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기적은 예수님과 상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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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579회 작성일 2010-02-24 11:52본문
요한복음 2:1-10 삶의 기적은 예수님과 상관이 있습니다.
당신은 기적을 믿습니까? 라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을 하십니까?
미국 AP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인의 80퍼센트는 하나님의 기적을 믿는다고 합니다.
저 역시 기적을 믿습니다.
왜요 기적이 있어야만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살아온 경험들을 가만히 생각해 보니 모두가 기적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도 기적이요 여기까지 이만큼 된 것도 기적이요 앞으로도 기적이 아니면 살아갈 수 없고 기적으로 살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의 최고의 왕 다윗 왕은 시편 40:5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도소이다 내가 들어 말하고자 하나 주의 앞에 베풀 수도 없고 그 수를 셀 수도 없을 정도라고 하였습니다.
목동 시절에서 왕이 되기까지 많은 기적을 체험을 했습니다.
사자 곰을 찢어 죽이고 골리앗을 쳐서 이스라엘을 블레셋 사람에게서 구원하고...
뿐만 아니라 그는 왕이 되고 나서도 많은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수를 셀 수도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저 역시 생각을 해보니 다 기적이었습니다.
오늘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것, 나 같은 자가 하나님을 믿게 된 것도 모두 기적이었습니다.
이것저것 치면 도저히 드릴 수 없는 것 같은데 보십시오 다른 이들은 드리지 못하는 자들이 많지 않습니까?
기독교는 기적의 종교라기보다는 모든 삶이 하나님의 기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본문에도 잔치 집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남자 여자가 만나 시집 장가가는 것도 기적입니다.
어떻게 눈이 맞아서 하고 많은 사람들 중에 짝을 맞추기 기적이지 않습니까?
그 중에 오늘은 상식적이 아닌 본능적이고 이성적이 아닌 화학적으로 물리적으로 변화를 가져 오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물이 포도주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포도주가 많이 있는데 별로 필요가 없는데 물이 포도주가 되었다면 별로 관심도 없고 기적이라고 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침 포도주가 다 떨어져서 절실히 필요로 하고 없으면 크게 낭패를 당 할 터인데 물이 포도주가 되었으니 기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낭패를 당 할 수밖에 없는 어려운 상황이 오히려 칭송을 받는 현장으로 바꿔 버렸습니다.
10절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오늘 사랑하는 성도들의 삶에도 이런 기적이 일어 날 줄로 믿습니다.
어떻게 이런 기적이 일어났을까요?
하나님의 기적이 나의 삶에 필요로 하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모든 성도들을 바라 볼 때에 그냥 그렇게 이만하면 만족해하며 살아 갈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무엇이 부족해도 다 부족합니다.
저희 교회도 저희 집도 그렇고 장로님들도 보니깐 안수집사님들도 별 볼일이 없는 것 같고 권사님들도 말 할 나위없고 집사님 권찰님 심지어는 어린 학생들 소리치며 돌아다니는 아이까지 무엇인가? 2%가 부족합니다.
다시 말하면 기적이 일어나야 할 것 같습니다.
무엇인가 채워지고 바꿔야만 합니다.
이 혼인 예식을 치루는 잔치 집에도 만족 할 것만 같았는데 부족함이 드러났습니다.
무엇인가 기적이 일어나야 합니다.
이 모습을 본 마리아가 걱정이 되어 예수님께 도움을 청하였습니다.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고 하십니다.
아하! 부족을 채우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기적을 많이 체험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그가 하프를 뜯어가며 즐겨 부르는 노래에 누가 자신의 부족을 채워 주시는 분이 신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나로 하여금 푸른 초장에 뉘게 하시며 잔잔한 물가로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그런데 예수님은 마리아의 청을 응하지 않으시고 나와 상관(相關)이 없다고 하시며 아직 때도 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아하! 기적이란 예수님과 그것을 요구하는 자와 무슨 상관이 되어야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상관을 맺으니 기적은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삶의 기적을 일으키시기 위하여 오신 분이심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기원전 기원후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오시기 전의 세계와 예수님이 오신 후의 세계를 말하는 것 아닙니까?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의 인생과 영접 후의 인생이 또한 다르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삶의 현장에 상관 하시지 않을 때의 잔치 집은 즐거움이 없는 궁색함이 철철 흐르고 우울 할 뻔 했는데 예수님이 상관 하시니 기쁨이 충만한 즐거운 잔치집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날 내게 주어진 모든 삶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포도주가 아니라 그 포도주를 채워 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내 안에 있으면 무엇이든지 구하라 내가 시행 하리라 할렐루야!
로리베스존스(Laurie Beth Jones)가 쓴 최고경영자 예수(Jesus CEO)라는 책이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경영론과 리더십의 수많은 가치와 이론을 예수님께 배운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 내용 가운데 예수님은 화환이 아니라 꽃씨를 귀중히 여기셨다는 대목에서 이런 질문이 있습니다.
당신은 한 다발의 화환과 한 봉지의 꽃씨 중에서 어떤 것을 택하겠는가? 라는 질문이 있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환을 택한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만약 리더라면 그 꽃다발이 아무리 아름답다 하더라도 결국 시들고 만다는 한계를 깨닫고 씨를 수집하고 분류하여 뿌리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낼 것입니다.
아브라함 링컨이 만약 노예들이 필요하다는 증인들의 요구를 받아들였더라면 그는 그들로부터 화한세례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모든 사람을 위해 자유의 씨를 뿌리는 것을 선택함으로 인종해방이라는 기적을 맛보게 된 것입니다.
지혜로운 성도는 오늘도 예수 우리 왕이여 이곳에 오셔서 보좌로 주여 임하사 영광을 받아 주소서 라고 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과 상관을 짓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의지에 곧 그의 말씀에 내 마음과 몸이 빼앗기는 것입니다.
자신을 드림에 있습니다.
오늘날 안 되는 사람이 왜 되는가 하고 보니 자신의 의지를 주님께 드림이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출세하지 못하는 사람 굳은 의지가 결여됨으로서 항상 그렇고 그렇게 살아갑니다.
신앙생활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을 보니 한결같이 신앙의 굳은 의지가 없습니다.
그 결과 별로 좋지 못합니다.
1855년 어느 날, 클리브랜드(Glover Clevelabd, 1837~1908)라는 미국의 젊은이가 친구와 함께 도박장을 향해 가고 있었는데 도박장으로 향하던 길 가에는 작은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 교회 입구에 이런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롬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그 말씀을 읽고서 클리브랜드는 마음에 찔림을 받았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목사님이시고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랐는데 하고 그 말씀에 붙잡혀 버렸습니다.
그래서 친구에게 우리 오늘 도박장에 가지 말고 교회에 가자라고 친구에게 말했는데 친구는 무슨 소리야, 남자가 한 번 결심을 했으면 가야지, 거절하고 그 친구는 도박장으로 클리브랜드는 교회로 갔습니다.
그로부터 3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날 교회를 선택하였던 클리브랜드는 제 22대 미국 대통령이 되어 온 국민의 환호를 받으며 취임하고 있었는데, 그 순간 도박장으로 향했던 친구는 클리브랜드가 대통령이 되었다는 소식을 감옥에서 듣게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과 상관을 짓는 것은 기적만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롬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예수님이 함께 하심은 언제든지 그의 말씀으로 계십니다.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행하라
여대까지 상관없던 자들이 어떻게 예수님과 상관이 되십니까?
예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그리고 떠서 갖다 주어라
예수님은 말씀으로 상관을 맺게 하십니다.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는 말은 적당히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왜 신앙생활을 적당히 하면 되는 걸로 아시는 분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아마 우리 교회 다니면서 느끼는 점이 있을 것입니다.
신앙생활 적당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온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익숙한 자가 제대로 신앙생활에 하려면 참으로 힘이 들것으로 사료됩니다.
그러나 신앙의 좋은 습관을 드리기 위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경건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힘이 드는 만큼 축복이 되는 줄은 아시기 바랍니다.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는 말씀은 내가 해야 할 일감이 있습니다.
거기에 합한 일감이 생겼습니다.
두세 통 드는 항아리라고 하는데, 한통의 양이 약 40리터라고 합니다.
두세 통이면 120리터이고 여섯 개라고 했으니 모두 다 물을 가득 채우려면 720리터나 필요할 터인데, 물이 귀한 그 땅에서 720리터의 물을 길러서 항아리에 채우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7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인들은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아귀까지 가득 채웠습니다 할렐루야!
제발 적당하게 흉내만 내는 신앙생활 하지 마십시오
아무 것도 얻지 못합니다.
왜 신앙 생활하는데 아무 것도 못 얻느냐 흉내만 내기 때문입니다.
외식 형식은 한 번도 통한 적이 없습니다.
교회에서 주어진 직분이 기분 내키는 대로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충성해야 합니다.
주인이 오케이 할 때까지입니다.
맨날 오케이 사인은 내가 내고 있으니 문제입니다.
또 말씀하십니다.
하나를 순종하면 또 다음으로 나아가는 길로 인도하십니다,
계속 한 자리에서 머무는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을 너무 많이 봅니다.
그들은 다음 단계로 못 나아갑니다.
물을 채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성도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 빨리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자들을 보았습니다.
의욕은 있으나 실천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만하고 평을 하고 있습니다.
내일이 바쁜데 남의 일 간섭 할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이 하인들은 물을 채우니 이제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하십니다.
물을 채우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물을 떠다 갖다 주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포도주는 손님들에게 갖다 주어야 하는데 그 명령을 따르게 되면 포도주가 아니라 '물'을 갖다 주는 경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하인들은 순종할 뿐입니다.
물을 채우는 순종을 열심히 한 자가 물을 떠다 줄 수 있습니다.
물을 채우지도 못한 자가 어찌 물을 떠다 주는 일을 할 수가 있습니까?
물을 떠다 주라하면 미쳐서하고 있습니다.
주의 일을 하는 자들을 보고 우리 가운데 스스럼없이 미쳤다고 말을 함부로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방인들이 그런 말을 할 수는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베스도와 아그립바 왕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신을 헌신하는 바울이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배운 것이 없나 돈이 없나 권력이 없나 로마 시민권이 없나 그래서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너 미쳤니 라고 한 것입니다.
성도가 성도를 보고 주의 일을 하는 자들을 보고 대충하라고 하든지 미쳤니 라고 하는 자들도 있는데 이들이 공통적인 신앙의 모습은 제대로 물 한번 아귀까지 채워보지 못한 자들입니다.
작은 일에 충성한 자가 큰일에도 충성합니다.
한 번도 작은 일에 충성해 보지를 못한 자들이 어찌 큰일을 이루겠다고 하며 무슨 큰 기적 같은 일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기대했다가 실망이 되는 경우들이 많지요
이런 자들은 아무 일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순종은 믿음이요 이 믿음이 기적을 가져왔는데
물을 떠다 주었는데 마시니 포도주가 되었으니 그 맛이 베리 굿입니다. 할렐루야!
이 맛은 맛본 자만이 알 수 있습니다.
순종을 통해 당신의 삶은 더욱 풍성하게 하십니다.
제대로 순종한 번 해 보십시오
기적을 맛볼 것입니다.
기독교는 순종을 통하여 예수님과 상관함으로서 역사가 있습니다.
루터(Luther)는 말하기를, 순종은 이적보다 낫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후에 종교개혁의 과정을 이렇게 술회하였습니다.
내가 한 것이라고는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설교하고, 기록한 것밖에 없습니다. 내가 잠자고 비텐베르그에서 차를 마시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이 위대한 개혁의 역사를 성취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부족한 것은 외형적으로 나타나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상관하는 의지와 순종의 삶이 없는 것입니다.
당신은 기적을 믿습니까? 라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을 하십니까?
미국 AP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인의 80퍼센트는 하나님의 기적을 믿는다고 합니다.
저 역시 기적을 믿습니다.
왜요 기적이 있어야만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살아온 경험들을 가만히 생각해 보니 모두가 기적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도 기적이요 여기까지 이만큼 된 것도 기적이요 앞으로도 기적이 아니면 살아갈 수 없고 기적으로 살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의 최고의 왕 다윗 왕은 시편 40:5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도소이다 내가 들어 말하고자 하나 주의 앞에 베풀 수도 없고 그 수를 셀 수도 없을 정도라고 하였습니다.
목동 시절에서 왕이 되기까지 많은 기적을 체험을 했습니다.
사자 곰을 찢어 죽이고 골리앗을 쳐서 이스라엘을 블레셋 사람에게서 구원하고...
뿐만 아니라 그는 왕이 되고 나서도 많은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수를 셀 수도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저 역시 생각을 해보니 다 기적이었습니다.
오늘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것, 나 같은 자가 하나님을 믿게 된 것도 모두 기적이었습니다.
이것저것 치면 도저히 드릴 수 없는 것 같은데 보십시오 다른 이들은 드리지 못하는 자들이 많지 않습니까?
기독교는 기적의 종교라기보다는 모든 삶이 하나님의 기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본문에도 잔치 집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남자 여자가 만나 시집 장가가는 것도 기적입니다.
어떻게 눈이 맞아서 하고 많은 사람들 중에 짝을 맞추기 기적이지 않습니까?
그 중에 오늘은 상식적이 아닌 본능적이고 이성적이 아닌 화학적으로 물리적으로 변화를 가져 오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물이 포도주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포도주가 많이 있는데 별로 필요가 없는데 물이 포도주가 되었다면 별로 관심도 없고 기적이라고 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침 포도주가 다 떨어져서 절실히 필요로 하고 없으면 크게 낭패를 당 할 터인데 물이 포도주가 되었으니 기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낭패를 당 할 수밖에 없는 어려운 상황이 오히려 칭송을 받는 현장으로 바꿔 버렸습니다.
10절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오늘 사랑하는 성도들의 삶에도 이런 기적이 일어 날 줄로 믿습니다.
어떻게 이런 기적이 일어났을까요?
하나님의 기적이 나의 삶에 필요로 하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모든 성도들을 바라 볼 때에 그냥 그렇게 이만하면 만족해하며 살아 갈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무엇이 부족해도 다 부족합니다.
저희 교회도 저희 집도 그렇고 장로님들도 보니깐 안수집사님들도 별 볼일이 없는 것 같고 권사님들도 말 할 나위없고 집사님 권찰님 심지어는 어린 학생들 소리치며 돌아다니는 아이까지 무엇인가? 2%가 부족합니다.
다시 말하면 기적이 일어나야 할 것 같습니다.
무엇인가 채워지고 바꿔야만 합니다.
이 혼인 예식을 치루는 잔치 집에도 만족 할 것만 같았는데 부족함이 드러났습니다.
무엇인가 기적이 일어나야 합니다.
이 모습을 본 마리아가 걱정이 되어 예수님께 도움을 청하였습니다.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고 하십니다.
아하! 부족을 채우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기적을 많이 체험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그가 하프를 뜯어가며 즐겨 부르는 노래에 누가 자신의 부족을 채워 주시는 분이 신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나로 하여금 푸른 초장에 뉘게 하시며 잔잔한 물가로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그런데 예수님은 마리아의 청을 응하지 않으시고 나와 상관(相關)이 없다고 하시며 아직 때도 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아하! 기적이란 예수님과 그것을 요구하는 자와 무슨 상관이 되어야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상관을 맺으니 기적은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삶의 기적을 일으키시기 위하여 오신 분이심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기원전 기원후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오시기 전의 세계와 예수님이 오신 후의 세계를 말하는 것 아닙니까?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의 인생과 영접 후의 인생이 또한 다르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삶의 현장에 상관 하시지 않을 때의 잔치 집은 즐거움이 없는 궁색함이 철철 흐르고 우울 할 뻔 했는데 예수님이 상관 하시니 기쁨이 충만한 즐거운 잔치집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날 내게 주어진 모든 삶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포도주가 아니라 그 포도주를 채워 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내 안에 있으면 무엇이든지 구하라 내가 시행 하리라 할렐루야!
로리베스존스(Laurie Beth Jones)가 쓴 최고경영자 예수(Jesus CEO)라는 책이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경영론과 리더십의 수많은 가치와 이론을 예수님께 배운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 내용 가운데 예수님은 화환이 아니라 꽃씨를 귀중히 여기셨다는 대목에서 이런 질문이 있습니다.
당신은 한 다발의 화환과 한 봉지의 꽃씨 중에서 어떤 것을 택하겠는가? 라는 질문이 있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환을 택한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만약 리더라면 그 꽃다발이 아무리 아름답다 하더라도 결국 시들고 만다는 한계를 깨닫고 씨를 수집하고 분류하여 뿌리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낼 것입니다.
아브라함 링컨이 만약 노예들이 필요하다는 증인들의 요구를 받아들였더라면 그는 그들로부터 화한세례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모든 사람을 위해 자유의 씨를 뿌리는 것을 선택함으로 인종해방이라는 기적을 맛보게 된 것입니다.
지혜로운 성도는 오늘도 예수 우리 왕이여 이곳에 오셔서 보좌로 주여 임하사 영광을 받아 주소서 라고 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과 상관을 짓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의지에 곧 그의 말씀에 내 마음과 몸이 빼앗기는 것입니다.
자신을 드림에 있습니다.
오늘날 안 되는 사람이 왜 되는가 하고 보니 자신의 의지를 주님께 드림이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출세하지 못하는 사람 굳은 의지가 결여됨으로서 항상 그렇고 그렇게 살아갑니다.
신앙생활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을 보니 한결같이 신앙의 굳은 의지가 없습니다.
그 결과 별로 좋지 못합니다.
1855년 어느 날, 클리브랜드(Glover Clevelabd, 1837~1908)라는 미국의 젊은이가 친구와 함께 도박장을 향해 가고 있었는데 도박장으로 향하던 길 가에는 작은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 교회 입구에 이런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롬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그 말씀을 읽고서 클리브랜드는 마음에 찔림을 받았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목사님이시고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랐는데 하고 그 말씀에 붙잡혀 버렸습니다.
그래서 친구에게 우리 오늘 도박장에 가지 말고 교회에 가자라고 친구에게 말했는데 친구는 무슨 소리야, 남자가 한 번 결심을 했으면 가야지, 거절하고 그 친구는 도박장으로 클리브랜드는 교회로 갔습니다.
그로부터 3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날 교회를 선택하였던 클리브랜드는 제 22대 미국 대통령이 되어 온 국민의 환호를 받으며 취임하고 있었는데, 그 순간 도박장으로 향했던 친구는 클리브랜드가 대통령이 되었다는 소식을 감옥에서 듣게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과 상관을 짓는 것은 기적만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롬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예수님이 함께 하심은 언제든지 그의 말씀으로 계십니다.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행하라
여대까지 상관없던 자들이 어떻게 예수님과 상관이 되십니까?
예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그리고 떠서 갖다 주어라
예수님은 말씀으로 상관을 맺게 하십니다.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는 말은 적당히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왜 신앙생활을 적당히 하면 되는 걸로 아시는 분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아마 우리 교회 다니면서 느끼는 점이 있을 것입니다.
신앙생활 적당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온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익숙한 자가 제대로 신앙생활에 하려면 참으로 힘이 들것으로 사료됩니다.
그러나 신앙의 좋은 습관을 드리기 위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경건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힘이 드는 만큼 축복이 되는 줄은 아시기 바랍니다.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는 말씀은 내가 해야 할 일감이 있습니다.
거기에 합한 일감이 생겼습니다.
두세 통 드는 항아리라고 하는데, 한통의 양이 약 40리터라고 합니다.
두세 통이면 120리터이고 여섯 개라고 했으니 모두 다 물을 가득 채우려면 720리터나 필요할 터인데, 물이 귀한 그 땅에서 720리터의 물을 길러서 항아리에 채우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7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인들은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아귀까지 가득 채웠습니다 할렐루야!
제발 적당하게 흉내만 내는 신앙생활 하지 마십시오
아무 것도 얻지 못합니다.
왜 신앙 생활하는데 아무 것도 못 얻느냐 흉내만 내기 때문입니다.
외식 형식은 한 번도 통한 적이 없습니다.
교회에서 주어진 직분이 기분 내키는 대로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충성해야 합니다.
주인이 오케이 할 때까지입니다.
맨날 오케이 사인은 내가 내고 있으니 문제입니다.
또 말씀하십니다.
하나를 순종하면 또 다음으로 나아가는 길로 인도하십니다,
계속 한 자리에서 머무는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을 너무 많이 봅니다.
그들은 다음 단계로 못 나아갑니다.
물을 채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성도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 빨리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자들을 보았습니다.
의욕은 있으나 실천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만하고 평을 하고 있습니다.
내일이 바쁜데 남의 일 간섭 할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이 하인들은 물을 채우니 이제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하십니다.
물을 채우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물을 떠다 갖다 주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포도주는 손님들에게 갖다 주어야 하는데 그 명령을 따르게 되면 포도주가 아니라 '물'을 갖다 주는 경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하인들은 순종할 뿐입니다.
물을 채우는 순종을 열심히 한 자가 물을 떠다 줄 수 있습니다.
물을 채우지도 못한 자가 어찌 물을 떠다 주는 일을 할 수가 있습니까?
물을 떠다 주라하면 미쳐서하고 있습니다.
주의 일을 하는 자들을 보고 우리 가운데 스스럼없이 미쳤다고 말을 함부로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방인들이 그런 말을 할 수는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베스도와 아그립바 왕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신을 헌신하는 바울이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배운 것이 없나 돈이 없나 권력이 없나 로마 시민권이 없나 그래서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너 미쳤니 라고 한 것입니다.
성도가 성도를 보고 주의 일을 하는 자들을 보고 대충하라고 하든지 미쳤니 라고 하는 자들도 있는데 이들이 공통적인 신앙의 모습은 제대로 물 한번 아귀까지 채워보지 못한 자들입니다.
작은 일에 충성한 자가 큰일에도 충성합니다.
한 번도 작은 일에 충성해 보지를 못한 자들이 어찌 큰일을 이루겠다고 하며 무슨 큰 기적 같은 일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기대했다가 실망이 되는 경우들이 많지요
이런 자들은 아무 일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순종은 믿음이요 이 믿음이 기적을 가져왔는데
물을 떠다 주었는데 마시니 포도주가 되었으니 그 맛이 베리 굿입니다. 할렐루야!
이 맛은 맛본 자만이 알 수 있습니다.
순종을 통해 당신의 삶은 더욱 풍성하게 하십니다.
제대로 순종한 번 해 보십시오
기적을 맛볼 것입니다.
기독교는 순종을 통하여 예수님과 상관함으로서 역사가 있습니다.
루터(Luther)는 말하기를, 순종은 이적보다 낫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후에 종교개혁의 과정을 이렇게 술회하였습니다.
내가 한 것이라고는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설교하고, 기록한 것밖에 없습니다. 내가 잠자고 비텐베르그에서 차를 마시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이 위대한 개혁의 역사를 성취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부족한 것은 외형적으로 나타나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상관하는 의지와 순종의 삶이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