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교회가 자랑하는 인물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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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645회 작성일 2010-09-04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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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6:1-4 주의 교회가 자랑하는 인물이 됩시다.
오래전에 전라북도 모 교회에 다니는 문모(문영곤)집사 라는 분이 교회에 안구 기증을 약속했다고 했답니다. 사후에 장기 기증을 한다거나 신체 일부나 시신을 기증하는 약속은 많이 하지 않습니까?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의 안구를 축출한다니 ...
제발 우리 교회에서는 눈을 빼겠다는 이런 분이 안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감당이 안 됩니다.
왜 눈을 빼게 된 사연은 지금은 그 지역에 교회가 몇 개가 세워져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지역에 교회가 없어서 먼 길을 다니고 가정에서 기도처로 모이고 했습니다. 마침 열심 있는 문집사 부부에게 하나님의 감동이 왔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래서 당연히 예하고 대답을 했더랍니다. 그러면 네가 예배당을 지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 분들은 가난합니다. 가난을 핑계대고 기도만하고 있는데 그 음성이 떠나지 않더랍니다.
그래서 순종하기로 마음먹고 전 재산인 논 두마지기를 팔아 60평짜리 교회를 짓기 시작하였는데 돈이 모자라 공사가 중단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초겨울이라 찬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에 완성되지 못한 교회는 몰골이 말이 아니었으니 말하기 좋아하는 불신자들이 교회와 하나님을 조롱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하던지 완공을 해야겠다고 하며 기도를 하던 중 신문을 보게 되었는데, 현대의학의 기적이라는 제목으로 눈을 기증 할 수 있다는 기사를 보고는 자신의 한쪽 눈으로 교회를 완공하기로 하고 전주 예수 병원의 주선으로 눈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만나, 이유는 묻지 말고 50만원만 달라고 하여 거래가 성사되었습니다. 그리고 수술하는 날이 다가와서, 병원에 가서 수술실에 들어갔는데, 그때 안과 과장이 문집사를 앞에 두고 기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으로 하는 수술이라 안과 과장도 불안하여서, 수술하기 전에 수술을 성공케 해달라고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더랍니다. 그때 떨리는 마음으로 수술대에 누워있던 문 집사님이, 안과 과장의 기도를 마치자, 자신도 떨리기도 해서 아멘 하고 화답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안과 과장이 예수님을 믿느냐고 물어보고는 왜 눈을 팔려고 하느냐고 묻더랍니다. 그래서 사실 이야기를 해 주자, 안과 과장은 시온교회의 집사였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명색이 집사인 내가 교회를 짓기 위하여 눈을 파는 집사님 눈을 빼어 딴 사람에게 줄 수 없다고 하며, 수술을 중단하고 있는데, 당시 병원 원장인 선교사가 이 병원에서는, 처음 있는 수술이라 이 수술을 지켜보러 왔다가 이 이야기를 듣고는 수술을 중단케 하고, 예수 병원과 이 교회와 자매결연을 맺고, 건축비 50만원을 지원하여 주었답니다. 그리고 문집사님을 병원 수위로 취직을 시켜 주었답니다. 그래서 문 집사님의 소원인 하월리 교회 예배당은 짖고, 더불어 직장까지 얻게 되었답니다. 보너스까지 받은 셈입니다.
오늘 본문은 눈을 빼겠다 정도가 아니라 목을 내어 놓겠다는 부부가 나왔습니다.
4절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라고 했습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이었습니다. 이들을 통하여 초대 교회들이 세워져갔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들을 가르쳐 바울의 동역자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도 자매 뵈뵈, 에배네도, 마리아 등등 이들은 참으로 교회의 자랑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이들이 아니고서는 당시에 교회가 세워질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여 주의 교회가 세워져 가는 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아직 우리 교회는 안구 기증자가 나오지 않았지만 절대로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누군가의 눈을 빼는 심정으로 헌신 하나하나가 교회를 이뤄져 가고 있음을 부인 할 수 없습니다.
다윗의 왕국을 지난 시간에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까?
베들레헴에 있는 우물물을 먹고 싶다는 다윗의 독백 한마디에 목숨을 걸고 물을 떠온 3용사가 있었으니 이들의 오늘날 교회의 기초를 세운 것입니다.
다윗은 이들을 그의 글에서 알고 주고 오늘 본문에도 사도 바울은 이들을 가는 곳마다 자랑을 하였으며 성경에서도 열심히 자랑을 하고 그 수고를 알아주었습니다.
이왕 주의 교회에 부름을 받았는데 교회가 자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 혹은 아굴라와 브리스가라 기록된 이들이 왜 바울을 위하여 목이라도 내어 놓았습니까?
남편 때로는 아내의 이름이 먼저 나오는 것을 보니 서로 서로가 주의 교회를 위하여 열심을 내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바울을 위하여 목숨을 내었다는 것은 주의 교회를 위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을 위하여 목숨을 걸고 물을 떠온 것은 하나님께 드려졌습니다.
성도들이 믿음으로 한 것이라면 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입니다.
하나 뿐인 목숨을 어디에다가 걸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았습니까?
고스톱 점100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노름하다가 사람 많이 죽었습니다.
먹는데 목숨을 겁니다. 제 배를 채우려다가 사람 많이 죽입니다.
자존심에 목숨을 겁니다. 욕심과 정욕에 명예에 공부에 정치에 목숨을 거는 자들이 많습니다.
이것과 목숨을 바꾸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예수를 위하는 일에 자신의 목숨을 걸었습니다.
받은 은혜를 깨닫는 것입니다.
요10:14-15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누가 나 같은 자를 위하여 대신 목숨을 버리겠느냐?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무엇을 위하여 죽고 살아야 할 것을 아는 것입니다.
빌3:7-8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어디에다가 내 한 목숨을 거어야 하는 것이 정립이 되지 않으니까?
아무런데다가 내 목숨을 던져 버리지 않습니까?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의 목숨도 귀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길가다가 쳐다봤다고 죽였다고 합니다.
여러분 감사하지 않습니까?
내 하나 뿐인 이 생명을 어떻게 마쳐야 하겠다는 것이 결정져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안 죽을려만 하니 문제입니다. 죽어야 할 이유가 있을 때에는 기꺼이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을 때에는 죽지 말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영광스럽다는 말을 하셨는데 하나님께 영광이요 자신에게도 영광이라고 하셨는데 그 영광이 무엇인 줄 알아보니 자신의
요12:23-2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제대로 자신을 드릴 때에 드릴 줄 안다는 것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자신의 생명을 무엇을 위하여 살고 죽느냐를 알고 있으니 얼마나 복된 자인지 모릅니다.
롬14:6-8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목숨을 버린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주의 교회를 위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쓸데없는데 에너지를 양보하지 말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어떻게 내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법을 안다는 것입니다.
쓸데없는데 힘쓰고 에너지 낭비하지 않는 것입니다.
존 맥스웰이 쓴 당신 안에 잠재된 리더십을 키워라 에 한 등대지기 이야기가 나옵니다. 암벽 해안에서 일하던 등대지기는 한 달에 한 번씩 기름을 받아 등댓불을 지켰습니다. 등대가 마을에서 멀지 않다 보니 손님들이 자주 왔습니다. 하루는 어떤 여자가 난방에 필요하다며 기름을 구하러 왔습니다. 또 하루는 어느 남자가 등잔불을 켠다며 기름을 청했습니다. 모두 그럴듯한 요구인지라 이 등대지기는 달라는 대로 기름을 다 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등대의 불을 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 바람에 여러 척의 배가 암초에 부딪쳤습니다. 많은 재산과 인명을 피해를 보았습니다.
기름이 필요한 자가 오면 무조건 주는 기름이 아니었습니다. 등대를 밝히라고 준 기름입니다.
상부에서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당신에게 기름을 공급한 이유는 단 한 가지, 즉 등대를 밝히라는 것이었소.
당신은 업무태만 과실 치상죄로 고발을 당하고 당연히 직책에서 물러나고 말았습니다.
선이라고 다 선이 아닙니다.
인간의 의가 이루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는 삶이 되셔야 합니다.
가륫유다의 안건 무조건 마음이 좋으면 신앙생활 잘하고 목회 잘하는 것 착한 사람 아닙니다.
300데나리온 향유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는 것이 대수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발에 부음으로 예수님의 죽으심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윤리 도덕이기 전에 생명입니다.
마12:47-52 한 사람이 예수께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서 있나이다 하니 말하던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이르시되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등대의 기름은 배들이 항구에 안전하게 도착하는데 쓰이도록 주어진 것입니다
나로 하여금 고전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목숨을 버린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교회와 생사를 끝까지 함께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떠난 자들에 대한 아픔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딤후4:9-11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다윗에게도 배신의 아픔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압살롬과 아히도벨의 반역과 배신을 당한 다윗은 눈물을 흘리며 기드론 시내를 건너 망명길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에게도 제자의 배신이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26:24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 하였느니라
존재의 의미를 완전 상실하여 사는 삶은 불행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괴로우면 목메어 자살 하여 의미 없는 인생을 끝내려고 하는 것이지요
자살하는 하는 사람 더 이상 존재의 의미가 없다는 표시입니다.
바울을 떠났다는 것은 세상으로 나아갔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바울에게 목을 매는 사람이 나타났으니 얼마나 힘이 되겠습니까?
롬16:3-4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그는 너무나도 감격을 하였습니다.
그래도 화평교회가 이정도로 유지되고 복음의 사역을 계속 할 수 있음은 아무개 때문입니다.
집사님 때문에 권사님 때문에 아무개 성도님 때문입니다.
목사가 감사하고 온 성도들이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잊을 수가 없어서 성경에다가 기록해 놓았습니다.
교회의 역사에 악역으로 잊지 못해 기록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 때문에 어려움을 많이 엮어서 딤후4:14-15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 너도 그를 주의하라 그가 우리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또 있어요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바울이 고린도에 왔을 때에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은 든든한 한 가정을 만났습니다.
기독교 최고의 인물인 바울이 만들어지는 데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가정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아덴에서의 전도는 그다지 결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아덴에서 마음의 상처를 받고 고린도라는 도시에 들어오게 됩니다.
바울 자신이 그 당시 어떠한 상태였는지를 훗날 당신이 개척을 한 고린도 교회를 향해 한 통의 편지를 보내게 됩니다.
그는 편지 속에서 옛날에 고린도 도시에 들어갔을 때의 일을 회고하고 있습니다.
고전 2:3 내가 너희 가운데에 있을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이 과정 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탈진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탈진을 영어로 burnout라고 하지 않습니까? 속이 다 타서 없어진 상태라고 말합니다.
이 탈진은 몸의 기력이 빠지고 마음의 극도로 쇠약해지고 영혼이 극도로 침체된 상태를 말합니다.
이와 같은 자리에서 바울은 이 아름다운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를 만남으로 그는 사역에 엄청난 힘을 얻은 것이 사실입니다.
잠언 25:13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느니라
목사가 볼 때에 참으로 가슴이 답답해지고 마음이 심란해 지고 낙심을 주고 목회를 계속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어려운 과제를 주는 자들도 있습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의 집에 교회가 있었단 말입니까?
이 말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가 자신들의 집을 열어서 교회를 위해 사용했다는 뜻입니다.
말로만 내 생명도 주 예수께 바칩니다가 아니라 생활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도 알고 목회자도 알고 성도도 압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가 바울 사도를 위하여 목숨을 걸고 헌신했던 사실은 당시 세워지고 있던 아시아 각 지역 모든 교회들에도 소문이 났습니다. 아마도 바울은 브리스가 부부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가는 곳마다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것이고, 그것이 소문이 되어 이방인의 모든 교회에 퍼졌던 것 같습니다.
제가 눈알을 뺄 뻔했던 문모 집사님을 확인하기 위하여 어느 교회인지 사실인지 전라도 모 교회에 전화를 해서 확인을 하니 그런 자가 있다고 합니다.
아마 어디에 있는 무슨 교회 일 것이라고 하니 그 지방에 성도들을 다 울렸다고 합니다.
목사가 일생 목회를 하다보면 목회자를 이해하고 존경하면서 어떻게 하든지 목회자를 협력하고, 목회자에게 용기를 주고 격려를 아끼지 않는 평신도들이 있습니다.
다윗의 일군, 바울의 동역자 참으로 귀한 자들입니다.
이들의 동역자와 일군이 다른 이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임을 아셔야 합니다.
그냥 이 세상 막 살아도 되는 것 아닙니다. 스스로 내 인생을 망치지 말아야 합니다.
아주 존귀하고 귀한 자로 내 몸값을 올리시기 바랍니다.
교회가 자랑하는 인물이 돼서 하나님이 자랑하는 인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자신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세우고 살리는 길입니다.
교회를 위하시오 라고 하면 자신을 죽이고 괴롭히는 일이라고 이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나 자신을 가장 존귀하게 영광스럽게 하는 일인 줄 아시고 내 하나 뿐인 이 생명이 주를 위함으로 가장 귀하게 사용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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