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긍휼하심과 도우시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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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535회 작성일 2010-11-01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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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4:14-16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도우시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지난 1일에 메릴랜드 주에 있는 디스커버리 채널 건물에서 인질극을 벌이다 경찰의 총에 사망한 제임스 리 씨는 아버지를 한국인으로 두고 어머니는 일본인인 한국계 미국인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어리석은 일로 인하여 아까운 생명을 잃게 되었는가? 사망한 제임스 리의 암울했던 과거가 속속 드러났습니다. 이 씨는 부모가 이혼한 뒤 편모슬하에 컸으며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평생에 따라다녔습니다. 밀입국 원조 혐의로 붙잡혀 2003년도에 18개월 형을 선고 받고 복역한 적이 있으며 그 때 담당 판사에게 선처를 바라는 편지에서 내 인생이 행복한 결말을 맞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내 인생이 36년 악몽과 같다며 나는 항상 외톨이였다고 고백했으며 편지 곳곳에서 삶에 대한 비관적인 그의 시각이 엿보였다고 합니다. 또 망상형 정신분열증 환자 정신적인 문제 때문에 가족들과 소원해졌다면서 버려진 심경을 표현했습니다. 제임스 리의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의 소식을 듣고 그 아들을 회상했습니다. 아들 제임스에 대해서 각별했는데 이씨는 1965년 서울 교통부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국비 장학생으로 미국으로 건너와 공부를 하다가 아내를 만났고 장남 제임스를 낳았는데 이국땅에서 얻은 아들이 사랑스럽고 마냥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는데 아들은 어머니를 버린 아버지로만 각인이 되고 그 어머니가 죽고 난 후에 13전에 전화로 죽이고 싶을 정도로 밉다고 했습니다.
뿌리 깊은 아들의 증오에 아버지는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결국 죽음의 아들을 맞이했는데 그 때에도 아버지는 아들을 변론하기를 제임스는 천성이 착한 아이입니다. 누굴 해칠 수 있는 아이가 아닙니다.
협박한 총도 딱총 이었다면서요. 제임스 이 씨가 인질극 당시 들고 있던 총은 소리만 나는 출발 신호용 총이었습니다.
자신을 향하여 죽여 버리겠다는 그 소리도 아버지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못하고 오히려 끝까지 아들을 변론하며 아버지의 자식에 대한 긍휼은 자식의 그 어떤 문제도 아버지의 긍휼 앞에는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녀는 그 어떤 문제로 인하여 아버지의 긍휼을 받아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긍휼이 없는 그 삶은 너무나도 자신을 고독하게 했으며 또한 삶에 대한 분노와 대적으로 결국은 그 아버지가 보기에 너무나도 아까운 아들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약2: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육신적인 관계에서도 긍휼이 없고 정죄만 남아 있다면 참으로 무서운 인생이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긍휼이 없다면 멸망일 것입니다.
긍휼이 없는 곳은 지옥입니다. 긍휼은 사망을 생명으로 바꿔버립니다.
이스라엘의 멸망을 슬퍼하며 애곡하는 예레미아가 놀라운 말을 하였습니다.
애가 3:22-23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 이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있기 때문에 결코 완전히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기자는 16절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긍휼의 대상인 인간입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지 못한다면 나 스스로가 나를 감당하지 못합니다.
자신을 받아 드리지 못하고 용납이 되지 못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 또한 세상 자체가 자신의 부정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있으니 긍정적으로 다가 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대로 살아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의 백성들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9:36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제아무리 바라보아도 불쌍히 여김을 받을 긍휼의 대상이지 무엇인가 띄어나 잘하기 때문에 대가를 받은 자는 아닙니다. 천방지축을 모르고 가는 자입니다.
사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오늘 새벽에 기도를 하면서 제 자신을 바라보면서 교회를 바라보면서 느낀 점이 무엇입니까?
도대체 나는 안 되구나 무엇을 이렇게 하였습니다 하고 내어 놓을 것이 없구나
오직 하나님의 불쌍히 여겨 주시는 긍휼하심만 바라 볼 수밖에 없구나 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살 수 있는 존재
요15:5-6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다윗의 글에서 그 유명한 다윗 역시 하나님 앞에 내가 이렇게 하여 내 세운 것이 아니라 긍휼을 그렇게도 바라 보았구나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이 긍휼은 예수님 때문에 열어 놓은 길입니다. 진노를 예수님 당신이 친히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시123:1-4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또 은혜를 베푸소서 심한 멸시가 우리에게 넘치나이다 안일한 자의 조소와 교만한 자의 멸시가 우리 영혼에 넘치나이다
미국 펜실베니아 지역으로 이주해 온 청교도들이 벼농사를 짓고 드디어 수확기가 되었습니다. 들판의 황금빛 곡식을 바라보면서 그들은 모두 하나님께 감사 드렸는데 어느 날 헤아릴 수도 없는 많은 메뚜기 떼가 밭을 점령하고 낱알을 파먹기 시작했습니다. 손이나 막대로 메뚜기를 잡아보았지만 도저히 역부족이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마침 교회 종이 울렸습니다. 주일도 아닌데 왜 교회 종이 울릴까 의아해 하며 하나 둘 교회로 모여들기 시작하자 종을 친 분이 말하기를, "여러분, 우리 모두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합심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합시다! 어서요!" 그와 동시에 열심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를 마칠 무렵 갑자기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떻게 표현할 수도 없이 많은 갈매기 무리가 날아들어 메뚜기 떼를 남김없이 잡아먹고 있었던 것입니다. 갈매기들은 포식을 했던지 용변까지 보고 떠났습니다. 청교도들은 메뚜기 걱정을 덜었고, 이듬해 농사까지 풍작이었습니다. 갈매기들의 분뇨가 비료가 되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갈매기를 통하여 도우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갈매기를 펜실베이니아 주를 상징하는 새로 정하고 지금까지 하나님의 기도의 응답하심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16절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브리서가 쓰인 동기는 당시 신자들은 대단히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었을 때입니다.
유대인으로서 개종하여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유대 사회로부터 완전히 추방당한 것은 물론, 재산 직업까지 빼앗기고 핍박과 가난에 처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도 잠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몇 년 동안이나 더 그런 생활을 계속해야 되는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절망적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그들 가운데 상당수가 예수를 저버리고 옛날 유대 사회로 다시 되돌아가는 배교의 일들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마치 우리 가운데에도 보면 복음을 받아 드리고 신앙생활을 하다가 저버리고 세상으로 되돌아가려고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죽음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었기 때문에 히브리서를 보면 그들에게 경고하는 말씀이 간혹 나옵니다.
히3:12, 4:1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이런 어려움에 처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히브리서를 써 보내신 것입니다.
그들을 격려하고, 그들에게 소망을 주고, 그들로 하여금 잘못되지 않도록 경고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대신에 이런 해답을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너희에게 큰 대제사장이 되신다. 그러므로 그분을 바라보라.
그분을 바라보면 모든 해답과 모든 은혜가 다 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육신을 입으신 인간이시기 때문에 우리 사정을 잘 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이 경험하는 모든 것을 체험하시고 모든 점에서 인간과 같이 되셨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시험을 받으셨고 우리가 다 알 수 없을 정도의 극심한 시험까지 다 경험하셨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죄로 고통 하는 지도 잘 아시고 긍휼히 여기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가 되시는 대제사장이 되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때마다 돕는 은혜를 주십니다.
살후3:16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주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우리의 연약함은 잘 아시기 때문에 오히려 불쌍히 여기십니다.
예수님으로 그 긍휼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맥스 루케이도 하나님은 너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책에서 밥 가필드라는 기자가 미국인 5억 4천 3백만에 이르는 미국인이 스스로 위중한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며, 실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우도 2억 6천 6백만 명에 육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비단 육체적인 질병만가지고 논했는데 그 외 생활력이나 그리고 사람 사이의 갈등. 정치, 사회, 문화, 국가 간의 분쟁, 전쟁의 두려움을 포함한다면 사람은 히브리서를 기록하던 때의 두려움을 능가하면 했지 사람은 살아 갈수록 더욱 이런 고통에서 벗어 날 수 없습니다.
성경에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단어가 수백 번이나 나오는 것입니다.
해결책은 예수님이십니다.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우리가 이 해답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의심 또한 뿌리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죄와 의심이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떨어뜨리려는 사단의 궤계임을 알면서도 잘 이기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안타까운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맥스 루케이도는 이러한 걱정과 염려를 이길 수 있는 8가지 단계를 제시합니다.
그 단계대로 살면 우리가 평안(PEACEFUL)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8단계는 아래와 같습니다.
1) Prayer(우선 기도하십시오): 안으로 힘을 모은 뒤에 밖으로 두려움에 맞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벧전 5:7-8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2) Easy(이제 느긋해지십시오): 문제를 파악하고 예수님께 가서 명확하게 말씀드리십시오.
시37: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3) Act(행동하십시오): 걱정과 씨름하지 말고 싹을 잘라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 졸이는 소심남녀(小心男女)가 아니라 행동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4) Compile(걱정목록을 만드십시오): 일정한 기간이 지날 때마다 불안한 목록을 작성하고 자세히 살피면 실제로 그렇게 된 것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5) Evaluate(근심의 범주를 정해보십시오): 목록을 훑어보면 주로 어떤 문제를 걱정하는지 확연히 드러납니다. 그런 부분들을 두고 집중적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6) Focus(오늘에 초점을 맞추십시오): 하나님은 하루하루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시니 그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16절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7) Unleash(힘을 모아 싸울 연합군을 풀어놓으십시오): 사랑하는 이들과 자신의 감정을 나누며 함께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면 상상 이상으로 큰 도움이 올 것이라는 겁니다.
8) Let God be enough(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십시오):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2-33)
세상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소리가 있습니다. 그 소리가 어떻게 다가오고 있습니까?
언론이나 방송을 통해 접하는 소식은 우리에게 어떤 감정을 줍니까?
그 소식으로 인해 영혼이 참 피폐해진다는 느낌을 가진 적은 없으십니까?
세상에 주파수를 맞추고 살면 우리의 영은 항상 피곤합니다. 그들은 인간이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철저하게 의도한 소리만을 내놓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할수록 우리는 두려움과 걱정을 줄일 수 있습니다.
인생의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은 너를 포기하지 않는다 하나님, 나를 포기하지 말아주세요!
아무리 보아도 세상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모두가 다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사정을 아시고, 우리가 언제 어디서나 피할 수 있는 피난처가 되십니다.
시146:5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실제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긍휼의 구약 히브리어 단어는 라함(자궁)입니다.
그러니까 긍휼이라는 단어는 같은 태에서 나온 이들에 대한 감정이라는 기본적인 의미에서 발전했습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에는 갓난아기에 대한 어머니의 마음, 아버지가 아들에 대한 마음, 형제가 형제에 대해 기대하는 마음 등을 나타내는 데 이 단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의 긍휼의 마음은 여기에서 더 나아갑니다.
고통 가운데 있는 자들에 대한 불쌍히 여기는 마음뿐 아니라, 상대방이 느끼는 그 어려움을 제거하기 위하여 실제적으로 행동하여 구체적인 도움을 주는 것까지 포괄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긍휼의 의미는 고통당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자신에게 해를 준 사람들에게까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창끝이라는 감동적인 영화가 있습니다. 아마존 강 유역에 칼과 창으로 서로 쳐 죽이는 부족사회에 5명의 선교사가 들어갔다가 창에 찔려 순교하였습니다. 손에 총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부족민의 창에 무참히 찔려 죽임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가 더 감동적인 이유는 순교한 선교사들의 아내들이 자신의 남편을 찔러 죽인 부족을 향하여 선교하러 들어갔다는 점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랑과 용서가 결국 그들의 마음 문을 열어 예수를 영접하게 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긍휼이 무엇인지 그들의 삶으로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긍휼에 대한 완전하고 으뜸가는 최고의 실례는 바로 하나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일이며, 아들이 오신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비참한 상태를 보셨고 법을 위반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독생자를 아낌없이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이 십자가에서 피 흘리고 몸이 찢기시는 그 고통스런 장면을 보시면서도 하나님은 침묵으로 일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그 풍성한 긍휼의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십자가의 사랑이야 말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긍휼 중 최고의 표상인 것입니다.
마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그리고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보는 자는 남에게 긍휼한 마음을 가지는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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