나셨느니라 할렐루야!
저도 그 무덤 속에 들어 가 보니 텅텅빈 빈 무덤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영생을 얻으리로다
이 민족의 소망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북 조선의 소망은 원폭을 실어 나를 수 있는 미사일 체제 구축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예수가 유일한 소망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에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아침에 언더우드, 아펜젤러 의사요 선교사인 미국 두 20대 청년이 한국 땅에 와보니 가관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세계의 국제기구와 선교 기관 단체에서 당시 한국을 어떻게 평가를 한 줄 아십니까?
한국은 안 된다고 했습니다.
무지하고 무식하고 가난하고 헐벗고 이것이 한국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버림을 받은 땅, 절망의 땅, 소망이 없는 땅이라고 하였습니다.
가능성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두 청년이 예수의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땅에 입을 맞추며 본국으로 보낸 편지를 보내기를 주님의 부활절에 이곳에 왔습니다.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조선의 온갖 매인 결박을 끊어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빛과 자유의 세계로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런데 복음이 들어온 이 땅  아무리 절망의 땅이지만 가난과 비극의 이 불쌍한 민족이지만 부활의 주님의 생명의 빛이 사망의 어두움을 물리치고 오늘 백 여년 만에 놀라운 축복이 이 민족위에 부활절과 함께 주어진 줄로 믿습니다. 
다시 한 번 부활절을 맞이하여 부활의 생명의 빛이 아직까지 죄악의 무덤 속에 있는 어두움에서 다 나아오게 하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이 민족이 희망이 있음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가운데 아직도 세상 정욕을 따라가는, 죽음을 좇아 나아가는 이 불행한 삶이 있습니까?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그 죄의 불법의 자리에서 나오셔서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고 부활의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승리하는 삶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부활의 주님을 저버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앞에 것만 바라보고 나아가고 있습니다. 
조그만 일에도 낙심하고 조그만 일에도 분노하여 남을 살해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조그만 일에도 스스로 절망해서 자살해버립니다. 
이게 다 불법인 죄의 영향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죽을 일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속상할 일도 없습니다.
다 주님이 알아서 해주시고 맡아주시며 도와주시니까 이제부터 더 이상 불행해지지 않습니다.
불행 끝 행복 시작입니다.
부활의 신앙만이 세상을 승리하게 하십니다.
더 이상 두려하지도 말고 더 이상 놀라지도 마라 그리고 나와의 관계에서 평안하기만 하라고 하십니다.
내가 세상을 이기었으니 나를 믿기만 해라 너 또한 세상을 이기며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선언을 얻게 되었습니다.
옛 사람, 죄의 지배하에 있던 옛 사람은 죽고, 새 사람이 되게 하였다는 말씀입니다.
톨스토이의 유명한 작품 부활에 카츄사라는 한 여성의 기구한 일생을 그린 작품입니다.
카츄사는 귀족 네흘류도프의 집에 하녀로 있으면서, 네흘류도프의 의하여 몸이 더럽혀지고 타락하게 됩니다. 나중에는 유형수가 되어 시베리아로 유배를 갔습니다. 눈으로 덮인 시베리아 들판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알리는 부활절의 종소리를 듣고, 자기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찾아온 자신의 원수인 네흘류도프와 함께 복음서가 말해 주는 진리의 부활의 길을 찾아 죄의 얽매였던 카츄사의 영혼이 다시 새롭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죄의 종으로 사는 동안, 우리의 영혼은 만족이 없습니다.그러므로 죄로 부터의 해방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부활에서 찾게 됩니다.주님의 부활은 죄의 세력을 부수고 살아나신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남아프리카 남단에 희망봉이 있습니다.
그곳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포르투갈의 항해자 바르톨르뮤 디아스인데, 그는 1488년 그곳을 발견하고는 이름을 폭풍의 언덕이라고 지었습니다.
너무나도 풍랑이 거친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몇 해 후인 1497년, 바스코 다가마가 이곳을 통과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포르투갈 왕 조앙 2세의 명을 받고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항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이 폭풍의 언덕을 돌아 마침내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하자 왕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그곳은 더 이상 폭풍의 언덕이 아니라 희망의 언덕이라는 새 이름을 내렸습니다. 폭풍에서 희망으로 바뀐 것입니다. 무슨 일이건 그 일 자체에 희망과 절망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닙니다.
위기가 닥치거나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희망 쪽으로 마음을 다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행불행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내 인생의 새로운 출발을 하는 것입니다.
얼마든지 승리의 삶이요 행복한 삶이되십니다.
이 부활의 즐거운 날이 베리 굿 나이스 데이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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