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얻는 근심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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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537회 작성일 2009-05-27 09:41본문
고린도후서7:8-11
생명을 얻는 근심을 하자
피일 목사가 한 사람에게 말하기를, 여기서 가까운 곳에 1만 5천명의 인
구가 있으나 그 중 한 사람도 문제 거리가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라고 말
을 하자 걱정 근심에 쌓인 한 친구가 물었습니다.
목사님 제게 걱정 없는 곳을 좀 가르쳐 주십시오. 저도 그런 곳에 가서 살
고 싶습니다.
그래요 가르쳐 드리죠 바로 이 너머에 가면 문제가 없는 곳입니다.
아니 그 곳에는 사람들이 살지 않는 죽은 사람들이 있는 공동묘지 있데요?
근심하며 갈등한다는 것은 내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좋은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에도 염려와 걱정 근심에서 자유하고 싶다면 죽으면 벗어
날 수가 있습니다.
어찌 하시렵니까?
염려하면서 살고 싶습니까? 염려하지 않고 죽고 싶습니까?
염려하면서 살고 싶다고요?
그러니 죽지도 못하겠고 살자니 근심된 일로 죽겠고......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참 죽을 일 쌓였구나?
그래서 성경에서는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이 무려 55O번이나 기록되어 있
습니다.
그만큼 염려라는 것은 무익한 것이요 인간의 생명을 해롭게 하는 것이며,
영혼을 병들게 하는 것이기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세상에 일에 염려하
지 말라 라고 하십니다.
세계2차 대전 때 일본과 독일을 상대하여 미국이 치열한 전쟁을 한 결과
35만 명이란 미국의 청년들이 생명을 잃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놀라운 일은 세계 제 2 차 대전 때 염려로 말미암아 심
장 마비로 죽은 사람이 훨씬 더 많이 된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있는 이 사회에서 염려와 근심은 전쟁보다 더 많은 사람
이 죽어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염려라 는 말은 헬라 원어에 메림나오 라는 말인데 그 뜻은 메리조
갈라 버린다는 말과 누스 .마음이라는 말로서 이루어진 것으로 우리들
의 마음을 산산조각으로 갈라 버디는 것이 염려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염려는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서 인간을 약하게 하고 실패자로 만
들어 인간을 불행에 지도록 만드는 무서운 악이요, 신앙을 타락시키려는 원
수 마귀의 무서운 무기라는 것 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마귀가 좋아하는 세상의 염려 근심을 하지 말라 라고 친히 말씀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날
의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I4장 l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
를 믿으라.
빌립보서 4장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
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베드로전서 4장 7절에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
를 권고하심이니라하였습니다.
염려하지 말라 하셨는데 염려하고 있으면 큰 죄 중에 죄입니다.
그리고 진짜 염려 할 것이 있습니다.
세상의 염려는 하면 할수록 나를 죽이는 것이지만 나를 살리는 염려가 있습
니다.
고린도후서 7장 lO절에 보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 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의 근심은 사망을 이
루는 것이니라 하였습니다.
진짜 염려 할 것은 염려하지 않고 엉뚱한 것만 염려하고 있으니 다 죽게 생
겼습니다.
어떤 사람은 염려 할 것이 많아서 다른 이들이 보기에 죽게 생겼는데 염려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1.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한 근심
사람에게 근심과 염려를 가져오게 하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가 사람 자
신의 뜻을 모든 일에 기준을 삼기 때문입니다.
곧 자신의 욕심이 앞장서기 때문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많은 도시 국가 중에 <에피루스>라는 도시가 있었습니다.
그곳을 다스리는 <피로스>라는 왕은 땅에 대한 욕심이 대단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영토에 만족하지 않고 로마까지 정복할 야심를 가지고 있었
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된 대장군 <씨네아스>는 왕의 정복욕을 설득하고자 이렇게
질문하였답니다.
[각하! 로마를 정복하고 난 후에는 무엇을 하실 겁니까?]
[다음에는 아프리카를 건너 카르타고를 정복하는 거야.]
씨네아스는 또 물었습니다. [카르타고를 정복한 후에는요?]
[다음에는? 마게도니아를 정복하는거야.] 그는 또 물었습니다.
[그렇게 모든 나라들을 다 정복하고 나시면 또 무엇을 하실 겁니까?]
[그때는 앉아서 즐기는 거야.]
왕의 대답이 끝나자 씨네아스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답니다.
각하! 그것을 지금 그렇게 하는 것이 어떨까요?
각하에겐 이미 앉아서 즐길 왕국이 있지 않습니까?
조그만 왕국에도 만족하실 줄 모르신다면 온 세상을 가진다고 즐길 수 있다
고 생각하십니까? 그 때 가서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그
러하고 있습니다.
지금보다 좀 더 나아지면 좀 더 나아져야지 하고 그 일로 염려하고 걱정하
고 있습니다.
지금 내게 주신 은혜에 족하지 못한 사람은 앞으로 어떤 상황이 그에게 주
어진다 할지라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나에게 더 나아지는 보장이 어디 있으며 더 나빠 질 수도 있
지 않다고 누가 말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나에게 주어진 모든 역량은 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주어
진 기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지기 위하여 주신 기회라는 것을 명
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생활을 시작하십시오
내가 처한 이 가운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이지를 분별하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하여 염려하십
시오
그러면 놀라운 일이 생길 것입니다. 사는 길이 열릴 것입니다.
자꾸만 자신의 일만 생각하고 그 일을 앞세우고 그 일만 위하여 수고하니
죽을 지경이지요
매일 하나님 당신이 손해보시오 하고 나는 절대로 손해 안봅니다 하는 식으
로 신앙 생활을 하니 손해는 여러분이 보시지 하나님은 절대로 손해를 보시
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살고 싶습니까?
내가 지금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을 이루겠습니까? 하는 염려를 하시기
를 바랍니다.
2. 후회하는 근심되지 말고 회개를 가져오는 근심이 되
십시오
세상근심은 후회를 하게 되고 사망을 가져다주는 근심입니다.
이 세상근심은 죄악을 뉘우치고 돌아서게 하는 하나님 중심의 근심이 아니
라 죄악의 결과가 고통스러움을 슬퍼하는 자기 중심의 근심입니다. 그 대표
적인 예가 가륫유다입니다.
선한 선생을 은 30냥에 팔았다는 근심이 후회는 되었지만 회개를 가져오지
못하고 결국은 나무에 목매어 자살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생명을 얻은 근심은 회개를 가져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베드로입
니다.
그 역시 가륫유다 못지 않게 예수님을 배반하고 더욱이 저주까지 하였습니
다.
그러나 그는 말씀이 생각이 날 때 회개를 하였습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작품 중에 어느 목사님에게 두 여인이 찾아왔습
니다.
한 여인은 자기는 큰 죄를 지은 죄인이라며 회개하며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
고, 또 한 여인은 자기는 일생 이렇다 할 큰 죄는 짓지 않았지만 자질구레
한 잘못은 많다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두 여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들 수 있는 가장 큰 돌덩이를 가져오시오. 그리고 당신
은... 목사는 이번에는 일생동안 이렇다 할 큰 죄를 지은 기억이 없다는
여인에게 자디잔 돌멩이를 치마폭에 가득 주워 오시오.라고 말했습니다.
한참 후에 두 여인은 목사가 시키는 대로하여, 한 여인은 커다란 바윗돌을
낑낑거리며 옮겨왔고, 다른 여인은 새 알만한 잔돌을 치마폭에 가득 주워왔
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시었습니다.
미안하지만 이번에는 그 돌멩이들을 제 자리에 갖다 놓고 오시오
큰 바윗돌을 가져온 여자는 다시 낑낑거리며 바윗돌을 제 자리에 갖다 놓았
지만. 그러나 새 알만한 잔돌을 치마폭에 가득히 주워온 여인은 어찌할 바
를 몰라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은 죄도 바로 이런 것이요, 당신은 하루하루 이러저러한 죄
를 지으면서도 하나님께 죄책감 없이 일생을 살아왔기 때문에 많은 죄를 짓
고도 회개 한번 하지 않았소, 그러나 이 여인은 큰 죄를 짓고 이렇게 통회
하고 자복하고 있으니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총이 함께 하실 것이요. 라
고 했습니다.
아직도 우리 가운데는 회개 할 것은 없고 그저 자질구례한 잘 못만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 시간에 잘못을 후회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시간이 되십
시오
그러면 한량없는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실 것입니다.
후회만 하고 있으니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회개 할 때에 생명의 성령의 역사가 일어 날 것입니다.
3. 구원을 가져오는 근심
염려는 누구나 버릇처럼 하기 쉬운 것입니다.
안 해야지 하면서 다시 하고, 안 한다고 하면서 먼저 합니다.
어떤 사람은 염려를 안개에다 비유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위 일대를 30미터 두께로 짙게 덮을 수 있는 안개가 실은 한잔의
물이 600억 개의 물방울로 바뀐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염려가 처음에는 한잔의 물처럼 대수롭지 않게 보일지 모르나 그대로 방치
하면 우리의 내면세계를 온통 가릴 수 있는 안개로 돌변할 수 있는 것입니
다.
그렇게 되면 아무 것도 안 보인다. 하나님도, 그의 약속도, 응답의 손길
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많은 안개를 한 잔의 물로 바꿔버리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뜻을 찾으십시오 그리고 회개하십시오 그러면 구원은 저절
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교인은 아닙니다 만은 남편의 문제로 찾아 왔습니다.
그 여인에게 주시는 하나님은 이 모든 문제를 내 자신의 잘못으로 받아드리
고 회개하시기를 원했습니다.
기도 후에 남편이 바로 돌아오기를 위하여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고 제게 물
어 왔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부탁한다고 했습니다.
여인의 생각에는 남편이 잘못으로 인하여 일이 진행되었으니 남편이 고치
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선을 베풀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남편이 아내 하나 편안하게 해 주지 못하는 것은 남자의 도리가 아닙
니다.
남편이 잘 못 된 것은 물론이지만 남편이 자신의 나름대로 아내를 멀리하
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것을 회개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편은 저절로 아내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오늘 자꾸만 구원에만 애타하시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선 한 뜻을 위한 근
심과 그리고 그렇지 못함을 회개하시고 고쳐보십시오 그리하면 구원이 있
을 것입니다.
생명을 얻는 근심을 하자
피일 목사가 한 사람에게 말하기를, 여기서 가까운 곳에 1만 5천명의 인
구가 있으나 그 중 한 사람도 문제 거리가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라고 말
을 하자 걱정 근심에 쌓인 한 친구가 물었습니다.
목사님 제게 걱정 없는 곳을 좀 가르쳐 주십시오. 저도 그런 곳에 가서 살
고 싶습니다.
그래요 가르쳐 드리죠 바로 이 너머에 가면 문제가 없는 곳입니다.
아니 그 곳에는 사람들이 살지 않는 죽은 사람들이 있는 공동묘지 있데요?
근심하며 갈등한다는 것은 내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좋은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에도 염려와 걱정 근심에서 자유하고 싶다면 죽으면 벗어
날 수가 있습니다.
어찌 하시렵니까?
염려하면서 살고 싶습니까? 염려하지 않고 죽고 싶습니까?
염려하면서 살고 싶다고요?
그러니 죽지도 못하겠고 살자니 근심된 일로 죽겠고......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참 죽을 일 쌓였구나?
그래서 성경에서는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이 무려 55O번이나 기록되어 있
습니다.
그만큼 염려라는 것은 무익한 것이요 인간의 생명을 해롭게 하는 것이며,
영혼을 병들게 하는 것이기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세상에 일에 염려하
지 말라 라고 하십니다.
세계2차 대전 때 일본과 독일을 상대하여 미국이 치열한 전쟁을 한 결과
35만 명이란 미국의 청년들이 생명을 잃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놀라운 일은 세계 제 2 차 대전 때 염려로 말미암아 심
장 마비로 죽은 사람이 훨씬 더 많이 된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있는 이 사회에서 염려와 근심은 전쟁보다 더 많은 사람
이 죽어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염려라 는 말은 헬라 원어에 메림나오 라는 말인데 그 뜻은 메리조
갈라 버린다는 말과 누스 .마음이라는 말로서 이루어진 것으로 우리들
의 마음을 산산조각으로 갈라 버디는 것이 염려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염려는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서 인간을 약하게 하고 실패자로 만
들어 인간을 불행에 지도록 만드는 무서운 악이요, 신앙을 타락시키려는 원
수 마귀의 무서운 무기라는 것 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마귀가 좋아하는 세상의 염려 근심을 하지 말라 라고 친히 말씀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날
의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I4장 l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
를 믿으라.
빌립보서 4장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
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베드로전서 4장 7절에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
를 권고하심이니라하였습니다.
염려하지 말라 하셨는데 염려하고 있으면 큰 죄 중에 죄입니다.
그리고 진짜 염려 할 것이 있습니다.
세상의 염려는 하면 할수록 나를 죽이는 것이지만 나를 살리는 염려가 있습
니다.
고린도후서 7장 lO절에 보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 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의 근심은 사망을 이
루는 것이니라 하였습니다.
진짜 염려 할 것은 염려하지 않고 엉뚱한 것만 염려하고 있으니 다 죽게 생
겼습니다.
어떤 사람은 염려 할 것이 많아서 다른 이들이 보기에 죽게 생겼는데 염려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1.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한 근심
사람에게 근심과 염려를 가져오게 하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가 사람 자
신의 뜻을 모든 일에 기준을 삼기 때문입니다.
곧 자신의 욕심이 앞장서기 때문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많은 도시 국가 중에 <에피루스>라는 도시가 있었습니다.
그곳을 다스리는 <피로스>라는 왕은 땅에 대한 욕심이 대단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영토에 만족하지 않고 로마까지 정복할 야심를 가지고 있었
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된 대장군 <씨네아스>는 왕의 정복욕을 설득하고자 이렇게
질문하였답니다.
[각하! 로마를 정복하고 난 후에는 무엇을 하실 겁니까?]
[다음에는 아프리카를 건너 카르타고를 정복하는 거야.]
씨네아스는 또 물었습니다. [카르타고를 정복한 후에는요?]
[다음에는? 마게도니아를 정복하는거야.] 그는 또 물었습니다.
[그렇게 모든 나라들을 다 정복하고 나시면 또 무엇을 하실 겁니까?]
[그때는 앉아서 즐기는 거야.]
왕의 대답이 끝나자 씨네아스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답니다.
각하! 그것을 지금 그렇게 하는 것이 어떨까요?
각하에겐 이미 앉아서 즐길 왕국이 있지 않습니까?
조그만 왕국에도 만족하실 줄 모르신다면 온 세상을 가진다고 즐길 수 있다
고 생각하십니까? 그 때 가서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그
러하고 있습니다.
지금보다 좀 더 나아지면 좀 더 나아져야지 하고 그 일로 염려하고 걱정하
고 있습니다.
지금 내게 주신 은혜에 족하지 못한 사람은 앞으로 어떤 상황이 그에게 주
어진다 할지라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나에게 더 나아지는 보장이 어디 있으며 더 나빠 질 수도 있
지 않다고 누가 말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나에게 주어진 모든 역량은 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주어
진 기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지기 위하여 주신 기회라는 것을 명
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생활을 시작하십시오
내가 처한 이 가운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이지를 분별하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하여 염려하십
시오
그러면 놀라운 일이 생길 것입니다. 사는 길이 열릴 것입니다.
자꾸만 자신의 일만 생각하고 그 일을 앞세우고 그 일만 위하여 수고하니
죽을 지경이지요
매일 하나님 당신이 손해보시오 하고 나는 절대로 손해 안봅니다 하는 식으
로 신앙 생활을 하니 손해는 여러분이 보시지 하나님은 절대로 손해를 보시
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살고 싶습니까?
내가 지금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을 이루겠습니까? 하는 염려를 하시기
를 바랍니다.
2. 후회하는 근심되지 말고 회개를 가져오는 근심이 되
십시오
세상근심은 후회를 하게 되고 사망을 가져다주는 근심입니다.
이 세상근심은 죄악을 뉘우치고 돌아서게 하는 하나님 중심의 근심이 아니
라 죄악의 결과가 고통스러움을 슬퍼하는 자기 중심의 근심입니다. 그 대표
적인 예가 가륫유다입니다.
선한 선생을 은 30냥에 팔았다는 근심이 후회는 되었지만 회개를 가져오지
못하고 결국은 나무에 목매어 자살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생명을 얻은 근심은 회개를 가져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베드로입
니다.
그 역시 가륫유다 못지 않게 예수님을 배반하고 더욱이 저주까지 하였습니
다.
그러나 그는 말씀이 생각이 날 때 회개를 하였습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작품 중에 어느 목사님에게 두 여인이 찾아왔습
니다.
한 여인은 자기는 큰 죄를 지은 죄인이라며 회개하며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
고, 또 한 여인은 자기는 일생 이렇다 할 큰 죄는 짓지 않았지만 자질구레
한 잘못은 많다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두 여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들 수 있는 가장 큰 돌덩이를 가져오시오. 그리고 당신
은... 목사는 이번에는 일생동안 이렇다 할 큰 죄를 지은 기억이 없다는
여인에게 자디잔 돌멩이를 치마폭에 가득 주워 오시오.라고 말했습니다.
한참 후에 두 여인은 목사가 시키는 대로하여, 한 여인은 커다란 바윗돌을
낑낑거리며 옮겨왔고, 다른 여인은 새 알만한 잔돌을 치마폭에 가득 주워왔
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시었습니다.
미안하지만 이번에는 그 돌멩이들을 제 자리에 갖다 놓고 오시오
큰 바윗돌을 가져온 여자는 다시 낑낑거리며 바윗돌을 제 자리에 갖다 놓았
지만. 그러나 새 알만한 잔돌을 치마폭에 가득히 주워온 여인은 어찌할 바
를 몰라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은 죄도 바로 이런 것이요, 당신은 하루하루 이러저러한 죄
를 지으면서도 하나님께 죄책감 없이 일생을 살아왔기 때문에 많은 죄를 짓
고도 회개 한번 하지 않았소, 그러나 이 여인은 큰 죄를 짓고 이렇게 통회
하고 자복하고 있으니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총이 함께 하실 것이요. 라
고 했습니다.
아직도 우리 가운데는 회개 할 것은 없고 그저 자질구례한 잘 못만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 시간에 잘못을 후회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시간이 되십
시오
그러면 한량없는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실 것입니다.
후회만 하고 있으니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회개 할 때에 생명의 성령의 역사가 일어 날 것입니다.
3. 구원을 가져오는 근심
염려는 누구나 버릇처럼 하기 쉬운 것입니다.
안 해야지 하면서 다시 하고, 안 한다고 하면서 먼저 합니다.
어떤 사람은 염려를 안개에다 비유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위 일대를 30미터 두께로 짙게 덮을 수 있는 안개가 실은 한잔의
물이 600억 개의 물방울로 바뀐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염려가 처음에는 한잔의 물처럼 대수롭지 않게 보일지 모르나 그대로 방치
하면 우리의 내면세계를 온통 가릴 수 있는 안개로 돌변할 수 있는 것입니
다.
그렇게 되면 아무 것도 안 보인다. 하나님도, 그의 약속도, 응답의 손길
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많은 안개를 한 잔의 물로 바꿔버리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뜻을 찾으십시오 그리고 회개하십시오 그러면 구원은 저절
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교인은 아닙니다 만은 남편의 문제로 찾아 왔습니다.
그 여인에게 주시는 하나님은 이 모든 문제를 내 자신의 잘못으로 받아드리
고 회개하시기를 원했습니다.
기도 후에 남편이 바로 돌아오기를 위하여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고 제게 물
어 왔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부탁한다고 했습니다.
여인의 생각에는 남편이 잘못으로 인하여 일이 진행되었으니 남편이 고치
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선을 베풀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남편이 아내 하나 편안하게 해 주지 못하는 것은 남자의 도리가 아닙
니다.
남편이 잘 못 된 것은 물론이지만 남편이 자신의 나름대로 아내를 멀리하
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것을 회개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편은 저절로 아내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오늘 자꾸만 구원에만 애타하시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선 한 뜻을 위한 근
심과 그리고 그렇지 못함을 회개하시고 고쳐보십시오 그리하면 구원이 있
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