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진정한 그리스도인 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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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597회 작성일 2009-05-2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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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4:9-22

당신은 진정한 그리스도인 입니까?

오늘 본문은 목회 활동을 위하여 평생을 바치고 이제 육신은 늙고 몸은 옥
중에 갇힌 노 사도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 같은 동역자인 디모데에게 자신
의 심경을 털어놓은 인간의 인지상정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본문에는 무려 16명이라는 성도와 그 주위의 인물들의 이름을 열거하면서
일 일이 개인의 신상을 기억하여 밝혀 놓고 있습니다. 목회에 있어서 각 개
인의 신앙의 형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다 사도 바울의 목회 활동에 직 간접으로 함께한 자들입니다.
이들 중에는 바울에게 있어서 눈물겹도록 감사하고 고마운 자도 있지만 게
중에는 심히 피곤케 하여 경계해야 할 인물도 있었습니다.
목회 말년에 바울의 기억에 남은 이들은 어쩌면 오늘의 성도들이 목회자에
게 보여진 모습이요 아니 그 보다도 우리 주 예수님에게 보여진 모습일 것
입니다.
저는 여러 해 동안 목회를 하면서 많은 성도들을 회집시키지 못하고 교회
를 성장시키지 못한 능력과 실력이 없는 무능한 목사님에는 틀림이 없습
니다.
가끔 동역 자들의 부흥의 소식을 접 할 때는 저 자신의 초라함을 더욱 느끼
기도 합니다.
동역 자들의 부흥의 소식에 우리 집 사람의 슬픔의 기색이 더욱 제 마음을
아프게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를 더욱 더 가슴 아프게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 것은 저와 함께 교회를 섬기는 성도들이 여러 가지의 핑계로 섬기는 일
을 멀리 할 때이었습니다.
교회가 성장되고 많은 성도들이 일군이 되어 교회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교
회의 성장은 거의 정지되어 있는 어려움과 일군 한 명이 아쉬운 때에 더욱
그러하였습니다.
마치 바울이 옥중에서 추위와 고독과 싸우고 있는 때에 세상을 사랑하여 어
려움에 처한 바울을 멀리 할 때의 그 섭섭함을 보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말하려고 하는 것은 그의 섭섭함이 아니었습니다.
그러한 자들이 있는 가운데서도 신앙의 아름다움을 지키는 자들이 함께 하
였다는 것입니다.
바울을 위로하는 자, 대화가 가능한 자, 그리고 그의 필요를 채우는 자, 심
지어는 바울의 목회를 위하여 목숨까지도 내어놓은 자들도 있었습니다.
마치 예수님의 사랑을 듬뿍 받았지만 은전 30냥에 파는 제자가 있는 가운
데 자신의 가장 귀한 것 1년치의 연봉인 300데라리온의 향유를 예수님의 발
에 붙은 기념 할 만한 여인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어려운 목회 가운데 저를 너무 나도 기쁘게 하는 성도들이 있습니
다.
그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교회를 섬기고 목회자인 저를 주의 종으로 여기고
때를 따라 필요를 채워주고, 생각하는 것을 볼 때에 저는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하는 마음을 드리는지 모릅니다.
추수 때에 얼음 냉수 같은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이와 같이 할 수 있음은 어떤 인간, 한 목사를 바라보기 때문이 아
니었습니다.
스스로가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
다.
오늘 우리의 자화상을 본문의 여러 인물들에게서 다 찾아보게 됩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참 모습으로 교회를 섬기며 목회자를 받드는 우리 성
도들이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자들에게는 우리 주님께서 떠나
지 않으실 것이요 지속적인 은혜를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1. 교회와 그 사역 자와 항상 함께 하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임마누엘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보스턴 해변가에서 매일 같은 시간이면 한 노인이 싱싱한 새우가 가득 담
긴 통을 들고 어김없이 같은 시간에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갈매기들이 금방 그 노인을 알아보고는 그의 발아래 모여들었습니다.
새우를 갈매기들에게 나누어주는 동안 노인의 얼굴에서는 환한 웃음이 떠나
지 않았습니다.
갈매기들은 고급 요리를 그야말로 마음껏 먹었습니다.
사람들은 놀라서 매일 새우파티가 벌어지는 이 광경을 바라보면서 분을 내
며“비싼 새우를 새들에게 낭비하다니 너무하다.”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왜 새우를 갈매기에게 주는 이유를 알고 나서는 반응이 달라
졌습니다.
그 노인은 제2차 세계 대전 때 미국군의 유명한 해군 제독이었는데, 독일
군이 어뢰를 맞아 그의 배는 격침을 당하여 그와 부하 일부만이 구명정에
간신히 올라탈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구명정 위에서 뜨거운 태양과 폭풍과 식량의 어려움을 당하며
몇 날을 보내었습니다.
부하들은 한 명씩 죽어가기 시작하여 장군을 비롯한 몇 명만 살아 남게 되
었습니다.
마침내 장군도 정신이 희미해지면서 쓰러지고 굶주림으로 죽기 일보 직전이
었습니다.
그런데 누워 있는 순간 바로 옆에 작은 흰 물체가 안경을 통해 눈으로 들어
왔는데 그것은 갈매기였습니다.
그런데 그 갈매기는 움직이지 않았고 그 갈매기는 몇 시간 수명을 더 연장
하도록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였고 그 몇 시간은 그가 섬을 발견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섬에서 안전을 찾고 생명을 부지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제 사람들을 보스턴의 갈매기들에게 값비싼 식사를 대접하는 것에 대해
서 그 장군을 비난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장군의 행동은 겸손하게 감사를 표현한 단순한 행동이었음을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새우 한 조각 조각마다 하나님과 갈매기에 대한 감사의 표시가 들어 있었
던 것입니다.
왜 주의 성도들이 주의 교회와 주의 종을 섬기는 일을 계속하는 것입니까?
죽었던 생명이 구원함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주위의 사람은 이해가 돼지 않는 다고 고개를 기우둥하며 심지어는 비난하
기를 서슴지 아니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구원받은 자들은 내게 어떠한 환경과 여건이 주어진다 할지라
도 교회를 섬기고 주의 종을 받드는데 에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를 않을 것
입니다.
폴리갑 사도가 그리스도를 구주로 시인하면 마시고 죽을 수밖에 없는 사약
을 앞에 두고 하는 말이 내 나이 70평생에 예수님이 나를 한 번도 부인하
지 않았는데 어찌 내가 그리스도를 부인 할 수 있으리요 하며 그 사약을 마
셨습니다.
이 세상 떠 날 때 찬양하고 숨 질 때 하는 말 이것일세 다만 내 비는 말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더욱 사랑. 오늘 우리는 어떠합니까?
물에 빠진 사람 살려 주었더니 내 보따리 내어놓으라는 자는 아닙니까?
구원의 구주보다는 내 소욕을 챙기기에 급급하여 구원의 주님을 모르다 하
는 자는 아닙니까?
2. 선의 요구에 항상 긍정적인 자입니다.
혹시 우리 성도 가운데 교회를 들락날락 하면서 어떠한 감정이 여러분을 사
로잡습니까?
교회가 무엇인가 나를 요구하고 있다는 감정은 없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화평교회가 왜 이렇는가? 좀 더 잘하지... 하지만 자신의 필
요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제가 교육 전도사 시절 때의 일입
니다.
예배 때에 담임 목사님이 들어오시면 의자를 바로 맞추고 휴지를 줍고 케비
넷 주위를 정돈을 하는 것입니다.
제 눈에는 그러한 것이 잘 들어오지를 않았습니다.
왜 목사님이 저렇게 설치시나 하고 생각을 했지요
그런데 제가 담인 목사가 되고 보니 그 목사님의 심정이 이해가 되는 것입
니다. 얼마나 잘 들어오는지
교회 전도사로 있었지 만은 실상은 교회에 그 만큼 관심이 없었다는 좋은
증거였고 2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부끄러운 일이라고 여겨집니다.
교회 바닥을 청소하게 된 일은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엄두를 내지 못하고 망설이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임 채용 성도님의 눈길에 왜 이렇게 더러워에 그치지 않고 내
가 청소를 해야 갰다는 마음은 참으로 귀한 모습입니다.
누군가의 선의 요구에 희생이 없이는 오늘의 우리의 교회가 있지를 못 했
을 것입니다.
기본적인 신앙인의 위치를 겨우 해서는 적은 무리의 성도가 우리 교회를 유
지 할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살을 찢고 뼈를 깍은 헌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철야 기도회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우리 성도들 가운데에서 이러한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수고의 댓가가 자신을 위하여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교회를 위하여 사
용되기를 기뻐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우리 가운데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여러분들을 위하여 희생을 믿
는 다면 이 예수님을 위하여 그의 뜻과 선의 요구에 내 자신을 기꺼이 드리
는 일이 어찌 기쁜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자신의 이익에는 밝았지만 주의 교회와 주의 종을 섬기는 일에는 무관심함
을 부끄럽게 여기야 하지 않겠습니까?
바울의 주위에는 생명까지도 내어놓은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우리 가운데서도 없으라는 법이 없습니다. 많이 일어나시기를 축원합니
다.
3. 그 심령에는 예수 그리스도로 채워져 있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항해하던 어선이 파도에 침몰되었습니다.
어선에서는 사람들이 구조해 달라고 아우성이 바람을 타고 어촌까지 들렸습
니다.
어부들은 구명보트를 동원해 파선된 배로 가서 표류하는 사람들을 구조해
태워 돌아오는데 침몰된 배에 또 한사람이 남아 소리를 쳤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파도가 높고 구명보트도 만원이라 더 태울 수가 없었습
니다.
기다리고 있으면 다시 태우러 오겠습니다. 노를 젓고 있던 젊은이가 소리
쳤습니다.
구명보트가 구사일생으로 육지에 와 닿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기진맥진하
여 땅바닥에 쓰러졌습니다.
난파선에 남아있는 사람과 약속한 젊은이는 혼자서 배를 저어 다시 난파
선으로 가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홀어머니가 극구 만류했습니다.
이놈아, 너의 아버지는 바다에 빠져 익사했고 너의 형은 어선을 타고 나
가 실종한지 3년이요, 이제 너 하나만 남았는데 너마저 잘못되면 나는 어
찌 살겠느냐?
그러나 그는 어머니의 만류를 뿌리치고 파도 속을 뚫고 힘차게 노를 저어
나갔습니다.
어머니 염려 말고 기도하세요. 나는 예수님을 모시고 갔다오겠습니다.
청년은 무사히 난파선에 남은 사람을 구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가 구해온 사람은 바로 실종된 그의 형님이었습
니다.
그의 형님이 구원되었다는 기쁨을 말하려고 함이 아닙니다.
그 험한 바다를 향해하며 약속한 한 생명을 구하겠다는 그 충정이 귀하다
는 것입니다.
그 충정은 그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로 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감히 여러분들에게 말씀 드릴 수있습니다.
왜 우리가 이토록 주의 일에 등한시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내 마음속에서 주인으로 아직도 모시지 않기 때문입
니다.
왜 어떤 성도는 죽기를 각오하고 주의 일에 열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생명이요 구원이요 그의 삶의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이 청년의 죽기를 각오한 헌신이 또 다른 구원 그 형제의 구원을 가져 왔듯
이 여러분들의 죽기를 각오한 헌신이 또 다른 구원을 여러분의 주위에서 나
타날 것입니다.
이제는 예수님 한 분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 이유를 내가 알고 그가 기뻐하
시는 일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주의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드리십시오 그리고 주의 종을 위하여 돕
는 자로 계십시오
반드시 예수님은 여러분의 마음에 주인으로 계실 것이요 여러분은 그 분을
위하여 죽기를 헌신할 것입니다.
그러면 또 다른 구원이 여러분의 주위에 일어 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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