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부모를 통하여 하나님을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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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563회 작성일 2009-06-27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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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18:29-33 내 부모를 통하여 하나님을 봅시다.
일본의 전설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홀몸이 된 어머니가, 외아들을 정성껏 길러 결혼을 시켰습니다. 신부는 불행하게도 몸이 몹시 약한데 알아봤더니 사람의 간을 먹으면 낫는다고 했습니다. 이 아들은 자기 아내를 몹시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라도 그 병을 고쳐주고 싶었습니다. 궁리하던 끝에 끔찍한 생각을 했습니다. 제일 만만한 것이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는 이제 사실만큼 다 사셨는데 젊은 아내는 살려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어머니를 깊은 산 속에 끌고 가서 그만 어머니의 가슴에 칼을 들이밀고 간을 빼내어 정신없이 달려갑니다. 무섭고 두렵고, 큰 죄책감이 온통 이 아들을 사로잡아서,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뛰어갑니다. 정신없이 달려갑니다. 그 때 어머니의 간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얘야, 천천히 가라, 너무 빨리 달리다 넘어질라, 다칠라.”
물론 이것은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일 뿐입니다.
몰인정한 아들에게 죽임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아들을 염려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잘 담긴 이야기입니다.사실 자녀들은 어머니의 간을 먹고 삽니다. 부모님들은 자녀들 때문에 늘 애간장을 녹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매일 매일 매 순간 순간 부모들의 애 간장이 먹혀지고 있습니다.
등골을 쏙 빼기도 합니다.
다른 이유에서는 사랑할 가치조차 없는 없지만 내 자식이라는 이유하나 때문에 내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고 후회하지 않는 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부모라는 이유하나 때문입니다.
이 땅의 모든 부모는 사람이 이해 할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보내어 주신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한 하나님이십니다.
부모를 손종하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악한 부모라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희대의 살인마 강(호순)도 남의 생명을 죽이는 일에는 조금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자가 자기 아들의 이야기를 하면 내 아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 라고 하며 그 아들을 걱정하는 말을 하는 것을 보고 수사관이 충격을 먹었다는 것 아닙니까?
이것을 볼 때에 부모라는 이름은 하나님을 보여 주는 이름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더 놀라운 아버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다윗에게는 압살롬이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 아들은 배다른 형 암몬이라는 다윗의 아들을 살해한 원수 같은 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일은 그 아버지의 후궁들을 겁탈한 짐승 같은 아들이었습니다.
그것도 부족해서 왕위의 자리를 노리고 쿠데타를 일으켜 아버지를 살해 할 목적으로 군사들을 일으켜 피신하는 아버지를 끝까지 추격해 오는 악마 같은 이런 아들입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아들이 있다면 어떠하겠습니까?
그런데 아비 다윗은 사랑할 가치조차 없는 악한 압살롬을 변함없이 사랑하며 자신을 죽이기 위하여 덤벼드는 아들을 두고 자기 부하들에게 그를 너그럽게 대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죽자 그 아비는 울면서 차라리 너 대신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통곡을 하였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면 좋겠습니까?
다른 방도로는 해석이 안 되나 부모 자식이라는 이름으로는 얼마든지 해석이 되지 않습니까?
올해 미국에서 일어난 한 한인 가정의 일입니다.
정신적인 질환을 가지고 있던 아들이 아버지를 칼로 찔려 아버지가 그 충격으로 심장 마비로 돌아가셨습니다.
그 아들은 경찰에 인계되고 재판을 기다리는데 아들과 남편의 그 중간에 있던 어머니는 어떻게 하여야 좋겠습니까?
당연히 그 아들의 어머니이기에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아들이 실수로 한 것이니 아들을 살려 달라는 탄원서를 내었고 아들을 석방을 위해 인터넷 개인 브로그를 만들어 한인들의 도움을 요청하였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이런 일들이 부모가 자식을 향하여 일어나고 있습니다.
도대체 부모가 무엇입니까?
도대체 어찌 죽음을 초월한 이런 사랑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이게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내 부모를 통하여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이 나를 낳으신 부모님에게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오늘날 이 험한 세상에 이만큼 이라도 된 것입니다. 아멘
그러므로 성경에서는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요
부모에게 잘하는 자는 하나님께 복을 받고 땅에서도 잘 되는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내 부모에게서 어떤 하나님을 보여 주십니까?
어떠한 잘못이라도 잘못으로 기억하시지 않으십니다.
그 잘못을 이해를 하고 용서해 버리십니다.
부모는 어떤 경우에도 자식의 입장을 이해하려듭니다.
나쁜 일을 저질렀을 때에도 오죽하면 그렇게 하였겠느냐는 식으로 자식 편을 들곤 합니다.
다윗은 아비를 배반한 압살롬을 그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너그럽게 이해하였습니다.
압살롬이 그의 형인 암논을 죽이고 그술 땅으로 도망한 뒤 다윗은 압살롬에게 괘씸한 마음을 가지기보다 오히려 측은하게 여기고 그를 그리워하였습니다.
사무엘하 13:37-39 압살롬은 도망하여 그술 왕 암미훌의 아들 달매에게로 갔고 다윗은 날마다 그 아들을 인하여 슬퍼하니라 압살롬이 도망하여 그술로 가서 거한지 삼년이라 다윗왕의 마음이 압살롬에게 향하여 간절하니 암논은 이미 죽었으므로 왕이 위로를 받았음이더라고 하였습니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식이 지은 죄를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에서 지워버리거나 완전히 잊어버리는 경우입니다.
옛날 이삭은 그의 아들 야곱이 아비를 속이고 장자의 행세를 하며 축복을 가로채어 갔을 때 매우 큰 충격을 받고 몸을 떨기까지 하였으나(창 27:33), 얼마 후 그를 용서하고 오히려 그 후손까지 축복해 주었습니다(창 28:1-4).  신약의 경우 눅 15:22-24 아비의 재산을 허비하고 거지가 되어서 돌아오는 탕자를 그 아버지는 용서하고 오히려 옛날의 지위를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자식의 불행을 자기 탓이라고 돌리며 괴로워하는 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그것은 자식이 잘되는 것을 보면 그 공로를 자식에게 돌리지만 자식이 잘못되면 그 책임을 부모 자신이 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말씀 하십니다.
너 죄가 주홍 같고 진홍 같을지라도 흰 눈과 같이 양털과 같이 희게 하리라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시고 등 뒤로 던져 버리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내 부모에게서 어떤 하나님을 보여 주십니까?
내 자녀는 모든 어려움을 당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화라도 복이 되기를 바라고 합력하여 선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모든 잘못을 자신이 다 감당하기를 원하신다.
다윗은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였습니다.
그간에도 자기 아들이 어떻게 될까바? 노심초사입니다.
아버지를 배반하고 왕위를 빼앗은 아들인데도 그를 용서해주었고 그의 죽음을 애석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압살롬은 그 아비 다윗을 왕위에서 축출한 것 뿐 아니고 오히려 죽이려고 계교를 꾸몄습니다. 압살롬은 왕위를 비워주고 도망간 다윗을 끝까지 쫓아가서 죽이려고 계획하였습니다(삼하 17:1-4).
만일 요압이 압살롬을 죽이지 않았더라면 필경은 압살롬의 반란군에 의하여 다윗은 죽임을 당했을 것입니다. 그런 사정을 뻔히 알면서고 다윗은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하고 울었습니다.
자식의 아픔을 대신 아파 주고, 자식의 죽음을 대신 당해 주려는 마음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죄인 된 저희를 십자가에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대학을 3번씩이나 합격을 해도 그 때마다 등록금이 없어 진학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군에 입대를 하였습니다 만은 저는 시험을 칠 때마다 그냥 한번 쳐보자는 식이었습니다.
그리고 합격 발표하는 날 그냥 가서 합격증을 받아 오지요
그런데 어머니의 마음은 그렇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내가 차에라도 부딪혀 보상금이라도 받아 아들들 공부 시켰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셨습니다.
지금 제 자신을 볼 때에 내 부모님의 전철을 밝고 있는 것 같아요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힘든 가운데에 2명씩이나 미국 유학을 보내어 공부를 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게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자식은 거의가 그 사랑을 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식을 자기 생명과 나라와 왕관보다 더 앞세우는 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다윗은 차라리 자기가 죽고 압살롬이 살았으면 하고 자기 생명보다 압살롬을 더 앞세웠습니다. 이런 다윗이 신하들의 눈에는 나라와 왕관보다도 자식을 앞세우는 것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권여사가 부정한 돈으로 자식 집이나 하나 사주려고 하였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게 부모의 마음이지만 사회에서는 부정한 재물로 집을 사주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지 않습니다.이 말씀을 마음에 조용히 담고 나를 낳아서 키워주신 부모님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지금 살아 계시는 분들은 아직 잘 모릅니다.
돌아가시고 나면 압니다.
청개구리가 왜 울고 있습니까?
살아생전 못 깨닫고 돌아가시고 난후에 알았다는 것 아닙니까?왜 자식이 성장하면 부모님을 알아주지 않습니까? 마땅히 부모의 사랑을 마음에 되새기면서 감사해야 될 나이에 들어선 오늘 현대 사회의 많은 남녀들이 놀랍게도 부모의 사랑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핵가족이라 하여 늙으신 부모 모시기를 싫어하고 학대하는 현실을 우리는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게 부모를 향한 자식의 태도입니다.
그런데도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의 자리에 있을 때에 하나님은 사랑으로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데는 어떤 이유나 조건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를 사랑하시는 것도 무조건적이며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보다 더 큰 것입니다.
이사야 49:15에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언약은 급기야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고 그를 십자가 위에서 죽게 하사 우리를 영원한 죽음에서 살려주셨습니다(요일 4:10).
다윗은 압살롬의 죽음을 애석해하고 통곡하였을 뿐이지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범죄한 자녀들의 죄를 사해주시고 죽음에서 구원해 주십니다.
이사야 1:2-3에 보면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찌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찌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하고 사죄와 구원의 길을 열어놓았습니다(사 1:18).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완전한 관계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육신의 아버지보다 더 위대한 하나님 아버지께서 죄인들에게 베풀어주시는 사랑과 구원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여야 할 것입니다.
세상은 결코 용서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부모는 그 어떤 자식도 받아 주십니다.
이제 이런 좋으신 부모님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언제든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은 사람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부모는 내 자식이 가장 적은 하나를 가지고서라도 억지로라도 부모를 기쁘게 해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면 부모는 아무 것도 해 준 것 없는데 하며 기뻐하실 것입니다.그러면 하나님도 기뻐하십니다.
제가 어버이 날인데 양가 부모님도 안 계시고 제 자녀들도 함께 있지 않고 그래요
미국으로 전화를 했지요 아들딸을 불러 놓고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높은 게 또 하나있지 하고 노래를 불러 보라고 해서요 억지로라도 노래 부르게 하고 들으니 그것도 기분이 괜찮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한 푼도 안 쓰고 다 보낸 것이 후회가 안 되고 그리고 또 열심히 해서 보내야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제 효도하지 않는 자식 있으면 한숨만 쉬지 말고 억지로라도 효도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지 그 자식 잘 됩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막내 여동생이 중국 심양에서 15년 째 탈북자들을 상대로 선교하는 선교사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결코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가 말하기를 이명박 대통령도 나도 어머니 기도와 헌신의 열매를 따 먹고 있다고 하였습니다.어머니에 대한 추억은 유난히 가난하고 어려운 삶을 살았는데 거리에 나가 사람이 많이 다니는 모퉁이에 자판을 깔고, 빵, 호떡, 뻥튀기를 구워서 팔곤 했는데 한번은 극장 앞에서 작은 수레에 과일을 놓고 팔았는데 극장 주인이 나와 쫓아내면 가끔 수박이 굴러 떨어졌는데 수박이 굴러 떨어지길 바랐다. 그래야 그 때 수박 맛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가난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어머님의 헌신과 눈물의 기도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다 상달돼 지금도 오남매는 따먹을 수 있는 복을 누릴 수 있음은 그래도 어머니의 뜻을 따라 생활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명절이면 어머니는 넷째인 이명박 장로와 다섯째 막내인 나에게 목사님께 계란을 갔다드리고 축복기도를 받고 오라고 하셨는데 가는 길에 내가 오빠 우리는 365일 계란이 먹고 싶어도 하나도 안 주는데 하나 먹고 갔다드리면 안될까? 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빠는 어머니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는단다. 라며 나를 달래서 목사님께 무사히 갖다드리면 목사님은 우리에게 하나님, 이 어린 남매가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고 교회에 충성하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쓰임 받는 일꾼이 되게 하소서 라고 기도를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자식 잘못되기를 바라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내 평생 전부를 주어도 자식하나 잘되면 은 더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이런 부모를 알아 모시는 것이 여러분의 축복입니다.
이런 부모를 주신 하나님을 잘 경외하는 것 또한 큰 축복입니다.
오늘날 자녀들이 부모만 알았지 그 부모를 주신 하나님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미 부모가 계시지 않으신 분들은 그 부모를 주신 하나님을 더욱 잘 섬겨 부모가 그렇게도 원하는 내 자녀 잘되는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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