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통하여 주의 일은 이루어져 갑니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593회 작성일 2009-11-07 11:29본문
마태복음 14:13-21 당신을 통하여 주의 일은 이루어져 갑니다
마틴 루터의 친구이자 종교 개혁자들 중에 한 사람인 존 브렌츠는 당시 종교개혁에 반대하여 수많은 성직자들을 죽이고자 했던 스페인 왕 찰스 5세의 왕실 기병들이 그를 체포하기 위하여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구원의 음성이 들리기를 존! 빨리 빵 한 조각을 갖고 아랫마을로 내려가거라. 거기서 문이 열려진 집을 발견하면, 그 집 지붕 밑으로 숨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존은 지시한 대로 마을로 내려가 문이 열려진 집을 발견하고 그 집 다락에 몸을 숨겼고 이후 수색이 계속되는 동안 존은 그 다락방에서 약 14년 간 숨어 지냈습니다. 사실 존에게 빵 한 조각은 결코 14년간의 양식이 될 수가 없었는데 존은 그 곳에서 그토록 오랜 세월을 지낼 수가 있었는데 그것은 존 브렌츠가 다락에 숨어 지내는 동안 날마다 암탉이 한 마리씩 다락방에 올라와서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으면서 달걀을 하나씩 낳는 것이었습니다.
이 일은 14년 간 한 번도 그치지 않고 계속되었으며, 그는 이 달걀을 먹고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느 날 닭은 더 이상 올라오지 않아 기이하게 여긴 그는 바깥 동정에 귀를 기울였더니 거리에 있던 사람들은 병사들이 마침내 모두 다 떠나버렸다고 말했습니다.
그리하여 존은 아무 탈 없이 14년 만에 그 다락방에서 나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믿어지십니까?
사실 성경에는 이런 유의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 생활 할 때에 그들이 살아 갈 수 있었던 양식이 어디서 왔습니까?
하늘에서 매일 매일 40년간 하나님이 보내 주셨습니다.
엘리야 시대에 가뭄으로 인한 흉년이 계속 될 때에 사르밧에 외아들을 데리고 사는 홀로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흉년이 끝 날 때까지 양식이 그 곳간에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믿어지십니까?
본문에도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빈들에서 5,000명이나 되는 장정이 배불리 먹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배고프다는 소리입니다.
이제 알았습니다.
세상은 아무리 채워줘도 배고프는 곳이요 만족이 없는 곳입니다.
잠30:15-16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오 다오 하느니라 족한 줄을 알지 못하여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곧 스올과 아이 배지 못하는 태와 물로 채울 수 없는 땅과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불이니라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는 곳은 항상 불만족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면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생수의 강이 넘치게 하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일찍이 이사야라는 선지자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사52:1-3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이제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으면 잘 먹고 잘 살겠구나
우리말에도 부모님 말씀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배부르지 못할 것을 위하여 더 이상 인생을 낭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한번 뿐인 인생입니다. 이제는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사셔야 합니다. 할렐루야!
인상 쓰고 왔다가 빵긋빵긋 웃는 자들이 우리 교회 안에도 많이 있습니다.
한번 세상의 소리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우려 봅시다.
당신의 관심을 더 이상 세상의 일에만 두지 말고 당신의 관심을 하나님의 일에 먼저 두라는 것입니다.
온통 세상일에만 마음이 다 빼앗기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머리는 터지고 가슴은 답답하고 잠은 안 오고 신경은 예민해 지고 잠은 안 오고 사람을 멀리하고 세상이 싫어지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우려보십시오
주의 일에 관심을 가지는 자를 통하여 기적 같은 이런 일을 경험하게 됩니다.
본문은 모든 인류의 최대의 관심사인 먹을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북쪽의 김동지의 소원은 인민들이 이밥에 소고기 국을 배불리 먹는 것이 라고 하였는데 아직도 배가 고파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아직도 나의 식사 값을 누가 내느냐? 입니다. 미국이냐 중국이냐 남한이냐?
최대관심사입니다.
오늘 5,000명이 회식하는데 누가 내느냐? 입니다.
뻔 한 해답이 나옵니다. 나는 아니다. 먹고 죽으려고 해도 없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나 스스로 이러한 모습을 냄으로서 불쌍한 자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내가 부르는 주제곡이 있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가 당연한 주제곡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제 주제가를 바뀌라고 하십니다.
더 이상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네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십니다.
이런 주의 말씀에 아멘하고 긍정적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네 삶에서 줄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받으려는 태도는 맨 날 받으려는 구조가 되는 것입니다. 거지 유전인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내게는 부정적인 것이 더 많습니다.
부정을 긍정으로 바꿔야 합니다.
내가 말하는 부정적인 요인은 아주 당연한 것이요
모두가 합리적이요 이성적이요 합당하다고 여깁니다.
부정적인 일에 너무나도 익숙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게 나에게 좋은 일이 아닙니다.
계속적으로 못하겠다 안 되겠다고 하는 사람을 통하여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부정을 말합니까?
상식적으로 안 된다는 말을 합니다.
이곳은 빈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상식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이 상황을 모르고 말씀 하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대책까지 내어 놓습니다. 무리를 보내어 마을로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매우 상식적으로 책임을 면할 수 있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합리적으로 이성적으로 부정하였습니다.
요6: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밥 싸 먹을 돈이 없다는 것입니다. 누가 돈으로 해결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눈치나 보고 관망하는 사람입니다.
뱃세다 들판에는 오병이어의 현장에는 수많은 인파가 모여 있었으나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예수님과 몇몇 제자들, 그리고 이름 없는 한 소년뿐입니다.
나머지 절대 다수의 군중들은 큰 관심 없이 그냥 관망하는 자들입니다.
그야말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주의 일이 어떻게 되나 보자식입니다.
너무나도 소극적입니다.
어느 시대에나 예수님께서 주도하시는 생명 사역에는 소수의 사람들이 움직입니다.
그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다니기도 하고 어떤 때는 군중 심리에 따라 굉장한 목소리를 내기도 하지만 막상 필요한 자리에서는 침묵하거나 무관심 하는 세력이 되고 맙니다.
자기 할 일에 무책임한 사람입니다.
여러 날 굶주린 무리들이 운집해 있고 또 예수님으로부터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 굶주림을 면하게 해 주라는 명령이 떨어 졌는데도 거기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혹시라도 자기 것이 손해 갈까 인색한 마음을 가진 사람도 나서기를 꺼려합니다.
소신 없는 사람들입니다.
문제는 많고 적고를 떠나서 자기의 마음가짐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며, 그것을 실천하려는 의지와 결단이 중요합니다.
이 눈치 저 눈치 살피며 자기 입장만 생각하다가는 주님께서 주시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후회하게 됩니다.
기회는 잡아야 합니다.
이러한 신앙관은 참으로 아무런 일이 내 주위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런 부정적인 요소를 긍정적으로 바꾼 자를 통하여 하나님은 당신을 나타내 보이십니다.
부정이 난무하는 가운데서도 얼마든지 긍정을 낼 수 있습니다.
요셉이 자신을 팔아 종으로 만들고 모함을 받아 옥중에서 고생을 하고 이런 부정적인 사람과 사건 앞에 그가 한 말이 무엇입니까?
창45: 5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극한 부정을 극한 긍정으로 하나님이 라는 말 앞에는 무엇이든지 예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화라도 복이 되고 합력하여 선이 되는 것입니다.
안 된다 할 수 없다고 하면 안 되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주의 뜻에 관심이 있는 자입니다. 내 전부를 드릴 수 있는 자
예수님의 마음을 공유하고 거기에 부응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사역에 주체세력이 됩니다.
이름 없는 이 소년이 예수님이 주도하시는 생명운동의 주체세력이 된 것입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고 하신 예수님의 의도에 따라 그 일을 수행한 사람은 수만 명 군중가운데 보리떡과 물고기를 제공한 어린 아이였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으니 이것, 저것 복잡하게 생각하지 앞뒤를 따져보고 이해관계를 계산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생명의 떡이 여기있사오니 내가 어디로 가오리이까?
이런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적극적인 삶의 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최선을 다 하는 자입니다.
보리떡과 물고기 매우 보잘 것 없는 물질이며 음식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떠하겠습니까? 이게 최선입니다. 할렐루야!
제자들마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 부정적이었습니다.
보리떡은 매우 값이 싼 떡이며 맛도 없는 떡입니다. 짐승의 먹이로 주는 것이 알맞을 만합니다.
물고기도 피라미 같은 작은 것을 소금으로 짜게 간한 것이어서 당시의 노동자들이나 먹는 것이고 귀족들이나 부자들은 음식으로 쳐주지도 않는 것입니다.
쳐주든지 안 쳐주든지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은 최선을 다했다면 부정이 아니라 무한한 긍정이었습니다.
그것을 내게로 가져오라
최선을 다 하는 일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것은 아이에게는 최선입니다. 그리고 전부입니다.
바로 그것이 주님께서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실 때에 축복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축복을 해 주고 싶어도 그 근거가 없어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내어 놓아 일이 해결 받아도 내가 드려지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공동체가 아닙니까?
내가 드려져야 할 내 몫이 있고 그 몫이 나의 축복이 됨을 아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비록 내가 몹쓸 죄인이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름 없는 존재이지만 자신을 주님에게 완전히 헌신하며 바쳐지는 삶을 살고자 할 때 이를 받으시고 축복하십니다.
감당 하고자 하면 역사는 주님이 하십니다
결과는 주님의 몫이요 최선은 나의 몫입니다.
최선은 언제든지 지금입니다. 최선은 최고입니다.
한 선교사가 뉴 헤브라이즈 군도(New Hebride)에서 몇몇 원주민들이 돼지들을 잡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원주민들은 돼지의 꼬리를 잘라내서 그것들을 쌓아 놓았습니다.
그 선교사가 원주민들에게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묻자, 그들은 고기는 우리를 위한 것이고 이 꼬리들은 우리의 신들을 위한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제 이 어리석음을 정리하시기 바랍니다.
언제든지 꼬리만이 주님의 몫이 되고 살 토막은 나를 위하여가 아니라 존귀영광은 주님이 멸시천대는 내가 할 수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교회는 아니 주님은 항상 나를 요구하십니다.
당연합니다가 아니라 주님은 아니 교회는 항상 무엇인가 부족하군요 라고 또 나란 말인가라고 말을 합니까?
누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에게는 참으로 귀하고 귀한 아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아이에게 모든 것을 아끼지 않고 그 아이의 필요를 다 사 주어야 합니다.
내가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하고 자지 못하더라도 그 아이에게만은 다 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어느 날 밤 그 아이는 불행하게도 죽고 말았습니다.
지금 내 아들은 저에게 한 푼의 돈을 요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이는 죽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살아있는 한, 교회가 건재하면서 세상을 축복하는 한, 그 교회는 움직이기 위해 무엇인가를 나에게 요구할 것입니다.
교회가 죽고 나면 여러분의 아무런 도움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교회는 여러분에게 아무런 도움도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교회가 살아 있어서 나에게 교회의 유지를 도울 수 있는 특권을 가졌다는 사실에 대해서 나를 필요로 하다고 그렇게도 간청을 하는데 얼마나 감사할 일이 아닙니까?
나의 삶은 예수님께 드려진 5병2어가 5천 명을 먹이기 위한 제물
나를 예수님의 손 위에 놓으신 후 하나님께서 축사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5,000명을 먹이고 12광주리가 철철 넘치게 하옵소서. 이런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마틴 루터의 친구이자 종교 개혁자들 중에 한 사람인 존 브렌츠는 당시 종교개혁에 반대하여 수많은 성직자들을 죽이고자 했던 스페인 왕 찰스 5세의 왕실 기병들이 그를 체포하기 위하여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구원의 음성이 들리기를 존! 빨리 빵 한 조각을 갖고 아랫마을로 내려가거라. 거기서 문이 열려진 집을 발견하면, 그 집 지붕 밑으로 숨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존은 지시한 대로 마을로 내려가 문이 열려진 집을 발견하고 그 집 다락에 몸을 숨겼고 이후 수색이 계속되는 동안 존은 그 다락방에서 약 14년 간 숨어 지냈습니다. 사실 존에게 빵 한 조각은 결코 14년간의 양식이 될 수가 없었는데 존은 그 곳에서 그토록 오랜 세월을 지낼 수가 있었는데 그것은 존 브렌츠가 다락에 숨어 지내는 동안 날마다 암탉이 한 마리씩 다락방에 올라와서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으면서 달걀을 하나씩 낳는 것이었습니다.
이 일은 14년 간 한 번도 그치지 않고 계속되었으며, 그는 이 달걀을 먹고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느 날 닭은 더 이상 올라오지 않아 기이하게 여긴 그는 바깥 동정에 귀를 기울였더니 거리에 있던 사람들은 병사들이 마침내 모두 다 떠나버렸다고 말했습니다.
그리하여 존은 아무 탈 없이 14년 만에 그 다락방에서 나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믿어지십니까?
사실 성경에는 이런 유의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 생활 할 때에 그들이 살아 갈 수 있었던 양식이 어디서 왔습니까?
하늘에서 매일 매일 40년간 하나님이 보내 주셨습니다.
엘리야 시대에 가뭄으로 인한 흉년이 계속 될 때에 사르밧에 외아들을 데리고 사는 홀로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흉년이 끝 날 때까지 양식이 그 곳간에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믿어지십니까?
본문에도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빈들에서 5,000명이나 되는 장정이 배불리 먹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배고프다는 소리입니다.
이제 알았습니다.
세상은 아무리 채워줘도 배고프는 곳이요 만족이 없는 곳입니다.
잠30:15-16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오 다오 하느니라 족한 줄을 알지 못하여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곧 스올과 아이 배지 못하는 태와 물로 채울 수 없는 땅과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불이니라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는 곳은 항상 불만족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면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생수의 강이 넘치게 하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일찍이 이사야라는 선지자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사52:1-3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이제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으면 잘 먹고 잘 살겠구나
우리말에도 부모님 말씀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배부르지 못할 것을 위하여 더 이상 인생을 낭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한번 뿐인 인생입니다. 이제는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사셔야 합니다. 할렐루야!
인상 쓰고 왔다가 빵긋빵긋 웃는 자들이 우리 교회 안에도 많이 있습니다.
한번 세상의 소리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우려 봅시다.
당신의 관심을 더 이상 세상의 일에만 두지 말고 당신의 관심을 하나님의 일에 먼저 두라는 것입니다.
온통 세상일에만 마음이 다 빼앗기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머리는 터지고 가슴은 답답하고 잠은 안 오고 신경은 예민해 지고 잠은 안 오고 사람을 멀리하고 세상이 싫어지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우려보십시오
주의 일에 관심을 가지는 자를 통하여 기적 같은 이런 일을 경험하게 됩니다.
본문은 모든 인류의 최대의 관심사인 먹을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북쪽의 김동지의 소원은 인민들이 이밥에 소고기 국을 배불리 먹는 것이 라고 하였는데 아직도 배가 고파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아직도 나의 식사 값을 누가 내느냐? 입니다. 미국이냐 중국이냐 남한이냐?
최대관심사입니다.
오늘 5,000명이 회식하는데 누가 내느냐? 입니다.
뻔 한 해답이 나옵니다. 나는 아니다. 먹고 죽으려고 해도 없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나 스스로 이러한 모습을 냄으로서 불쌍한 자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내가 부르는 주제곡이 있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가 당연한 주제곡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제 주제가를 바뀌라고 하십니다.
더 이상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네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십니다.
이런 주의 말씀에 아멘하고 긍정적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네 삶에서 줄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받으려는 태도는 맨 날 받으려는 구조가 되는 것입니다. 거지 유전인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내게는 부정적인 것이 더 많습니다.
부정을 긍정으로 바꿔야 합니다.
내가 말하는 부정적인 요인은 아주 당연한 것이요
모두가 합리적이요 이성적이요 합당하다고 여깁니다.
부정적인 일에 너무나도 익숙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게 나에게 좋은 일이 아닙니다.
계속적으로 못하겠다 안 되겠다고 하는 사람을 통하여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부정을 말합니까?
상식적으로 안 된다는 말을 합니다.
이곳은 빈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상식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이 상황을 모르고 말씀 하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대책까지 내어 놓습니다. 무리를 보내어 마을로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매우 상식적으로 책임을 면할 수 있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합리적으로 이성적으로 부정하였습니다.
요6: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밥 싸 먹을 돈이 없다는 것입니다. 누가 돈으로 해결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눈치나 보고 관망하는 사람입니다.
뱃세다 들판에는 오병이어의 현장에는 수많은 인파가 모여 있었으나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예수님과 몇몇 제자들, 그리고 이름 없는 한 소년뿐입니다.
나머지 절대 다수의 군중들은 큰 관심 없이 그냥 관망하는 자들입니다.
그야말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주의 일이 어떻게 되나 보자식입니다.
너무나도 소극적입니다.
어느 시대에나 예수님께서 주도하시는 생명 사역에는 소수의 사람들이 움직입니다.
그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다니기도 하고 어떤 때는 군중 심리에 따라 굉장한 목소리를 내기도 하지만 막상 필요한 자리에서는 침묵하거나 무관심 하는 세력이 되고 맙니다.
자기 할 일에 무책임한 사람입니다.
여러 날 굶주린 무리들이 운집해 있고 또 예수님으로부터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 굶주림을 면하게 해 주라는 명령이 떨어 졌는데도 거기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혹시라도 자기 것이 손해 갈까 인색한 마음을 가진 사람도 나서기를 꺼려합니다.
소신 없는 사람들입니다.
문제는 많고 적고를 떠나서 자기의 마음가짐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며, 그것을 실천하려는 의지와 결단이 중요합니다.
이 눈치 저 눈치 살피며 자기 입장만 생각하다가는 주님께서 주시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후회하게 됩니다.
기회는 잡아야 합니다.
이러한 신앙관은 참으로 아무런 일이 내 주위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런 부정적인 요소를 긍정적으로 바꾼 자를 통하여 하나님은 당신을 나타내 보이십니다.
부정이 난무하는 가운데서도 얼마든지 긍정을 낼 수 있습니다.
요셉이 자신을 팔아 종으로 만들고 모함을 받아 옥중에서 고생을 하고 이런 부정적인 사람과 사건 앞에 그가 한 말이 무엇입니까?
창45: 5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극한 부정을 극한 긍정으로 하나님이 라는 말 앞에는 무엇이든지 예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화라도 복이 되고 합력하여 선이 되는 것입니다.
안 된다 할 수 없다고 하면 안 되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주의 뜻에 관심이 있는 자입니다. 내 전부를 드릴 수 있는 자
예수님의 마음을 공유하고 거기에 부응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사역에 주체세력이 됩니다.
이름 없는 이 소년이 예수님이 주도하시는 생명운동의 주체세력이 된 것입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고 하신 예수님의 의도에 따라 그 일을 수행한 사람은 수만 명 군중가운데 보리떡과 물고기를 제공한 어린 아이였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으니 이것, 저것 복잡하게 생각하지 앞뒤를 따져보고 이해관계를 계산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생명의 떡이 여기있사오니 내가 어디로 가오리이까?
이런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적극적인 삶의 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최선을 다 하는 자입니다.
보리떡과 물고기 매우 보잘 것 없는 물질이며 음식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떠하겠습니까? 이게 최선입니다. 할렐루야!
제자들마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 부정적이었습니다.
보리떡은 매우 값이 싼 떡이며 맛도 없는 떡입니다. 짐승의 먹이로 주는 것이 알맞을 만합니다.
물고기도 피라미 같은 작은 것을 소금으로 짜게 간한 것이어서 당시의 노동자들이나 먹는 것이고 귀족들이나 부자들은 음식으로 쳐주지도 않는 것입니다.
쳐주든지 안 쳐주든지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은 최선을 다했다면 부정이 아니라 무한한 긍정이었습니다.
그것을 내게로 가져오라
최선을 다 하는 일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것은 아이에게는 최선입니다. 그리고 전부입니다.
바로 그것이 주님께서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실 때에 축복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축복을 해 주고 싶어도 그 근거가 없어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내어 놓아 일이 해결 받아도 내가 드려지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공동체가 아닙니까?
내가 드려져야 할 내 몫이 있고 그 몫이 나의 축복이 됨을 아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비록 내가 몹쓸 죄인이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름 없는 존재이지만 자신을 주님에게 완전히 헌신하며 바쳐지는 삶을 살고자 할 때 이를 받으시고 축복하십니다.
감당 하고자 하면 역사는 주님이 하십니다
결과는 주님의 몫이요 최선은 나의 몫입니다.
최선은 언제든지 지금입니다. 최선은 최고입니다.
한 선교사가 뉴 헤브라이즈 군도(New Hebride)에서 몇몇 원주민들이 돼지들을 잡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원주민들은 돼지의 꼬리를 잘라내서 그것들을 쌓아 놓았습니다.
그 선교사가 원주민들에게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묻자, 그들은 고기는 우리를 위한 것이고 이 꼬리들은 우리의 신들을 위한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제 이 어리석음을 정리하시기 바랍니다.
언제든지 꼬리만이 주님의 몫이 되고 살 토막은 나를 위하여가 아니라 존귀영광은 주님이 멸시천대는 내가 할 수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교회는 아니 주님은 항상 나를 요구하십니다.
당연합니다가 아니라 주님은 아니 교회는 항상 무엇인가 부족하군요 라고 또 나란 말인가라고 말을 합니까?
누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에게는 참으로 귀하고 귀한 아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아이에게 모든 것을 아끼지 않고 그 아이의 필요를 다 사 주어야 합니다.
내가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하고 자지 못하더라도 그 아이에게만은 다 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어느 날 밤 그 아이는 불행하게도 죽고 말았습니다.
지금 내 아들은 저에게 한 푼의 돈을 요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이는 죽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살아있는 한, 교회가 건재하면서 세상을 축복하는 한, 그 교회는 움직이기 위해 무엇인가를 나에게 요구할 것입니다.
교회가 죽고 나면 여러분의 아무런 도움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교회는 여러분에게 아무런 도움도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교회가 살아 있어서 나에게 교회의 유지를 도울 수 있는 특권을 가졌다는 사실에 대해서 나를 필요로 하다고 그렇게도 간청을 하는데 얼마나 감사할 일이 아닙니까?
나의 삶은 예수님께 드려진 5병2어가 5천 명을 먹이기 위한 제물
나를 예수님의 손 위에 놓으신 후 하나님께서 축사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5,000명을 먹이고 12광주리가 철철 넘치게 하옵소서. 이런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