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서 보이시는 생명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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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531회 작성일 2009-11-07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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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편 16:8-11 주께서 보이시는 생명의 길
제시카 윌리엄스가 쓴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그러나 알지 못했던 세상의 몇 가지 사실들이란 책에 보면, 의학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이 무한정 늘어날 것처럼 사람들은 생각하지만 일정한 단계에 이르면 더 이상 수명은 늘어나지 않고 게다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신종 질병이 속출해서 영생의 꿈이 허상임을 밝혀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의학기술의 발달로 건강함과 장수의 꿈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그 한 예로 아프리카의 보츠나와 같은 나라에서는 에이즈 때문에 2002년에 태어난 아이들의 평균 수명이 고작 39살에 불과하고 2010년이 되면 27세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류 역사는 에덴동산을 찾아가는 길, 곧 지상낙원의 길을 찾으려 하지만 찾지 못했고 앞으로도 영원히 발견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생명으로 나아가는 그 문을 닫아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창3:24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막아 놓으셨기 때문에 더 이상 인간의 노력으로 불가능하게 됨을 아셔야 합니다.
이 길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열어 놓았습니다. 할렐루야!
11절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후로 인류 역사는 한 가지 제목 어떻게 하면 잘 살까? 하는 잘사는 길을 찾기 위한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잘 살아라 잘 살아라 잘 살아 보세
지금 북쪽에 김정일 씨도 잘 살아 보려고 하지 않습니까?
에덴이란 말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유토피아 또는 이상적인 세계를 만들려고 하는 노력이 모두 다 잘 사는 길 찾는 노력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같은 바람이 인간 지혜의 한계를 느끼고는 종교라는 길을 통해서 찾으려고 하는 종교적인 행위가 어느 시대나 장소를 인종을 불문하고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슬람 사람들 대단합니다. 하루 3번씩 메카가 있는 메디아를 향하여 절을 하지 않습니까?
지금도 절간에는 천배도 모자라 삼천 배 절을 하고 툭하면 정치인들이 삼보 일 배를 하고 다니는 것을 보지 않습니까?세계복음운동(The Global Evangelization Movement)이 1999년 발표한 통계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95.5%가 종교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 길을 찾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길은 예수 안에 감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엡3: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예수님을 통하여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자신의 비밀을 드디어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천하에 다른 이름으로 구원을 주시지 않으셨다는 것 아닙니까?
인간의 힘으로는 그 길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단정적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그 길을 찾으려는 함이 고통이 되는 것입니다.
달리 고행이 아니라 내 스스로 하겠다는 것이 고난입니다.
시편 107:10-12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그러므로 그가 고통을 주어 그들의 마음을 겸손하게 하셨으니 그들이 엎드러져도 돕는 자가 없었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수고는 곤고와 고통이 따를 뿐이었습니다.
이제 길은 예수님께서 보이신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그 길을 볼 수가 있습니까? 무엇이든지 하나님 우선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언제든지 가능입니다.
만사가 없어도 하나님은 계십니다.
임마누엘 되셔서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십니다.
가이드 포스트지의 창시자인 노만 핀센트 빌 박사께 극도의 절망감에 사로잡혀서 얼굴도 초췌하고 아주 얼굴 표정 자체가 마치 당장 죽을 것 같은 한 남자가 찾아와서 자기 사정을 이야기하며 이제는 끝장이 났습니다. 내 인생의 모든 것을 다 잃어 버렸습니다. 라고 말했답니다. 그때에 빌 박사께서는 종이를 하나 꺼내 들고 당신이 지금 모든 것을 잃었다고 했는데 그래도 남은 것이 있을 것 같은데 그 남은 것을 물어 보겠으니 대답을 하시고 여기다가 한번 적어보도록 하십시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부인 있습니까? 네 제 아내는 참 착하고 좋은 사람입니다.
자녀가 있습니까? 셋이 있습니다. 아주 예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친구가 있습니까? 예 제 뜻을 잘 알아주는 몇 사람 친구가 있습니다.
건강은 어떻습니까? 아 그저 아직까지 건강은 괜찮습니다.
이렇게 말을 해 나가다가 이 남자 스스로 하는 말이 내 사정이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아직도 가진 것이 많군요. 고맙습니다. 하고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불행은 가지고 싶은 것을 못 가지고 있다는 것에 있는 게 아니고 내가 아직도 가지고 있는 것을 모른다는 것에 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소중한 것을 내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찾아보세요. 다 잃어버린 것 같으나 아직도 가지고 있는 것이 많습니다.
가지고 있는 것이 더 큰 겁니다. 더 근본적이고 더 소중한 것입니다.
그걸 모르기 때문에 불행한 것입니다.
세상이 다 떠나가도 예수 그리스도는 끝 날까지 함께 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얻는 것이 내게 너무 소중하고 귀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오히려 모든 것을 버린다고 하였습니다.
빌3:7-8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94장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명예, 행복)와 바꿀 수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습니까? 괜찮습니다.
예수님은 임마누엘이 되셔서 세상 끝날까지 나와 함께 하심을 아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졌더라도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입니다.
예수 생명, 예수 구원, 예수 축복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는 것은 믿음이요 믿음은 행동입니다.
내가 억만금을 가지면 무엇합니까?
내가 예수님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어서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알고 있는 예수를 실천하지 못하기 때문에 불행한 겁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시시오
내 앞에 모십시오 8절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예수님을 부끄러워하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그러면 예수님도 나를 부끄러워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곤란한 자로 만드시지 마셔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도 나를 곤란하게 하실 것입니다.
언제든지 인정하고 시인하십시오 그러면 예수님은 나를 언제든지 인정하실 것입니다.
다윗은 시편18 자비로운 자에게는 주의 자비로우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악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르심을 보이시리니
예수님을 떠나서는 아무 일도 아무 것도 아님을 아셔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최근 심리학에서 인간은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으로 변화하는 존재라고 합니다.
자기가 생각하는 만큼의 세계를 산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변화하는 대로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고 생각하는 대로 변화하는 존재가 사람이란 말입니다.
롬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여러분 환경이 달라져서 사람이 달라질 줄 알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환경이 달라져도 달라질 수 없는 사람은 못 달라집니다.
욕심쟁이는 항상 욕심쟁이요. 불평하는 사람은 끝없이 불평합니다. 그건 불평하다가 죽을 사람이지 그 사람의 불평을 마치게 하는 환경은 없습니다.
군대갔다오면 사람 된다고 하지만 갔다 와서 얼마 있지 않으면 원래 상태로 돌아갑니다.
내가 생각하는 방향대로 변화가 옵니다. 그 변화된 대로 내 존재는 결정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내 앞에 모심이여 할렐루야! 그러면 하나님은 내 오른편에 계신답니다.
오른편은 능력입니다. 주의 능력이 주의 주권이 역사하십니다.
남북전쟁을 일으켜 놓고 7년 동안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을 때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은 그는 괴로웠습니다. 1862년 4월 30일 전국에 금식 기도일 을 선포하고 기도 선언문을 낭독했습니다. 미국의 비극을 종식시킬 수 있는 길은 오직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뿐입니다. 이 비극의 원인은 너나할 것 없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 이백성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이 같은 비극이 있는 겁니다. 그런고로 다 같이 하나님께로 돌아가십시다.
호세아6:1-2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이제 내 의식과 내 사상과 내 철학과 내 삶의 방향을 예수화로 변화 되어야 합니다.그렇지 않고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잘 모르면 시키는 대로 하면 됩니다. 교회가 하자는 대로 하면 됩니다. 그리고 보면 알게 됩니다.
내가 소경이었는데 이제는 눈을 떠서 보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여 그렇게 되었으냐?
예수라는 분이 실로암에 가서 씻어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나이다.
자꾸 다른 소리 할 필요 없습니다.
비판하지 못해서 따지지 못해서 내가 안 되었습니까?
너무 비판하고 따지기 때문에 안 된 것입니다.
미국의 신앙작가 로버트 뭉그라는 사람이 쓴 My heart Christ home이라는 책, 내 마음은 그리스도의 집의 내용 속에서 이분이 바깥에 나갔다가 집에 가보니 문이 열려 있는 거예요. 내가 분명히 잠그고 나갔는데 누가 들어왔을까? 하고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거기 예수님이 있더래요. 예수님! 어째서 여기에 오셨습니까?
나는 네가 원하든, 원하지 않던 문만 열어놓으면 여기 와서 있다. 그러면서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일을 하는 거예요. 서재를 정리하면서 잘못 꽂인 책을 바로 꽂고, 꽂혀 있지 말아야 할 책을 빼서 던져 버리고, 부엌에 가서 자기가 잘 먹는 것은 치워버리고 건강에 좋다는 웰빙품만 만들어주고 설거지도 깨끗하게 해주고, 예수님이 좀 도와주니까 너무 너무 좋은 거예요. 옷장도 예수님께서 다 열어가지고 이것은 빨래해야 되겠다. 이것은 버려야 되겠다. 하고 심지어는 신발까지 털어가지고 정리를 해주는 거예요. 그래서 이 사람이 너무 감동받아서 자기 집의 집문서를 그 주님에게 주면서 주여! 아예 우리 집의 파출부로 계시지 마시고 우리 집의 주인으로 사십시오. 그리고 나는 주인을 따라 움직이는 내가 파출부가 하겠습니다. 그랬더니. 잠이 깼데요.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신앙생활은 한다면서도 삶이 바꿔지지 않는 것은 마음에 주인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마음의 주인이 자신으로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으면 본질적으로 타락된 우리 본성은 역시 삶을 변화시킬 수가 없습니다.
마음의 주인을 내가 마음을 열어서 내 마음의 주인을 예수그리스도로 모시면 주인이 나를 변화시켜주시는 거예요. 주인이 나를 자유케 하여주시고, 주인이 나를 치유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기쁨과 즐거움의 행복한 인생이 될 것입니다.
9절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여러분의 인생은 행복하셔야 합니다.
성령님이 기뻐하시면 기쁨이 되고 성령님이 슬퍼하시면 슬픔이 됩니다.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다 좋다고 해도 그렇게 해도 괜찮다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때문에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당장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미래의 이익을 구하는 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장사를 하시는 분에게 현찰을 가지겠느냐, 어음을 받겠느냐? 라고 물어 본다면 두말하지 않고 현찰을 받으려고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음은 앞으로 주겠다는 약속이지 아직 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상대방에 따라서 현찰보다는 미래의 약속이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상대방이 우리나라 최고의 실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이 일을 통해 그 사람과의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은 얼마든지 눈앞에 좋은 선택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이야 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부요한 분이시며 모든 것을 다 결정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어떠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자신의 삶에 모시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신뢰함으로 어떠한 경우에도 흔들림 없이 영적인 삶을 살 수 있었고 환경을 넘어서 하나님을 모셨기에 그는 그 중심에서 마음과 영이 기뻤고 육체도 평안을 얻었습니다.
결코 하나님께서 원수들로부터 자신이 망하도록 내 버려두지 않으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는 머지않아서 주님께서 자신 앞에 생명의 길을 보여 주실 것에 대하여 확신하고 그는 항상 그 분의 오른편에 서서 그 분을 떠나지 않을 것을 고백합니다.
지금 상황이 어렵고 힘들어도 하나님을 모시고 그 분의 뜻대로 행하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에게 그 분의 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이 길이 가장 행복하고 빠르고 확실한 길입니다.
결코 더딘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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