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일에 충성함은 하나님의 풍성함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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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659회 작성일 2010-09-04 10:27본문
마태복음 25:14-23 주의 일에 충성함은 하나님의 풍성함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위스콘신 천체연구소에서 근무하던 물리학자 첸드리스카(Chrasekhar)박사가 시카고대학으로부터 고급물리학(Advanced Physic)에 관한 겨울 강좌를 개설하고 강의를 제의를 받아 승낙을 했는데 강의 취소 통보가 왔습니다. 내용은 그 클래스에 중국계 미국인 두 명밖에 등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때 첸드리스카 박사가 클래스가 작은 것은 전혀 상관이 없이 강의를 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두 시간 떨어진 거리인데도 일주일에 이틀 동안 한 번도 빠짐이 없이 그 해 겨울, 계속적으로 두 학생을 상대로 강의를 하였습니다. 그로부터 십 년이 흐른 후 첸드리스카 박사에게 강의를 받았던 두 사람 첸넝 양(Chen Ning Yang)과 또 한 사람은 충도 리(Tsung-Dao Lee)는 노벨 물리학상을 받게 됩니다. 한 사람은 중국계 과학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수상의 자리에서 노벨상을 수상하게 된 데는 우리 두 사람을 앞에 놓고 강의했던 첸드리스카 박사 때문이었다고 했습니다.
두 사람을 적다하지 않고 열정을 다한 첸드리스카 박사의 강의가 노벨상으로 열매가 맺혀진 것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일상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들은 작은 일들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그 작은 일들을 얼마나 성실히 행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성패가 결정됩니다.
작은 일들을 무시하면 결코 위대하게 될 수 없습니다.
우리 속담에도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 티끌모아태산,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에도 주어진 인생살이 즉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임을 보여 줍니다.
적은 일에 충성함으로 많은 것을 얻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군에 가면 제일 많은 구호가 충성이지 않습니까?
충성이란 중세 봉건국가에서 신하가 군주나 제후에게 지는 의무를 뜻하였다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정성입니다.
고린도전서 4:2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 충성의 시발점은 하나님이 내게 주어진 내 모습 그대로입니다.
충성함에 있어서 더 필요함도 아니요 또한 모자람도 아닙니다.
누구든지 충성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15절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내게 주어진 것만으로도 주께 충성하기에 합당한 것입니다.
소히 신앙생활을 하는데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충성이라는 단어가 말해 주듯이 내 자신의 마음의 가짐이 중요한 것입니다.
과연 어떤 마음이 이들로 하여금 충성을 하게 하였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주인이 각기 종들에게 그들의 능력에 따라서 달란트를 나누어 준 것 같이, 나에게도 각기 다른 직분과 은사와 재능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각각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서는 충성을 위하는 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아무도 충성을 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하여 의의를 제기 할 수 없습니다.
눅9:57-62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합니다.
무엇인가 자신은 하나님께 받은 것이 부족하지 않느냐?
다른 이에게 견주어보면 불리하다고 항상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한 달란트는 금34-40kg 이 되니 오늘날 돈으로 환산하면 금 3,75g이 한 돈으로 18만으로 계산하면 약 만 돈이 되니 한 사람당 돈으로 환산하면 18억 원 정도를 주셨으니 주어진 달란트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넘치는 것입니다. 2달란트는 36억 5달란트는 90억을 받았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로마서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아직도 이것 밖에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이미 주어진 것에 충성된 삶이 없기 때문에 가난하게 되고 비참하게 되고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보람된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충성을 해야 합니까?
주인의 종과의 칭찬과 질책을 보면서 충성의 원리를 알게 됩니다.
충성은 마음에서 울어나는 자발적입니다.
이 비유에서 주인은 달란트를 나누어준 후, 이에 대해 어떠한 지시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종들은 이익을 남기는 것이었습니다.
16절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다고 합니다.
17절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종은 18절 그것을 땅에다 묻어 놓았습니다.
여기에서 충성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지 않습니까?
5, 2달란트 받은 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자원하여 섬긴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칭찬을 받고 보너스도 받았습니다.
21절 5달란트 남긴자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23절 2달란트 남긴자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그러나 1달란트 받은 자는 아마도 주인의 맡긴 돈을 어떻게 될까봐 잘 맡아서 보관하였는데 주인에게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었습니다.
26절 악하고 게으른 종아 28절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30절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받은 은혜를 그것도 값없이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 죽도록 충성하고 싶은 생각이 절로 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어떻습니까? 주를 위하여 살고 싶지 않습니까?
아직도 그런 생각이 안든다면 너무나도 나는 교만합니다.
다윗은 시편 51:12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누가 시키기 전에 받은 은혜가 있기에 하나님께서 자원하여 섬기는 것이 충성입니다.
충성은 최선입니다. 누가 최고를 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최고만을 고집하기 때문입니다. 최고는 문제가 많이 생깁니다.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문제가 생기고 부작용이 생기게 됩니다. 최고가 되어도 문제입니다.
언젠가는 내려와야 하는 두려움 그리고 최고가 되었다고 교만하기는 하늘까지 올라가고
그러나 최선은 모두가 보람이 있고 모두가 승자가 됩니다.
주어진 달란트는 능력대로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최고가 아니라 최선이었습니다.
다섯 달란트 남긴 자와 두 달란트 남긴 자는 주인의 똑같은 칭찬을 받고 있습니다.
만일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한 달란트를 남겼다면 동일한 칭찬을 받았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아마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최선을 포기해 버렸을 것입니다.
왜요 최고가 되려고 하고 그리고 최고가 될 자신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최선을 다해야지요
최선을 다해서 얻는 결과는 후회가 없습니다.
우리가 후회가 되는 것은 최고가 되지 못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최선을 해야 하는데 최선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결과도 받을 수 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받은 달란트는 최고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내게 최고가 되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을 귀하게 여깁니다.
최고를 칭찬하시지 않으시고 최선을 칭찬하시고 최선을 최고의 상을 주시는 것입니다.
한 달란트 받는 자 5달란트 욕심내지 말고 한 달란트를 남기면 됩니다.
그리고 주어진 만큼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많이 받았다고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많이 받은 자는 많이 받은 자로서의 책임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눅 12:47-48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주어진 만큼 요구되며, 자신이 받은 일에 최선의 충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돼지와 암탉이 주인이 출석하는 교회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급식활동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돼지와 암탉도 감동을 받아서 우리도 그 일에 참여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암탉이 돼지에게 이런 제안을 하였습니다. 나는 달걀을 너는 소세지를 제공하면 되겠다. 이 말을 듣고 한참을 생각하던 돼지가 닭에게 말했습니다. 너의 생각에는 조금 문제가 있는 것 같아. 너에게 있어서 달걀은 약간의 기부(contribution)이지만, 나에게 있어서 소세지는 완전한 헌신(total commitment)이야.
최선의 봉사, 완전한 헌신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이야기 입니다.
충성에는 더해지는 축복이 있습니다.
한 청년이 대학을 졸업하고 뉴욕 박물관에 임시직 사원으로 취직을 했습니다. 청년은 매일 남보다 한 시간씩 일찍 출근해서 박물관의 마룻바닥을 닦았습니다. 그 일을 하면서 청년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박물관장이 청년에게 물었습니다. 마룻바닥 청소하는 일이 부끄럽지 않은가? 청년은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이곳은 그냥 바닥이 아닙니다. 박물관의 마룻바닥입니다. 청년은 성실성을 인정받아 정식 직원으로 채용됐습니다. 그는 후에 알래스카 등을 돌아다니며 고래와 포유동물에 대한 연구에 몰입했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에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고래박사로 불렸고, 자신이 임시직을 바닥을 닦았던 바로 그 뉴욕박물관장까지 맡았습니다. 그가 바로 세계적인 고래학자 앤드루스 박사입니다.
할 일 없으면 빗자루 들고 동네 골목길이 라고 쓸어 보세요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모세는 사환으로 충성을 했다고 했는데 이 모세를 들어 출애급의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죽기까지 충성하였더니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였셨다고 했습니다.
빌2:6-11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최선을 다했을 때 10달란트로 충성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두 달란트 받은 사람에게는 4달란트로 일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이것은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에게는 언제나 그 보다 더 큰 일이 주어진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여기서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의 문제점은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최고만 생각했지 최선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충성은 일시적이 아니라 지속합니다.
있는 자는 받아서 더 풍성하여 지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긴다는 원리입니다.
28-29절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해 지며,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에는 부익부 빈익빈이 작용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노력해야 합니다.
노력을 중지하면, 그 때부터는 바로 하강곡선을 그리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확보해 놓은 것이 없습니다.
충성을 통하여 풍성해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지 한꺼번에 다 가질려는 욕심을 벌어야 합니다.
그러니 삶이 허탕을 치고 한꺼번에 다하려고 하니 힘에 겨운 것입니다.
충성은 매일 매일 하루하루 생활입니다.
만나의 법칙 출16:19-21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아무든지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두지 말라 하였으나 그들이 모세에게 순종하지 아니하고 더러는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노하니라 무리가 아침마다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고 햇볕이 뜨겁게 쬐면 그것이 스러졌더라
한 달란트 받은 자 그냥 방치가 달란트는 빼앗겨 버리고 섞어져 벌립니다.
바르게 충성하면 안 되는 것 없습니다.
삶의 결과는 당신의 모습이 어떠함을 보여줍니다.
지금 나의 모습을 보십시오.
이것은 당신의 살아온 삶의 모습입니다.
이 비유는 단순히 돈 계산하는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돌아온 주인과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종의 만남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들은 자기들의 노력과 성공이 곧 나의 삶이 주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의 삶의 목적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함에 있음을 보고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베푸신 은혜가 크심을 고백하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확인하는 장엄한 순간입니다.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느냐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좋은 결과가 나왔는지도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우리 모두는 충성된 종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나는 나의 할 일을 다 했습니다. 이제는 당신의 처분만 기다립니다. 이런 자세를 가져야겠습니다.
주님 역시 착하고 충성된 종과 악하고 게으른 종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행복한 종이 있는가 하면 불쌍한 종도 있습니다.
한 주인 밑에서 같은 일을 해도 억지로 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죽도록 충성하는 이가 있습니다.
위스콘신 천체연구소에서 근무하던 물리학자 첸드리스카(Chrasekhar)박사가 시카고대학으로부터 고급물리학(Advanced Physic)에 관한 겨울 강좌를 개설하고 강의를 제의를 받아 승낙을 했는데 강의 취소 통보가 왔습니다. 내용은 그 클래스에 중국계 미국인 두 명밖에 등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때 첸드리스카 박사가 클래스가 작은 것은 전혀 상관이 없이 강의를 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두 시간 떨어진 거리인데도 일주일에 이틀 동안 한 번도 빠짐이 없이 그 해 겨울, 계속적으로 두 학생을 상대로 강의를 하였습니다. 그로부터 십 년이 흐른 후 첸드리스카 박사에게 강의를 받았던 두 사람 첸넝 양(Chen Ning Yang)과 또 한 사람은 충도 리(Tsung-Dao Lee)는 노벨 물리학상을 받게 됩니다. 한 사람은 중국계 과학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수상의 자리에서 노벨상을 수상하게 된 데는 우리 두 사람을 앞에 놓고 강의했던 첸드리스카 박사 때문이었다고 했습니다.
두 사람을 적다하지 않고 열정을 다한 첸드리스카 박사의 강의가 노벨상으로 열매가 맺혀진 것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일상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들은 작은 일들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그 작은 일들을 얼마나 성실히 행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성패가 결정됩니다.
작은 일들을 무시하면 결코 위대하게 될 수 없습니다.
우리 속담에도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 티끌모아태산,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에도 주어진 인생살이 즉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임을 보여 줍니다.
적은 일에 충성함으로 많은 것을 얻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군에 가면 제일 많은 구호가 충성이지 않습니까?
충성이란 중세 봉건국가에서 신하가 군주나 제후에게 지는 의무를 뜻하였다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정성입니다.
고린도전서 4:2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 충성의 시발점은 하나님이 내게 주어진 내 모습 그대로입니다.
충성함에 있어서 더 필요함도 아니요 또한 모자람도 아닙니다.
누구든지 충성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15절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내게 주어진 것만으로도 주께 충성하기에 합당한 것입니다.
소히 신앙생활을 하는데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충성이라는 단어가 말해 주듯이 내 자신의 마음의 가짐이 중요한 것입니다.
과연 어떤 마음이 이들로 하여금 충성을 하게 하였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주인이 각기 종들에게 그들의 능력에 따라서 달란트를 나누어 준 것 같이, 나에게도 각기 다른 직분과 은사와 재능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각각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서는 충성을 위하는 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아무도 충성을 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하여 의의를 제기 할 수 없습니다.
눅9:57-62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합니다.
무엇인가 자신은 하나님께 받은 것이 부족하지 않느냐?
다른 이에게 견주어보면 불리하다고 항상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한 달란트는 금34-40kg 이 되니 오늘날 돈으로 환산하면 금 3,75g이 한 돈으로 18만으로 계산하면 약 만 돈이 되니 한 사람당 돈으로 환산하면 18억 원 정도를 주셨으니 주어진 달란트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넘치는 것입니다. 2달란트는 36억 5달란트는 90억을 받았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로마서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아직도 이것 밖에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이미 주어진 것에 충성된 삶이 없기 때문에 가난하게 되고 비참하게 되고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보람된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충성을 해야 합니까?
주인의 종과의 칭찬과 질책을 보면서 충성의 원리를 알게 됩니다.
충성은 마음에서 울어나는 자발적입니다.
이 비유에서 주인은 달란트를 나누어준 후, 이에 대해 어떠한 지시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종들은 이익을 남기는 것이었습니다.
16절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다고 합니다.
17절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종은 18절 그것을 땅에다 묻어 놓았습니다.
여기에서 충성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지 않습니까?
5, 2달란트 받은 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자원하여 섬긴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칭찬을 받고 보너스도 받았습니다.
21절 5달란트 남긴자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23절 2달란트 남긴자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그러나 1달란트 받은 자는 아마도 주인의 맡긴 돈을 어떻게 될까봐 잘 맡아서 보관하였는데 주인에게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었습니다.
26절 악하고 게으른 종아 28절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30절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받은 은혜를 그것도 값없이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 죽도록 충성하고 싶은 생각이 절로 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어떻습니까? 주를 위하여 살고 싶지 않습니까?
아직도 그런 생각이 안든다면 너무나도 나는 교만합니다.
다윗은 시편 51:12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누가 시키기 전에 받은 은혜가 있기에 하나님께서 자원하여 섬기는 것이 충성입니다.
충성은 최선입니다. 누가 최고를 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최고만을 고집하기 때문입니다. 최고는 문제가 많이 생깁니다.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문제가 생기고 부작용이 생기게 됩니다. 최고가 되어도 문제입니다.
언젠가는 내려와야 하는 두려움 그리고 최고가 되었다고 교만하기는 하늘까지 올라가고
그러나 최선은 모두가 보람이 있고 모두가 승자가 됩니다.
주어진 달란트는 능력대로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최고가 아니라 최선이었습니다.
다섯 달란트 남긴 자와 두 달란트 남긴 자는 주인의 똑같은 칭찬을 받고 있습니다.
만일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한 달란트를 남겼다면 동일한 칭찬을 받았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아마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최선을 포기해 버렸을 것입니다.
왜요 최고가 되려고 하고 그리고 최고가 될 자신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최선을 다해야지요
최선을 다해서 얻는 결과는 후회가 없습니다.
우리가 후회가 되는 것은 최고가 되지 못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최선을 해야 하는데 최선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결과도 받을 수 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받은 달란트는 최고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내게 최고가 되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을 귀하게 여깁니다.
최고를 칭찬하시지 않으시고 최선을 칭찬하시고 최선을 최고의 상을 주시는 것입니다.
한 달란트 받는 자 5달란트 욕심내지 말고 한 달란트를 남기면 됩니다.
그리고 주어진 만큼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많이 받았다고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많이 받은 자는 많이 받은 자로서의 책임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눅 12:47-48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주어진 만큼 요구되며, 자신이 받은 일에 최선의 충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돼지와 암탉이 주인이 출석하는 교회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급식활동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돼지와 암탉도 감동을 받아서 우리도 그 일에 참여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암탉이 돼지에게 이런 제안을 하였습니다. 나는 달걀을 너는 소세지를 제공하면 되겠다. 이 말을 듣고 한참을 생각하던 돼지가 닭에게 말했습니다. 너의 생각에는 조금 문제가 있는 것 같아. 너에게 있어서 달걀은 약간의 기부(contribution)이지만, 나에게 있어서 소세지는 완전한 헌신(total commitment)이야.
최선의 봉사, 완전한 헌신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이야기 입니다.
충성에는 더해지는 축복이 있습니다.
한 청년이 대학을 졸업하고 뉴욕 박물관에 임시직 사원으로 취직을 했습니다. 청년은 매일 남보다 한 시간씩 일찍 출근해서 박물관의 마룻바닥을 닦았습니다. 그 일을 하면서 청년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박물관장이 청년에게 물었습니다. 마룻바닥 청소하는 일이 부끄럽지 않은가? 청년은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이곳은 그냥 바닥이 아닙니다. 박물관의 마룻바닥입니다. 청년은 성실성을 인정받아 정식 직원으로 채용됐습니다. 그는 후에 알래스카 등을 돌아다니며 고래와 포유동물에 대한 연구에 몰입했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에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고래박사로 불렸고, 자신이 임시직을 바닥을 닦았던 바로 그 뉴욕박물관장까지 맡았습니다. 그가 바로 세계적인 고래학자 앤드루스 박사입니다.
할 일 없으면 빗자루 들고 동네 골목길이 라고 쓸어 보세요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모세는 사환으로 충성을 했다고 했는데 이 모세를 들어 출애급의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죽기까지 충성하였더니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였셨다고 했습니다.
빌2:6-11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최선을 다했을 때 10달란트로 충성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두 달란트 받은 사람에게는 4달란트로 일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이것은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에게는 언제나 그 보다 더 큰 일이 주어진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여기서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의 문제점은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최고만 생각했지 최선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충성은 일시적이 아니라 지속합니다.
있는 자는 받아서 더 풍성하여 지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긴다는 원리입니다.
28-29절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해 지며,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에는 부익부 빈익빈이 작용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노력해야 합니다.
노력을 중지하면, 그 때부터는 바로 하강곡선을 그리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확보해 놓은 것이 없습니다.
충성을 통하여 풍성해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지 한꺼번에 다 가질려는 욕심을 벌어야 합니다.
그러니 삶이 허탕을 치고 한꺼번에 다하려고 하니 힘에 겨운 것입니다.
충성은 매일 매일 하루하루 생활입니다.
만나의 법칙 출16:19-21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아무든지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두지 말라 하였으나 그들이 모세에게 순종하지 아니하고 더러는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노하니라 무리가 아침마다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고 햇볕이 뜨겁게 쬐면 그것이 스러졌더라
한 달란트 받은 자 그냥 방치가 달란트는 빼앗겨 버리고 섞어져 벌립니다.
바르게 충성하면 안 되는 것 없습니다.
삶의 결과는 당신의 모습이 어떠함을 보여줍니다.
지금 나의 모습을 보십시오.
이것은 당신의 살아온 삶의 모습입니다.
이 비유는 단순히 돈 계산하는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돌아온 주인과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종의 만남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들은 자기들의 노력과 성공이 곧 나의 삶이 주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의 삶의 목적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함에 있음을 보고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베푸신 은혜가 크심을 고백하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확인하는 장엄한 순간입니다.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느냐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좋은 결과가 나왔는지도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우리 모두는 충성된 종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나는 나의 할 일을 다 했습니다. 이제는 당신의 처분만 기다립니다. 이런 자세를 가져야겠습니다.
주님 역시 착하고 충성된 종과 악하고 게으른 종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행복한 종이 있는가 하면 불쌍한 종도 있습니다.
한 주인 밑에서 같은 일을 해도 억지로 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죽도록 충성하는 이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