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최고의 기회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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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696회 작성일 2010-02-24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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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8:35-43 내 인생 최고의 기회 예수 그리스도
어제는 성남 화장장에 장례 예식 때문에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마침 첫 회에 화장을 하는 터라 1회에 15위를 하게 되는데 영구차들이 차례로 들어와 운구를 하는데 무슨 짐을 나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 관에 기독교 십자가를 표시하기도 했고 불교식으로 어떤 이는 국가적으로 무슨 훌륭한 일을 했는지 태극기로 관을 덮고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15위 모두가 주어진 인생이라는 기회를 다 보내었구나 더 이상 무엇을 할 의지도 조건도 이유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차례 차례를 기다려 관리자의 구호에 따라 15위가 운구가 되고 인생이라는 각 개인에게 주어진 기회가 모두 정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더 이상 무슨 원망도 기대도 논할 수가 없고 그냥 사실 그대로 받아 드리면 될 뿐입니다.
이 광경을 보면서 느낀 점이 있었는데 인생은 살아 있는 그 자체가 내게 주어진 기회였다 그리고 그 기회를 자기 나름대로 사용하며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이 다하기 전에 주어진 기회를 선용하고 최고로 만들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으로 내 인생의 최고의 기회를 만들 수 있을까요?
무엇이 내 인생의 최고의 기회이었습니까?
내 인생 최고의 기회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만남으로 내 인생의 최고의 가치 최고의 삶 최고의 소망 그리고 최고의 인생으로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부모와의 만남 아내 남편과의 만남 그리고 자녀들과의 만남 그 외 사람들과의 만남 소중하고 귀한 만남이었지만 예수님과의 만남이 없었다면 이 모든 만남도 큰 의미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인연의 만남이 의미가 없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까?
차라리 당신과 내가 만나지를 않았더라면......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을 뻔 한 사람
진정 예수를 만나지 못한 예수님의 제자 가륫유다에게 들려 말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인생이었든지 예수님을 만나는 행운을 얻어야 내 인생이 최고의 기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예수를 만나 인생의 최고의 가치를 누리는 한 맹인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맹인이 보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여태까지 느끼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느끼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는 기회입니다.
맹인이 거지가 되어 구걸을 하다가 무리가 지나감을 듣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이때에 사람들이 들려주는 말이 무엇입니까?
37절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예수는 기회입니다. 멈추게 하고 붙잡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여리고 성을 지나신다고 하시니 그 곳에 머물러 있는 자는 예수를 붙잡는 기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예수는 구하고 찾고 두드리고 원하고 사모하는 자에게 얼굴을 보이시고 만난바 되어 주십니다.
올림포스 신전에는 시간의 신 크로노스(Chronos)의 신상이 있습니다.
이 신상은 벌거벗은 젊은이가 달리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발에는 날개가 달려있고 오른손에는 날카로운 낫같은 칼이 들려있으며 이마에는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이 늘어뜨려져 있지만 뒷머리와 목덜미는 머리털이 없는 민숭민숭한 모습이었습니다.
이 신상을 본 시인 포세이디프(Poseidipp)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시간은 쉼 없이 달려야 하니 발에 날개가 있고 시간은 때가 되면 모든 것이 끝장이 나기 때문에 오른손에 칼을 잡았고 시간은 만나는 사람이 잡을 수 있도록 앞이마에 머리칼이 있으나 시간은 지난 후에는 누구도 잡을 수 없도록 뒷머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시간은 곧 기회입니다.
한 번 놓친 기회는 다시는 그 앞이마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지금 내 옆으로 기회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주어진 기회를 놓치고 나면 후회만 남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기회를 만듭니다.
예수님은 항상 내 옆을 스치고 지나가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그 예수님을 만날 기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께서 지나가신다고 하실 때에 그 맹인은 크게 소리를 질러 예수님을 멈추게 했습니다.
소리 지르면 예수님은 멈추십니다.
그리고 관심을 가지십니다. 구하면 주십니다.
대상은 예수님 이십니다.
예수님이 기회입니다. 최고의 기회가 되십니다.
오 할레스비(Ole Hallesby)는 기도(Prayer) 라는 저서에서 기도가 잘 되지 않는 중요한 이유는 예수라는 이름을 잊어버리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제아무리 기도의 열정, 마음의 감동과 절대적인 자신의 의지가 있다하더라도 예수가 함께 하지 않으면 기도는 힘이 풀리고 능력이 없어져 버립니다.
삶의 핵심, 기도의 핵심은 예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주님, 제가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받아주시는 주님의 이름을 의지합니다.
많은 사람이 지나갑니다.
그러나 내가 불러야 하는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라고 부르짖는 모습입니다.
내 자신을 볼 때에 예수가 계시지 않아 불쌍합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는 자신의 불쌍함을 인정하는 겸허한 모습입니다.
자기가 불쌍한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위대한 발견입니다. 가장 어려운 발견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제 잘난 맛에 살고 싶어 하는 욕망을 갖고 있습니다.
예수가 계시지 않으면 제 잘난 맛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게 나의 삶에 문제입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자존심을 내세웁니다.
그러나 바디매오는 예수 앞에서 자신이 불쌍한 존재라는 것을 솔직히 인정했습니다.
♬주 떠나가시면 내 생명 헛되네 즐겁고 슬플 때 늘 계시옵소서 할렐루야!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어도 재산이 많아도 권력이 최고라고 해도 예수 앞에서 불쌍한 존재인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나는 없어도 당신이 곁에 계시면 나는 언제나 있습니다
나는 있어도 당신이 곁에 없으면 나는 언제나 없습니다
주님이 있으므로 나도 있고 주님의 노래가 머묾으로 나를 부를 수 있어요
주여 꽃처럼 향기 나는 나의 생활이 아니어도 나는 주님이 좋을 수밖에 없어요
주 예수 나의 당신이여
예수가 없으면 내가 없는 것이요 예수가 계시면 내가 있는 것입니다.
삶이 예수님께로 나아가는 것이요 삶이 기도요 기도가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의 삶과 그의 기도의 내용은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는 것입니다.
그의 기도의 내용을 봅시다.
38절에도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39절에도 그 내용은 한결같이 불쌍히 여기소서입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므로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불쌍히 여기십니다.
교만하게 보이면 모든 것이 끝장입니다.
교만은 은혜를 빼앗기게 됩니다.
탈무드에 어떤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웃집에 가서 낫을 좀 빌려오라 는 것입니다.
그 아들이 이웃집에 가서 정중히 낫을 빌려 달라했서나 낫을 쓰지도 않으면서 낫을 빌려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며칠 후 바로 그 이웃집에서 이 집에 낫을 빌리러 왔을 때 아버지는 아들에게 낫을 빌려 주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들은 아버지에게 며칠 전에 저 집에서 빌려주지 않았는데요. 왜 우리가 빌려줘야 합니까? 하고 항의를 했습니다.
그 때에 아버지가 아들에게 저 집에서 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도 빌려줄 수 없다면 이것은 복수다.
저 집에서 빌려주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려 준다고 말하면서 빌려주면 이건 증오다.
그러나 거절당했다고 하는 것을 다 잊어버리고 그저 낫이 필요하다니까 빌려준다 하는 마음으로 빌려주면 이것이 긍휼이다. 라고 했답니다.
왜 예수님이 최고의 기회가 되십니까?
내가 원한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다른 그 어떤 것 하나 조건 삼지 않으시고 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41절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토마스 왓슨(Thomas Watson)은 사랑과 은혜와 긍휼, 이 세 가지는 하나님 품속에서 나란히 살아가는 의좋은 세 자매다.
사랑이 애인을 방문하는 친구와 같은 것이라면, 긍휼은 병자를 방문하는 의사와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은혜가 죄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애정이라면, 긍휼은 죄의 결과로 비참한 상태 속에 있는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애정(愛情)이 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긍휼은 저주받아 마땅한 죄인에게 저주하지 않는 것입니다.
무시해도 될 사람을 무시하지 않는 것입니다.
버림받아야 할 사람을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원하기 때문에 그 필요를 불쌍히 여기며 도와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 긍휼, 이 불쌍히 여김이 하나님에게 있었기에 오늘 나 같은 이도 이 세상에서 이래 저래 살아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 긍휼과 불쌍히 여김이 있었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거룩한 이름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잘하여 내가 이렇게 되었다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임을 아셔야 합니다.
진정으로 바라는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유럽의 전래 동화에 마음씨가 아주 착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가난하게 살고 있었는데 갑자가 천사가 찾아왔서는 이제 내 삶에 가장 필요한 것을 말하세요 세 가지를 들어 주겠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난로 가에 앉아 소원을 생각하기 시작했는데 이제 온 천하를 다 얻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니 막상 소원을 말하려고 하니 무엇부터 말해야 할지 선뜻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오래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할머니가 한마디 했습니다.
이럴 땐 소시지라도 하나 있으면 먹어가면서 생각할 텐데... 말을 채 맺기도 전에 할아버지와 할머니 앞에 먹음직한 소시지가 하나 놓였습니다.
어이없게 한 가지의 소원의 써졌다는 사실에 할아버지는 몹시 화가 낫서 이것저것 생각 할 겨흘이 없이 그 소시지 꼴도 보기 싫어! 할망구 코에나 붙어 버려라! 하고 고함을 질렀다.
그랬더니, 소시지가 정말 할머니의 코에 붙어 버렸습니다.
정작 그 소원(?)이 이루어지자, 할아버지는 당황을 했습니다.
이제는 한 가지 소원밖에 남지 않게 되었고, 무엇을 구하여야 할지 고심할 필요도 없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한 가지 소원을 말했는데 소시지야, 제발 할망구 코에서 떨어져라!
기껏 예수님을 불러 세워놓고 평소에 구걸하던 대로 동전 몇 푼을 구했다면 얼마나 어리석겠습니까?
그는 무엇을 구하여 할 것을 알고 평상시에도 늘 그 마음에 소원을 빌었던 내용입니다.
그는 자신이 왜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당장 돈이 없고, 먹고 입는 것이 여의치 않아 딱한 형편었지만, 그것보다 근원적인 불행은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라는 것이었다.
그가 이것저것 구걸하면 어떻게 살아갈 수는 있겠지만 그것으로는 진정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예수님과 함께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고 비방하여 말하였다.
그는 영원한 주님의 나라를 소망하지 않았습니다.
당장 육체의 고통에서 구원해 주지 않는 것을 원망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지금 나는 당장 내 앞에 당한 것만 구원해 주지 않는다고 소시지를 구하다가 싸우다가 소시지야 다시 너 자리로 돌아가라 하고 이런 식으로 기도하고 있지 않습니까?
다른 편 강도는 영원한 주님의 나라를 구하지 않았습니까?
솔로몬의 기도 주님은 너무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아직도 예수님께 무엇을 구하여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저는 교회를 위하여 기도 할 때에 교회 운영을 위한 물질을 구하고 싶어 기도 할라치면 성령님이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기껏 교회일 핑계되고 물질을 구하는 거야
물질이 교회를 운영하는 원동력이고 그리고 그 이유가 되는 거야고 이것이 아니었습니다.
가끔 이런 기도를 시도하다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는 하나님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시기를 바라고 그 영혼을 성장시키는 일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혼들을 위하여 수고 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라고 기도 하는 것을 기쁘게 받았습니다.
많은 세상적인 필요가 있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것을 구한다면 그것이 믿음입니다.
바디매오는 주님께 보기를 구하였고, 예수님은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님을 따랐다고 합니다.
예수 믿고 복을 받는 자중에 예수를 떠난 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세상적인 것을 구한 자들이었습니다.
구하여서 안주면 안 준다고 떠나고 구하여서 불쌍히 여겨 주면 제가 잘났다고 이제 예수도 필요도 없다고 떠나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내 삶 가운데 최고의 기회로 다가 오십니다.
멈추게 하시고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내가 예수님이 필요하다고 하십시오.
지금도 세상은 묻습니다. 바라바를 원하느냐 예수를 원하느냐
바라바를 원합니다 하고 소리를 지르지 마십시오
소리를 지르되 예수를 원한다고 하십시오
왜 예수를 만나려고 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왜 기도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믿음이 나를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가 내 인생의 최고의 기회가 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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