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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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530회 작성일 2010-02-24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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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2:1-12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
어제 유진이라는 아이의 인사를 받았습니다. 목사님 안녕 하세요 오냐? 그런데 나는 안녕하지 못한 것 같아 라고 했더니 뭐가 안녕하지 못해요 예수님이 오신 성탄절인데요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한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성탄절이란 예수님이 오신 날을 기념하는 날이요 예수님 때문에 언제든지 무엇이든지 안녕 할 수 있습니다.
빌4:11-13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할렐루야!
일찍이 다윗왕은 시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예수님은 구세주요 온갖 죄의 값에서 억압되고 죽을 수밖에 없던 인생에게 자유를 주셨으니 죽음도 생명으로 바꾸시고 그 능력으로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절대 주권자 이신 왕이십니다.
예수님이 왕이라고 하니 이 세상에서는 문제가 심각해졌습니다.
당시의 유대 지방의 왕은 로마의 분봉왕인 헤롯이 절대 주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동방의 별을 연구하는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하는 말이 2절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경배하러 왔노라고 하였을 때
헤롯왕과 예루살렘의 사람들이 듣고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아니 왕이라니...... 나라의 흥망성쇠(興亡盛衰) 개인의 생사화복이 주께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롬11:33-36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내 인생 내 삶을 주관하는 만왕의 왕이 예수님이신 줄 알지 못하신다면 내 인생의 문제는 심각해집니다.
예수를 왕으로 받아 드린다면 부족함이 없는데
말 그대로 안녕입니다. 그런데 모든 이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받아 드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당시 로마의 분봉(分封)왕인 헤롯이 자기 외에 왕이 출생했다는 말을 듣고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모든 대제사장과 서기관을 종교지도자들을 모아 놓고 왕이 어디서 나겠느냐? 라고 물으니 해답이 나왔습니다.
유대 땅 베들레헴입니다. 미가5:2 예언이 되어있었습니다.
유대땅 베들레헴아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유대의 백성들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어찌 이방인인 동방 박사들이 어떻게 이 소식을 알게 되었을까요?
다니엘서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바벨론에는 박사라고 불리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하는 역할은 왕을 자문하는 일이었습니다.
단2:12-13 그런데 그들이 한번은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해석하지 못한 연고로 다 죽게 되었습니다.
왕이 이로 인하여 진노하고 통분하여 바벨론 모든 박사를 다 멸하라 명하니라 왕의 명령이 내리매 박사들은 죽게 되었을 때에 다니엘이 왕의 꿈을 해석해 주었습니다.
그 결과 다니엘은 박사들의 어른, 곧 박사장이 되었습니다.
바벨론이 멸망하고 메데 바사 제국이 들어섰을 때도 박사들은 여전히 존재했습니다.
에1:13 왕이 사례를 아는 박사들에게 묻되 왕이 규례와 법률을 아는 자에게 묻는 전례가 있는데.....
바사 왕 아하수에로는 왕명을 거역한 왕후 와스디의 일로 인해서 박사들의 자문을 구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이들 박사들은 바벨론 시대나 그 뒤의 바사 시대에 와서도 왕의 참모 역할을 하면서 그 나라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추정해 볼 때에 그들은 바벨론 시대 때, 자기들의 어른이 된 다니엘을 통해서 메시야에 대한 가르침을 접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많은 유대인들은 바사 왕 고레스 때에 유대 땅으로 되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돌아오지 않고 바사 땅에 그대로 남아서 사는 유대인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들 유대인들을 통해서, 구전으로 그 땅의 박사들은 또한 메시야 사상을 접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들 박사들 가운데 몇몇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왔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예루살렘으로 오면 당연히 그곳의 사람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신 지를 다 알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유대의 왕도 예루살렘의 시민들도 아무도 알지를 못했습니다.
요1:11-12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그래서 동방 박사들은 만나는 사람마다 계속해서 묻고 또 물었던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사람들은 알지를 못하고 있는데, 동방의 박사들은 메시아의 탄생을 알고 만나러 와서 만난 것입니다.
오늘 성탄의 소식이 온 땅에 퍼졌는데 모두가 성탄을 축하하는데 나만 아직 모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어제 저녁에 성탄전야의 멋있는 공연 무대가 벌어졌습니다.
성탄절 축하 행사에 동참을 하는데 진정 예수님을 만나셨습니까?
이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예수님 당신은 왕이십니다 라고 고백하는 자입니다.
어떤 왕이신 줄로 아십니까? 죄악과 고통에서 구원하시는 평화의 왕이십니다.
눅2:11-14 천사가 일어 줄 말이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1945년 초 미국의 뉴멕시코 사막에서 핵실험이 진행되었습니다. 최초의 원자폭탄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원자폭탄이 폭발했을 때 지구에서 받는 태양 섬광의 100배에 이르는 섬광(閃光)이 일어났습니다. 즉 원자폭탄이 터질 때 쏟아진 빛으로 인해 대낮보다 100배가 밝아졌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전 세계가 경악을 했습니다. 이 폭탄은 몇 달 후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지게 되었고 인류 역사 가운데서 가장 비극적이고 처참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제가 나가사키 원자폭탄 피해 박물관에 가보니 이거 보통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이 되지 않습니까?
베트남 전쟁이나 625전쟁은 그래도 여기에 비하면 그 비참함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 전쟁은 역사이래로 끝나지 않고 불행하게도 우리 민족은 세계 유일한 분단국으로 남아 있으며 매일 매일 전쟁의 소식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김정일씨는 핵폭탄을 이미 만들어 놓고 위협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민족은 참 평안하게 살아가고 있으니 하나님의 은혜 인줄로 압니다.
이 가공할 무기를 개발하는데 관여했던 오펜하이머 박사가 의회에서 설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여러 가지 질문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한 의원이 질문하기를 원자폭탄을 막을 무기는 없습니까? 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오펜하이머 박사는 침통한 표정을 지었고 약간의 침묵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박사는 대답하기를 원자폭탄을 막을 무기는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 밖에는 없습니다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전쟁과 싸움의 무기는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의해 억제될 수 있습니다.
평화를 사랑하고 평화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은 평화의 왕이신 우리 주님을 믿고 그 분에게 순종할 때 생겨납니다.
평화의 왕이 내 속에 오시면 야수와 같은 내 마음이 어린 아이와 같이 온순한 마음으로 바뀌게 됩니다.
평화의 왕이 내 마음 속에 오실 때, 사자와 같이 거친 인간의 마음이 어린 양과 같은 마음으로 바뀌게 됩니다.
성탄절을 맞이하여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을 맞이할 때에 비로소 내 마음부터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뀌어지고 내 속에 있는 평화가 내 가정 내 이웃에게 전하여 질 것입니다.
사 11: 6-8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평화의 왕이 다스리는 곳에서는 이리 표범 사자 곰 독사와 같은 육식 동물, 다른 약한 짐승을 잡아먹는 동물들과 어린 양이나 어린 염소와 같이 잡아먹히는 약한 동물들이 함께 눕고 살아간다고 했습니다. 평화의 왕이 다스리면 힘 있는 자와 힘없는 자가 함께 공존하는 세상이 됩니다. 또한 평화의 왕이 오시면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는다고 했습니다. 사자가 풀을 먹는다는 것은 사자의 체질이 바뀌는 것을 말합니다.
육식동물의 체질에서 채식동물의 체질로 바뀌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평화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예수님의 체질로 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른 사람을 밟고 지배하는 데서 쾌감을 누리던 것에서 섬기고 사랑하는 데서 기쁨을 누리는 체질로 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데서 인생의 보람을 느끼는 것에서 자신을 버림으로서 오히려 보람을 느끼는 것으로 그 체질이 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이 왕으로 느끼는 세상왕 헤롯은 어떠하였습니까?
헤롯왕에 대한 정보는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가 쓴 유대 전쟁사와 유대 고대사에 많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묘사되고 있는 헤롯왕은 유능하고, 교활(狡猾)하고, 잔인하다고 했습니다.
헤롯은 자기를 싫어하는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역사가들은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을 제 1성전, 포로 후에 스룹바벨이 재건한 성전을 제 2성전, 그 뒤에 헤롯왕이 다시 재건한 성전을 제 3성전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헤롯은 유능했지만 몹시도 교활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정치적 술수와 음모에 능한 자였습니다.
그의 교활한 모습을 충분히 엿볼 수 있습니다. 그는 왕으로 오신 예수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동방 박사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그들에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8절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얼마나 위선적입니까? 그는 자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교활하게도 경건을 가장했던 것입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헤롯의 음모를 알고 다른 길로 가라는 지시를 받고 예수님을 만나고 다른 길로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16절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 본 그 때를 표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이 얼마나 잔인한 짓입니까? 그는 자신의 왕권을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자기의 아내, 처남, 장모, 심지어는 자기의 아들들까지도 서슴지 않고 죽였던 사람이었습니다.
헤롯의 잔인함의 극치는 그가 죽기 얼마 전에 내렸던 명령에서 지극히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의 부하들에게 예루살렘의 저명한 인사들을 붙잡아 감옥에 가두도록 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가 죽을 때에 그들도 함께 처형하라고 명했습니다. 자기가 죽으면 아무도 슬퍼하지 않을 것 같으니까, 그들을 함께 죽도록 만들어서 예루살렘에 큰 슬픔이 있도록 만들겠다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심보였던 것입니다. 이게 자신을 최고 여기는 인간의 심보입니다.
롬3:10-18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예수님을 모시지 않는 인생을 산다면 누구든지 내가 스스로가 어떤 일을 당하면 무슨 짓을 할지 모릅니다.
평강의 왕 예수님은 영원히 통치하실 분이십니다.
어떤 출판사에서 한번은 이런 예문을 제시하면서 공모를 하였다고 합니다.
당신은 과연 어떤 사람을 당신의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때 전국각지에서 많은 엽서들이 날라 왔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1등으로 뽑힌 엽서가 무엇인 줄 아십니까? 온 세상이 다 내 곁을 떠났을 때에도 나와 함께 있어 주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라고 하였습니다.
모두가 떠날지라도 내 곁에 함께 있어 주는 사람! 세상에 그런 친구가 있습니까?
내가 잘되고 뭔가 잘 나가는 듯싶으면 너도나도 사람들이 나를 아는 체하고 나의 친구가 되어 주는 것 같지만, 막상 내가 인생에서 실패하고 내가 아무 것도 가진 것도 없고, 내세울 것이 없을 때에, 내가 병들어 죽어갈 때에 그때도 내 곁에 있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근본적으로 고독하고 외롭고 쓸쓸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무어라고 말씀하십니까?
임마누엘!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누가 나 같은 자를 위하여 목숨까지 주시면서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까?
나와 함께 있기를 좋아하는 자가 한명도 없고 나를 떠나는 자가 더 많지 않습니까?
내 아내 내 자식이 다 떠나는 판에 그래도 예수님은 나와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환영하고 그리고 엎드려 경배하여야 합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관련하여 세 종류의 다른 반응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그 이후의 역사 속에서도 계속 반복되는 현상입니다.
첫째, 헤롯처럼 예수님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둘째,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처럼 예수님에게 무관심한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셋째, 동방 박사들처럼 예수님을 경배하는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 가지 경우 가운데 어디에 해당합니까? 물론 여기 있는 우리 가운데는 헤롯처럼 예수님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줄 압니다.
그러나 행여 우리가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종교인들처럼 우리를 찾아오신 예수님에 대해서 무감동하고, 무관심하지는 않습니까?
그들이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사실을 명심합시다.
나도 동방 박사들처럼 예수님을 왕으로 경배하기를 진정으로 원합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을 모두다 예수님께 드리시기 바랍니다.
당시에 가장 귀한 것 황금과 유황과 몰약을 엎드려 예수님께 드리며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주를 위하여 무엇을 드려도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
주를 위하여 살아가는 삶 조금도 후회가 되지 않습니다.
나도 동방 박사들처럼 나의 왕이신 예수님께 드리기 위해서 나의 보배함을 활짝 열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내 최선을 다 드리는 성탄절이 되십시오
예수님은 내 모든 것을 평강으로 그리고 세상 끝날까지 그리고 영원히 함께 하실 것입니다.
계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백성 맞으랴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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