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자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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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351회 작성일 2014-12-02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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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2:25-32 위로자를 기다리며
구약시대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년 동안이나 이스라엘에는 하나님의 뜻을 영감 받은 선지자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의 교통이 단절되니 이스라엘의 상황은 캄캄하기만 하였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이스라엘의 정치적인 상황은 이스라엘이 헬라의 식민통치에서 받다가 또 다시 로마의 식민지 통치 하에 들어감으로 정치적, 종교적으로 암울한 침체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때 유대인들 사이에는 이스라엘을 구원 할 메시야를 기다리는 대망사상이 크게 무르익게 되었으며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이 적국의 압제에서 벗어나 정치적으로 해방을 가져다 줄 지도자로 서의 메시야 상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블레셋을 쳐서 이스라엘을 자유하게 한 다윗과 같은 그런 메시야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은 다윗을 최고의 지도자로 숭배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들이 기다려야 할 메시야는 세상의 왕이 아니라 온갖 죄에서 구원 할 어린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당시에 소수의 경건한 신앙인들은 구약성경에서 예언한 메시야의 상 그대로 자기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여 천국으로 인도할 메시야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일러 준 메시야는 어떠했습니까?
마1:18-25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오실 메시야 그리고 기다려야 할 메시야는 죄에서 구원 할 자이십니다
그 사실을 제대로 알고 기다린 인물이 본문에 나오는 시므온 이였습니다.
제대로 된 메시야 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메시야를 기다리는 시므온에게 성령이 역사하셨습니다.
그리고 일러 주셨습니다. 죽기 전에 만날 것이라는 말입니다.
25-26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말씀에 바로 서 있으면 그 말씀에는 성령이 함께 하십니다. 말씀에 의한 기도에는 성령이 응답 하십니다.
시므온이란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들으셨다는 의미 입니다.
일생을 메시야를 기다리다 성령의 계시로 구세주 예수님을 만난 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죽어도 한이 없는 것입니다.
27-30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 세상에서의 진정한 자유는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마8:31-37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원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죄에서의 자유입니다
인생이 겪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와 그들 내면에서 일어나는 슬픔과 괴로움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들이 괴롭고 슬프게 된 이유가 죄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렘2:19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반역이 너를 책망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모든 사람이 죄인이며 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인간이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죄로 인한 괴로움과 슬픔가운데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 때문에 괴로워하며 슬퍼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의 실존입니다.
롬3:23-24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에 죄가 주는 괴로움과 슬픔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진실로 모든 사람에게 위로가 필요합니다. 정말 인생들에게는 위로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죄의 영향력 아래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스라엘을 위해 그리고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는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의 위로는 주의 그리스도, 즉 예수 그리스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시므온은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입니다.
이번 성탄절을 맞이하여 온갖 죄악에서 신음하는 내가 하나님의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메시야를 작곡한 헨델의 첫 곡 제목이 내 백성을 위로하라 입니다.
사40:1-2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어떤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인생들에게 위로가 됩니까?
첫째, 예수님은 죄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인생들을 괴롭고 슬프게 하는 죄 문제는 오직 예수 그리스를 통해 해결될 수 있습니다.
죄 문제는 사람들의 노력과 의지나 선행과 봉사로 해결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통해 해결됩니다.
우리 가운데 슬픈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세상은 세상적인 것이 만족하지 못해서 일어난다고 해서 슬퍼하고 있습니다.
돈이 없어서 일어난다고 합니다. 아닙니다.
괴롭고 슬픈 우리의 인생가운데 죄 사함이 임할 때 우리는 참된 위로를 받게 됩니다.
둘째, 예수님은 죽음문제를 해결하십니다.
죽음 앞에서는 그 어떤 장사의 힘도 소용이 없고, 그 어떤 재력가의 재물도 소용이 없고, 그 어떤 권력가의 권세도 소용이 없습니다.
죽음 앞에서는 모든 것이 힘을 잃고 그 어떤 희망도 둘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삼 일만에 부활하심으로 죽음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심으로 말미암아 그를 믿는 우리 또한 마지막 때에 부활하게 됩니다.
계21:3-4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셋째, 예수님은 목자와 같이 늘 함께 하십니다.
양의 특징은 연약하고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 인생들의 목자가 되사 우리를 이끌어 주십니다.
병들고 연약하고 가난하고 귀신들린 사람들을 사람들은 부담스러워하며 내쫒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을 멀리하지 않으시고 영접하여주셨습니다.
마11: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세상 끝날 때까지 나와 함께 할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부모도 형제도 자식도 아닙니다.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까도 문제이지만 어떻게 마칠까가 더 문제입니다.
주님의 위로가 아니면 너나 할 것 없이 아무런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아무런 믿음을 둘 의미도 없는 것입니다. 예수가 나의 존재 의미요 나의 전부입니다.
하이델 베르그 요리문답에 나오는 첫 질문에 이런 질문이 있습니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당신의 유일한 위로는 무엇입니까?
살아서나 죽어서나 나는 나의 것이 아니요 몸도 영혼도 나의 신실한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보혈로 나의 모든 죗값을 완전히 치르고 나를 마귀의 모든 권세에서 해방하셨습니다.
또한 하늘에 계산 나의 아버지의 뜻이 아니면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나를 보호하시며 참으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나의 구원을 이루도록 하십니다.
그러하므로 그의 성령으로 그분은 나에게 영생을 확신시켜 주시고 이제부터는 마음을 다하여 즐거이 그리고 신속히 그를 위해 살도록 하십니다.
왜 주를 위하여 사는 줄 아시기 바랍니다. 주의 위로가 없이는 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입니다.
고후1:3-5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제가 아무리 바라보아도 이 예배에 참여한 분은 주님의 위로가 없이는 살아 갈 수가 없는 자입니다.
모든 위로가 되시는 주님을 이번 성탄절에 큰 선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약속한 말씀대로 기다리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내로 결실하는 것입니다.
눅8:12-15 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가서 그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련을 당할 때에 배반하는 자요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시므온은 연로한 선지자이다. 그는 예수를 만난 즉시 그리스도가 오셨다고 전한 첫 선지자가 된 셈이다.
그의 생애는 두 가지 주제가 있다. 하나는 기다림이고 또 하나는 만남이다.
성경에는 그를 가리켜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충실히 준수한 의로움이 따랐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겸손히 순종하는 경건이 있었다.
이 사람이 바로 기다리는 선지자이다. 그는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고 하였다.
카네기의 사무실에 그림 한 점이 걸려 있었는데, 아주 낡은 배가 바닷가 모래 언덕에 걸려 있고 노도 모래 위에 놓여 있는 그림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그림의 의미는 그 그림 밑에 쓰여 있는 글귀 때문에 더욱 유명합니다. 뭐라고 쓰여 있는가 하니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고 쓰여 있었답니다.
윌리암 왈스톤이라는 심리학자가 3천명의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해보니까 94%가 기다림 때문에 산다고 했다고 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꿈을 가지고 기다리며 산다는 이야깁니다. 사람은 말씀을 기다리는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말씀을 읽고 듣고 그 가운데 지키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위로의 주님은 약속대로 오심
말라기 선지자 이후에 이스라엘은 400년 동안 영감 받은 선지자 없이 침묵의 시대를 살았습니다.
이런 때에도 포기하지 않고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예레미야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하셨습니다
시므온은 메시야를 보자마자 주의 구원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메시야를 통해서 이루어질 구원의 약속의 성취를 본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이 완성된 시대에 살아갑니다. 얼마나 복된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예수는 우리의 영광이 되심
성령의 위로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이번 성탄절이 놀라운 감격의 성탄절이 되게 될 줄 믿습니다.
31-32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요즈음 신앙이 너무 편의주의로 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신앙은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끝자락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예배시간을 지키고, 기도를 하고, 여러 가지 일들과 행사를 하며 교회가 일정하게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서 일을 할 때 무심하거나 하찮게 지나칠 수도 있지만, 그 작게 보이는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위한 많은 단체들, 이론과 철학과 신학과 운동, 모임과 활동이 있었겠지만 하나님을 기쁘게 하신 것은 바로 성령의 감동을 따르는 시므온과 율법을 지켜 행하는 요셉과 마리아의 행동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받을 위로와 구원은 당시 헤롯에 의해 어린 생명들이 죽어갈 때 어렵게 살아난 한 생명, 한 영혼을 존귀하게 바라보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시므온이 본 것은 무엇일까요? 이사야 예언자는 그 메시야에 대해 어린 순 같고, 마른 땅에서 솟아 나온 새싹과 같다고 했습니다.
모양도, 풍채도,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도 없다고 합니다. 사람들에게 멸시와 버림을 받고 왕 따를 당해 고통을 많이 겪어 언제나 병을 앓는다고 합니다.
비둘기 두 마리 바치러 온 사람의 행색이 얼마나 초라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시므온은 하찮게 보지 않았습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으며, 성령의 지시를 따르며,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시므온은 갓 태어난 예수를 품에 안고 축복합니다. 빛이요, 영광이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다양하고 많은 것들을 누리며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인간은 그것을 다 누린다 해도 그것으로 만족할 만큼 스마트하지가 않습니다.
오직 나의 위로는 구원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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