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상을 이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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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540회 작성일 2009-08-25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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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17:41-49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상을 이깁시다.
이탈리아의 작곡가이며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인 비발디가 한번은 아름다운 연주를 하고 많은 사람의 갈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 연주한 악기를 산산조각이 나도록 부숴버린 것입니다. 아니 그 유명한 악기를 부숴버리다니 모두가 지금 아름다운 연주를 한 악기가 그 유명한 스타라디바리우스라고 생각을 하고 사람들이 모두 의아해 하고 있을 때에 비발디가 말하기를 저것은 스타라디바리우스가 아닙니다. 누구나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싸구려 악기입니다. 참된 음악은 악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연주자에게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함입니다.
평범한 악기라도 누구의 손에 들려 연주하느냐에 따라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듯이 사람도 이와 같이 내가 누구의 손에 잡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이 결정지어집니다.
오늘 본문에 명장인 골리앗이 이스라엘과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명장답게 전쟁의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키는 2미터 80-90이요 머리부터 발끝까지의 군장만 57키로 그람이요 그가 들고 있는 병기가 베틀 채 만큼이나 되어 군장으로 위용을 나타내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응당히 골리앗이 이길 것이라는 그 생각만이 이 현장의 분위기를 압도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골리앗의 목소리만 들어도 기절초풍을 할 것입니다.
그 목소리의 주제는 죽여 버리겠다
그리고 그 시체는 짐승의 밥이 되도록 하겠다 입니다.
아무도 골리앗을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생각을 뛰어 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생각외의 인물이 생각외의 방법 즉 무명의 다윗이 창도 칼도 아닌 돌멩이를 가지고 골리앗을 넘어뜨리고 목을 베어 버렸습니다.
상황이 바꿔버렸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가슴이 죄어오고 죽을 것만 같았는데 이스라엘의 분위기는 이제는 살맛이 낫습니다.
아무도 어떻게 해 볼 수없는 태산같이 서있던 골리앗이 맥없이 쓰러졌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주위의 사람들을 봅니다.
아니 내가 내 자신을 보는데 이 세상이 틀림없이 골리앗입니다.
나는 잽이 되지 않습니다.
어쩔 수가 없어 세상에 기가 죽어있고 그리고 세상을 기피하고 있고 자신감이 없습니다.
세상이 골리앗입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데 죽여 버리겠다는 것입니다.
이길 수 있으면 나와 바
돈으로 나오든지 능력으로 나오든지 백이 있으면 그것으로 나오든지 ...
참으로 다윗이 필요합니다.
그 누가 골리앗을 무너뜨려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내가 무너뜨려야만 합니다.
내가 다윗입니다.
왜 내가 다윗입니까?
다윗은 골리앗이 가진 것을 내가 없다는 말보다는 골리앗이 가지지 않는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게 그리스도인의 특징입니다.
자꾸 세상적인 것을 말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그럴수록 기가 죽고 내 자신이 형편없는 자가 됩니다.
다윗이 골리앗에게 말합니다.
45절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할렐루야!
예수 이름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돈을 구걸하는 장애인에게 나는 네가 요구하는 것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기를 원한다 곧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라 할렐루야!
다윗의 관심은 하나님의 이름이지 세상의 관심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의 관심사는 돈이 아니었습니다.
예수 이름이었습니다.
사실 내가 처한 골리앗이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골리앗은 내가 영원히 해결을 보지 못할 무시무시한 지긋지긋한 골리앗으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돈이 없다는 사람이 지금까지 돈이 없고요 누구 때문에 못살겠다고 하는 사람이 지금까지 누구 때문에 못살겠다고 하고 있고요 아예 그 사람이 잘못된 것이 모두 골리앗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죽겠다고 하는 것이 골리앗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항상 골리앗은 더 위용 있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제 고백 할 필요가 잇습니다.
여태까지 골리앗이 문제인 줄 알았는데 골리앗이 아니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내 속에 예수님을 그냥 주무시게 하고 있었습니다.
갈릴리의 호수의 풍랑이 문제가 되어 나를 죽게 만든 것이 아니라 알고 보니 예수님을 주무시게 한 것이 문제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범사에 그리스도를 시인하고 인정하십시오
그러면 예수님도 하나님께 나를 시인하고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을 내게 나타내 주실 것입니다.
돈키호테를 쓴 세르반테스가 이런 말을 합니다.
재산을 잃은 사람은 많은 것을 잃은 것이다. 친구를 잃은 사람은 더 많은 것을 잃어버린 것이다. 용기를 잃어버린 사람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이다. 로마의 정치가며 철학자였던 세네카는 한 술을 더 떠서 힘들어서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용기를 내지 않기 때문에 힘든 것이다. 내게 참된 용기를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왜 내가 힘이 듭니까?
예수를 들어내시기 바랍니다.
출 애급 하는 이스라엘이 죽음의 재앙을 면 할 수 있음은 문설주에다가 발라 놓은 양의 피입니다.
무엇을 자랑하고 무엇을 드러내시려고 합니까?
예수 이름입니다.
사도 바울은 참으로 능력 있는 사람입니다.
왜요?
그가 자신의 세상적인 자랑을 하지 않고 오히려 배설물과 같이 여겨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가장 고상함이니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예수 안에서 일체의 만족의 비결을 배웠다고 하였습니다.
어디에서도 어떤 환경에 처해도 자족할 수 있었습니다.
예 이런 사람이 능력 있습니다.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두려워 말라 놀라지도 말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할렐루야!
여호와의 이름이 다윗으로 하여금 골리앗 앞에 서게 했고 승리를 확신하게 했습니다.
46-47절 오늘 너는 내 손에서 죽었다
네 목을 베고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인간적인 조건이 아님을 알게 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자꾸만 세상적인 조건을 말하게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예수를 말하지 않고 세상의 조건으로 말하면 패배를 가져옵니다.
세상은 세상의 조간들을 말하게 합니다.
그것으로 결판을 내려고 합니다.
세상적인 조건들을 말해 보십시오
거의 사망 직전에 빠질 것입니다.
골리앗을 향하는 다윗을 두고 주위의 사람들은 조롱과 불신으로 바라보았습니다.  
큰형 엘리압은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 라고 합니다.  
오히려 다윗을 향하여 ‘너는 교만하다.’ 라고 했습니다.  
사울왕도 삼상 17:33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기에 능치 못하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골리앗을 무너뜨리겠다는 것입니까?
골리앗의 지배를 받고 살겠다는 것입니까?
제발 믿음의 부정적인 말을 말하지 마십시오
긍정적으로 받아 드리고 긍정적인 사람이 되십시오
아니면 골리앗에게 죽습니다.
엘리사 시대에 아람 군대가 사마리아 성을 포위하고 온 성 안에는 먹을 것이 떨어져 서민들은 심각한 형상이 일어났습니다.
자녀 잡아먹기 계가 부녀자들 사이에 있었습니다.
오늘은 내 아들 내일은 당신 아들을 잡아먹는 계입니다.
계가 깨어져서 여인네들이 싸우고 사회민심은 흉융해지고 말이 아닙니다.
이때에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내일 이 맘 때에 하나님이 양식을 풍성하게 내실 터이니 진정하고 믿으라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아멘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군대장관이 못 믿겠다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창을 낸들 이런 일이 있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할 수 있다고 하는데 할 수 없다는 말을 하난 것은 살고 싶다는 말입니까? 죽고 싶다는 말입니까?
여러분은 하나님 때문에 잘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십니까?
잘 되고 싶지 않다는 말씀입니까?
그러면 하나님께 긍정이요 말씀에 긍정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끝까지 안 된다고 빡빡 세우니 하나님의 종의 말이 다른 사람은 다 이 양식으로 만족을 얻지만 너는 이 양식을 보고도 얻지 못하고 죽으리라
사람이 얼마나 강퍅한지 잘되게 해 준다는데도 노멘이요 따져들면 되겠습니까?
하나님 믿어도 된 것이 뭐여 하고 믿는다고 된다고 하면서 빈정대고 따져들며는 살고 싶다는 것입니까?
죽고 싶다는 것입니까?
제가 경험한 바로는 내 주위에 어떤 인물도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 종, 하나님의 일을 빈정 되고 잘된 사람 한 사람도 없습니다.
다 그 대가를 받습니다. 제 형제 중에도, 교인들 중에도 그러합니다.
골리앗은 자빠졌습니다.
얼마나 하나님을 욕을 하고 하나님의 사람 다윗을 욕했는지 모릅니다.
엘리사 시대의 장군 사람들 틈에 깔려 죽었습니다.
얼마나 무서운 사실인지 모릅니다.
다윗이 다윗 됨은 주위의  인간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하나님만이 내 자신의 요구의 충족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러므로 주위의 조건이 하나님을 대신 할 수가 없습니다.
누가 하나님이 되어 대신 해 줄 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여호와의 이름으로 골리앗 앞으로 나아오는 것입니다.
골리앗은 골리앗의 이름으로 나아옵니다.
누가 깨어집니까? 당연히 골리앗입니다.
일찍이 한나는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부셔지리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시편3:6-8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내가 다윗이 될 수 있음은 내가 조건이 아니라 여호와가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고전1:26-31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을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게 처한 상황은 언제든지 승리 하게 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내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이 조건이시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자꾸 세상이 나를 인간적인 그 가운데로 빠지게 하려고 하고 저는 저는 그 가운데 빠지지 않으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소극적이 아니라 언제든지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내 믿음이 실력이 발휘되지 못함은 믿음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신23:21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 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이라
나의 골리앗은 나를 통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심을 보여주기 위하여 있습니다.
골리앗은 나의 믿음을 보여 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 이름을 놓치면 방황합니다.
더 이상 의미도 없습니다. 더 이상 가능성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도 용기를 내십시오.
불신자들이 방해해도 이겨내십시오. 교우들이 수군거려도 겁내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불신자만 방해하는 게 아닙니다. 교우들도 시험거리가 됩니다.
가까운 형제자매들이 나를 가로막는 성벽입니다.
실패할까봐 사역을 피하지도 마십시오. 이것도 비겁한 행동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승리는 준비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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