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삶은 주를 위하는 삶입니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531회 작성일 2009-11-07 11:22본문
사도행전 9:15-19 건강한 삶은 주를 위하는 삶입니다.
러시아의 작가 도스토예프스키(F. M. Dostoevskii, 1821-1881)가 1849년 12월, 스물여덟 살이 되는 해에 정치적인 이유로 사형선고를 받고 형장으로 끌려갔습니다. 형장에서 시계를 보니, 사형집행까지 남은 자신의 생명이 5분밖에 없었습니다. 아직 생명이 살아있는 5분의 시간이 그렇게 소중한 줄 몰랐다고 합니다. 그 순간, 한편 5분 후에 나는 어디로 갈까? 하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꽉 메고 눈앞이 캄캄했졌다고 합니다. 그 동안 그럭저럭 살아온 28년이라는 세월이, 너무나도 후회스러웠고, 또 아쉬웠다고 합니다. 5분의 시간이 어김없이 흐르고 형 집행 교도관의 철커덕 하는 실탄이 장전되는 소리가 났습니다. 순간 견딜 수 없는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는데 바로 그때, 이런 소리를 지르며 한 병사가 달려왔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를 죽이지 말고 살리라는 황제의 특사였습니다.
죽음 직전에서, 목숨을 건진 것이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이니 그 이후 그가 살아 있는 생명이 순간순간 얼마나 귀하였겠습니까?
시간을 금족같이 아끼며 살았다고 합니다.
성경을 유일한 벗으로 삼고,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깊은 사색을 하면서, 불후의 명작을 남겼는데 그 책이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와 같은 신앙적인 작품들입니다.
내가 죽지 않고 숨 쉬며 살아있는 시간이 죽기만을 기다리며 그냥 보내야 할 인생이 아니지 않습니까?
낭비해 버릴 그런 시간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죽는 것이냐 정해진 사실이지만 왜 죽지 않고 살아있을까?
왜 이 땅에 보냄을 받아 나라는 존재를 내가 인식하고 있을까?
남은 시간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생각을 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이것은 사람으로 부름을 받는 자라면 당연히 가지는 고민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세상적으로 잘나가는 사람인데 역시 죽을 뻔 했다가 살아난 사람입니다.
인생이 달리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그렇게도 욕을 했던 그 예수께 한방 맞았습니다. 큰 빛이 비춰 자신을 꺼꾸려 뜨려버렸습니다.
눈이 멀어 앞이 보이지 않고 다리는 후들후들 떨리고 이제는 꼼짝없이 죽었구나?
그 때에 그가 취할 수 있는 모습은 아니 살아있음에 행해야 할 바를 제대로 해야만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예수에게 어떤 변을 당할지 모르는 것입니다. 죽지도 않고 목숨은 살아있으니
9장에는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가 보니 사울이 아무 말도 못하고 서있었다고 했지만 실은 그것이 아니라 그는 수없이 수없이 그리고 간절함을 두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22장에는 바울이 천부장과 자신을 죽이기 위하여 폭동을 일으키는 유대인들에게 그 때에 예수님을 만난 간증을 하는데 그 때에 그는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이었습니다.
제 정신을 가진 자의 새로운 신앙의 경험을 한 자의 가지는 사상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내가 누구인가를 아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가를 알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 것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나 역시 살 만큼은 살았다고 하겠는데 살아 보니깐? 내가 누구인지를 알겠고 예수를 알고 보니 무엇을 해야 제대로 사는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죽지 않고 살아난 사울에게 들려준 인생철학이 무엇입니까?
15절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하였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가만히 들어 보십시오 내가 누구냐? 왜 죽지 않고 살아 있느냐?
왜 살아야만 하느냐?
주가 나를 위하여 무엇을 해달라고가 아니라 내가 주를 위하는 것이구나를 알게 될 것입니다.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가 주를 위하여 존재할 때에 무엇이든지 할 때에 건강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갱신 날마다 날마다 새롭게 삶을 갱신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선하시고 온전한 뜻이 무엇인가를 내 삶에서 날마다 갱신이 되어야 합니다.
겉사람은 후패하나 내 속사람은 날마다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주를 위하는 삶이란 내 생각 고집대로 살았던 것을 다 하나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그릇된 삶에 열정인 사울에게 찾아오셨던 주님께서, 사울에게 그 때 주셨던  결정적인 말씀 한 마디가 있지요. 15절 택한 나의 그릇이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이 사실을 사울은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지금까지 제 고집대로 살아온 것이 얼마나 불행한 삶이란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행26장에는 똑같은 사건을 이제는 로마의 유대 분봉왕 아그립바왕에게 이 간증을 또 하는데 이런 말을 합니다.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 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고생고생 뭐가 가장 큰 고생입니까? 예수를 위하여 살지 못하는 그 삶이 가장 큰 불행입니다.
이 말은 가장 행복한 삶이 되고 싶습니까? 이제라도 주를 위하여 살아 보십시오
예수 행복의 시작입니다. 사울은, 자기 스스로 예수 믿는 사람이 된 사람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의 그릇이 될 생각은 꿈에도 가져 본 적이 없던 사람입니다.
오히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없애기 위해서 예수님을 크게 거스르던 사람입니다.
그런가 하면 사울은, 한동안 예수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였지만 늘그막에 가서 그것이 잘못임을 스스로 깨닫고,  회개하고, 예수 믿고, 사도가 된 사람도 아닙니다. 박해자로 한창 기세를 올리며 활동하던 그릇된 자기 열정의 정점에서, 예수님에 의해서 강제로 꺾어진 사람입니다.
열정의 한복판에서, 예수님으로 자기 인생이 꺾어진 사람입니다.
아니, 이미 이 은혜를 받은 자들 아닙니까?
주님이 나를 꺾어서 주여 무엇을 하여야 할 것인가?를 수없이 질문하는 그런 자로 세우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나를 꺾어주시지 않으면 누가 나를 꺾어 주겠습니까?
그렇다면 기도 제목이 분명히 세워졌습니다. 이제 이 사실을 안다면 기도해야 합니다.
현대 선교의 아버지라고 일컫는 W. Carey라는 분이 42년 동안 인도 선교에 신기원을 이루었습니다. 수많은 성경 번역을 완성했습니다. 인도와 미얀마까지 선교의 문을 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놀라운 업적이 가능했을까요? 윌리엄 캐리 자신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인도에서 사역했던 42년 동안 나를 위해서 한 번도 기도를 그치지 않았던 나의 누님의 기도 덕분입니다. 그런데 그 누님은 몸이 전신마비 되어 거의 움직이지 못하던 환자였는데 골방에서 이 시대를 움직인 것입니다.
꺼꾸러진 사울이 이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기도하는 일입니다.
주께 내가 부름을 받았다고 하지만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11절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울이 기도하는 중이었습니다.
아나니아에게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사울이 주님을 만나고 제일 처음 한 일이 바로 기도 한일이다.
기도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사울이 기도할 때 하나님이 사울에게 아나니아가 와서 자기에게 할 일을 다 보여 주셨습니다.
네가 택한 나의 그릇이라
행10장에 베드로가 피장 시몬의 집에서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이 어떤 작업을 하시냐면 고넬료라는 백부장에게 천사를 통해서 베드로를 자기 집에 초청 할 것을 알리신 것입니다.
이 때 로마의 백부장인 고넬료가 어부 출신인 베드로 앞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행16장에 바울이 복음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는데 감옥 안에서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이 간수를 예비해 놓으시고 간수와 간수의 모든 집이 복음을 받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행16장에 바울이 아시아를 향해 복음을 전하러 가려 하는데 주의 사자가 문을 막기에 그래서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이 마게 도냐 사람이 부르는 환상을 보여주셔서 바울을 마게도냐로 가게 하셨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빌립보 지역에 세계복음화 하는 바울을 평생 동안 물질로 후원하는 루디아를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행12장에 보면 베드로가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는데 이 때 초대교회 성도들이 모여서 기도할 때 주의 천사가 베드로를 감옥에서 나오게 되었는데 사람들은 어찌 이런 일이 일어 날 수 있을까? 하고 모두 놀랐다고 합니다. 며칠 전에 똑같은 사건으로 야고보가 칼로 목 베어 사형을 당한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하신다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 할 때 하나님이 어떤 일 어떤 작업을 하고 계실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어라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기도하러 올라 올 때마다 가슴이 두군 두군 떨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무슨 일을 하실까? 할렐루야!
기도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해 주시지 않는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갈급하면 기도하게 됩니다.
기도하는 사람을 보십시오 영육 간에 강건해 집니다. 할렐루야!
주를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은 내게 주어진 그것을 위하여 실행하는 사람입니다.
미국의 20대 대통령 제임스 가필드가 대학생 때의 일었답니다. 같은 과에 수학 성적이 굉장히 뛰어난 학생이 있었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그 친구를 따라잡을 수 없었답니다. 어느 날 밤 가필드가 잠자리에 들려고 했을 때 건너편에 있는 그 친구의 기숙사 방은 아직까지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발견했답니다. 불을 끄고 가만히 지켜보니 정확히 10분 뒤에 친구 방의 불도 꺼졌답니다. 그랬구나, 10분이 나를 뒤지게 만들었구나. 그날 이후 가필드는 그 친구보다 10분 더 늦게까지 공부했답니다. 불과 10분이었지만 한 달이면 5시간이었고 1년이 모이면 엄청난 차이였답니다. 가필드는 얼마 안가 그 친구를 따라잡았답니다. 가필드는 대통령 취임식에서 10분을 잘 활용하십시오. 그 10분이 성공을 이끄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내 안에 숨어 있는 열정을 깨워 10분을 활용하면 우리는 생명 구원사역에 쓰임 받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열정이 넘치는 사람은 어떤 환경에도 주눅 들지 않습니다.
현대미술의 아버지 피카소는 아흔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 그 손에 그림도구를 손에 쥐고 죽었다고 합니다.
정말 중요한 곳에 열정을 쏟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사울의 미래를 다 아신다는 말입니다. 그 말씀을 하나님이 내 미래를 다 아신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인생과 미래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복음 전도에 방향 맞추고 살아가는 것이 가장 잘사는 것이요 가장 잘 투자 하는 것입니다.
막10:29-3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복음 운동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과 후손들이 복을 받는 것이 당연하고 핍박도 겸하여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복을 받는 것은 좋아하지만 핍박과 환란에 속아 넘어갑니다.
잠시잠깐 핍박 받을 수도 있고, 낙심 될 수도 있지만 그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 그런 것들로 인하여 복이 됩니다.
교회 헌당을 위한다면 집이라도 팔고 누구누구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합니다.
복을 위한 고난의 자초도 필요합니다. 누가 나를 위하여 갈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할렐루야!
역사가 토인비의 글에 유럽 사람들은 생선회를 좋아하지 않지만 청어회는 즐겨먹는데 아예 청어를 머리부터 꼬리까지 통째로 씹어 먹습니다. 그러기에 유럽 북쪽 바다에서 청어 잡이를 하는 어부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북해로부터 먼 거리에 있는 런던에까지 청어를 싱싱하게 살려서 가지고 갈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어부들이 아무리 잘해도 배가 런던에 도착해보면 청어들은 거의 다 죽어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꼭 한 어부만은 북해에서 잡은 청어들을 싱싱하게 산 채로 런던에 가지고 와서 비싼 값에 팔아 큰 재미를 보는 것이었습니다. 동료 어부들은 이상하게 여겨 그 비결을 물었더니 청어를 넣은 통에다 메기를 한 마리씩 집어넣습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부들은 눈이 동그래지면서 그러면 메기가 청어를 모두 잡아먹지 않소? 라고 이구동성으로 물었는데, 그는 네 메기가 청어를 잡아먹지만 두세 마리밖에 못 먹지요. 그러나 그 통에 있는 다른 많은 청어들은 잡혀먹지 않으려고 계속 도망쳐 다니지요. 런던에 올 때까지 모든 청어들은 열심히 도망 다니며 헤엄쳐 살려고 애를 쓰지요. 그래서 청어들은 싱싱하게 살아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왜 죽게 생겼고 힘이 없습니까? 너무 편하게 믿으려고만 합니다.
고난은 우리를 훈련시키고 강인하고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게 해 줍니다.
16절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사도 바울 고난 많이 받았습니다.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사형선고까지 받았다고 했습니다.
본질이 아니다. 이게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고난을 문제 삼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 받는 성도들 위에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위에 머무르시며 지켜주시고 고난을 이기게 해 주실 뿐 아니라 고난 후에 영광스러운 축복을 해 주십니다.
결론적으로 내가 붙잡아야 될 유일한 이름이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그를 위하여 기도하고 그를 위하여 죽을 각오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밖에는 소망이 없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이런 삶은 건강해 집니다.
각 사람마다 적절한 은혜를 주십니다. 그러나 주신 은혜를 선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악용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주신 은혜를 헛되이 만들어 버리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를 보고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으면 좋을 뻔 하였노라.
사도 바울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고전 15, 10). 나의 활동과 삶 속에서 예수님의 존귀한 이름을 담아서 나르는 그릇입니다.
러시아의 작가 도스토예프스키(F. M. Dostoevskii, 1821-1881)가 1849년 12월, 스물여덟 살이 되는 해에 정치적인 이유로 사형선고를 받고 형장으로 끌려갔습니다. 형장에서 시계를 보니, 사형집행까지 남은 자신의 생명이 5분밖에 없었습니다. 아직 생명이 살아있는 5분의 시간이 그렇게 소중한 줄 몰랐다고 합니다. 그 순간, 한편 5분 후에 나는 어디로 갈까? 하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꽉 메고 눈앞이 캄캄했졌다고 합니다. 그 동안 그럭저럭 살아온 28년이라는 세월이, 너무나도 후회스러웠고, 또 아쉬웠다고 합니다. 5분의 시간이 어김없이 흐르고 형 집행 교도관의 철커덕 하는 실탄이 장전되는 소리가 났습니다. 순간 견딜 수 없는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는데 바로 그때, 이런 소리를 지르며 한 병사가 달려왔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를 죽이지 말고 살리라는 황제의 특사였습니다.
죽음 직전에서, 목숨을 건진 것이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이니 그 이후 그가 살아 있는 생명이 순간순간 얼마나 귀하였겠습니까?
시간을 금족같이 아끼며 살았다고 합니다.
성경을 유일한 벗으로 삼고,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깊은 사색을 하면서, 불후의 명작을 남겼는데 그 책이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와 같은 신앙적인 작품들입니다.
내가 죽지 않고 숨 쉬며 살아있는 시간이 죽기만을 기다리며 그냥 보내야 할 인생이 아니지 않습니까?
낭비해 버릴 그런 시간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죽는 것이냐 정해진 사실이지만 왜 죽지 않고 살아있을까?
왜 이 땅에 보냄을 받아 나라는 존재를 내가 인식하고 있을까?
남은 시간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생각을 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이것은 사람으로 부름을 받는 자라면 당연히 가지는 고민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세상적으로 잘나가는 사람인데 역시 죽을 뻔 했다가 살아난 사람입니다.
인생이 달리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그렇게도 욕을 했던 그 예수께 한방 맞았습니다. 큰 빛이 비춰 자신을 꺼꾸려 뜨려버렸습니다.
눈이 멀어 앞이 보이지 않고 다리는 후들후들 떨리고 이제는 꼼짝없이 죽었구나?
그 때에 그가 취할 수 있는 모습은 아니 살아있음에 행해야 할 바를 제대로 해야만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예수에게 어떤 변을 당할지 모르는 것입니다. 죽지도 않고 목숨은 살아있으니
9장에는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가 보니 사울이 아무 말도 못하고 서있었다고 했지만 실은 그것이 아니라 그는 수없이 수없이 그리고 간절함을 두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22장에는 바울이 천부장과 자신을 죽이기 위하여 폭동을 일으키는 유대인들에게 그 때에 예수님을 만난 간증을 하는데 그 때에 그는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이었습니다.
제 정신을 가진 자의 새로운 신앙의 경험을 한 자의 가지는 사상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내가 누구인가를 아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가를 알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 것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나 역시 살 만큼은 살았다고 하겠는데 살아 보니깐? 내가 누구인지를 알겠고 예수를 알고 보니 무엇을 해야 제대로 사는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죽지 않고 살아난 사울에게 들려준 인생철학이 무엇입니까?
15절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하였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가만히 들어 보십시오 내가 누구냐? 왜 죽지 않고 살아 있느냐?
왜 살아야만 하느냐?
주가 나를 위하여 무엇을 해달라고가 아니라 내가 주를 위하는 것이구나를 알게 될 것입니다.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가 주를 위하여 존재할 때에 무엇이든지 할 때에 건강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갱신 날마다 날마다 새롭게 삶을 갱신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선하시고 온전한 뜻이 무엇인가를 내 삶에서 날마다 갱신이 되어야 합니다.
겉사람은 후패하나 내 속사람은 날마다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주를 위하는 삶이란 내 생각 고집대로 살았던 것을 다 하나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그릇된 삶에 열정인 사울에게 찾아오셨던 주님께서, 사울에게 그 때 주셨던  결정적인 말씀 한 마디가 있지요. 15절 택한 나의 그릇이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이 사실을 사울은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지금까지 제 고집대로 살아온 것이 얼마나 불행한 삶이란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행26장에는 똑같은 사건을 이제는 로마의 유대 분봉왕 아그립바왕에게 이 간증을 또 하는데 이런 말을 합니다.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 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고생고생 뭐가 가장 큰 고생입니까? 예수를 위하여 살지 못하는 그 삶이 가장 큰 불행입니다.
이 말은 가장 행복한 삶이 되고 싶습니까? 이제라도 주를 위하여 살아 보십시오
예수 행복의 시작입니다. 사울은, 자기 스스로 예수 믿는 사람이 된 사람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의 그릇이 될 생각은 꿈에도 가져 본 적이 없던 사람입니다.
오히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없애기 위해서 예수님을 크게 거스르던 사람입니다.
그런가 하면 사울은, 한동안 예수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였지만 늘그막에 가서 그것이 잘못임을 스스로 깨닫고,  회개하고, 예수 믿고, 사도가 된 사람도 아닙니다. 박해자로 한창 기세를 올리며 활동하던 그릇된 자기 열정의 정점에서, 예수님에 의해서 강제로 꺾어진 사람입니다.
열정의 한복판에서, 예수님으로 자기 인생이 꺾어진 사람입니다.
아니, 이미 이 은혜를 받은 자들 아닙니까?
주님이 나를 꺾어서 주여 무엇을 하여야 할 것인가?를 수없이 질문하는 그런 자로 세우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나를 꺾어주시지 않으면 누가 나를 꺾어 주겠습니까?
그렇다면 기도 제목이 분명히 세워졌습니다. 이제 이 사실을 안다면 기도해야 합니다.
현대 선교의 아버지라고 일컫는 W. Carey라는 분이 42년 동안 인도 선교에 신기원을 이루었습니다. 수많은 성경 번역을 완성했습니다. 인도와 미얀마까지 선교의 문을 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놀라운 업적이 가능했을까요? 윌리엄 캐리 자신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인도에서 사역했던 42년 동안 나를 위해서 한 번도 기도를 그치지 않았던 나의 누님의 기도 덕분입니다. 그런데 그 누님은 몸이 전신마비 되어 거의 움직이지 못하던 환자였는데 골방에서 이 시대를 움직인 것입니다.
꺼꾸러진 사울이 이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기도하는 일입니다.
주께 내가 부름을 받았다고 하지만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11절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울이 기도하는 중이었습니다.
아나니아에게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사울이 주님을 만나고 제일 처음 한 일이 바로 기도 한일이다.
기도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사울이 기도할 때 하나님이 사울에게 아나니아가 와서 자기에게 할 일을 다 보여 주셨습니다.
네가 택한 나의 그릇이라
행10장에 베드로가 피장 시몬의 집에서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이 어떤 작업을 하시냐면 고넬료라는 백부장에게 천사를 통해서 베드로를 자기 집에 초청 할 것을 알리신 것입니다.
이 때 로마의 백부장인 고넬료가 어부 출신인 베드로 앞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행16장에 바울이 복음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는데 감옥 안에서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이 간수를 예비해 놓으시고 간수와 간수의 모든 집이 복음을 받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행16장에 바울이 아시아를 향해 복음을 전하러 가려 하는데 주의 사자가 문을 막기에 그래서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이 마게 도냐 사람이 부르는 환상을 보여주셔서 바울을 마게도냐로 가게 하셨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빌립보 지역에 세계복음화 하는 바울을 평생 동안 물질로 후원하는 루디아를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행12장에 보면 베드로가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는데 이 때 초대교회 성도들이 모여서 기도할 때 주의 천사가 베드로를 감옥에서 나오게 되었는데 사람들은 어찌 이런 일이 일어 날 수 있을까? 하고 모두 놀랐다고 합니다. 며칠 전에 똑같은 사건으로 야고보가 칼로 목 베어 사형을 당한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하신다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 할 때 하나님이 어떤 일 어떤 작업을 하고 계실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어라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기도하러 올라 올 때마다 가슴이 두군 두군 떨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무슨 일을 하실까? 할렐루야!
기도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해 주시지 않는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갈급하면 기도하게 됩니다.
기도하는 사람을 보십시오 영육 간에 강건해 집니다. 할렐루야!
주를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은 내게 주어진 그것을 위하여 실행하는 사람입니다.
미국의 20대 대통령 제임스 가필드가 대학생 때의 일었답니다. 같은 과에 수학 성적이 굉장히 뛰어난 학생이 있었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그 친구를 따라잡을 수 없었답니다. 어느 날 밤 가필드가 잠자리에 들려고 했을 때 건너편에 있는 그 친구의 기숙사 방은 아직까지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발견했답니다. 불을 끄고 가만히 지켜보니 정확히 10분 뒤에 친구 방의 불도 꺼졌답니다. 그랬구나, 10분이 나를 뒤지게 만들었구나. 그날 이후 가필드는 그 친구보다 10분 더 늦게까지 공부했답니다. 불과 10분이었지만 한 달이면 5시간이었고 1년이 모이면 엄청난 차이였답니다. 가필드는 얼마 안가 그 친구를 따라잡았답니다. 가필드는 대통령 취임식에서 10분을 잘 활용하십시오. 그 10분이 성공을 이끄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내 안에 숨어 있는 열정을 깨워 10분을 활용하면 우리는 생명 구원사역에 쓰임 받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열정이 넘치는 사람은 어떤 환경에도 주눅 들지 않습니다.
현대미술의 아버지 피카소는 아흔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 그 손에 그림도구를 손에 쥐고 죽었다고 합니다.
정말 중요한 곳에 열정을 쏟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사울의 미래를 다 아신다는 말입니다. 그 말씀을 하나님이 내 미래를 다 아신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인생과 미래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복음 전도에 방향 맞추고 살아가는 것이 가장 잘사는 것이요 가장 잘 투자 하는 것입니다.
막10:29-3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복음 운동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과 후손들이 복을 받는 것이 당연하고 핍박도 겸하여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복을 받는 것은 좋아하지만 핍박과 환란에 속아 넘어갑니다.
잠시잠깐 핍박 받을 수도 있고, 낙심 될 수도 있지만 그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 그런 것들로 인하여 복이 됩니다.
교회 헌당을 위한다면 집이라도 팔고 누구누구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합니다.
복을 위한 고난의 자초도 필요합니다. 누가 나를 위하여 갈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할렐루야!
역사가 토인비의 글에 유럽 사람들은 생선회를 좋아하지 않지만 청어회는 즐겨먹는데 아예 청어를 머리부터 꼬리까지 통째로 씹어 먹습니다. 그러기에 유럽 북쪽 바다에서 청어 잡이를 하는 어부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북해로부터 먼 거리에 있는 런던에까지 청어를 싱싱하게 살려서 가지고 갈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어부들이 아무리 잘해도 배가 런던에 도착해보면 청어들은 거의 다 죽어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꼭 한 어부만은 북해에서 잡은 청어들을 싱싱하게 산 채로 런던에 가지고 와서 비싼 값에 팔아 큰 재미를 보는 것이었습니다. 동료 어부들은 이상하게 여겨 그 비결을 물었더니 청어를 넣은 통에다 메기를 한 마리씩 집어넣습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부들은 눈이 동그래지면서 그러면 메기가 청어를 모두 잡아먹지 않소? 라고 이구동성으로 물었는데, 그는 네 메기가 청어를 잡아먹지만 두세 마리밖에 못 먹지요. 그러나 그 통에 있는 다른 많은 청어들은 잡혀먹지 않으려고 계속 도망쳐 다니지요. 런던에 올 때까지 모든 청어들은 열심히 도망 다니며 헤엄쳐 살려고 애를 쓰지요. 그래서 청어들은 싱싱하게 살아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왜 죽게 생겼고 힘이 없습니까? 너무 편하게 믿으려고만 합니다.
고난은 우리를 훈련시키고 강인하고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게 해 줍니다.
16절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사도 바울 고난 많이 받았습니다.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사형선고까지 받았다고 했습니다.
본질이 아니다. 이게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고난을 문제 삼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 받는 성도들 위에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위에 머무르시며 지켜주시고 고난을 이기게 해 주실 뿐 아니라 고난 후에 영광스러운 축복을 해 주십니다.
결론적으로 내가 붙잡아야 될 유일한 이름이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그를 위하여 기도하고 그를 위하여 죽을 각오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밖에는 소망이 없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이런 삶은 건강해 집니다.
각 사람마다 적절한 은혜를 주십니다. 그러나 주신 은혜를 선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악용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주신 은혜를 헛되이 만들어 버리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를 보고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으면 좋을 뻔 하였노라.
사도 바울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고전 15, 10). 나의 활동과 삶 속에서 예수님의 존귀한 이름을 담아서 나르는 그릇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