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 도우신 에벤에셀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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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784회 작성일 2010-07-09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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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7:12-14 여기까지 도우신 에벤에셀의 하나님
갈릴레이는 지구는 자전하면서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지동설을 주장하다가 교황청으로부터 소환을 받아 법정에 서게 됩니다. 그곳에서 지구가 돌지 않는다는 말 한마디만 하면 살려준다는 협박 때문에 할 수없이 법정에서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지구는 돌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법정에서 풀려 나오면서 한말이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진리는 아무리 부정해도 변질되거나 바뀌지 않습니다.
평상시 잘 느끼지는 못하지만 물리의 법칙에 의해서 살아갑니다.
만유인력의 법칙이 있습니다.
중력이 있기에 사람이 허공으로 날아가지 않고 지구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왜 신발이 필요한 줄 아시겠습니까?
만일 지구를 떠나려고 하려면 중력보다 큰 힘이 필요합니다.
비행기를 공중에 뜨게 하려면 지구가 물체를 끌어당기는 힘보다 더 큰 추진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힘은 물질의 무게와 속도에 관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권투 선수에 체급이 있는 것은 무게가 더 나가면 펀치력이 더 세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무게가 많이 나가도 스모 선수가 K1에서 우승하지 못하는 것은 스피드가 없기 때문이지요.
지금 무슨 소리하느냐 하고 말하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학문을 통해 물리의 법칙을 배우지 못해 모른다 해도 나의 일상생활 속에서 물리의 법칙 속에서 알게 모르게 의존하고 삽니다.
오늘 하나님에 대하여 모른다고 해도 아니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한다 해도 지금까지 한 삶의 예외자도 없이 하나님의 도와주심으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무엘 선지자는 온 이스라엘을 모우고 금식하고 기도하고 그들에게 일어준 사실이 에벤에셀의 하나님 즉 12절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것을 알게 되는 것이 큰 축복인 줄로 아시기 바랍니다.
사무엘이 돌로 된 기념비를 세우고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하면서 에벤에셀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사실 오늘 본문의 상황 이전까지 이스라엘의 역사는 어두움의 역사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 중에 사사시대는 암흑의 시대요, 하나님을 잃어버린 시대요, 고통과 절망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 3-4장은 이스라엘 역사 중에 가장 어두웠던 시기가 거기에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 때에는 엘리 제사장이 그 나라의 영적인 지도자로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블레셋 사람들과의 전쟁에서 패전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법궤마저 적에게 빼앗겼습니다(삼상 4:11). 법궤 혹은 이 언약궤는 하나님이 그 백성과 함께 하시는 언약의 보증이었으며 승리의 상징이었습니다.
법궤를 빼앗기면서 엘리의 두 아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아들들을 잃고 법궤마저 빼앗긴 엘리 제사장은 좌절과 실의 가운데서 비명에 죽어갔고(삼상 4:18),
엘리 제사장의 며느리의 입술을 빌려 그 시대의 암울하고 황폐한 이스라엘의 모습이 고백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무엘상 4:21을 보시면 그녀는 아이를 낳으며 죽어가면서 한마디 말을 이렇게 토합니다.
이가봇!이라고 말했는데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고난의 상황을 겪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엇이라고 고백합니까?
에벤에셀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도우심으로 내가 내 됨을 아는 것은 앞으로 그 은혜에 사는 축복된 자가 됩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였습니다.
이 은혜를 깨달은 바울은 그 은혜를 헛되이 돌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세기의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한 불우한 소녀가 홀어머니와 단둘이 살았는데 집안이 매우 가난하여 먹을 것이 없어 때로는 물로 배를 채우기도 하고, 어떤 때는 아사 직전에서 이웃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제2차 세계대전까지 터졌는데 그 소녀는 계속해서 굶주림으로 허덕일 수밖에 없었는데 국제연합아동구호기금(UNICEF)이라는 단체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는 지역의 아동들에게 빵과 우유를 나누어주었습니다. 소녀는 구제품을 먹으며 겨우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으며 장성하여 세계적인 영화배우가 된 그 소녀의 이름은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 1929-1993)이었습니다. 헵번은 극심한 가난과 굶주림에 처했을 때 도움을 받은 국제연합아동구호기금단체를 위해 지난 과거를 생각하며 이 단체의 홍보 대사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특히 아프리카의 소말리아 같은 지역의 굶주린 소년․소녀들에게 가서 먹을 것을 주며 봉사 활동을 하며 아프리카의 천사라는 칭호를 받으며 인생을 마쳤습니다.
오드리햅번이 죽기 일 년 전에 크리스마스이브 때에 아들에게 들려준 글
아름다운 입술을 가지고 싶으면 친절한 말을 하라.
사랑스런 눈을 갖고 싶으면 사람들에게서 좋은 점을 봐라.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으면 너의 음식을 배고픈 사람과 나누어라.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갖고 싶으면 하루에 한 번 어린이가 손가락으로 너의 머리를 쓰다듬게 하라.
아름다운 자세를 갖고 싶으면 결코 너 혼자 걷고 있지 않음을 명심하라.
사람들은 상처로부터 복구돼야 하며, 낡은 것으로부터 새로워져야 하고, 병으로부터 회복되어져야 하고, 무지함으로부터 교화되어야 하며, 고통으로부터 구원받고 또 구원받아야 한다.
결코 누구도 버려서는 안 된다.
기억하라……. 만약 도움의 손이 필요하다면 너의 팔 끝에 있는 손을 이용하면 된다.
네가 더 나이가 들면 손이 두 개라는 걸 발견하게 된다.
한 손은 너 자신을 돕는 손이고 다른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돕는 손이다. 얼마나 멋이 있습니까?
이제 내가 고백해야 할 것이 딱 한 가지가 있다면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말해야 합니다.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절망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올 한해의 절반을 보내는 맥추 감사절에 하나님이 여기까지 인도하심을 감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어떤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계십니까?
저 역시 한마디로 하나님께 드릴 말씀이 있다면 하나님의 도와주심입니다. 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감동적으로 말입니다.
지금보다 더 못한 환경이 주어져도 하나님의 은혜를 말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교회 지난 몇 년간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얼마나 시험이 많든지 그렇다고 지금이 나아졌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참 감사 한 것뿐입니다.
시험 가운데 교회 확장을 가져오게 되어 쾌적한 환경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또한 힘든 가운데 노회장으로 선출되어 제직을 잘 감당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었습니까?
지나고보니 감당하고 보니 모두가 하나님의 도와주심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백합니다. 에벤에셀의 하나님이 여기까지 도와주셨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해석이라고 말합니다. 미래에 대한 꿈도, 지나간 과거도, 인생은 다 해석하기 나름입니다.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인생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모든 일들을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내내 축복하시고 보호해 주신 것뿐입니다.
망하게 하고 실수하고 실패하고 좌절하고 부정적이고 불합리적이고 완악하고 못되고 교만하고 이기적이고 정욕적이고 욕심적이고 비난하고 어리석고 간사하고 온갖 더러운 짓은 내가 다하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만큼이라도 된 것입니다,
내 인생을 부정적으로 해석하면 원망과 불평과 탄식 속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다 잘 낫고 나는 다 잘하고 내가 가장 선하고 내가 가장 옳고 등등이 하나님이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혹 있더라도 당신이 하나님이라면 이렇게 밖에 해 주지 못하느냐? 고 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단어를 보십시오 하나님이 계시면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지난날을 바라보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큰 복을 받을 그릇이 됩니다.
나 스스로를 한번 보십시오 복 받을 자 일 것 같아요
에벤에셀의 고백은 놀라운 일이 이스라엘에게 있었습니다.
감사의 고백은 지난날 내내 아무 어려움도 없었고, 무슨 일을 하든지 만사형통하였고, 항상 건강하였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지금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되었기 때문도 아닙니다.
궁극적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신앙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믿음입니다. 이 만큼도 이 정도도 이렇게 된 것도 여기까지 도우셨다는 고백이 믿음의 표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옥중에도 찬송을 하였으니 이게 다 성도들의 가지는 자세입니다. 옥터가 흔들립니다.
본문에도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시인함으로서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고 하였더니
13절 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지역 안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감사는 악의 세력을 막으셨습니다.
감사는 삶의 상처와 아픔 잃어버림 등을 회복케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14절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이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니 이스라엘이 그 사방 지역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회복케 하시는 하나님
2009년12월22일 신종플루로 아들 석규(7) 군을 잃은 탤런트 이광기 씨는 슬픔과 아픔은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흔들리고 아무 일도 안 하고 슬픔에만 빠져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는 그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건 기도밖에 없었어요 라면서 깊은 슬픔 속에서 오히려 희망을 발견한 심정을 이렇게 전했습니다.
처음에 나는 왜 이리 불행할까. 왜 내 애한테 하필 이런 일이 생겼나 라고 절망하던 그는 그런데 하나님이 뺏으려면 다 뺏어갈 수 있습니다. 앞으로 내가 살아서 해야 할 일이 있다는 뜻을 깨달았습니다. 예전에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라는 생각이 많았어요. 그런데 석규 잃고 납골당 가보니 자식 먼저 보낸 부모가 많더군요. 교회 앞에서 아들이 덤프트럭에 치여 죽은 부모는 평생 봉사하면서 살아요. 그 분들 아픔 보면서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전에는 동정심으로 밑을 쳐다봤다면 이제는 나눔으로 쳐다보게 돼요. 라며 절망에서 건진 희망과 사명을 나누었습니다. 이광기 씨, 그는 아들 석규의 죽음이 신종 플루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함으로 많은 아이들을 살리고 갔다.라며 앞으로 장학재단이나 선교학교를 만들어서 아름다운 뜻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의 고백 속에 이미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상처를 치료하며 회복케 하시고 평안과 진실이 풍성함을 나타내 주신 줄 믿습니다.
아이티에 큰 지진이 일어났을 때에도 먼저 달려가 그곳 어린이들을 위로해주는 일에 앞장섬으로서 그이 잃어버린 자녀의 아픔이 회복이 될 뿐 아니라 더 많은 어린이들을 위한 대부가 되지 않았습니까?
에벤에셀이 되지 않습니까? 기도해 보십시오
어떤 기관에서 한국의 크리스천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하루에 얼마나 기도하십니까? 라는 질문에, 10분이하라고 대답한 사람이 남자 응답자의 60퍼센트, 여자 응답자의 50퍼센트를 차지했습니다.
그것도 식사기도 포함해서.... 어느 분의 식사기도 - 하나님 생큐, 예수님 아멘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과 은총을 구하기 위해서 항상 기도하는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스바에서 기도를 회복하였습니다.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고백 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화평을 가져옵니다.
14절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
하나님의 화평은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또한 단순히 조화나 마음의 평정을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평화는 전쟁으로 파괴된 세상 한 복판에도 존재하며, 심지어는 해결 되지 못한 문제, 그리고 증가하고 있는 인간들의 갈등들 가운데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으로 화평을 주셨습니다.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이 화평은 영원한 것이며, 또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이 에벤에셀을 고백 할 수만 있다면 아니 이 에벤에셀의 하나님께 감사 할 수만 있다면
하나님이 여기까지 나를 도우셨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과거사에 대한 감사의 고백입니다. 숱한 위기와 우여곡절 가운데서 여기까지 도우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세웠던 감사의 기념비가 에벤에셀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때는 사사시대, 신정에서 왕정으로 이행하는 과도기였습니다. 그동안 이스라엘은 블레셋에게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성읍도, 재산도, 심지어 하나님의 법궤까지 빼앗겼습니다.
지난 한 해를 회고하시면서 여기까지, 오늘까지 하나님이 나를, 내 가정을 도우셨다고 고백하실 수 있습니까? 누가 뭐래도 하나님이 나를 여기까지 도우셨습니다. 이것을 인정하십시오. 그리고 에벤에셀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더 큰 은혜를 누립니다.
스터드(C.T.Studd)라는 유명한 선교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시고 그분이 진정 날 위해 돌아가셨다면 내가 그분을 위해 아무리 큰 희생을 바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헌신, 헌신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내가 하나님께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입니다.
다윗의 고백 시 116:12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사도 바울의 고백 살전 3:9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로 하나님께 보답할까
이번 감사절에 무슨 감사를 드릴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일 년에 3번 큰 감사절을 지키도록 하셨습니다.
신 16:10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16:17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16: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이번 최선의 감사로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나의 삶에는 전화위복이 되는 은혜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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