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행(遵行)을 통하여 얻는 구원의 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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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691회 작성일 2010-07-09 11:05본문
창세기 6:13-22 준행(遵行)을 통하여 얻는 구원의 방주
현대인들은 이런 말을 합니다. 옛날의 사람들은 착하였다고 합니다. 과연 그랬을까요?
어른들이 이런 말들을 합니다. 요사이 아이들은 버릇이 없다고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3천년도 더 전에 만들어진 이집트 피라미드에도 요즘 아이들은 버릇이 없다는 글귀가 적혀 있고, 고대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요즘 아이들은 사치를 하고 버릇이 나쁘다는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죄인의 모습은 변화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본문의 노아의 시대에도 마찬가지로 포악한 죄가 가득하였다고 함은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인류 최초의 아담의 큰 아들 가인은 동생 아벨을 돌로 살해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문제는 그 죄는 짖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 값을 치루데 있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롬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하나님은 죄의 값을 인간이 치루시기를 원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오히려 죄의 값을 대신 치루어 주신 분이십니다.
사람이 보기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 같지만 사람이 스스로 심판을 자초(自招)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역시 하나님이 심판을 명하시기 보다는 그들의 죄악이 포악(暴惡)함으로 인해 사람 스스로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은 심판을 원하시지 않으시고 구원을 일러주시고 계십니다.
자 보십시오 내가 보기에 하나님은 심판을 말하시고 계십니까? 구원을 말하고 계십니까?
누구는 심판을 말하고 있고 누구는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 여러분이 생각하는 대로 될 것입니다.
내가 벌을 받겠구나 하고 생각하는 자는 벌을 받을 것입니다.
내가 구원을 받겠구나 라고 생각하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심판은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자들이 그들의 삶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을 말하는 자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본문을 자세히 보십시다 심판을 말하고 있습니까?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까?
노아의 홍수를 통상 말 할 때에 구원을 말하지 않고 심판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심판이 아닙니다. 망하는 자들에게 심판이지
구원을 얻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노아의 홍수는 심판이 아니라 구원이 되었습니다.
분명히 물로 심판이 이야기되고 있지만 구원의 방주의 소식은 심판 가운데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당연히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가운데 은혜로 받는 선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들을 수 있는 자는 구원이 되고 들어도 못들은 척하는 자는 멸망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이 시간에도 구원을 말씀 하십니다. 할렐루야!
망 할 수밖에 죽을 수 밖에 없는 그 순간에도 구원은 있습니다.
지금 내가 당하고 있는 어려움을 통해서 멸망을 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구원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구원을 얻으리로다 이게 복음입니다.
13절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이것만 보면 멸망입니다. 이것을 말하시지 않습니다.
이 가운데 구원을 말씀 하시려는 것입니다.
14절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고 19절 너와 함께 생명은 보존하게 하라
그러면 하나님은 심판이십니까? 구원이십니까?
하나님은 재앙이 아니라 마침내 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 구원의 방법은 하나님이 내십니다.
사람은 그 하는 짖을 보면 망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가운데 언제든지 구원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하실 뿐 아니라 구체적으로 방주의 설계까지 해 주셨습니다.
이게 구원입니다.
방주의 크기를 길이가 삼백 규빗 넓이가 오십규빗 높이가 삼십 규빗이라 했는데 이 규빗은 장년들의 가운데 손가락 끝에서부터 팔꿈치까지의 길이 보통 45.6cm 로 봅니다. 이것을 계산 해보니 길이는 약137m, 넓이는 23m, 높이가 13m 정도요 이 정도의 배가 실을 수 있는 무게 즉 배수량은 약 2만 톤 정도라고 합니다. 이 배가 얼마나 큰지 실감이 나지 않기 때문에 다른 배를 예를 들어보면, 한때 세계 최고의 항공모함엔터프라이즈호가 길이 317m 7만5천톤 노아가 만든 배가 이 항공모함의 1/3정도의 사이즈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상암동에 있는 월드컵 축구경기장 길이가 108m 이니까 29m가 더 긴 셈입니다. 보잉 747 여객기 길이가 69m 이니 두 배 길이쯤 된다고 보면 됩니다. 높이는 아파트 4층 정도의 높이 입니다. 그러니까 노아 방주는 보통 큰 배가 아닙니다.
여러분, 지금이야 시대가 좋아서 그렇게 큰 배를 만들 수도 있었지만 노아의 시대에 무슨 도구가 있다고 그렇게 큰 배를 만들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노아는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그 엄청난 크기의 방주를 지었습니다.
그런데도 22절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이 정도는 만들어야 구원을 얻게 됩니다.
마7:24-27,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방주는 노아가 마음대로 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재료와 설계구조 그대로 만들어야만 했습니다.
14-16절 하나님이 지시하신 방주의 설계도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구원을 얻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되 하나님이 일러주시는 대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요9:10-11 그들이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제멋대로 교회생활 하면 잘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교회를 통한 신앙생활에는 법도가 있는데 그 법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입니다.
노아가 배를 잘 만드는 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신 식량(式樣) 대로 만드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도가 신앙생활 잘하는 것도 하나님 말씀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잘 믿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마음대로 살았으면 그만이지 교회 안에서도 제 마음대로 믿으려고 하는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배운 자기지식이나 세상에 길들여진 자기습관이나 세상에서 모은 물질로 자기를 내세우며 자기 방법대로 믿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고, 무엇을 명령하시나 귀 기울여 듣고 순종하는 신앙생활이 잘 하는 신앙생활이 된다는 뜻입니다.
말씀을 항상 진지하게 듣고 그대로 순종하는 믿음이 가장 잘 믿는 믿음이 됩니다.
오직 구원은 점진적(漸進的)으로 이루어져 나아가는 것입니다.
노아의 방주의 구원은 12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이 기간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그 만큼의 배를 만들려면 그 기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야지 비로소 온전해집니다. 그래야만 홍수를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구원의 즐거움이 있기에 한결같이 구원을 이루어 갈 수 있었습니다.
광야를 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40년이라는 기간이 애굽의 더러운 것을 떨쳐버리고 가나안을 소유하고 살 수 있는 그릇이 됩니다.
그러나 이 40년을 젓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의 소망을 두고 감당한 것이 아니라 불평 불만하다가 세월을 다 보내고 가나안이 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예수를 믿어도 제대로 순종해본적도 없고 주어진 기간을 잘 감당하지도 않고 툭하면 불평불만 하다가 끝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22절 짧은 구절이지만 간결하고도 분명한 그의 구원을 얻을 만한 믿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할렐루야!
노아의 시대에 그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지만, 노아의 가족만 구원받게 된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하나님을 경외하고,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이 구절을 보면 그 비결이 보입니다.
노아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대로 그대로 모든 것을 그대로 행했다고 합니다.
상식을 말하지 마십시오
그 당시에 비 한 점 없을 때 하나님께서 크나큰 배를 지으라고 하셨을 때 그 말 그대로 순종하기는 상식적으로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상식을 초월하는 순종이 필요합니다.
눅5:4-6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하나님께서 혹시 이런 뜻으로 말씀하신 게 아닐까, 배를 짓더라도 조금 작게 축소해서 지으면 어떨까, 비가 올 기미가 보이면 착수하자 등등 상식적인 시야로 생각하면 이런 생각들이 들기 쉬울 것입니다.
사람들은 조롱하고, 날씨는 쨍쨍 해가 비치는 가운데에서도 보이는 상황이나 상식대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행하였던 그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쁨이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순종할 때, 나름대로 고치고 바꾸어서 적당히 순종하는 태도가 있음을 보게 됩니다.
말씀에는 이렇게 되어있지만, 지금 내 상황은 그럴만한 때가 아니지, 조금 더 내가 여유가 생기면 그대로 순종해야지, 이 사람한테만은 말씀대로 하기가 힘들어 등등 변명과 이유를 대는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성경에 있는 축복과 기쁨의 약속들은 그대로 받기를 원하면서, 순종하는 부분은 그대로 하지 않고 변형시켜버리는 것이 우리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왕하5:10-14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내가 그대로 지킬 하나님의 명령은 어떤 것인지 찾아보고 그것을 지켜 행하여 축복을 누려 봅시다.
미국의 초기 청교도 역사 속에서 가장 위대한 영향을 끼쳤던 사람 중 조나단 에드워드라는 신앙적인 여인과 결혼해서 신혼 초기부터 철저하게 기독교적 원리에 입각해서 그리스도인의 가정을 형성해 갔습니다.
반면에 그와 같이 자란 동네 친구 가운데 맥스 쥬크라는 자신도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았지만 방탕한 삶을 살았던 여인과 결혼을 하여 자신도 신앙을 저버리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유전학을 전공하는 어떤 사람이 이 두 사람의 후손들이 어떻게 되었는가 하는 그 가계를 연구했습니다.
신앙의 가정을 이루었던 조나단 에드워드는 오늘날까지 617명의 후손을 두었는데, 그 중에 대학의 총장을 지냈던 사람이 12명. 교수가 75명. 의사가 60명. 성직자가 100명. 군대 장교가 75명. 저술가가 80명. 변호사가 100 명. 판사가 30명. 공무원이 80명. 하원의원이 3명. 상원의원이 1명. 미국의 부통령을 1명 배출했습니다.
불신앙의 가정을 이루었던 맥스 쥬크는 에드워드 가계보다 두 배나 더 많은 1292명의 후손을 두었는데, 태어나자마자 죽어버리는 영유아 사망자가 309명. 직업적인 거지가 310명. 불구자가 440명. 매춘부가 50명. 도둑이 60명. 살인자가 70명. 그저 그렇고 그런 사람이 53명이었습니다. 오직 20명만이 장사를 했는데 그 중에서도 10명은 감옥에서 배운 기술로 장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뉴욕 주가 이 가문의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쏟아 부운 공공예산이 수백만 달러가 넘었다고 합니다.
왜 우리 인생이 무너집니까? 왜 가정이 무너집니까? 왜 사회가, 나라가 붕괴됩니까? 주님의 뜻대로 주님의 말씀대로 설계도대로 살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그 준행이 당신의 구원을 위한 방주입니다.
방주는 전시하거나 관찰용이 아닙니다. 만드는 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들어가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방주는 배에 운전시설이 없었습니다.
노아 방주가 몇 마력의 엔진을 장착했는지 아십니까? 그 배에는 엔진이 없었습니다. 스크루도 없었습니다. 방향을 잡는 키도 없었고 정박을 위한 닻도 없었습니다.
방주에는 선장도 없었고 기관장도 없었습니다. 운전시설도 없었고, 운영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노아의 8식구는 단지 그냥 배 안에 타고 있던 승객에 불과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사고 없이 멋지게 운항하였습니다.
40일 간 주야로 내린 비로 150일 동안이나 온 세상에 물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9개월 13일 만에 정상 수위가 되었으며 노아의 가족은 1년 17일을 배 안에서 머물러야 했습니다.
그 긴 시간동안 이 배는 아무 고장도 없었고, 아무 사고도 없이 운행하였습니다.
노아와 가족들은 항해를 위하여 한일이 전혀 없었고 하나님께 다 맡기고 편안하게 지내며 기도하고 찬양할 뿐이었습니다.
교회에도 가정에도 어려운 일이 있고 시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답답합니다. 내가 뭔가를 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러니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찬양하노라면, 하나님이 해결해 주십니다.
계 2:1 오른손에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주님은 지금도 이 땅의 모든 교회를 당신의 성령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하나님 전능하신 손에 교회를 맡겨드리고 내 가정을 드립시다. 다만 하나님의 집을 섬기는 사환(仕宦)으로서 충성만 다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현대인들은 이런 말을 합니다. 옛날의 사람들은 착하였다고 합니다. 과연 그랬을까요?
어른들이 이런 말들을 합니다. 요사이 아이들은 버릇이 없다고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3천년도 더 전에 만들어진 이집트 피라미드에도 요즘 아이들은 버릇이 없다는 글귀가 적혀 있고, 고대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요즘 아이들은 사치를 하고 버릇이 나쁘다는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죄인의 모습은 변화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본문의 노아의 시대에도 마찬가지로 포악한 죄가 가득하였다고 함은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인류 최초의 아담의 큰 아들 가인은 동생 아벨을 돌로 살해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문제는 그 죄는 짖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 값을 치루데 있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롬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하나님은 죄의 값을 인간이 치루시기를 원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오히려 죄의 값을 대신 치루어 주신 분이십니다.
사람이 보기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 같지만 사람이 스스로 심판을 자초(自招)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역시 하나님이 심판을 명하시기 보다는 그들의 죄악이 포악(暴惡)함으로 인해 사람 스스로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은 심판을 원하시지 않으시고 구원을 일러주시고 계십니다.
자 보십시오 내가 보기에 하나님은 심판을 말하시고 계십니까? 구원을 말하고 계십니까?
누구는 심판을 말하고 있고 누구는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 여러분이 생각하는 대로 될 것입니다.
내가 벌을 받겠구나 하고 생각하는 자는 벌을 받을 것입니다.
내가 구원을 받겠구나 라고 생각하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심판은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자들이 그들의 삶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을 말하는 자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본문을 자세히 보십시다 심판을 말하고 있습니까?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까?
노아의 홍수를 통상 말 할 때에 구원을 말하지 않고 심판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심판이 아닙니다. 망하는 자들에게 심판이지
구원을 얻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노아의 홍수는 심판이 아니라 구원이 되었습니다.
분명히 물로 심판이 이야기되고 있지만 구원의 방주의 소식은 심판 가운데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당연히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가운데 은혜로 받는 선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들을 수 있는 자는 구원이 되고 들어도 못들은 척하는 자는 멸망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이 시간에도 구원을 말씀 하십니다. 할렐루야!
망 할 수밖에 죽을 수 밖에 없는 그 순간에도 구원은 있습니다.
지금 내가 당하고 있는 어려움을 통해서 멸망을 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구원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구원을 얻으리로다 이게 복음입니다.
13절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이것만 보면 멸망입니다. 이것을 말하시지 않습니다.
이 가운데 구원을 말씀 하시려는 것입니다.
14절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고 19절 너와 함께 생명은 보존하게 하라
그러면 하나님은 심판이십니까? 구원이십니까?
하나님은 재앙이 아니라 마침내 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 구원의 방법은 하나님이 내십니다.
사람은 그 하는 짖을 보면 망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가운데 언제든지 구원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하실 뿐 아니라 구체적으로 방주의 설계까지 해 주셨습니다.
이게 구원입니다.
방주의 크기를 길이가 삼백 규빗 넓이가 오십규빗 높이가 삼십 규빗이라 했는데 이 규빗은 장년들의 가운데 손가락 끝에서부터 팔꿈치까지의 길이 보통 45.6cm 로 봅니다. 이것을 계산 해보니 길이는 약137m, 넓이는 23m, 높이가 13m 정도요 이 정도의 배가 실을 수 있는 무게 즉 배수량은 약 2만 톤 정도라고 합니다. 이 배가 얼마나 큰지 실감이 나지 않기 때문에 다른 배를 예를 들어보면, 한때 세계 최고의 항공모함엔터프라이즈호가 길이 317m 7만5천톤 노아가 만든 배가 이 항공모함의 1/3정도의 사이즈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상암동에 있는 월드컵 축구경기장 길이가 108m 이니까 29m가 더 긴 셈입니다. 보잉 747 여객기 길이가 69m 이니 두 배 길이쯤 된다고 보면 됩니다. 높이는 아파트 4층 정도의 높이 입니다. 그러니까 노아 방주는 보통 큰 배가 아닙니다.
여러분, 지금이야 시대가 좋아서 그렇게 큰 배를 만들 수도 있었지만 노아의 시대에 무슨 도구가 있다고 그렇게 큰 배를 만들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노아는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그 엄청난 크기의 방주를 지었습니다.
그런데도 22절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이 정도는 만들어야 구원을 얻게 됩니다.
마7:24-27,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방주는 노아가 마음대로 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재료와 설계구조 그대로 만들어야만 했습니다.
14-16절 하나님이 지시하신 방주의 설계도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구원을 얻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되 하나님이 일러주시는 대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요9:10-11 그들이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제멋대로 교회생활 하면 잘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교회를 통한 신앙생활에는 법도가 있는데 그 법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입니다.
노아가 배를 잘 만드는 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신 식량(式樣) 대로 만드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도가 신앙생활 잘하는 것도 하나님 말씀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잘 믿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마음대로 살았으면 그만이지 교회 안에서도 제 마음대로 믿으려고 하는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배운 자기지식이나 세상에 길들여진 자기습관이나 세상에서 모은 물질로 자기를 내세우며 자기 방법대로 믿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고, 무엇을 명령하시나 귀 기울여 듣고 순종하는 신앙생활이 잘 하는 신앙생활이 된다는 뜻입니다.
말씀을 항상 진지하게 듣고 그대로 순종하는 믿음이 가장 잘 믿는 믿음이 됩니다.
오직 구원은 점진적(漸進的)으로 이루어져 나아가는 것입니다.
노아의 방주의 구원은 12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이 기간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그 만큼의 배를 만들려면 그 기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야지 비로소 온전해집니다. 그래야만 홍수를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구원의 즐거움이 있기에 한결같이 구원을 이루어 갈 수 있었습니다.
광야를 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40년이라는 기간이 애굽의 더러운 것을 떨쳐버리고 가나안을 소유하고 살 수 있는 그릇이 됩니다.
그러나 이 40년을 젓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의 소망을 두고 감당한 것이 아니라 불평 불만하다가 세월을 다 보내고 가나안이 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예수를 믿어도 제대로 순종해본적도 없고 주어진 기간을 잘 감당하지도 않고 툭하면 불평불만 하다가 끝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22절 짧은 구절이지만 간결하고도 분명한 그의 구원을 얻을 만한 믿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할렐루야!
노아의 시대에 그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지만, 노아의 가족만 구원받게 된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하나님을 경외하고,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이 구절을 보면 그 비결이 보입니다.
노아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대로 그대로 모든 것을 그대로 행했다고 합니다.
상식을 말하지 마십시오
그 당시에 비 한 점 없을 때 하나님께서 크나큰 배를 지으라고 하셨을 때 그 말 그대로 순종하기는 상식적으로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상식을 초월하는 순종이 필요합니다.
눅5:4-6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하나님께서 혹시 이런 뜻으로 말씀하신 게 아닐까, 배를 짓더라도 조금 작게 축소해서 지으면 어떨까, 비가 올 기미가 보이면 착수하자 등등 상식적인 시야로 생각하면 이런 생각들이 들기 쉬울 것입니다.
사람들은 조롱하고, 날씨는 쨍쨍 해가 비치는 가운데에서도 보이는 상황이나 상식대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행하였던 그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쁨이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순종할 때, 나름대로 고치고 바꾸어서 적당히 순종하는 태도가 있음을 보게 됩니다.
말씀에는 이렇게 되어있지만, 지금 내 상황은 그럴만한 때가 아니지, 조금 더 내가 여유가 생기면 그대로 순종해야지, 이 사람한테만은 말씀대로 하기가 힘들어 등등 변명과 이유를 대는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성경에 있는 축복과 기쁨의 약속들은 그대로 받기를 원하면서, 순종하는 부분은 그대로 하지 않고 변형시켜버리는 것이 우리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왕하5:10-14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내가 그대로 지킬 하나님의 명령은 어떤 것인지 찾아보고 그것을 지켜 행하여 축복을 누려 봅시다.
미국의 초기 청교도 역사 속에서 가장 위대한 영향을 끼쳤던 사람 중 조나단 에드워드라는 신앙적인 여인과 결혼해서 신혼 초기부터 철저하게 기독교적 원리에 입각해서 그리스도인의 가정을 형성해 갔습니다.
반면에 그와 같이 자란 동네 친구 가운데 맥스 쥬크라는 자신도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았지만 방탕한 삶을 살았던 여인과 결혼을 하여 자신도 신앙을 저버리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유전학을 전공하는 어떤 사람이 이 두 사람의 후손들이 어떻게 되었는가 하는 그 가계를 연구했습니다.
신앙의 가정을 이루었던 조나단 에드워드는 오늘날까지 617명의 후손을 두었는데, 그 중에 대학의 총장을 지냈던 사람이 12명. 교수가 75명. 의사가 60명. 성직자가 100명. 군대 장교가 75명. 저술가가 80명. 변호사가 100 명. 판사가 30명. 공무원이 80명. 하원의원이 3명. 상원의원이 1명. 미국의 부통령을 1명 배출했습니다.
불신앙의 가정을 이루었던 맥스 쥬크는 에드워드 가계보다 두 배나 더 많은 1292명의 후손을 두었는데, 태어나자마자 죽어버리는 영유아 사망자가 309명. 직업적인 거지가 310명. 불구자가 440명. 매춘부가 50명. 도둑이 60명. 살인자가 70명. 그저 그렇고 그런 사람이 53명이었습니다. 오직 20명만이 장사를 했는데 그 중에서도 10명은 감옥에서 배운 기술로 장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뉴욕 주가 이 가문의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쏟아 부운 공공예산이 수백만 달러가 넘었다고 합니다.
왜 우리 인생이 무너집니까? 왜 가정이 무너집니까? 왜 사회가, 나라가 붕괴됩니까? 주님의 뜻대로 주님의 말씀대로 설계도대로 살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그 준행이 당신의 구원을 위한 방주입니다.
방주는 전시하거나 관찰용이 아닙니다. 만드는 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들어가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방주는 배에 운전시설이 없었습니다.
노아 방주가 몇 마력의 엔진을 장착했는지 아십니까? 그 배에는 엔진이 없었습니다. 스크루도 없었습니다. 방향을 잡는 키도 없었고 정박을 위한 닻도 없었습니다.
방주에는 선장도 없었고 기관장도 없었습니다. 운전시설도 없었고, 운영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노아의 8식구는 단지 그냥 배 안에 타고 있던 승객에 불과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사고 없이 멋지게 운항하였습니다.
40일 간 주야로 내린 비로 150일 동안이나 온 세상에 물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9개월 13일 만에 정상 수위가 되었으며 노아의 가족은 1년 17일을 배 안에서 머물러야 했습니다.
그 긴 시간동안 이 배는 아무 고장도 없었고, 아무 사고도 없이 운행하였습니다.
노아와 가족들은 항해를 위하여 한일이 전혀 없었고 하나님께 다 맡기고 편안하게 지내며 기도하고 찬양할 뿐이었습니다.
교회에도 가정에도 어려운 일이 있고 시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답답합니다. 내가 뭔가를 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러니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찬양하노라면, 하나님이 해결해 주십니다.
계 2:1 오른손에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주님은 지금도 이 땅의 모든 교회를 당신의 성령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하나님 전능하신 손에 교회를 맡겨드리고 내 가정을 드립시다. 다만 하나님의 집을 섬기는 사환(仕宦)으로서 충성만 다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