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하나님과 사돈의 8촌이라도 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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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589회 작성일 2009-05-27 09:41본문
야고보서 2:14-26
당신은 하나님과 사돈의 8촌이라도 되십니까?
우리 가운데 무엇인가 조금 이라도 상대방에게 관계가 되는 긍정적인 반응
을 보일 때에 종종 하는 말이 바로 이런 말입니다.
너 저 사람하고 사돈의 8촌이라도 되니 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는 그의 믿음이 하나님의 친구라는 놀
라운 이름으로 불러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은 하나님과 과연 어느 정도의 친한 긍정적인 사이
를 가졌다고 여겨지십니까?
물론 하나님의 자녀인데요,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시고요? 라고 스스럼없이
대답을 하실 것입니다.
왜요? 라고 묻는 다면 믿음으로 얻게 되었다고 배웠는데요? 하고 의아해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믿음이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기보다는 오늘날 부정적인 결과
를 가져오는 경우가 너무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전혀 하나님을 믿는 믿음하고는 상관이 없는 자가 스스로를 믿는 신념에 사
로 잡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 자신에게 혹은 남에게 아무런 유익과 구원을 가져오지 못하고 있
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에는 이러한 믿음의 소유자가 참으로 많이 있다는 것입니
다.
이러한 믿음이 아닌 신념에 야고보는 진정한 믿음이 무엇인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신념에 사로잡힌 자들은 고통과 어려움에 처한 자들에게 평안이 가
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는 말만으로 상대에게 축복을 하는 것 같
았지만은 실제로 자기들의 희생을 요구하게 될지도 모르는 필요한 도움에
는 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서도 마찬가지라고 여겨집니다.
믿음이 요구 될 때에 실상 외면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적절하게도 이러한 믿음이란 죽은것이라 하여 배격하여야 마땅
하다고 하였습니다(2:17).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막
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
마태복음 25:44-45에는 믿음의 요구를 외면한 자들이 심판 주이신 그 임
금을 일컬어 열심히 주님이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믿음이 그들을 구원하지 못하였고 주님의 부인 속에 어두움
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본문에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16절). 하는 자들
역시 이러한 자들입니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에 있어서 그러한 믿음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자에
게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믿음의 은사를 가진 자가 있는가 하면, 행위의 은사를 받은 자도 있지 않
은가?(18절).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신념이 아닌 진정한 믿음이라면, 그 믿음은 믿음을 가진 자가 행하는
바 행위에서 그 믿음은 나타나는 법입니다.
믿음은 마음에 믿어 우리의 입술로 고백되어야 하나 동시에 우리의 생활 속
에서 표현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모든 이에게 유익을 가져오는 궁극적인 구원을 가져 올 것입니
다.
1. 말로만 열심히 믿고 있지 않습니까?
말로만 믿는 자는 남이 보기에는 가장 하나님과 가까이 있는 자 같지만 실
상은 가장 멀리 있는 자입니다.
얼마나 멀리 있는 자입니까? 말로만의 믿음은 귀신들도 가지고 있는 믿음입
니다.
아마 이런 이야기를 들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줄타기 선수 불론딘(Blondine)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나이아
가라 폭포 위에 줄을 매고 건너가는 묘기를 보이게 되었습니다.
미국 쪽과 캐나다 쪽에 줄을 매고 양쪽에 고성능 확성기를 설치하고 구름
떼처럼 모여든 구경꾼들에게 불론딘이 방송을 했습니다.
여러분, 제가 이 편에서 저편으로 이 장대 하나만 들고 이 줄을 타고 나이
아가라 폭포 위를 건너가려고 합니다. 제가 건너 갈 수 있다는 사실을 믿습
니까?
그러자 많은 사람들은 네, 믿습니다.라고 대답하여 불론딘에게 힘을 안
겨 주었습니다.
불론딘은 장대를 들고 균형을 맞춰 가며 줄을 타고 나이아가라 폭포 위를
건너갑니다.
몸이 이쪽으로 기울어지면 관중들은 다 저쪽으로 기울어집니다.
손에 땀을 쥐며 지켜보았습니다.
그는 정말 건너갔습니다.
관중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치며 환영했습니다.
불론딘은 감사의 뜻을 표하면서, 여러분 제게 조그만 수레가 있는데 이 수
레를 몸에 걸고 저 미국 편으로 건너가려 합니다.
그럴 수 있다고 믿습니까?
그때 많은 사람이 아무럼요, 믿습니다.고 대답했습니다.
드디어 수레를 몸에 걸고 장대를 들고 균형을 잡으며 아슬아슬하게 건너왔
습니다.
그 순간 관중들은 조린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가 불론딘이 건너오자. 하나
같이 숨을 내쉬었습니다.
이번에는 엄청난 질문을 했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성원 속에서 제가 두 번이나 건너는데 성공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제 등에 있는 수레에 한 사람을 싣고 건너가려 합니다.
제가 성공적으로 건너리라고 믿습니까?
그러자 그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서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네, 믿습니다.
그때 불론딘은 군중 가운데 한 사람(용감하게 보이는)에게 자, 타십시오
했더니 이 청년은 믿는다고 대답은 했는데도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도망을
했다고 합니다.
진작 나 자신이 요구가 될 때에 그렇게 열을 내어 믿습니다. 을 연발하던
자들이 다 물러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믿음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과 사돈의 8촌이라도 될까요?
2. 믿음의 대상에 대한 사랑의 헌신이 있습니까?
한 대학생이 목사님에게 와서 예수님께 헌신한다는 뜻을 설명해 달라고 했
습니다.
목사님은 생각 끝에 백지 한 장을 가져오게 해서 그 대학생에게 내밀면서
예수님전 백지위임장이라고 쓴 후 주소와 성명과 날짜를 쓰고 지장을 누
르게 했습니다.
참다운 믿음은 주님이 무슨 일이든지 나를 사용하실 수 있도록 전적으로 위
임하는 일입니다.
어떤 교인들은 가끔 이런 말을 합니다.
저는 믿음이 없어서요... 믿음이 부족해서 십일조도 못해요... 믿음
이 부족해서 교회의 예배 참여도 제대로 할 수 없어요... 믿음이 생기면은
할 수 있겠지요
믿음은 여러분이 마음대로 하는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하시는 것입니다.
함부로 할 수 있고 할 수 없고 하지 말고 믿음으로 할 수 있다고 하십시오
이미 여러분에게 허락하신 믿음은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원하시면 무엇이든
지 언제든지 하실 수 있는 것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이 없어서..믿음이 부족해서 라는 말을 삼가 해야
합니다.
여러분을 믿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
여태까지 믿음으로 한 것이 무엇입니까?
능력의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이란 자신의 믿음을 생활에 옮기는 믿음입니다.
단순히 입술의 고백이 아니라 삶의 고백입니다.
약 2:21-24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
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
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이에 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
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
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
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아브라함의 헌신은 믿음으로 드려진 하나님 사랑으로 된 헌신이지 자기자신
으로 이루어진 헌신이 아닙니다.
감히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며 그의 자녀 됨을 말은 하지만 그 하나
님을 믿는 사랑의 헌신이 따르지 아니 한다면 무슨 하나님과 사돈의 8촌이
라도 관계가 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이러한 행위를 보시고 아브라함아 이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는 줄을 알겠노라고 하셨습니다.
이제라도 하나님을 믿은 믿음을 사랑의 헌신을 통하여 보여주는 성도가 되
시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음성을 확인하고 싶지 않습니까?
네가 나를 사랑하는 줄을 알겠노라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말입니다.
3. 진정한 믿음의 행위는 당신을 모든 삶에서 구원하
실 것입니다.
세기적인 화가 도레가 남유럽을 여행하던 중 그만 여권을 잃어 버렸습니
다.
국경선에 이르렀을 때 정부관리 하나가 그를 가로 세웠습니다.
그때 도레가 관리에게 말하기를 여권을 잃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도 잘 아는 화가 도레 입니다.
부디 나를 통과시켜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관리가 선생님, 안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어떤 저명 인사라
고 소개합니다만 결코 우리가 통과를 허용치 않습니다. 즉시 대답했습니
다.
도레가 간곡히 부탁을 하면 할수록 그 관리는 점점 더 완강해질 뿐이었습니
다.
마침내 그 관리가 말했습니다.
좋소 당신이 정말 도레라면 이 연필로 나를 위해 그림 하나 그려보시오.
도레는 연필을 집어들고 한 동안 저 멀리 있는 웅장한 산들과 평화로운 계
곡들을 바라보고 나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관리가 외쳤습니다. 가셔도 좋습니다. 이젠 당신이 정말 도레인
줄 확실히 알았습니다.
다른 어떤 사람도 이처럼 그릴 수는 없으니까요.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여러분의 삶과 하시는 일을 바라보십시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믿음을 여러분의 삶을 재현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하시는 일이 그를 증거 합니까?
여러분이 예수님께 속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 수 있습니까?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이 생명을 건 믿음이 그를 구원하였습니다.
무엇인가? 은혜를 구하고 삶의 구원을 원하지만 진작 믿음의 요구는 지금
도 무시하고 있지 않습니까?
마지막으로 어떤 기독시인의 글을 소개해 드립니다.
너희 날 주라 부르면서 따르지 않고, 너희 날 빛이라 부르면서도 우러르지
않고, 너희 날 길이라 부르면서도 걷지 않고, 너희 날 삶이라 부르면서도
의지하지 않고, 너희 날 슬기라 부르면서도 배우지 않고, 너희 날 깨끗하
다 하면서도 사랑하지 않고, 너희 날 부하다 부르면서도 구하지 않고, 너
희 날 영원이라 부르면서도 찾지 않고, 너희 날 어질다 부르면서도 오지 않
고, 너희 날 존귀하다 하면서도 섬기지 않고, 너희 날 강하다 하면서도 섬
기지 않고, 너희 날 의롭다 부르면서도 두려워 않느니, 그런즉 너희를 꾸짖
어도 나를 탓하지 말라.
당신은 하나님과 사돈의 8촌이라도 되십니까?
우리 가운데 무엇인가 조금 이라도 상대방에게 관계가 되는 긍정적인 반응
을 보일 때에 종종 하는 말이 바로 이런 말입니다.
너 저 사람하고 사돈의 8촌이라도 되니 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는 그의 믿음이 하나님의 친구라는 놀
라운 이름으로 불러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은 하나님과 과연 어느 정도의 친한 긍정적인 사이
를 가졌다고 여겨지십니까?
물론 하나님의 자녀인데요,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시고요? 라고 스스럼없이
대답을 하실 것입니다.
왜요? 라고 묻는 다면 믿음으로 얻게 되었다고 배웠는데요? 하고 의아해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믿음이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기보다는 오늘날 부정적인 결과
를 가져오는 경우가 너무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전혀 하나님을 믿는 믿음하고는 상관이 없는 자가 스스로를 믿는 신념에 사
로 잡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 자신에게 혹은 남에게 아무런 유익과 구원을 가져오지 못하고 있
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에는 이러한 믿음의 소유자가 참으로 많이 있다는 것입니
다.
이러한 믿음이 아닌 신념에 야고보는 진정한 믿음이 무엇인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신념에 사로잡힌 자들은 고통과 어려움에 처한 자들에게 평안이 가
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는 말만으로 상대에게 축복을 하는 것 같
았지만은 실제로 자기들의 희생을 요구하게 될지도 모르는 필요한 도움에
는 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서도 마찬가지라고 여겨집니다.
믿음이 요구 될 때에 실상 외면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적절하게도 이러한 믿음이란 죽은것이라 하여 배격하여야 마땅
하다고 하였습니다(2:17).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막
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
마태복음 25:44-45에는 믿음의 요구를 외면한 자들이 심판 주이신 그 임
금을 일컬어 열심히 주님이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믿음이 그들을 구원하지 못하였고 주님의 부인 속에 어두움
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본문에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16절). 하는 자들
역시 이러한 자들입니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에 있어서 그러한 믿음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자에
게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믿음의 은사를 가진 자가 있는가 하면, 행위의 은사를 받은 자도 있지 않
은가?(18절).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신념이 아닌 진정한 믿음이라면, 그 믿음은 믿음을 가진 자가 행하는
바 행위에서 그 믿음은 나타나는 법입니다.
믿음은 마음에 믿어 우리의 입술로 고백되어야 하나 동시에 우리의 생활 속
에서 표현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모든 이에게 유익을 가져오는 궁극적인 구원을 가져 올 것입니
다.
1. 말로만 열심히 믿고 있지 않습니까?
말로만 믿는 자는 남이 보기에는 가장 하나님과 가까이 있는 자 같지만 실
상은 가장 멀리 있는 자입니다.
얼마나 멀리 있는 자입니까? 말로만의 믿음은 귀신들도 가지고 있는 믿음입
니다.
아마 이런 이야기를 들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줄타기 선수 불론딘(Blondine)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나이아
가라 폭포 위에 줄을 매고 건너가는 묘기를 보이게 되었습니다.
미국 쪽과 캐나다 쪽에 줄을 매고 양쪽에 고성능 확성기를 설치하고 구름
떼처럼 모여든 구경꾼들에게 불론딘이 방송을 했습니다.
여러분, 제가 이 편에서 저편으로 이 장대 하나만 들고 이 줄을 타고 나이
아가라 폭포 위를 건너가려고 합니다. 제가 건너 갈 수 있다는 사실을 믿습
니까?
그러자 많은 사람들은 네, 믿습니다.라고 대답하여 불론딘에게 힘을 안
겨 주었습니다.
불론딘은 장대를 들고 균형을 맞춰 가며 줄을 타고 나이아가라 폭포 위를
건너갑니다.
몸이 이쪽으로 기울어지면 관중들은 다 저쪽으로 기울어집니다.
손에 땀을 쥐며 지켜보았습니다.
그는 정말 건너갔습니다.
관중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치며 환영했습니다.
불론딘은 감사의 뜻을 표하면서, 여러분 제게 조그만 수레가 있는데 이 수
레를 몸에 걸고 저 미국 편으로 건너가려 합니다.
그럴 수 있다고 믿습니까?
그때 많은 사람이 아무럼요, 믿습니다.고 대답했습니다.
드디어 수레를 몸에 걸고 장대를 들고 균형을 잡으며 아슬아슬하게 건너왔
습니다.
그 순간 관중들은 조린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가 불론딘이 건너오자. 하나
같이 숨을 내쉬었습니다.
이번에는 엄청난 질문을 했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성원 속에서 제가 두 번이나 건너는데 성공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제 등에 있는 수레에 한 사람을 싣고 건너가려 합니다.
제가 성공적으로 건너리라고 믿습니까?
그러자 그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서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네, 믿습니다.
그때 불론딘은 군중 가운데 한 사람(용감하게 보이는)에게 자, 타십시오
했더니 이 청년은 믿는다고 대답은 했는데도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도망을
했다고 합니다.
진작 나 자신이 요구가 될 때에 그렇게 열을 내어 믿습니다. 을 연발하던
자들이 다 물러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믿음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과 사돈의 8촌이라도 될까요?
2. 믿음의 대상에 대한 사랑의 헌신이 있습니까?
한 대학생이 목사님에게 와서 예수님께 헌신한다는 뜻을 설명해 달라고 했
습니다.
목사님은 생각 끝에 백지 한 장을 가져오게 해서 그 대학생에게 내밀면서
예수님전 백지위임장이라고 쓴 후 주소와 성명과 날짜를 쓰고 지장을 누
르게 했습니다.
참다운 믿음은 주님이 무슨 일이든지 나를 사용하실 수 있도록 전적으로 위
임하는 일입니다.
어떤 교인들은 가끔 이런 말을 합니다.
저는 믿음이 없어서요... 믿음이 부족해서 십일조도 못해요... 믿음
이 부족해서 교회의 예배 참여도 제대로 할 수 없어요... 믿음이 생기면은
할 수 있겠지요
믿음은 여러분이 마음대로 하는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하시는 것입니다.
함부로 할 수 있고 할 수 없고 하지 말고 믿음으로 할 수 있다고 하십시오
이미 여러분에게 허락하신 믿음은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원하시면 무엇이든
지 언제든지 하실 수 있는 것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이 없어서..믿음이 부족해서 라는 말을 삼가 해야
합니다.
여러분을 믿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
여태까지 믿음으로 한 것이 무엇입니까?
능력의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이란 자신의 믿음을 생활에 옮기는 믿음입니다.
단순히 입술의 고백이 아니라 삶의 고백입니다.
약 2:21-24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
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
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이에 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
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
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
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아브라함의 헌신은 믿음으로 드려진 하나님 사랑으로 된 헌신이지 자기자신
으로 이루어진 헌신이 아닙니다.
감히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며 그의 자녀 됨을 말은 하지만 그 하나
님을 믿는 사랑의 헌신이 따르지 아니 한다면 무슨 하나님과 사돈의 8촌이
라도 관계가 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이러한 행위를 보시고 아브라함아 이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는 줄을 알겠노라고 하셨습니다.
이제라도 하나님을 믿은 믿음을 사랑의 헌신을 통하여 보여주는 성도가 되
시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음성을 확인하고 싶지 않습니까?
네가 나를 사랑하는 줄을 알겠노라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말입니다.
3. 진정한 믿음의 행위는 당신을 모든 삶에서 구원하
실 것입니다.
세기적인 화가 도레가 남유럽을 여행하던 중 그만 여권을 잃어 버렸습니
다.
국경선에 이르렀을 때 정부관리 하나가 그를 가로 세웠습니다.
그때 도레가 관리에게 말하기를 여권을 잃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도 잘 아는 화가 도레 입니다.
부디 나를 통과시켜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관리가 선생님, 안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어떤 저명 인사라
고 소개합니다만 결코 우리가 통과를 허용치 않습니다. 즉시 대답했습니
다.
도레가 간곡히 부탁을 하면 할수록 그 관리는 점점 더 완강해질 뿐이었습니
다.
마침내 그 관리가 말했습니다.
좋소 당신이 정말 도레라면 이 연필로 나를 위해 그림 하나 그려보시오.
도레는 연필을 집어들고 한 동안 저 멀리 있는 웅장한 산들과 평화로운 계
곡들을 바라보고 나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관리가 외쳤습니다. 가셔도 좋습니다. 이젠 당신이 정말 도레인
줄 확실히 알았습니다.
다른 어떤 사람도 이처럼 그릴 수는 없으니까요.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여러분의 삶과 하시는 일을 바라보십시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믿음을 여러분의 삶을 재현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하시는 일이 그를 증거 합니까?
여러분이 예수님께 속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 수 있습니까?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이 생명을 건 믿음이 그를 구원하였습니다.
무엇인가? 은혜를 구하고 삶의 구원을 원하지만 진작 믿음의 요구는 지금
도 무시하고 있지 않습니까?
마지막으로 어떤 기독시인의 글을 소개해 드립니다.
너희 날 주라 부르면서 따르지 않고, 너희 날 빛이라 부르면서도 우러르지
않고, 너희 날 길이라 부르면서도 걷지 않고, 너희 날 삶이라 부르면서도
의지하지 않고, 너희 날 슬기라 부르면서도 배우지 않고, 너희 날 깨끗하
다 하면서도 사랑하지 않고, 너희 날 부하다 부르면서도 구하지 않고, 너
희 날 영원이라 부르면서도 찾지 않고, 너희 날 어질다 부르면서도 오지 않
고, 너희 날 존귀하다 하면서도 섬기지 않고, 너희 날 강하다 하면서도 섬
기지 않고, 너희 날 의롭다 부르면서도 두려워 않느니, 그런즉 너희를 꾸짖
어도 나를 탓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