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으로 얻어지는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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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596회 작성일 2010-04-24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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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2:23-27 죽음으로 얻어지는 생명
사람이 사람이라고 할 수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도 수많은 병원과 의료진에서는 중한 질병으로 죽어 가는 생명을 어떻게 하더라도 살려 보려고 부단한 노력을 하는데 멀쩡히 살아 있는 생명을 죽도록 방치 한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도 자신의 몸으로 태어난 자식을 인터넷 게임에 빠져 생후 3개월 된 딸을 제대로 먹을 것을 주지 않아 굶겨 죽인 부부가 보도 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매일 밤 PC방에서 즐긴 게임이 온라인상에서 사이버 소녀를 양육하는 내용을 담은 롤플레잉게임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게임은 이용자가 기억을 잃어버린 아니마라는 소녀 캐릭터와 함께 전투를 벌이는 내용으로 이 캐릭터를 데리고 다니며 딸처럼 돌보며 키우는 것입니다.캐릭터에게 옷과 장신구를 사주거나 심지어는 자신의 블로그에 육아일기까지 쓰면서 딸처럼 키우는 것입니다.
실제의 딸을 굶겨 죽인 김 씨 부부는 게임 레벨이 높아 아니마를 키울 수 있는 자격을 얻어 이 소녀 캐릭터 아니마는 죽이지 않고 잘 양육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내 자식은 굶고 있는데 인터넷 게임에서 가상의 소녀 캐릭터를 키우는데 빠져 있었다는 것은 범죄심리학 전문가들은 김 씨 부부가 육아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자 이에 대한 회피 수단으로 게임에 더욱 심취한 것으로 보인다고 하니 이해를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오늘날 시대는 너무나도 비정한 생명 경시(輕視)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또한 너나 할 것 없이 무관심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눅 7:31-32 또 이르시되 이 세대의 사람을 무엇으로 비유할까 무엇과 같은가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사실 죽어가도 모릅니다.
이러한 때에 아무도 나에 대한 관심이 없는 이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어가는 자에 대하여 자신의 희생으로 죽었던 저희들에게 생명으로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그리고 무정한 자로 살았던 자를 무정한 자로 살게 하지 아니하고 다른 이의 생명에 관심을 가지게 하는 자로 나를 불러 주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실 세상의 의사가 존경을 받는 것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망나니가 존경을 받았다는 말을 들어 본적이 없습니다.
망나니아시죠
사형을 집행할 때 죄인의 목을 베는 일을 맡아보던 사람.
의사는 육신의 생명을 연장 시키는 일을 하지만은 진정한 생명을 주지는 못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또한 나를 들어서 다른 이들을 살리시는 도구로 삼으셨습니다.
오늘 나는 그런 도구 다른 이를 살리는 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복음은 살리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본문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소개하십니다,
땅에 떨어져 죽어 많은 열매를 맺는 한 알의 밀알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역시 떨어지는 밀알이 됨으로 생명을 더욱 풍성하게 얻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귀히 여김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의 사람들을 보십시오
아니 나 자신을 보십시다.
나 혼자도 못살아 버둥버둥 거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니 나 혼자 사는 것도 힘겨운데 다른 이에게는 무관심이 되지 않습니까?
나도 살고 남도 살리는 복된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버리면 자신이 사는 길입니다.
내 자신에게 너무 관심을 가지다고 보니 남은 고사하고 나도 죽게 생겼습니다.
남을 생각하는 데에서 놀라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엘리아 패리시 러브조이(Elijah Parish Lovejoy)는 신문 편집장과 교사, 그리고 장로교 목사를 지낸 본입니다. 그는 어느 날 우연히 흑인이 교수형을 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노예제도란 지독한 범죄와 맞서 싸워야 갰다고 결심하였습니다. 그는 미주리 주의 세인트루이스에 학교를 설립하고 언론계에 뛰어들었습니다. 남북 간의 갈등으로 곧 일어날지 모르는 전쟁을 피해야하고 평화로운 노예해방이 이루어지는데 신문이 큰 몫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장로교 주간지인 세인트루이스 옵서버 (St. Louis Observer)의 편집인이 되어 노예제도를 강력하게 비난하고 점진적인 노예해방을 지지했습니다. 그 당시 미주리 주는 노예제도를 합법적으로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1835년 세인트루이스의 많은 저명인사들이 서명한 1통의 편지가 그에게 배달되었습니다. 그 편지의 내용은 노예 해방에 대한 사설의 논조를 완화시키라는 요구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견해와 그것을 발표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는 답변을 되풀이해서 사설에 실었습니다. 군중폭동의 위협으로 신문사는 노예에 관한 자유 주였던 일리노이 알턴으로 옮겨야 했습니다. 그러나 신문사는 1년 사이에 여러 차례 폭도들의 공격을 받아 파괴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러브조이는 타협을 하는 것이 나의 임무를 포기한 것이라면 나는 결코 포기할 수 없다. 나는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를 죽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내 자리에서 물러서지 않고 생명을 바칠 것이다…….
남의 영혼을 위한 자신의 필요 즉 생명의 필요까지도 생각을 한 것입니다.
야고보서 4:17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선의 기회가 나를 부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이때가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라고 하였습니다.
23절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십자가의 희생이 영광이라는 말입니다.
왜 나를 불러 주셨을까?
이 말을 한지 나흘 후인 1837년 11월 7일 밤 폭도들은 다시 신문사를 습격하여 러브조이를 살해했습니다. 그를 살해하는 일에 가담한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기소를 당하거나 고발되지 않았고 러브조이를 옹호하던 사람들이 기소되었고 살인자 중의 한 사람은 앨턴 시의 시장으로 뽑히는 일까지 생겼습니다.
모두들 러브조이의 죽음은 헛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러브조이의 순교가 헛되지 않았습니다. 러브조이의 외침과 삶에 커다란 감동을 받은 한 젊은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젊은이는 나중에 일리노이 주 의원에 당선되었고 드디어는 대통령이 되어 러브조이가 꿈꾸던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러브조이라는 씨앗 때문에 열매를 맺게 된 그 젊은이의 이름은 아브라함 링컨이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 12:24)
죽는 것이 아니라 더욱 풍성해지는 길입니다.
한 달란트 받는 자 그 한 달란트를 보전하기 위하여 무던히 노력하였지만 결국은 자기 자신하나 구원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까지 다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내 삶이 풍성해 지시기를 원하십니까?
빈들에는 아무런 먹을 것도 그리고 돈을 주고도 사 먹을 식당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빈들에는 5,000명이 배불리 먹고 12광주리의 음식이 남았다고 합니다.
순수하게 자신을 드리는 어린 아이의 희생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누가 대신 졌습니까?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저 시골에서 올라온 구렛네 시몬이라는 사람입니다.
러시아의 민주화를 이룬 사람은 보리스 엘친입니다.
엘친에게 영향을 준 사람은 폴랜드의 바웬사이며 이 바웬사에게 영향을 준 사람은 미국의 민권운동가 마틴 루터킹목사이며 킹 목사에게 영향은 준 사람은 무명의 봉재공장의 흑인 여자 로자팍스라는 여인입니다.
로사팍스가 버스를 탔는데 뒤에 흑인석에 앉지 않고 앞에 백인전용석에 앉았습니다.
운전사가 뒤로 가라고 호통을 쳤지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 여인의 용기와 믿음에 감동을 받은 루터 킹 목사님은 만민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일과 하나님의뜻을 보았습니다. 여기서부터 그는 민권운동을 펼쳤다는 것입니다.
내가 엘친이 못되고 바웬사가 못되고 킹 목사 같은 위인은 못되었다고 큰일을 하지 못한다고 여기지 마십시오
이들을 움직일 수 있는 봉재공장의 흑인 여인의 용기를 가질 수 있고 자신의 최선을 내어 놓은 어린 아이 같은 최대가 아닌 최선을 할 수 있고 내 가진 달란트를 순수하게 쓸 수 있는 구렛네 시몬 같은 자는 얼마든지 될 수 있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을 내가 어떻게 할 수는 없습니다.
큰일을 하기에도 역부족이지 않습니까?
한 알의 밀알은 그 수에 있어서나 지닌 외형에 있어서 보잘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한 알에 안에는 생명력이 있고 성령의 감화 감동이 들어있고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저희 교회 안에서는 이런 인물이 보이기 시작하면 이런 자를 통하여 성령님은 역사하십니다.
이 자리에 함께한 자 그 어떤 사람도 할 수 없는 자가 없고 나는 할 수 없는 자라하지 않고 할 수 있다고 해야 합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주의 뜻에 내 자신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까?
내 자신이 어떤 모양으로든지 영혼을 위하여 사용되는 것입니다.
곧 이것이 믿음입니다.
26절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믿음 제대로 하는 사람 참 귀한 사람입니다.
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왜 믿음으로 살면 죽는다고 하십니까?
믿음으로 살려고 하는 그것을 왜 이상히 여기십니까?
죽어야지 살지요
죽으면 죽으리라 해 보십시오 죽는가? 사는가?
믿음으로 안 죽으려고 하니 진짜 죽게 생긴 것 아닙니까?
25절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죽는 연습을 하십시오
자꾸만 내 안 죽었다고 하니 죽을 지경이 되는 것 아닙니까?
군인의 영광은 전쟁터에서 싸우다가 죽는 것입니다.
내게 기도 제목이 있고 삶의 이유가 있다면 한 영혼을 위하여 드려지기를 원합니다가 아니겠습니까?
나의 존재의 의미입니다.
27절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다.
내가 이 땅에 온 것은 바로 이것이다. it was for this very reason
바로 이것이다 very reason ! 이 이유 때문에 왔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 이유가 무엇입니까?
한 알의 떨어지는 밀알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주께서는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이것을 면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이때에 오신 이유입니다.
나를 부르신 이유
나의 충족이 아니라 모든 이에게 풍성케 하는 떨어지는 밀알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한 알의 밀은 오랜 세월을 기다려도 그냥 남아 있을 뿐입니다.
떨어 질 때에 비로소 풍성해 지는 것입니다.
존재의 의미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3년 동안이 때가 하나의 주도적인 테마였습니다.
요한복음 2장에서 혼인잔치에 쓸 포도주가 모자라서 어머니인 마리아가 어떻게 좀 해 달라고 할 때에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7장에서 그리스도의 형제들이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와 이적을 행하라고 요청했을 때도, 예수님은 유대인의 주목을 끌지 않으시려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던 경우가 두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요한은 저희가 예수를 잡고자 하나 손을 대는 자가 없으니 이는 아직 그의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라(7:30) 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갑자기 그것이 바뀐 것입니다.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나에게 때가 온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때를 만드시기 바랍니다.
한 알의 밀알은 그 자체로는 너무 작아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는 듯 여겨지지만 땅에 떨어져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 기초가 됩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홀로 외로운 싸움을 싸우는 모든 그리스도인들, 그들의 모습이 바로 한 알의 밀알과 같이 너무나도 작아 보이지만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 이웃을 위해 한 알의 밀알처럼 스스로 썩어지기를 수차례, 매일 눈물로 씨를 뿌리고 계신다면 결코 좌절하지 마십시오.
이미 구원은 시작되었습니다.
주님이 일하시고 계십니다.
어느 공동체든지 풍성한 열매가 있다는 것은 누군가가 밀알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는 이 교회의 희망을 바라봅니다.
누가 큰 능력이 있는 자가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어쩌면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은 느낌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이 교회를 위하여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기도의 밀알, 전도의 밀알, 없는 가운데 경제적으로 최선을 다하는 밀알, 학생들이 청년들이 밀알이 되어 성도들이 집사님 권사님들이 장로님이 떨어지기를 시작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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