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구원의 조건은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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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578회 작성일 2010-07-09 11:00본문
이사야 12:1-6 당신의 구원의 조건은 하나님이십니다.
고행으로 구원받지 못한 수도사라는 간증 집을 낸 과거 사제였던 셀소 뮤니즈는 다음과 같은 간증을 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끊임없이 무언가 진실 되고 확실한 것을 찾던 나는 어린 마음에 사제가 되는 길이 진리를 체험하고 구원을 받는 길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 이유는 학교 선생님께서 사제가 되어서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은 돌이 물 위로 떠오르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고 하신 말씀이 잊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12년 동안 신학교를 다녔고, 로마 가톨릭교회가 정해 놓은 규칙을 지키는 생활에 전적으로 헌신했다. 나는 모든 고행을 다 실행했으며, 스페인 오베이도에 있는 메트로폴리탄 신학원에서 원장으로 있으면서 고행과 신비주의 신학 과목의 교수로 일하는 동안 고행에 대해 가르쳤다. 고행이란 혹독한 자기 단련과 절제, 육체에 가하는 학대 등을 통해 자아를 다스리고 모든 정욕과 욕망과 쾌락을 통제하는 것이다.
불교에도 이런 수행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수년 동안 다른 사람들에게는 자기 통제로 평안과 확신을 얻으라고 말했지만, 막상 나 자신은 그러한 것을 경험하지 못했다. 내 안에는 결코 평안이 없었으며, 성경에 비추어 본 가톨릭교회의 교리는 내게 큰 실망을 안겨 주었고, 오히려 내 안에 갈등만 가중시켰다.
이런 영적 혼란을 겪는 가운데서 해외에서 방송되는 개신교 라디오 프로그램이 나의 관심을 사로잡았고 이것이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들을 갈급하게 만들었고, 결국 성경은 내 혼의 빛이요, 양식이 되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는 열망으로 나는 라디오 방송으로 들었던 교회와 접촉하게 되었다.
이 교회에서는 오직 성경만이 신앙의 유일한 근원이었다.
성경을 공부하고 그 교회에 속한 그리스도인들과 교제하면서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새롭게 알게 되었다. 즉 그분께 직접적이고도 개인적으로 다가설 수 있으며, 그 유일한 방법은 고행이 아니라 믿음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계속해서 성경을 연구하면서 나는 로마 가톨릭 교리의 오류들을 점점 더 명백하게 알게 되었고 나는 성경이 말씀하시는 회심을 경험하기 원했다. 그러나 동시에 가톨릭교회를 떠나지 않고서 이 체험을 얻기 원했다. 내 삶은 가톨릭교회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점차 로마 가톨릭교회가 그들의 잘못된 가르침과 지극히 복잡한 교회 조직을 이용해서 결국은 그리스도를 제쳐두었다는 것을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이 결론에 이르는 과정은 내게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내가 회심하게 된 그날 밤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그 밤에도 나는 주님과 주님의 말씀 안에서 피난처를 찾았으며 기도하려고 그렇게 노력하지 않았는데도 내 마음 속으로부터 기도가 솟아올랐고, 지난날의 죄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강하게 떠올랐다.
내 죄들이 그처럼 무거운 짐으로 느껴진 적은 일찍이 없었다. 나는 완전히 죄로 가득찬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무런 희망도 없이 버려진 기분이었다. 어떻게 내가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나는 나 자신을 구원할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였다.
아직도 나 자신의 무엇으로 소이 선으로 어떤 행위로 구원을 얻기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불교등 이방 종교의 특징이닙니다.
그리고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를 논하는 케토릭에서도 그러합니다.
인간의 선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방 종교나 케토릭에서는 선을 행한 인물들이 많이 있고 세상에서 자랑을 합니다.
승려가 열반했다 하면 어떻게 선한 일을 했다고 온 세상이 떠들썩합니다.
어떤 사제가 죽었다고 하면은 그가 행한 선한 일을 그렇게도 자랑같이 내 세우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진정한 기독인들은 예수님의 은혜라고 하며 예수의 이름이 높임을 받습니다.
사실 그렇게도 그들이 선행을 자랑삼아 말하고 있지만 사회사업이나 북한 돕기나 해외 어려운 자들을 돕고 혹은 사후 장기기증자등을 살펴보면 그렇게도 선을 행하였다고 자랑하던 그들은 10%좌우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60-70%를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가 기독인들을 자랑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인들의 모든 공로는 예수 공로이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의 사실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을 발견하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사제였던 셀소 뮤니즈도 이것을 발견하기 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갈등을 겪었는지 모릅니다.
이것을 발견 할 수있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구원이 시작됩니다.
나에게서 구원을 찾으려고 했고 내 주위의 환경에서 구원을 찾으려고만 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조건은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들려주는 구원은 어디에서부터 온다고 했습니까?
2절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저 역시 하나님은 구원이라는 이 단어가 제게 큰 능력으로 다가올 수 있었던 것은 내게서 무슨 구원을 발견 할 수 없는 자임을 알았을 때이었습니다.
요사이같이 힘이 들 때에 더욱 그런 것을 느낌입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 때에 무엇인가 가졌다고 여겨 질 때에는 내가 스스로 무엇으로 삶에서 구원을 얻으려고 하였지 하나님의 구원은 별로 실감이 가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우리 가운데는 스스로의 구원을 힘쓰고 있습니다.
이것은 결코 하나님의 구원을 가져 올 수 없습니다.
구원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이게 믿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말할 때에 이것만큼 확신적이요 능력적이요 소망적인 것이 없습니다.
개역개정 성경에는 구원이라는 단어가 500번 이상 나오는데 이 구원은 모두가 하나님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외에는 구원이라고 할 수 없고 말 그대로 고행이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구원을 최고로 노래한 사람이 다윗이지 않습니까?
시33:16-20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세어도 스스로 구원하지 못하는 도다
구원하는 데에 군마는 헛되며 군대가 많다 하여도 능히 구하지 못하는 도다
여호와는 그를 경외하는 자 곧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그들의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그들이 굶주릴 때에 그들을 살리시는 도다
우리 영혼이 여호와를 바람이여 그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시로다
신약의 예수 구원의 대표주자인 사도 바울이지 않습니까?
그 구원을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고 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로마 사람들은 투구를 만드는 기술이 뛰어났다고 합니다. 투구를 만든 목적은 전쟁에서 병사의 얼굴과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당시의 로마의 병사들은 전쟁에 나갈 때 반드시 투구를 사용했습니다.
로마의 투구는 몇 가지 장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병사가 적과 육박전을 치룰 때 적의 온갖 무기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뿐 아니라 적병이 말을 타고 긴 창으로 머리를 노릴 때에도 보호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로마의 병사가 말을 타고 공격을 하다가 말에서 떨어지는 일이 있어도 투구로 인해 머리를 보호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투구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하게 됩니다. 투구는 당연히 머리에 쓰는 것입니다.
하나는 구원의 투구를 구원의 확신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사단이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공격을 많이 하는 것이 구원에 대한 확신입니다.
이 세상은 끊임없이 나에게 구원받은 것에 대해서 의심을 불러 넣어주고 흔들리게 만듭니다.
사단의 계략이 그러하므로 구원의 투구를 쓴다는 것은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산다고 해석을 합니다.
또 다른 하나은 구원의 투구를 장래 이루어질 미래의 것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살전 5:8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을 투구로 쓰자하여 미래형으로 말합니다.
지금은 힘들지만 그래도 구원의 여명은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지금도 구원이요 장차 받을 구원도 있으니 예수 안에 있으면 이래도 구원이요 저래도 구원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특징은 세상에 대하여 두려움 대신 하나님의 구원을 노래 부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노래가 됨으로 세상에서 삶의 두려움에서 자유 할 수 있습니다.
연세대 의대 강남세브란스병원 암센터 이희대 소장은 20여 년간 암 치료를 하던 암전문의입니다. 유방암 수술 분야에서 손꼽히는 명의이지만 그에게도 암은 사정을 봐주지 않았습니다. 2003년 대장암 지단을 받고 대장을 절반 잘라내었고 그 후 항암치료를 받았지만 암은 간과 왼쪽 골반으로 번져 흔히 말하는 말기인 4기가 되었습니다.
그의 암은 집요해서 모두11번 재발했습니다. 간과 골반 뼈 일부를 잘라내는 수술을 5번 받았고, 다섯 번의 고강도 방사선치료도 받았으며 3-4개월씩 계속되는 항암치료도 두 번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인생의 모든 고난은 동굴이 아니라 터널입니다. 언젠가는 끝이 있고 나가는 출구가 있죠. 그 고행을 이기면 예전보다 더 행복한 삶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 구원의 희망이 나를 이렇게 버티게 해줬지요. 라고 담담하게 말합니다.
그는 골반뼈 전이 암 치료 후유증으로 두 개의 지팡이에 의지해 걷습니다.
암을 고치는 의사가 암 환자라는 소문이 나면서 전국의 암 환자들이 그를 찾습니다. 상당수가 암이 재발하고 폐나 뼈에 전이 된 환자들입니다.
그는 그들에게 뭘 그런 것 같고 그렇게 시무룩하냐 는 핀잔을 주기 일쑤입니다.
저는 암환자들에게 치료법이 남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절대 절망해선 안 된다고 말하죠, 두려움이 골수를 녹여서 면역력을 떨어뜨리거든요.
자신의 투병기를 그의 이름을 따 희대의 소망 이란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암이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닙니다. 자신이 갖는 절망 때문에 죽는 거죠. 저는 암에 걸리기 전보다 지금이 더 행복합니다. 작은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됐고, 가족과의 정도 더 깊어졌기 때문이죠, 사실 저도 괴로울 때가 있죠.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죽음의 두려움이 밀려올 때마다 내가 나아서 행복해지는 구원의 꿈을 꾸고 그것을 미리 당겨다 갖다 놓습니다.
구원의 기쁨을 빌려와서 지금 누리는 거죠. 암은 마음의 병입니다. 마음이 바쁘고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하면 그 틈을 타서 암 세포는 자랍니다. 항상 즐겁고, 매사를 감사하게 여기세요.
저를 보세요 암4기 상태로 6년 동안 일할 거 다하면서 잘 살지 않습니까. 새로운 암 5기죠. 희망이 우리를 강하게 만듭니다.
본문에서도 구원은 나로 하여금 노래하게 만들고 구원의 우물물에서 구원을 기쁨으로 길어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지금은 은혜의 날이요 지금은 구원의 날입니다.
그 구원을 노래하고 그 구원을 지금 당장 기뻐하고 사십시오
하박국 3:17-19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당신은 반드시 구원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금도 구원입니다.
아직도 내게는 다른 구원은 없어도 여호와의 구원이 있습니다. 할렐루야!
나의 재산은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입니다.
영국이 찰스 1세의 학정으로 고통에 처해 있을 때 샛별처럼 나타나 영국을 구한 크롬웰에 관한 일화입니다.
크롬웰은 어려서부터 청교도의 가정에서 신앙 훈련을 받고 자란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항상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는 하나님의 편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 편에서 일하는 사람은 기도하는 일과 성경 읽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크롬웰은 국왕을 반대하는 청교도들로 구성된 군대를 지휘하는 대장이 되었습니다. 크롬웰은 국왕의 군대와 맞서 전쟁을 하였습니다. 크롬웰은 전쟁터에서도 시간이 생기면 기도하였고 쉬는 시간에는 성경을 읽었습니다.
싸움은 항상 치열했고 크롬웰은 언제나 선두에서 싸웠습니다. 그런데 전쟁터에서 갑자기 크롬웰이 말에서 떨어졌습니다. 적의 총탄에 맞은 것입니다. 말에서 떨어진 크롬웰은 이제 마지막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별로 아픈 곳이 없었고 총을 맞은 가슴도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참 이상한 일이군! 하며 자세히 살펴보니 총탄은 호주머니 속에 넣어 둔 성경에 박혀 있었습니다.
총탄이 박힌 곳은 전도서 12장 1절이었습니다.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보잘것없는 인간이 하나님을 안다는 것만큼 자랑스럽고 럭키한 일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행운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최고의 지식이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가장 안전한 길이다.
이점에 대해 스펄전 목사는 우리가 이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면 그것은 너무 광대한 주제이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생각이 그 광대함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게 되고, 그 주제가 너무나 깊은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자랑이 그 무한함 속에 묻혀버리게 된다. 당신은 자신의 슬픔을 잊으려 하는가? 그렇다면 당신 자신을 하나님의 가장 깊은 바다에 빠뜨려 보라. 그의 무한하심 속에 빠져 보라. 그러면 당신은 휴식의 침상에서 원기를 되찾고 다시 힘이 넘쳐서 일어나게 될 것이다.
여러분의 모든 문제 하나님께 있습니다.
오직 그의 구원의 은혜만을 받으십시오
나를 통하여 하나님이 구원하셨다는 소식을 널리널리 퍼집니다.
스코틀랜드의 독립운동가 로버트 부르스라는 사람이 도피자로 지낼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부르스는 쫓겨서 달아나다가 너무 급한 나머지 산 속 동굴로 피신해 숨어들었습니다. 동굴 속에 숨어서 숨을 죽이고 밖을 내다보던 그는 자기 앞에서 거미 한 마리가 열심히 거미줄을 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윽고 자기를 쫓는 무리가 동굴 입구에까지 닥쳤습니다. 그들은 거미줄이 처져 있는 것을 보고 여기엔 들어가지 않았다고 말하며 그냥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때 부르스는 무릎을 쳤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오,하나님. 이 작은 거미의 뱃속에 나를 위한 피난처를 마련해 주셨군요. 거미를 통해서 나를 보호해 주시다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이렇게 깨달을 수 있는 은혜가 주어진 것이 감사한 일입니다.
주의 구원의 손길은 온 땅에 충만하십니다. 거미도 까마귀도 주의 구원의 손길입니다.
아주 절박한 순간에 무심코 나타나는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깨달아 아시고 감사하십시오
구원은 주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받았습니다.
이제 나를 통하여 예수 구원하셨다고 하게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6절 시온의 주민아 소리 높여 부르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너희 중에서 크심이라 할 것이니라
기대하시고 믿으시기 바람니다.
518(통252) 기쁜 소리 들리니
1.기쁜 소리 들리니 예수 구원하신다 만민에게 전하라 예수 구원하신다
주님 명령하시니 산을 넘고 물 건너 온 세상에 전하라 예수 구원하신다
2. 바다들아 외쳐라 예수 구원하신다 모든 죄인 나오라 예수 구원하신다
모든 섬아 일어나 메아리쳐 울려라 복음 중에 복음은 예수 구원하신다
3. 환난 중에 하는 말 예수 구원하신다 다시 살아나시어 예수 구원하신다
지은 죄를 인하여 슬픈 맘이 있어도 숨질 때에 내 할 말 예수 구원하신다
4. 바람들아 외쳐라 예수 구원하신다 기뻐하라 나라들 예수 구원하신다
구원하는 소리를 산과 들에 전하라 우리들의 승전가 예수 구원하신다
고행으로 구원받지 못한 수도사라는 간증 집을 낸 과거 사제였던 셀소 뮤니즈는 다음과 같은 간증을 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끊임없이 무언가 진실 되고 확실한 것을 찾던 나는 어린 마음에 사제가 되는 길이 진리를 체험하고 구원을 받는 길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 이유는 학교 선생님께서 사제가 되어서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은 돌이 물 위로 떠오르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고 하신 말씀이 잊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12년 동안 신학교를 다녔고, 로마 가톨릭교회가 정해 놓은 규칙을 지키는 생활에 전적으로 헌신했다. 나는 모든 고행을 다 실행했으며, 스페인 오베이도에 있는 메트로폴리탄 신학원에서 원장으로 있으면서 고행과 신비주의 신학 과목의 교수로 일하는 동안 고행에 대해 가르쳤다. 고행이란 혹독한 자기 단련과 절제, 육체에 가하는 학대 등을 통해 자아를 다스리고 모든 정욕과 욕망과 쾌락을 통제하는 것이다.
불교에도 이런 수행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수년 동안 다른 사람들에게는 자기 통제로 평안과 확신을 얻으라고 말했지만, 막상 나 자신은 그러한 것을 경험하지 못했다. 내 안에는 결코 평안이 없었으며, 성경에 비추어 본 가톨릭교회의 교리는 내게 큰 실망을 안겨 주었고, 오히려 내 안에 갈등만 가중시켰다.
이런 영적 혼란을 겪는 가운데서 해외에서 방송되는 개신교 라디오 프로그램이 나의 관심을 사로잡았고 이것이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들을 갈급하게 만들었고, 결국 성경은 내 혼의 빛이요, 양식이 되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는 열망으로 나는 라디오 방송으로 들었던 교회와 접촉하게 되었다.
이 교회에서는 오직 성경만이 신앙의 유일한 근원이었다.
성경을 공부하고 그 교회에 속한 그리스도인들과 교제하면서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새롭게 알게 되었다. 즉 그분께 직접적이고도 개인적으로 다가설 수 있으며, 그 유일한 방법은 고행이 아니라 믿음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계속해서 성경을 연구하면서 나는 로마 가톨릭 교리의 오류들을 점점 더 명백하게 알게 되었고 나는 성경이 말씀하시는 회심을 경험하기 원했다. 그러나 동시에 가톨릭교회를 떠나지 않고서 이 체험을 얻기 원했다. 내 삶은 가톨릭교회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점차 로마 가톨릭교회가 그들의 잘못된 가르침과 지극히 복잡한 교회 조직을 이용해서 결국은 그리스도를 제쳐두었다는 것을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이 결론에 이르는 과정은 내게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내가 회심하게 된 그날 밤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그 밤에도 나는 주님과 주님의 말씀 안에서 피난처를 찾았으며 기도하려고 그렇게 노력하지 않았는데도 내 마음 속으로부터 기도가 솟아올랐고, 지난날의 죄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강하게 떠올랐다.
내 죄들이 그처럼 무거운 짐으로 느껴진 적은 일찍이 없었다. 나는 완전히 죄로 가득찬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무런 희망도 없이 버려진 기분이었다. 어떻게 내가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나는 나 자신을 구원할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였다.
아직도 나 자신의 무엇으로 소이 선으로 어떤 행위로 구원을 얻기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불교등 이방 종교의 특징이닙니다.
그리고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를 논하는 케토릭에서도 그러합니다.
인간의 선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방 종교나 케토릭에서는 선을 행한 인물들이 많이 있고 세상에서 자랑을 합니다.
승려가 열반했다 하면 어떻게 선한 일을 했다고 온 세상이 떠들썩합니다.
어떤 사제가 죽었다고 하면은 그가 행한 선한 일을 그렇게도 자랑같이 내 세우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진정한 기독인들은 예수님의 은혜라고 하며 예수의 이름이 높임을 받습니다.
사실 그렇게도 그들이 선행을 자랑삼아 말하고 있지만 사회사업이나 북한 돕기나 해외 어려운 자들을 돕고 혹은 사후 장기기증자등을 살펴보면 그렇게도 선을 행하였다고 자랑하던 그들은 10%좌우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60-70%를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가 기독인들을 자랑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인들의 모든 공로는 예수 공로이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의 사실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을 발견하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사제였던 셀소 뮤니즈도 이것을 발견하기 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갈등을 겪었는지 모릅니다.
이것을 발견 할 수있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구원이 시작됩니다.
나에게서 구원을 찾으려고 했고 내 주위의 환경에서 구원을 찾으려고만 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조건은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들려주는 구원은 어디에서부터 온다고 했습니까?
2절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저 역시 하나님은 구원이라는 이 단어가 제게 큰 능력으로 다가올 수 있었던 것은 내게서 무슨 구원을 발견 할 수 없는 자임을 알았을 때이었습니다.
요사이같이 힘이 들 때에 더욱 그런 것을 느낌입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 때에 무엇인가 가졌다고 여겨 질 때에는 내가 스스로 무엇으로 삶에서 구원을 얻으려고 하였지 하나님의 구원은 별로 실감이 가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우리 가운데는 스스로의 구원을 힘쓰고 있습니다.
이것은 결코 하나님의 구원을 가져 올 수 없습니다.
구원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이게 믿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말할 때에 이것만큼 확신적이요 능력적이요 소망적인 것이 없습니다.
개역개정 성경에는 구원이라는 단어가 500번 이상 나오는데 이 구원은 모두가 하나님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외에는 구원이라고 할 수 없고 말 그대로 고행이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구원을 최고로 노래한 사람이 다윗이지 않습니까?
시33:16-20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세어도 스스로 구원하지 못하는 도다
구원하는 데에 군마는 헛되며 군대가 많다 하여도 능히 구하지 못하는 도다
여호와는 그를 경외하는 자 곧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그들의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그들이 굶주릴 때에 그들을 살리시는 도다
우리 영혼이 여호와를 바람이여 그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시로다
신약의 예수 구원의 대표주자인 사도 바울이지 않습니까?
그 구원을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고 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로마 사람들은 투구를 만드는 기술이 뛰어났다고 합니다. 투구를 만든 목적은 전쟁에서 병사의 얼굴과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당시의 로마의 병사들은 전쟁에 나갈 때 반드시 투구를 사용했습니다.
로마의 투구는 몇 가지 장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병사가 적과 육박전을 치룰 때 적의 온갖 무기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뿐 아니라 적병이 말을 타고 긴 창으로 머리를 노릴 때에도 보호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로마의 병사가 말을 타고 공격을 하다가 말에서 떨어지는 일이 있어도 투구로 인해 머리를 보호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투구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하게 됩니다. 투구는 당연히 머리에 쓰는 것입니다.
하나는 구원의 투구를 구원의 확신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사단이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공격을 많이 하는 것이 구원에 대한 확신입니다.
이 세상은 끊임없이 나에게 구원받은 것에 대해서 의심을 불러 넣어주고 흔들리게 만듭니다.
사단의 계략이 그러하므로 구원의 투구를 쓴다는 것은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산다고 해석을 합니다.
또 다른 하나은 구원의 투구를 장래 이루어질 미래의 것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살전 5:8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을 투구로 쓰자하여 미래형으로 말합니다.
지금은 힘들지만 그래도 구원의 여명은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지금도 구원이요 장차 받을 구원도 있으니 예수 안에 있으면 이래도 구원이요 저래도 구원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특징은 세상에 대하여 두려움 대신 하나님의 구원을 노래 부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노래가 됨으로 세상에서 삶의 두려움에서 자유 할 수 있습니다.
연세대 의대 강남세브란스병원 암센터 이희대 소장은 20여 년간 암 치료를 하던 암전문의입니다. 유방암 수술 분야에서 손꼽히는 명의이지만 그에게도 암은 사정을 봐주지 않았습니다. 2003년 대장암 지단을 받고 대장을 절반 잘라내었고 그 후 항암치료를 받았지만 암은 간과 왼쪽 골반으로 번져 흔히 말하는 말기인 4기가 되었습니다.
그의 암은 집요해서 모두11번 재발했습니다. 간과 골반 뼈 일부를 잘라내는 수술을 5번 받았고, 다섯 번의 고강도 방사선치료도 받았으며 3-4개월씩 계속되는 항암치료도 두 번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인생의 모든 고난은 동굴이 아니라 터널입니다. 언젠가는 끝이 있고 나가는 출구가 있죠. 그 고행을 이기면 예전보다 더 행복한 삶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 구원의 희망이 나를 이렇게 버티게 해줬지요. 라고 담담하게 말합니다.
그는 골반뼈 전이 암 치료 후유증으로 두 개의 지팡이에 의지해 걷습니다.
암을 고치는 의사가 암 환자라는 소문이 나면서 전국의 암 환자들이 그를 찾습니다. 상당수가 암이 재발하고 폐나 뼈에 전이 된 환자들입니다.
그는 그들에게 뭘 그런 것 같고 그렇게 시무룩하냐 는 핀잔을 주기 일쑤입니다.
저는 암환자들에게 치료법이 남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절대 절망해선 안 된다고 말하죠, 두려움이 골수를 녹여서 면역력을 떨어뜨리거든요.
자신의 투병기를 그의 이름을 따 희대의 소망 이란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암이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닙니다. 자신이 갖는 절망 때문에 죽는 거죠. 저는 암에 걸리기 전보다 지금이 더 행복합니다. 작은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됐고, 가족과의 정도 더 깊어졌기 때문이죠, 사실 저도 괴로울 때가 있죠.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죽음의 두려움이 밀려올 때마다 내가 나아서 행복해지는 구원의 꿈을 꾸고 그것을 미리 당겨다 갖다 놓습니다.
구원의 기쁨을 빌려와서 지금 누리는 거죠. 암은 마음의 병입니다. 마음이 바쁘고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하면 그 틈을 타서 암 세포는 자랍니다. 항상 즐겁고, 매사를 감사하게 여기세요.
저를 보세요 암4기 상태로 6년 동안 일할 거 다하면서 잘 살지 않습니까. 새로운 암 5기죠. 희망이 우리를 강하게 만듭니다.
본문에서도 구원은 나로 하여금 노래하게 만들고 구원의 우물물에서 구원을 기쁨으로 길어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지금은 은혜의 날이요 지금은 구원의 날입니다.
그 구원을 노래하고 그 구원을 지금 당장 기뻐하고 사십시오
하박국 3:17-19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당신은 반드시 구원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금도 구원입니다.
아직도 내게는 다른 구원은 없어도 여호와의 구원이 있습니다. 할렐루야!
나의 재산은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입니다.
영국이 찰스 1세의 학정으로 고통에 처해 있을 때 샛별처럼 나타나 영국을 구한 크롬웰에 관한 일화입니다.
크롬웰은 어려서부터 청교도의 가정에서 신앙 훈련을 받고 자란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항상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는 하나님의 편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 편에서 일하는 사람은 기도하는 일과 성경 읽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크롬웰은 국왕을 반대하는 청교도들로 구성된 군대를 지휘하는 대장이 되었습니다. 크롬웰은 국왕의 군대와 맞서 전쟁을 하였습니다. 크롬웰은 전쟁터에서도 시간이 생기면 기도하였고 쉬는 시간에는 성경을 읽었습니다.
싸움은 항상 치열했고 크롬웰은 언제나 선두에서 싸웠습니다. 그런데 전쟁터에서 갑자기 크롬웰이 말에서 떨어졌습니다. 적의 총탄에 맞은 것입니다. 말에서 떨어진 크롬웰은 이제 마지막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별로 아픈 곳이 없었고 총을 맞은 가슴도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참 이상한 일이군! 하며 자세히 살펴보니 총탄은 호주머니 속에 넣어 둔 성경에 박혀 있었습니다.
총탄이 박힌 곳은 전도서 12장 1절이었습니다.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보잘것없는 인간이 하나님을 안다는 것만큼 자랑스럽고 럭키한 일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행운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최고의 지식이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가장 안전한 길이다.
이점에 대해 스펄전 목사는 우리가 이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면 그것은 너무 광대한 주제이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생각이 그 광대함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게 되고, 그 주제가 너무나 깊은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자랑이 그 무한함 속에 묻혀버리게 된다. 당신은 자신의 슬픔을 잊으려 하는가? 그렇다면 당신 자신을 하나님의 가장 깊은 바다에 빠뜨려 보라. 그의 무한하심 속에 빠져 보라. 그러면 당신은 휴식의 침상에서 원기를 되찾고 다시 힘이 넘쳐서 일어나게 될 것이다.
여러분의 모든 문제 하나님께 있습니다.
오직 그의 구원의 은혜만을 받으십시오
나를 통하여 하나님이 구원하셨다는 소식을 널리널리 퍼집니다.
스코틀랜드의 독립운동가 로버트 부르스라는 사람이 도피자로 지낼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부르스는 쫓겨서 달아나다가 너무 급한 나머지 산 속 동굴로 피신해 숨어들었습니다. 동굴 속에 숨어서 숨을 죽이고 밖을 내다보던 그는 자기 앞에서 거미 한 마리가 열심히 거미줄을 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윽고 자기를 쫓는 무리가 동굴 입구에까지 닥쳤습니다. 그들은 거미줄이 처져 있는 것을 보고 여기엔 들어가지 않았다고 말하며 그냥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때 부르스는 무릎을 쳤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오,하나님. 이 작은 거미의 뱃속에 나를 위한 피난처를 마련해 주셨군요. 거미를 통해서 나를 보호해 주시다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이렇게 깨달을 수 있는 은혜가 주어진 것이 감사한 일입니다.
주의 구원의 손길은 온 땅에 충만하십니다. 거미도 까마귀도 주의 구원의 손길입니다.
아주 절박한 순간에 무심코 나타나는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깨달아 아시고 감사하십시오
구원은 주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받았습니다.
이제 나를 통하여 예수 구원하셨다고 하게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6절 시온의 주민아 소리 높여 부르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너희 중에서 크심이라 할 것이니라
기대하시고 믿으시기 바람니다.
518(통252) 기쁜 소리 들리니
1.기쁜 소리 들리니 예수 구원하신다 만민에게 전하라 예수 구원하신다
주님 명령하시니 산을 넘고 물 건너 온 세상에 전하라 예수 구원하신다
2. 바다들아 외쳐라 예수 구원하신다 모든 죄인 나오라 예수 구원하신다
모든 섬아 일어나 메아리쳐 울려라 복음 중에 복음은 예수 구원하신다
3. 환난 중에 하는 말 예수 구원하신다 다시 살아나시어 예수 구원하신다
지은 죄를 인하여 슬픈 맘이 있어도 숨질 때에 내 할 말 예수 구원하신다
4. 바람들아 외쳐라 예수 구원하신다 기뻐하라 나라들 예수 구원하신다
구원하는 소리를 산과 들에 전하라 우리들의 승전가 예수 구원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