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이기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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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309회 작성일 2015-06-07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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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1서 5:1-5 세상을 이기는 믿음
당신의 정서와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자 하비 로이스는 동물에게 두려움을 주면 어떤 신체적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실험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고양이에게 형광물질 바리움과 칼륨을 먹이고 X-선 형광 투시경을 통하여 고양이의 위를 관찰하였습니다.
편안한 고양이는 부드러운 근육의 활동을 통하여 음식물이 잘 소화가 되는 과정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 방에 개를 데려다 고양이 앞에 놓으면 모든 위장 기관이 경직되어 활동이 멈추고 소화기관이 정지 됩니다.
이런 실험을 계속하자 고양이는 위궤양으로 질병이 생겼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은 인간에게도 똑같이 일어남으로 이 세상을 살면서 긴장, 두려움, 염려 가운데 살면 정신질환 뿐만 아니라 육신도 건강을 잃고 질병에 시달리며 살게 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가 매우 중요합니다.
세상을 의미하는 말에는 에레츠란 단어는 하나님이 창조하여 인간에게 대여한 장소를 뜻하는 에덴동산이 있고 에레츠에 죄가 들어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하고 인간을 타락시킴으로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된 세상인 세속화된 테벨이 있습니다.
오늘 인간이 만들어 놓은 세상은 죄가 오염되어 있는 세속화된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죄악이 지배하는 이 세상은 세 가지의 특징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염려와 불안과 두려움을 가져다주는 곳 입니다
우리를 유혹하고 미혹시키는 곳 입니다.
인간을 서로 싸우고 다투어 분쟁하게 만드는 곳 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 세상을 이기는 삶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되면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세상을 이기게 만들어 줍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세상을 이기도록 만들어 줍니다.
4-5절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우리는 이 세상을 어렵게 여기고 힘겹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 힘과 노력으로는 세상을 이길 수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이기고 쉽게 살 수도 있습니다.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과 함께 살면 이길 수 있습니다.
로마서8:35-37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그러므로 가장 어렵다고 느끼는 이때가 바로 모든 문제를 주님께 맡기고 이길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때입니다.
마태복음11: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세상을 이기는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1절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4절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그러나 요한은 말하기를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긴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을 이긴다는 뜻입니다.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때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담대할 수 있는 것은 세상을 이기신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함께 하신다는 말씀은 그 분이 내 생애를 주장하시고 내 안에서 나에게 이김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큰 고민 중의 하나가 있다면 이 세상에서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고민입니다.
대부분의 삶들이 불신자들과 함께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매일 보이지 않는 전쟁의 삶입니다.
과연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 대해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지금까지 기독교 역사는 세상에 대해서 크게 3가지의 자세를 가졌습니다.
첫째는 분리의 자세입니다. 세상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세상은 악하니까 모든 것을 끊고 관심을 갖지 않고 분리되어 살고자하는 자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자들끼리 집단적으로 모여 살기도 하고 세상 사람들과 교제를 끊어버립니다.
이렇게 되면 세상에 아무 영향도 끼칠 수 없는 문제가 있습니다.
마태복음5:13-14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둘째로, 세상을 인정하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공존하는 것으로 인정하는 자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두 영역에서 공존하는 존재로 보는 것입니다.
이 입장은 너무 세상을 인정하다가 보니까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이 세속화되어질 수 있는 문제점이 많습니다.
고린도후서6:14-16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셋째로 세상을 인정하지만 세상을 개혁의 대상으로 보는 것입니다.
세상은 악하고 사탄이 역사하는 곳이므로 성도가 말씀 안에서 항상 복음을 증거하고 세상을 개혁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입장입니다.
이 경우가 우리가 믿고 따르는 개혁주의 입장입니다.
베드로전서2:11-12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마치 그리스도인들의 세상에 대한 관계에는 바닷물과 배와의 관계와 같습니다.
배가 바다에 있지만 바다에 속하지 않고 오히려 바다를 거슬러 항해합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고 세상을 감당하며 항해하는 배와 같이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배척 할 곳도 아니요 동화 될 곳도 아니요 하나님이 배정하여 주신 사명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있는 이 세상은 더 그리스도인들의 역할이 필요한 곳입니다.
세상을 향한 소명의식을 갖고 세상에서 살아야합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사용하실까?
기대감을 갖고 세상 속에서 나를 어떻게 사용하실까? 기대감을 갖고 살아가셔야 합니다.
오늘도 세상을 향해서 일을 하고 사업을 하고 공부를 할 때에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사용하실까?
하나님의 일하심의 기대감을 갖기를 바랍니다.
세상에서 다양한 직업을 갖고 성공하시기 바랍니다.
바벨론에 포로가 된 다니엘은 그 세상에서 그는 두려움에 산 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사용 하실까에 충실하였습니다.
바벨론에서 포로로 있으면서 우등생 포로로서 믿음의 최선을 다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 다니엘은 많은 위험과 어려움을 각오해야 했습니다.
그는 세상에서 자기를 분리시키지 않고 고립되지 않고 세상을 거슬러 도전하면서 결국 세상을 이겼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환난이 없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환난을 당한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환난을 모두가 당하면서 환난을 이겼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이 우리를 세상을 이기도록 만들어 줍니다.
2-3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하여 주의 계명을 알아야 한다.
주의 계명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요약된다.
선으로 악을 이기라, 서로 용납하고 받으라, 다른 사람의 티를 발견하기보다 내 자신의 들보를 보라는 계명들 은 다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이웃을 사랑하는 계명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사람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이 계명을 지키려 하지 않는 점이다.
사실 이 계명을 지키는 것은 옛사람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에게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새사람에게는 쉬운 일이다.
이때 새사람은 내 속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음을 알고 그 믿음으로 그의 계명대로 사람 사랑하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난 5월 23일 교통사고로 두 아들을 잃은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한 목회자가 장례식들에게 문상객들에게 자신의 아내와 함께 사고를 낸 트럭 운전사를 용서했다고 밝혔다.
앞서 노스캐롤라이나 샬럿에 있는 포레스트 힐 처치(Forest Hill Church)의 찬양리더이며 협동목사인 젠트리 에딩스(Gentry Eddings) 목사와 임신 8개월째였던 아내 해들리(Hadley) 그리고 2살짜리 아들 돕스(Dobbs)는 에딩스 목사 여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한 후 샬럿에 있는 집으로 돌아오다 윌밍턴에서 트럭에 의해 교통사고를 당했었다.
이 사고로 아들 돕스는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고, 해들리는 인근 병원으로 급히 옮겨져 리드(Reed)라는 이름의 신생아를 출산했지만 뇌출혈 증세로 고통당하다 이틀만에 죽고 말았다.
샬럿 옵저버(Charlotte Observer)에 따르면, 두 아이의 장례식이 치러진 지난 5월 31일 주일 에딩스 목사는 이번 장례식은 두 아이의 삶을 기념하는 축제의 이벤트로 생각한다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하나님의 선물이었던 두 아이를 빼앗아간 트럭 운전사를 용서한다고 전했다.
그는 우리는 마음으로 이 일을 저지른 사람을 용서했다면서 가장 어려운 것이었지만, 나와 내 아내는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 트럭 운전사를 용서하는 것은 가장 쉬웠다고 말했다.
에딩스 목사는 특히 신생아 리드와는 단 이틀 밖에 시간을 보내지 못했지만, 문상객들에게 우리는 리드와 가장 소중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리드가 형 돕스가 있는 천국에 가기 전에 우리의 팔에 꼭 안겨 있었다고 덧붙였다.
에딩스 목사는 돕스에 대해서도 돕스에게 너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찌어다(Be still, know that I am God)는 시편 46:10절 말씀을 가르치면서 복음을 나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에딩스 목사는 또 자주 돕스에게 시편을 암송시키려 했지만 너무 부끄러워했다. 하지만 사고가 나서 천국으로 간 그날 사고 전에 마침내 암송하는데 성공했다며 귀여운 목소리로 너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찌어다(Be still, know that I am God)'라고 말했었다고 전했다.
용서가 가장 쉬웠다 계명이 가장 쉬웠다는 것입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은 얼마나 힘이 들었겠습니까?
그리고 이 가정은 세상에서 패배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능히 이긴 것입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평생을 패배감을 가지고 살아 갈 것입니다.
그러나 용서하는 그 마음은 이미 세상을 이기고 살아가는 삶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패배가 아니 엇습니다. 승리이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했습니다.
요한복음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주의 계명을 지키며 사는 삶이 세상을 이기는 믿음의 삶이다.
이러한 삶은 실제적으로 승리하는 삶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보이는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느냐고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주의 계명을 지키면 승리의 삶을 사는 자가 된다.
세상을 이기는 믿음은 그의 계명을 지키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주의 계명을 의식하게 된다.
그 이유는 그 계명들은 그들을 구원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과 관계가 없기 때문에 주님의 계명에 대하여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을 포함한 인간 공동체의 번영이 목적이기에 이를 훼파하는 것들을 심각한 죄악으로 여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의식함으로 사회 질서를 지킴이요 다른 하나는 인간 사회와 자신을 위해 사회 질서는 지키는 것이다.
하나님을 의식하며 주의 계명을 지키는 것과 일반 은총 속에서 주어진 인간의 도덕적 본성에 의해 삶을 살아가는 것은 서로 전혀 다른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소위 죄성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하고 행하는 모든 행동들을 말한다.
가령 일상생활에 주어진 생활들이 의미가 없이 하나님이 인식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죄가 되는 것입니다.
시편14:1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먹고 장가가고 돈 벌고 바쁘게 사는 것도 인간들이 볼 때는 부지런하여 훌륭하다고 할 수 있으나 하나님 입장에서는 노아의 때와 같을 수 있다.
마태복음24:38-39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우리는 너무 무거운 삶을 삽니다.
세상을 이기기는커녕 온갖 세상의 것들에 눌려서 죽을 지경이 아닙니까?
세상을 이기는 것은 세상의 가치관에 주눅 들어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이 세상을 나그네와 외국인처럼 살았습니다. 나그네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짐이 가벼운 것입니다.
우리들로 세상 가치관을 따라 살지 않게 하시고,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국적 시민권자들이지만 그리스도인은 천국 시민권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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