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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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766회 작성일 2009-12-24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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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18-25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알렉산더 플레밍(1881-1955)은 페니실린을 발견하여 인류에 지대한 공헌을 한 영국의 세균학자입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당신은 지금까지 인류가 발견한 것 가운데 가장 위대한 발견을 하였습니다고 말을 할 때에 그가 발견한 페니실린이 가장 위대한 발견이라고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일생 중에 내가 발견한 것 중에 가장 위대한 발견은 내가 죄인이라는 것과 죄의 사망 가운데서 나를 구원하시는 이가 예수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라고 대답을 하였다고 합니다.
인류의 질병에서 치유하기 위해 발견한 페니실린의 효과보다도 죄와 사망에서 생명으로 인도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한 것이 가장 위대한 발견이라는 것입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셨습니다.
♬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백성 맞으라
그래서 성탄절이라는 즐거운 시즌이 온 땅에 방방곡곡에 전해 내려오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한국 땅은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온 몸을 움츠리게 만드는 추운 겨울이지만 제가 지난주 다녀온 베트남 호치민등 베트남 남부는 영상 30도를 오르내리는 땀을 뻘뻘 흘리는 한 여름입니다.
제가 그 곳에 있으면서 깜짝 놀란 사실이 있습니다.
불교요 우상의 나라요 아직도 사회주의 공산사상을 가진 그 곳에서 성탄절의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탄 트리와 그리고 장식등 고급 호텔, 백화점 그리고 상점 주점 등에서 성탄절 분위기를 연출하니 곳곳에서 그런 광경을 보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성탄절이었습니다.
예수님과 상관이 없이 성탄절을 즐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1: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다고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해 마다 연말이 되면 많이 듣는 말들이 있습니다.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한 해를 보내고…
제가 이 나이가 되도록 살아 왔지만 언제나 그 해는 다사다난했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올 한해도 어느 해보다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가정적으로 교회적으로 국가적으로 세계적으로 그러했습니다.
사실 어느 한 해가 평안했던 때는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올해의 십대뉴스가 어떠했고 지난 100년간의 10대 뉴스는 1. 미국이 일본에 원자탄을 투하(1945) 2. 러시아 혁명으로 공산권 등장(1917) 3. 독일이 폴란드 침공으로 제2차 세계대전 발발(1939) 4. 미국 우주인 닐 암스트롱이 달에 착륙(1969) 5. 베를린 장벽붕괴와 소련의 붕괴(1989) 6. 연합군이 나치독일에 승리(1945) 7. 오스트리아 왕세자 암살-세계 1차 대전 발발(1914) 8. 라이트 형제 동력비행기로 공중비행(1903) 9. 인류의 최초 항생제 페니실린 발견(1918) 10. 컴퓨터 시대 등장(1946) 라고 합니다.
올 한해나 지난 100년이 아니라 지난 인류 역사 이래로 가장 큰 사건이 무엇이며,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사건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신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예수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신 사건이야 말로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사건이요, 기적중의 기적입니다.
성육신하신 예수님이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도 그리고 오고 오는 모든 세대에 가장 큰 영향력을 주셨고, 주실 분입니다.
그런데 이 예수 그리스도를 빼버리고 인생을 논하고 세상사를 논하고 그리고는 성탄절을 즐기고 있으니 너무나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까? 무엇인가? 크게 잘못되어가고 있습니다.
세간(世間)에가장 많이 읽히고, 가장 많이 팔리는 책을 선정할 때도 성경을 아예 제쳐놓고 베스트셀러를 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은 언제든지 베스트셀러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많은 영향력을 끼친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방송이나 신문에서 10대 뉴스에 넣지 않고, 올 해의 인물에 선정되지 않습니다.
아예 매스컴에는 말하지 않는 것이 관례가 되어 있으니 사실을 사실로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와 전혀 상관없는 성탄절을 베트남에서도 징글벨 징글벨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영생을 주시기 위하여 멸망함을 면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선물로 주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누구든지 믿으면 됩니다.
이 시간에 예수 그리스도 없이 살아온 내 삶에 멸망을 면케하고 생명을 얻게 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선물로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 줄 아십니까?
성령으로 잉태하셨습니다.
20절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본문에는 마리아와 요셉이 약혼을 하기는 하였는데 아직 동거는 하지 않았습니다.
약혼은 법적으로는 부부가 되지만 약혼후 대략 1년 정도 있다가 결혼식을 하고 집으로 데려옵니다.
그 기간은 약혼한 여자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기간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18절 임신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이 임신은 요셉과의 사이에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무엇입니까? 이것은 생물학적이 아닌 성령으로 된 것이라고 천사가 일어 주었습니다.
이렇게 나심은 나를 죄에서 구원해 주시려는 것임을 말씀했습니다.
인간의 모든 문제에는 죄가 바탕이 되어있습니다.
이 죄가 인생의 주인이 되어 죄의 종이 되어 사망의 삶을 살게 만드는 것입니다.
죄의 결과는 죽음이고 멸망입니다.
죄 아래 사는 인간의 인격은 병들거나 파손되어 있습니다.
고귀한 인간다움을 동물적으로 탐욕적으로 바꾸어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 아래 사는 인간은 어둠속에 사는 인생입니다.
날마다 사는 맛이 아니라 날마다 죽을 맛입니다.
이 죄의 문제에서만큼은 인간스스로 벗어 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오직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나의 죄를 대신 지시기 위해 오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살기 위하여 오신 분이 아니라 나의 죄값을 치루기 위해 죽기 위하여 오신 분이십니다.
히틀러가 특별히 신뢰하던 신복 중 하나인 알베르트 슈페르라는 사람은 공학자로 당시 제2차 대전을 치를 때, 독일군이 승리할 수 있도록 독일의 모든 공장을 100% 가동시키는데 천재적인 지혜를 발휘했던 전범자입니다.
독일이 패하고 전범 24명이 재판을 받았는데, 그 가운데 슈페르도 있었는데 다른 전범들은 모두가 히틀러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며 자신의 죄를 부인했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슈페르만이 자신의 죄를 법정에서 인정하여 20년 형을 언도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감옥에서 형을 살고 나오자마자 여러 권을 책을 쓰기 시작했는데 미국 ABC 방송 기자가 그와 함께 인터뷰를 한 일이 있습니다. 기자가 질문했습니다. 당신이 초창기에 쓴 책을 보면, 나의 죄는 절대로 용서 받을 수도 없고, 용서 받아서도 안 된다.는 말이 있던데요.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습니까?
슈페르가 아주 슬픈 기색을 띠며 대답했습니다. 나는 내 죄값을 치르느라고 20년 형무소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죄 값을 다 치르고 석방이 되었습니다. 사실 내 몸은 자유인입니다.
그러나 내 마음에는 내가 범한 죄는 절대 용서 받을 수가 없다고, 그리고 용서 받아서도 안 되는 죄라고 똑 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2차 대전 때, 희생당한 수백만의 사람들을 생각하면 내 죄는 용서 받을 수 없습니다.
그가 형무소에서 죄값을 치렀고 그리고 수십 년 동안 자신의 범죄를 철저하게 책임지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처절하게 참회의 길을 찾고 있었지만, 죄책감에서 자유 할 수는 없었습니다. 자신 힘으로는 죄책감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무섭고 잔인한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자살로 이 세상을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람이 스스로 자기 죄에서 빠져 나올 수 있습니까?
그럴 수가 없습니다.
왜요 예수님만이 우리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예수님의 나심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함이십니다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21절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그러기에 예수님의 나심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합니다.
그 예수님을 믿음으로 내가 죄에서 용서받고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나심은 바로 이런 역사를 이루기 위함임을 말씀했습니다.
4세기경의 이야기입니다. 아내를 잃은 한 남자가 수도원으로 들어갈 것을 결심했습니다. 그에게는 데오도르라는 열다섯 살 난 딸이 있었는데 그 당시 수도원은 여자들이 들어갈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여자들을 수용할 수 있는 처소도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고민하다가 딸을 남장시켜 수도원에 데리고 들어갑니다.
남장을 한 데오도르는 빨래나 요리 같은 궂은일을 도맡아서 했는데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죽게 되고 데오도르는 그대로 수도원에 남아 계속해서 궂은일을 하며 시장에 나가 식료품을 사오는 일도 하게 되었습니다.
시장으로 가는 길 중간쯤에 한 여관이 있는데 여관집 딸이 어느 군인과 정을 통하고 그로 인해서 임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임신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 큰 곤욕을 치르게 되니 날마다 여관 앞을 지나는 미남 수도사에게 강간을 당했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딸 아버지는 수도원에 찾아가 온갖 행패와 난동을 부렸지만 데오도르는 아무 변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데오도르는 그런 와중에서도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아가씨가 거짓말을 하고 있지만 내가 진실을 말하면 이 아가씨의 삶이 어떻게 될까? 이 아가씨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내가 모함을 받는 것이 나을 거야.
어쩌면 우리 수도사 중의 누군가가 죄를 지었는지도 몰라. 만약 사실이 알려지면 그는 이 수도원에서 쫓겨나게 될 것이고, 또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아주 타락해 버릴 수도 있어. 내가 그들의 영혼을 위해서 대신 십자가를 지도록 하자.
데오도르는 심한 매를 맞고 마을 사람들의 용서를 받고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 불쌍한 죄인을 용서 하소서. 라는 팻말을 들고 수도원 앞에 앉아 있는 벌을 3년간이나 받습니다. 힘든 노동만을 하게 됩니다. 동료 수도사들의 심한 멸시를 받으며, 여자의 몸으로 감당하기 힘든 노동으로 인해 데오도르의 몸은 갈수록 쇠약해지고 결국 42세의 나이로 죽고 맙니다.
수도사들은 죽은 데오도르의 시신을 씻기 위해 그의 옷을 벗기다가 깜짝 놀라고 맙니다. 데오도르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던 것입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데오도르를 성녀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예수님은 자신의 희생을 통해 나를 구원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항상 함께 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34세에 죽은 젊은 부인 에디스 류스는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삶에서 경험하는 나의 힘든 어떤 십자가조차도 하나님의 영광과 나의 유익을 위해 사용될 수 있음을 아는 것은 큰 기쁨이다. 이 기쁨은 나의 상황이 어떻든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관여하신다는 것을 알고, 영혼의 깊은 평안함을 맛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기뻐할 때 함께 기뻐하시며, 내가 울 때 함께 우신다. 하나님은 항상 내 곁에 계신다. 임마누엘 하나님이시다. 이 사실을 아는 것이 궁극적인 기쁨이 된다. 그것은 죽음이나 우울함, 의심, 그리고 그 어떤 것으로부터라도 나를 약화시킬 수 없는 강한 것이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보다 더한 기쁨이 있겠는가?
예수님은 나 같은 죄인들을 만나러 죄악된 세상에 오셨습니다.
사1:18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고 하십니다.
이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하나같이 새로운 삶을 살 뿐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구속의 은총까지 누리게 됩니다.
누가복음 7:11-17 나인성 과부는 어느 날 아들이 그만 죽고 말았던 것입니다. 절대절망의 순간이었을 때에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그녀는 절망에서 구원받는 행복을 얻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절대 절망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나인성 과부를 보고 울지 말라 하시고 아들을 살려서 과부에게 다시 돌려주었습니다.과부는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영혼의 구원을 받았습니다.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자신의 문제 때문에 헤매다가 주님을 만나고 그분 앞에서 기도하다가 분명한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되는 예가 많습니다. 그리고 살아 있는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9: 1- 10 예수님과 세무서정인 삭개오의 만남에 관한 기사가 있습니다.
지금 예수께서 내 앞에 지나가십니다. 그를 만나시기 원하십니까? 그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 주시기 바랍니까?
삭개오는 나무에서 내려와 예수님을 그의 집에 모시고 그 마음속에 영원히 모실 때 놀라운 기쁨을 얻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기쁨을 얻기 원하십니까? 거리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구경하러 나갔었습니다. 그러나 진정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삭개오 뿐이었습니다. 예수님과 만남의 기회를 가진 삭개오는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나에게도 예수님과의 이런 만남이 필요합니다. 새 사람 되기를 원하십니까? 구원을 받기 원하십니까? 예수님을 만나십시다.
요한복음 4:2∼26 아무도 물을 긷지 않는 뜨거운 대낮에 한 여인이 물가로 나옵니다.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서 나온 여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인생에서 실패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무려 남편을 다섯 번을 바꾸어야만 했던 기구한 인생을 살았던 여인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사람과의 만남에서 부분적인 만남으로 인해 인생의 고통을 맛 본 여인이었습니다.
마음속에 외로움과 고독이 많았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오지 않는 대낮의 수가성 물가에서 이 여인은 예수님과의 첫 만남을 통해서 자기가 찾고 있었던 만남, 즉 전면적인 만남을 갖게 됩니다.
지금까지 세상 사람들은 자기의 재능이나 기술, 혹은 노동력등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만났지만 수가성 여인의 예수님과의 만남은 자기의 마음 속 아픔을 털어놓을 수 있는 변화의 시작이었습니다.
슬픔과 고독 속에 허덕이던 그 여인을 예수님은 만나주셨을 뿐 아니라 문제를 해결해주셨습니다.
전인격적인 만남이었습니다. 설명하지 않아도 그 여인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수용해 주는 만남이었습니다.
이밖에 성경에 보면 예수님과 만남은 역사를 바꾸어 놓는 역사적 만남이었습니다.
죄인 된 인생은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이 죄인 된 나를 만나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만 영접하면 누구든지 구원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죽음의 자리까지도 구원을 주시고 함께 하실 것입니다.
이번 성탄절에 이 같은 축복을 누리는 내 인생에 제대로 된 즐거운 성탄절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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