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삶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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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577회 작성일 2009-08-25 09:49본문
신명기 16: 9-17 감사의 삶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입니다.
내 인생의 마지막으로 할 말을 하라면 무슨 말을 하시겠습니까?
독일에서 혀 암에 걸려 혀를 잘라야만 하는 환자가 있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혀로 발음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의사가 혀를 자르기 전에 이제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최후의 한 마디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는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며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이윽고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의 생애 마지막 말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 예수여 감사합니다. 이렇게 3번을 외치고 인생의 마지막 말을 감사로 남겼습니다.
과연 나는 내 삶의 마지막 말을 감사합니다라고 할 수 있을까요?
말로 형용 할 수 없는 독한 말을 쏟아 놓지는 않을까요? 걱정스럽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감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의 남성들은 일 년에 세 번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서 하나님을 경배하며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감사하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한번은 유월절기로 구원 받은 것에 대한 감사입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다가 자유 몸이 된 것을 감사하라고 하십니다.
세상에서 종살이 하다가 자유 할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하십시오 할렐루야!
또한 감사는 맥추절기에 하는 감사로 이 맥추절에는 말씀을 주시고 성령을 주시고 그리고 교회를 주심에 대한 감사입니다.
이 절기에 시내산에서 말씀을 주시고 성령을 보내 주시고 그러므로 교회가 탄생하였습니다. 할렐루야!
이번 주일이 이런 감사의 주일입니다.
그리고 수장절 곧 추수 감사절기입니다.
익은 곡식을 추수하여 창고에 드리고 감사하는 것인데 이 땅에서 신앙생활을 잘하시다가 장차 천국에 들어가는 알곡 된 성도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교회는 추수 마당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을 말씀과 성령으로 교회 생활을 잘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받은 구원을 잘 감당하는 것입니다.
이같이 감사는 모두가 의미가 있고 하나님과 연관이 되어있습니다.
내가 불평하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불평하면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의 축복을 다 쏟아 버리는 것입니다.
정신 이상자가 됩니다.
감사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감사만 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감사만 하여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도록 했습니다.
감사는 하나님과 나와의 신앙의 자세입니다.
실낙원의 작가 존 밀턴은 40세 한 참 일할 만한 나이에 실명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불쌍히 여기고 동정했다고 합니다. 그 때 존 밀턴은 실명이 비참한 것이 아니라 실명을 이겨낼 수 없는 나약함과 원망하는 마음이 비참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였기 때문입니다. 그가 소경이 되었을 때 참으로 원망스러운 상황을 이렇게 감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육의 눈은 어두워서 보지 못하지만 그 대신 영의 눈을 뜨게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광야에서 불평한 자는 가나안의 축복의 약속이 있었지만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감사하는 자의 것입니다.
어떤 자가 감사 하는 자입니까? 지나온 삶을 감사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도저히 맨 정신으로는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있었다면 복이 됩니다.
하나님께 지금 내가 돌아왔다면 지난 간 삶도 복이 되어 감사가 됩니다.
이것은 굉장한 축복입니다.
우리 가운데는 과거의 좋지 못한 일들에 메여 오늘을 불행해 하고 있지 않습니까?
과거에 매여 있음으로 현실을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직도 과거에서 자유하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보라 옛것이 지나가고 새것이 되었도다
감사는 곰곰이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은혜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감사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모래위의 두 발자국
어느 날 밤 나는 꿈을 꾸었네. 여호와와 함께 긴 해안을 걷고 있는 꿈을.
하늘 저편에는 내 살아온 인생행로가 영상 되어 흐르고 있지.
매 장면 마다 나는 보았네 모래위에 두 발자국을 하나는 내 것 하나는 여호와의 것
내 인생의 최후의 장면이 나타났을 때 나는 돌아보았네 모래위에 두 발자국을
아, 그러나 이 어찌된 일인가. 모래 위에 발자국은 하나뿐이니.
나는 여호와께 말씀 드렸네. 여호와여 저는 모르겠나이다.
제가 여호와를 따르겠다고 했을 때 여호와께선 저와 동행해 주신다고 하였는데
내 인생에 가장 어려운 시기의 때에 그것도 여러 번 모래위에 발자국은 하나뿐이니.
여호와는 말씀 하셨네 내 사랑스럽고 귀여운 자여 시련의 때에 나는 결코 떠난 일이 없단다.
모래 위에 발자국이 하나뿐 일 때에 나는 너를 안고 갔노라…….
12절 애굽의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remember, think) 감사절을 지켜라고 하십니다.
감사는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thank의 기원이 동사 think입니다. 감사를 할 때 아무런 생각 없이 감사할 수는 없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면 감사가 나오게 됩니다.
신8: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 기억하라는 동사는 신명기의 주제 동사라고 말할 수 있는데 무려 17구절에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떤 방식으로 인도하셨는지, 또 어떤 은혜를 주셨는지 기억하라는 명령입니다.
맥추절의 의의는 이스라엘 백성이 430년 동안 애굽에 종살이를 하면서 마지막에 먹을 것도 못 먹고 입을 것도 못 입고 아들나면 죽고, 이와 같은 죽음에 공포에 싸여있었는데 하나님의 역사로 양의 피로 문설주에 발라 하나님의 기적으로 그들을 출애굽하게 하셨고, 광야로 와서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으로 왔는데, 이 맥추절은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생각하고 구속하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택한 백성을 하나님의 은혜로 살리시고 구속하신 것을 생각하여 감사하는 절기, 그것이 바로 맥추절입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을 하나하나 생각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저 역시 지금까지 가장 힘들었던 그 순간들이 지금에서 생각해 보니 하나님께 감사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 힘들 때에 나를 안아 주시지 않았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을 생각해 보니 그 순간이 가장 감사해야 할 순간이었습니다.
출애굽기19:4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다윗왕은 136편에서 창세 이후로 지금까지 모든 일에 감사하라고 하십니다.
지나고 보니 감사 할 일이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지금 힘들어 하십니까? 지나고 보면 이 순간이 나에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감사란 꼭 좋은 환경에서 오는 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뜻을 알고 깨달음에서 옵니다.
독일의 정치가 가운데 마티라는 사람이 정치적인 노선 때문에 관직에서 쫓겨나 어렵게 고생한 적이 있었는데 자기 잘못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의해서 고생하는 것 같아 늘 불평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한 가지 사건을 경험한 후로는 불평을 버리고 감사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나는 이제 나의 운명을 슬퍼하거나 불평하지 않겠다.
한번은 구두가 다 떨러졌는데도 구두를 사 신을 수 없는 극도로 어려운 때가 있었다.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불만이 가득한 가운데 예배를 드리고자 예배당으로 들어갔다. 그때 나는 거기서 두 발 없는 사람을 보게 되었다. 그는 두 발이 없이 목발 두 개 만을 옆에 둔 채 예배를 드리기 위해 앉아 있었다. 내 마음은 순식간에 변하고 말았다. 감사할 줄을 모르는 내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완전한 두발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그까짓 구두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처럼 감사하는 마음이란,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환경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욕망의 충족으로서 감사하려 한다면 일평생 감사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감사한번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같은 환경이지만 있는 것에 대한 고귀함을 깨달을 때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게 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8의 말씀과 같이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감사는 자신의 삶이 전부가 감사의 소재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 아셨죠 이 중에는 감사거리가 없어 감사하지 않고 불편해야 할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멘
11, 14절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성경은 모든 사람이 감사하라고 합니다.
비록 내가 노비로 있어도 고아로 있어도 과부로 있어도 하나님은 감사하기를 원하십니다. 여기 고아와 과부와 노비들의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하나님께 질문하고 원망할 수 있는 정황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감사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조건이 되어서 감사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감사하라고 합니다. 어떤 상황이라고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미국뉴욕에는 102층짜리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있습니다. 높이를 102층으로 지은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1620년 9월 7일 신앙의 자유를 찾아 66일 동안 대서양을 건너 미국 신대륙 매사추세츠 주 플리머스 항구에 도착한 102명의 믿음의 조상인 청교도들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평양 대동강 변에는 북한이 자랑하는 주체탑이 있습니다. 이 주체탑은 25,550개의 돌로 세웠는데 그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줄 아십니까?
김일성 주석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온 날수의 숫자라고 합니다. 이 두 건물은 건축의 동기가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청교도의 후예들은 빌딩 하나를 세워도 창조주 하나님의 역사를 기념하며 하나님을 높이고 있습니다. 그 나라는 지금 세계 속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반면 하나님을 부정하는 북한은 한 독재자를 높여 우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지금 북한은 어떻습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고 있습니다.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한 북한난민들의 문제와 북한의 인권은 국제적인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미사일을 쏘아 대며 모두를 불안해하게 하고 있습니다.
마치 껄렁패가 주먹질을 날리며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 것과 무슨 진배가 있습니까?
지금도 사상을 바꾸면 은 얼마든지 남북이 함께 잘 살아 갈수 있고 세계에서 훌륭한 민족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감사 할 수 있음은 앞으로 삶도 복이 됨 것을 예고하는 예고편입니다.
15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이레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하라
감사절을 지킴으로 복을 주시려니 라고 했습니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감사의 분량이 곧 행복의 분량이다.라고 했습니다.
빌헬름 웰러가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가장 많이 소유한 사람들이 아니라, 가장 많이 감사하는 사람들입니다 고 했듯이 행복은 소유에 정비례하기 보다는 감사에 정비례하는 것입니다.
탈무드에도 이 세상에서 제일 지혜로운 사람은 누구인가? 어떤 경우에 처해도 배움의 자세를 갖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은 누구인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누구인가? 지금 이 모습 이 대로를 감사하면서 사는 사람이다.
감사한 만큼 인생은 행복해 집니다.
헬라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은 감사하는 사람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행복은 감사한 사람에게 흘러 들어갑니다. 결국 물질도 감사하는 사람에게 흘러들어 갑니다. 건강도, 명예도, 인정도 감사한 사람에게 흘러들어 가는 것입니다.
감사하지 않으면 자신이 손해입니다. 늘 불평하고 원망하면 사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잘 되지 않습니다. 감사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하니 내 최선을 드리는 것입니다.
10절 네 복 주신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16-17절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가만히 생각해 보고 내가 복 받은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 감사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앞으로도 복 받을 일이 없다고 생각되시면 은 감사하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지요? 받은 복이 많으니 많이 감사 힘껏 하십시오
앞으로도 복을 많이 받을 것이니 믿고 감사 억지로 하지 말고 자원하여 하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얼마나 감사를 많이 하는지 보십시오
일 년이 가도 어찌 감사 헌금 한번 못하는 자가 있습니다. 이 얼마나 불행하는 삶입니까?
그러나 매주 감사하는 자가 있습니다. 그 차이는 대단 할 것입니다.
나의 가장 큰 문제는 가난도 아니고, 질병도 아니고, 실패도 아닌 감사함이 없는 마음입니다.
모든 것을 누리면서도 감사함이 없으면 그것은 타락한 증거입니다.
디모데후서 3:1~2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라고 하셨습니다.
말세에 나타나는 심각한 영혼의 질병은 감사하지 않는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일본의 유명한 평신도 신학자인 우찌무라 간조(內村鑑三)는 하나님이 만일 인간을 저주하신다면 질병이나 실패, 배신이나 죽음으로 하시지 않고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으로, 그리고 성경을 읽어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막힌 귀로, 또한 감사하는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도록 메마른 마음으로 저주하실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마음에 감사가 사라진 것은 저주받은 영혼이라는 것입니다.
감사가 사라진 마음은 곧 어두움의 영인 악령에게 사로잡힌 증거인 것입니다.
감사가 없는 삶은 지옥입니다.감사는 습관입니다. 어떤 일을 당해도 감사합니다고 하는 사람은 늘 그 말이 익숙해져 있습니다.
어떤 어려운 일을 당해도 감사가 먼저 튀어나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불평과 원망이 튀어나오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마지막으로 할 말을 하라면 무슨 말을 하시겠습니까?
독일에서 혀 암에 걸려 혀를 잘라야만 하는 환자가 있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혀로 발음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의사가 혀를 자르기 전에 이제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최후의 한 마디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는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며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이윽고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의 생애 마지막 말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 예수여 감사합니다. 이렇게 3번을 외치고 인생의 마지막 말을 감사로 남겼습니다.
과연 나는 내 삶의 마지막 말을 감사합니다라고 할 수 있을까요?
말로 형용 할 수 없는 독한 말을 쏟아 놓지는 않을까요? 걱정스럽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감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의 남성들은 일 년에 세 번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서 하나님을 경배하며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감사하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한번은 유월절기로 구원 받은 것에 대한 감사입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다가 자유 몸이 된 것을 감사하라고 하십니다.
세상에서 종살이 하다가 자유 할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하십시오 할렐루야!
또한 감사는 맥추절기에 하는 감사로 이 맥추절에는 말씀을 주시고 성령을 주시고 그리고 교회를 주심에 대한 감사입니다.
이 절기에 시내산에서 말씀을 주시고 성령을 보내 주시고 그러므로 교회가 탄생하였습니다. 할렐루야!
이번 주일이 이런 감사의 주일입니다.
그리고 수장절 곧 추수 감사절기입니다.
익은 곡식을 추수하여 창고에 드리고 감사하는 것인데 이 땅에서 신앙생활을 잘하시다가 장차 천국에 들어가는 알곡 된 성도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교회는 추수 마당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을 말씀과 성령으로 교회 생활을 잘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받은 구원을 잘 감당하는 것입니다.
이같이 감사는 모두가 의미가 있고 하나님과 연관이 되어있습니다.
내가 불평하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불평하면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의 축복을 다 쏟아 버리는 것입니다.
정신 이상자가 됩니다.
감사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감사만 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감사만 하여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도록 했습니다.
감사는 하나님과 나와의 신앙의 자세입니다.
실낙원의 작가 존 밀턴은 40세 한 참 일할 만한 나이에 실명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불쌍히 여기고 동정했다고 합니다. 그 때 존 밀턴은 실명이 비참한 것이 아니라 실명을 이겨낼 수 없는 나약함과 원망하는 마음이 비참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였기 때문입니다. 그가 소경이 되었을 때 참으로 원망스러운 상황을 이렇게 감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육의 눈은 어두워서 보지 못하지만 그 대신 영의 눈을 뜨게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광야에서 불평한 자는 가나안의 축복의 약속이 있었지만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감사하는 자의 것입니다.
어떤 자가 감사 하는 자입니까? 지나온 삶을 감사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도저히 맨 정신으로는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있었다면 복이 됩니다.
하나님께 지금 내가 돌아왔다면 지난 간 삶도 복이 되어 감사가 됩니다.
이것은 굉장한 축복입니다.
우리 가운데는 과거의 좋지 못한 일들에 메여 오늘을 불행해 하고 있지 않습니까?
과거에 매여 있음으로 현실을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직도 과거에서 자유하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보라 옛것이 지나가고 새것이 되었도다
감사는 곰곰이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은혜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감사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모래위의 두 발자국
어느 날 밤 나는 꿈을 꾸었네. 여호와와 함께 긴 해안을 걷고 있는 꿈을.
하늘 저편에는 내 살아온 인생행로가 영상 되어 흐르고 있지.
매 장면 마다 나는 보았네 모래위에 두 발자국을 하나는 내 것 하나는 여호와의 것
내 인생의 최후의 장면이 나타났을 때 나는 돌아보았네 모래위에 두 발자국을
아, 그러나 이 어찌된 일인가. 모래 위에 발자국은 하나뿐이니.
나는 여호와께 말씀 드렸네. 여호와여 저는 모르겠나이다.
제가 여호와를 따르겠다고 했을 때 여호와께선 저와 동행해 주신다고 하였는데
내 인생에 가장 어려운 시기의 때에 그것도 여러 번 모래위에 발자국은 하나뿐이니.
여호와는 말씀 하셨네 내 사랑스럽고 귀여운 자여 시련의 때에 나는 결코 떠난 일이 없단다.
모래 위에 발자국이 하나뿐 일 때에 나는 너를 안고 갔노라…….
12절 애굽의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remember, think) 감사절을 지켜라고 하십니다.
감사는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thank의 기원이 동사 think입니다. 감사를 할 때 아무런 생각 없이 감사할 수는 없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면 감사가 나오게 됩니다.
신8: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 기억하라는 동사는 신명기의 주제 동사라고 말할 수 있는데 무려 17구절에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떤 방식으로 인도하셨는지, 또 어떤 은혜를 주셨는지 기억하라는 명령입니다.
맥추절의 의의는 이스라엘 백성이 430년 동안 애굽에 종살이를 하면서 마지막에 먹을 것도 못 먹고 입을 것도 못 입고 아들나면 죽고, 이와 같은 죽음에 공포에 싸여있었는데 하나님의 역사로 양의 피로 문설주에 발라 하나님의 기적으로 그들을 출애굽하게 하셨고, 광야로 와서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으로 왔는데, 이 맥추절은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생각하고 구속하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택한 백성을 하나님의 은혜로 살리시고 구속하신 것을 생각하여 감사하는 절기, 그것이 바로 맥추절입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을 하나하나 생각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저 역시 지금까지 가장 힘들었던 그 순간들이 지금에서 생각해 보니 하나님께 감사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 힘들 때에 나를 안아 주시지 않았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을 생각해 보니 그 순간이 가장 감사해야 할 순간이었습니다.
출애굽기19:4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다윗왕은 136편에서 창세 이후로 지금까지 모든 일에 감사하라고 하십니다.
지나고 보니 감사 할 일이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지금 힘들어 하십니까? 지나고 보면 이 순간이 나에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감사란 꼭 좋은 환경에서 오는 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뜻을 알고 깨달음에서 옵니다.
독일의 정치가 가운데 마티라는 사람이 정치적인 노선 때문에 관직에서 쫓겨나 어렵게 고생한 적이 있었는데 자기 잘못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의해서 고생하는 것 같아 늘 불평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한 가지 사건을 경험한 후로는 불평을 버리고 감사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나는 이제 나의 운명을 슬퍼하거나 불평하지 않겠다.
한번은 구두가 다 떨러졌는데도 구두를 사 신을 수 없는 극도로 어려운 때가 있었다.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불만이 가득한 가운데 예배를 드리고자 예배당으로 들어갔다. 그때 나는 거기서 두 발 없는 사람을 보게 되었다. 그는 두 발이 없이 목발 두 개 만을 옆에 둔 채 예배를 드리기 위해 앉아 있었다. 내 마음은 순식간에 변하고 말았다. 감사할 줄을 모르는 내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완전한 두발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그까짓 구두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처럼 감사하는 마음이란,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환경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욕망의 충족으로서 감사하려 한다면 일평생 감사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감사한번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같은 환경이지만 있는 것에 대한 고귀함을 깨달을 때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게 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8의 말씀과 같이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감사는 자신의 삶이 전부가 감사의 소재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 아셨죠 이 중에는 감사거리가 없어 감사하지 않고 불편해야 할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멘
11, 14절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성경은 모든 사람이 감사하라고 합니다.
비록 내가 노비로 있어도 고아로 있어도 과부로 있어도 하나님은 감사하기를 원하십니다. 여기 고아와 과부와 노비들의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하나님께 질문하고 원망할 수 있는 정황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감사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조건이 되어서 감사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감사하라고 합니다. 어떤 상황이라고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미국뉴욕에는 102층짜리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있습니다. 높이를 102층으로 지은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1620년 9월 7일 신앙의 자유를 찾아 66일 동안 대서양을 건너 미국 신대륙 매사추세츠 주 플리머스 항구에 도착한 102명의 믿음의 조상인 청교도들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평양 대동강 변에는 북한이 자랑하는 주체탑이 있습니다. 이 주체탑은 25,550개의 돌로 세웠는데 그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줄 아십니까?
김일성 주석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온 날수의 숫자라고 합니다. 이 두 건물은 건축의 동기가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청교도의 후예들은 빌딩 하나를 세워도 창조주 하나님의 역사를 기념하며 하나님을 높이고 있습니다. 그 나라는 지금 세계 속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반면 하나님을 부정하는 북한은 한 독재자를 높여 우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지금 북한은 어떻습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고 있습니다.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한 북한난민들의 문제와 북한의 인권은 국제적인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미사일을 쏘아 대며 모두를 불안해하게 하고 있습니다.
마치 껄렁패가 주먹질을 날리며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 것과 무슨 진배가 있습니까?
지금도 사상을 바꾸면 은 얼마든지 남북이 함께 잘 살아 갈수 있고 세계에서 훌륭한 민족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감사 할 수 있음은 앞으로 삶도 복이 됨 것을 예고하는 예고편입니다.
15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이레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하라
감사절을 지킴으로 복을 주시려니 라고 했습니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감사의 분량이 곧 행복의 분량이다.라고 했습니다.
빌헬름 웰러가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가장 많이 소유한 사람들이 아니라, 가장 많이 감사하는 사람들입니다 고 했듯이 행복은 소유에 정비례하기 보다는 감사에 정비례하는 것입니다.
탈무드에도 이 세상에서 제일 지혜로운 사람은 누구인가? 어떤 경우에 처해도 배움의 자세를 갖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은 누구인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누구인가? 지금 이 모습 이 대로를 감사하면서 사는 사람이다.
감사한 만큼 인생은 행복해 집니다.
헬라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은 감사하는 사람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행복은 감사한 사람에게 흘러 들어갑니다. 결국 물질도 감사하는 사람에게 흘러들어 갑니다. 건강도, 명예도, 인정도 감사한 사람에게 흘러들어 가는 것입니다.
감사하지 않으면 자신이 손해입니다. 늘 불평하고 원망하면 사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잘 되지 않습니다. 감사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하니 내 최선을 드리는 것입니다.
10절 네 복 주신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16-17절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가만히 생각해 보고 내가 복 받은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 감사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앞으로도 복 받을 일이 없다고 생각되시면 은 감사하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지요? 받은 복이 많으니 많이 감사 힘껏 하십시오
앞으로도 복을 많이 받을 것이니 믿고 감사 억지로 하지 말고 자원하여 하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얼마나 감사를 많이 하는지 보십시오
일 년이 가도 어찌 감사 헌금 한번 못하는 자가 있습니다. 이 얼마나 불행하는 삶입니까?
그러나 매주 감사하는 자가 있습니다. 그 차이는 대단 할 것입니다.
나의 가장 큰 문제는 가난도 아니고, 질병도 아니고, 실패도 아닌 감사함이 없는 마음입니다.
모든 것을 누리면서도 감사함이 없으면 그것은 타락한 증거입니다.
디모데후서 3:1~2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라고 하셨습니다.
말세에 나타나는 심각한 영혼의 질병은 감사하지 않는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일본의 유명한 평신도 신학자인 우찌무라 간조(內村鑑三)는 하나님이 만일 인간을 저주하신다면 질병이나 실패, 배신이나 죽음으로 하시지 않고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으로, 그리고 성경을 읽어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막힌 귀로, 또한 감사하는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도록 메마른 마음으로 저주하실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마음에 감사가 사라진 것은 저주받은 영혼이라는 것입니다.
감사가 사라진 마음은 곧 어두움의 영인 악령에게 사로잡힌 증거인 것입니다.
감사가 없는 삶은 지옥입니다.감사는 습관입니다. 어떤 일을 당해도 감사합니다고 하는 사람은 늘 그 말이 익숙해져 있습니다.
어떤 어려운 일을 당해도 감사가 먼저 튀어나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불평과 원망이 튀어나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