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선택이 자자손손 복 받을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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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601회 작성일 2010-11-01 10:21본문
창세기 13:9-18 믿음의 선택이 자자손손 복 받을 일입니다
신30:19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지난 7일 행복 바이러스 행복 전도사 최모씨가 자살을 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하며 오죽했으면 죽음을 택했을까? 이해를 하려고 하지만 또한 진정한 행복은 무엇일까요? 생각해봐야겠다하고 어떤 네티즌은 행복하지 않았다고 표현한 것인지 그래도 행복을 실현한 것인지 모를 일이다고 말들을 합니다. 자살이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진정 아니다. 그리고 인간 스스로가 어떤 목표를 설정해 놓고 좇아가다가 스스로 파놓은 무덤에 자기가 빠질 수 있습니다. 자칭 행복 전도사만 아니고 스스로 가장 의로운 대통령으로 만 아니었다면 죽음을 택하지 않아서도 될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지키다가 죽음을 택하여야만 해야 인생이었습니다.
한편 성공하는 사람에겐 표정이 있다는 책을 쓴 미소의 전도사 정연아씨는 이미지컨설턴트로, 세미나 강사로, 칼럼니스트, 저술가로 정신없이 살았다. 올해 설 연휴 전에 오른쪽 다리에 무슨 덩어리가 있는 것 같아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어요. 혈액 암입니다. 림프암 4기 말기라는 판정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큰 바위가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은 고통과 싸워야 했다. 2초 정도 맥박이 멈출 때마다 숨이 막혀 미칠 지경이었다.
손가락을 얼음 통에 넣은 것처럼 아리고 쑤셨다. 팔과 다리는 저렸다. 화상 입은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손으로 문지르는 것 같은 아픔이었다. 페트병 마개도 딸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최근 그녀의 모든 것을 뒤흔드는 자살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행복 전도사의 극단의 선택 앞에서 그녀도 흔들렸다.
700가지 고통이란 말이 정말 이해가 가요. 전등 스위치 누르는 것도 아파서 싫을 정도였다니까요. 근육통에 헉헉 숨이 차고, 고통이 몰려오는데 정신이 없었어요.
그녀에겐 그동안 가족 외에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는데 세상이 무너지는 큰 고민이 있었다.
그날부터 정씨는 새벽기도를 희성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주님이 나를 버리시면 어쩌나? 라는 의심이 들었어요. 이렇게 세상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나기도 했어요.
그냥 기도만 하면 나을 줄 알았다. 2개월 동안 억지 미소를 짓고, 그냥 부르짖었다.
그런 가운데 이 사람에게는 죽어 이 현실을 피해야 한다는 생각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마 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그래서 내 안에 찾아온 손님을 그냥 막무가내로 무시하고 욕하고 저주하고 피하고 싶고 쫓아내려고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네게 주어진 그 사실을 받아 드리고 보니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마음의 안전을 찾았고
기적이 일어난 것일까. 정씨는 지난 5일 뜻밖의 검사 결과 앞에서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고합니다.
의학상 치료할 것은 다 끝났어요. 일단은 암 세포가 거의 사라졌어요. 3개월 후에나 봅시다.
정씨는 2010년 가을, 새롭게 태어났다고 말했다.
죽지 않고 살았기 때문에 새로운 사명도 생겼습니다.
밤이면 마약 등 환각의 바다로 변하는 홍대 문화를 바로 잡는 데 희성교회 방 목사님과 함께 헌신하겠다는 사명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본문에서도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의 선택이 놓여 있습니다.
창13:9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삼촌 아브람과 조카 롯의 선택이 펼쳐졌습니다.
그 선택의 결과는 이러 했습니다.
조카는 선택한 결과는 사망이었고 삼촌은 생명을 택하였습니다.
조카는 멸망당할 소돔과 고모라를 삼촌은 약속의 땅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택한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세상은 끊임없이 선택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때로는 긍정적인 일로 때로는 부정적인 일이라 할지라도 그 일로 선택이 요구됩니다.
좋은 일이 있어도 선택해야 하고 힘든 일이 있어도 선택을 하여야만 합니다.
본문에서는 좋은 일은 소유가 많아졌기 때문에 선택을 해야 합니다.
6절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힘든 일은 서로 다투기 때문에 선택이 요구되어 집니다.
7절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좋은 일도 더 좋게 할 수 있는 선택이 있어야 하고 나쁜 일도 복되게 하는 것이 믿음이 선택입니다.
좋은 일도 나쁘게 나쁜 것도 더 나쁜 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인간의 선택입니다.
조카는 인간의 소욕에 따른 선택이 좋은 일이 좋은 선택을 가지지 못하였습니다.
성경에는 이미 알려져 있습니다.
롬6: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전혀 하나님은 개입되지 않고 자신의 의지만이 충만합니다.
소알 땅을 바라보니 여호와의 동산과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이 판단은 삼촌 아브람의 판단도 아니요 더욱이 하나님의 의지도 아닙니다.
순수 자신의 욕심에 따른 의지입니다.
왜 에덴동산과 같이 좋았다고 했습니까?
하나님이 계셨고 그리고 하나님의 의지가 행해지는 곳이기 때문입니까?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에덴동산이었습니다.
무엇이 있었습니까?
소알까지 그렇게도 귀한 물이 넉넉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에덴동산이었다고 하는데 그 에덴동산이 애굽과 같다고 했으니 애굽은 세상 물질 만능이었습니다.
자신의 소욕을 충족 시킬 수만있다면 그것이 천국이고 하나님이었습니다.
이것이 멸망입니다.
10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멸망하기로 필연적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솔로몬 이후로 남북으로 갈립니다.
남쪽은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가 중심이 된 예루살렘 성전에는 다윗왕 시대에 산당에 방치 되었던 법궤를 매고와 거기에 모셨습니다.
곧 하나님 의지 말씀이 중심이 되었지만 북쪽 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이 왕이 되고 에브라임지파 등 10지파가 구성원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남자 14세가 되면 일 년에 3차례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드리게 되어있습니다.
정치적인 이유로 북쪽 백성들이 남쪽 성전으로 다니다가 마음이 남쪽으로 빼앗길까봐 여로보암 왕이 예루살렘의 성전으로 가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베델과 단에다 성전 두 개를 짓고 그 성전에 하나님의 의지가 있는 법궤가 없고 그 자리에 금송아지가 있습니다.
왕상12:28-29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금송아지가 하나님이 되니 멸망이 예고되어 있습니다.
이 후로 북쪽 이스라엘은 새로운 왕이 설 때마다 멸망을 당하는데 주로 쿠테타등으로 살해를 당하는데 그 이유는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였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소욕을 따르니 하나님이 금송아지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멸망이 예고되어 있습니다.
10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13절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소돔과 고모라는 죄로 인해서 망했습니다. 죄중에서도 특별히 성적인 죄입니다. 이것은 도둑질이냐, 살인이냐, 하는 류가 아닙니다. 더러운 성행위로 인한 죄, 그런 것입니다. 우상숭배는 음란과 통합니다.
Sodomite(sɑ́dəmàit)̀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Sodomite-소돔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남색자(男色者), 수간자(獸姦者), 이상(異常) 성행위에 빠진 사람. 거기에 설명이 붙습니다.
후천성면역결핍증이라고 하는 이 AIDS병에 대해서는 그 설명의 서두가 이렇습니다.
가장 예방하기 쉬운 병이다. 그러나 걸리면 결정적인 병이다
예방하기 쉽다는 것은 정상적으로 살면 그런 문제는 없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면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시37:25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떠나면 결정적인 멸망이 됩니다.
렘2:19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더러운 행위들이 결국은 세상을 썩게 만듭니다.
아프리카의 어떤 마을은 분명히 있던 마을인데 몇 달 후에 가보니 없어졌습니다. 다 죽어버렸습니다. 온 동네가 다 에이즈에 걸렸다가 말라리아나 감기 같은 작은 병 하나라도 걸렸다하면 이것을 이겨내지 못하고 일시에 온 마을이 다 죽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런 현상을 봅니다. 얼마나 무서운 이야기입니까.
어느 나라나 어느 사회나 어느 개인이나 망할 때는 반드시 하나님을 떠남으로 인해서 망합니다.
경제 때문에 망하는 것도, 정치 때문에 망하는 것도, 아니 전쟁으로 망하는 것도 아닙니다.
잠14:34 공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
하나님의 의지가 없어서 망하는 것입니다.
삼촌은 하나님의 의지에 따른 선택이 있습니다.
아브람에게는 언제든지 제단을 쌓았다는 내용이 따라 다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4절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18절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그러니 언제든지 하나님의 의지의 뜻에 자신의 의지를 드리는 것입니다.
14절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축복의 예고편입니다.
15-17절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여러분, 더러 세상을 탓하십니까? 내 의지가 묵살 당하고 서지 못함을 힘들어 하십니까?
그렇다면 나의 마지막관심은 무엇이어야 하겠습니까.
내가 하나님 앞에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그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의 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남편이 마음에 안 듭니까? 좋은 아내만 되십시오.
아내가 마음에 안 듭니까? 남편 된 구실만 제대로 하십시오.
자녀가 문제입니까? 잊어버립시다. 나만 하나님 앞에 똑바로 서면 자녀교육은 저절로 됩니다. 문제가 없습니다. 가장 절실한 말씀입니다.
세상 변화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정치가 어떻고 전쟁이 어떻고 - 잠깐 잊어버립시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의인처럼 바로 서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이 백성을 사하실 것입니다.
잘 아시는 대로 애굽의 보디발이라고 하는 사람은 우상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요셉이 그 집에 있음으로 해서 요셉을 말미암아 그 집에 은혜를 내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라반도 우상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집에 야곱이라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야곱으로 인하여 그 집에 복을 내리셨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 하나가 여기에 있음으로 해서 하나님께서 이곳에 복을 내리실 수 있도록 그러한 사람, 그런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그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하겠습니다.
세상을 비관하지 마십시오. 문제는 나 자신에게 있습니다.
고든 맥도날드는 당신의 무너진 세계를 재건하리라는 책에서 이런 감동 깊은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래전에 영국의 어떤 목장지대의 시골마을에서 청년 두 사람이 절도하다 붙잡혔다고 합니다. 그래서 재판을 받아서 몇 년간의 감옥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이 4년 정도의 감옥생활을 하고 나오게 되면서 법원에서 다시는 절도행각을 하지 말라는 의미로 S자 문신을 새겨주었다고 합니다. 이 S자가 의미하는 것은 Stealing 즉 도둑질했다는 뜻입니다. 이 사람이 도둑이기에 사람들이 조심하도록 다시는 도둑질을 못하도록 S자를 새긴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한사람은 나는 이런 낙인을 받고 여기서 살 수가 없다면서 하늘을 원망하고 사회를 원망하고 그 마을에서 떠나가고 다시는 그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또 한사람은 그 낙인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벌이 마땅하다 나는 여기서 반드시 재기하겠다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기로 하나님 앞에서 결심했다 고합니다. 그는 열심히 착하게 살면서 주위의 이웃들을 도왔습니다. 사람들은 서서히 그 사람의 과거를 잊어버리기 시작했습니다.
문신은 남아있었지만 사람들은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한참 흘러가서 어느 날 이 분이 길에 지나가는데 어린 소년 두 사람이 지나가는 이 사람을 붙들고 보면서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저기 우리가 좋아하는 할아버지가 지나간다. 그런데 너 저 할아버지 이마에 있는 S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니? 이 때 옆에 있는 꼬마가 이런 대답을 하였습니다. 나는 그 S자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우리가 좋아하는 할아버지로 미루어봐서 저 S자는 SAINT(성자)의 아마 첫 번째 글자일거야 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이 청년은 자신의 생의 과정을 통해 완벽한 회복을 이룬 것이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선택을 잘해야 합니다.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물론 경우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선택할 때 항상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과 현실의 차이를 예배를 통하여 극복할 수 있습니다.
온전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임재 하셔서 하늘의 신령한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이 땅에서 실망하고 현실에 부딪혀 힘들고 외로울 때 우리를 위로해주시고 힘을 주십니다. 비전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주십니다.
당신의 미래는 하나님께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비전을 바라보면서 끝까지 믿음의 길로 달려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신30:19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지난 7일 행복 바이러스 행복 전도사 최모씨가 자살을 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하며 오죽했으면 죽음을 택했을까? 이해를 하려고 하지만 또한 진정한 행복은 무엇일까요? 생각해봐야겠다하고 어떤 네티즌은 행복하지 않았다고 표현한 것인지 그래도 행복을 실현한 것인지 모를 일이다고 말들을 합니다. 자살이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진정 아니다. 그리고 인간 스스로가 어떤 목표를 설정해 놓고 좇아가다가 스스로 파놓은 무덤에 자기가 빠질 수 있습니다. 자칭 행복 전도사만 아니고 스스로 가장 의로운 대통령으로 만 아니었다면 죽음을 택하지 않아서도 될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지키다가 죽음을 택하여야만 해야 인생이었습니다.
한편 성공하는 사람에겐 표정이 있다는 책을 쓴 미소의 전도사 정연아씨는 이미지컨설턴트로, 세미나 강사로, 칼럼니스트, 저술가로 정신없이 살았다. 올해 설 연휴 전에 오른쪽 다리에 무슨 덩어리가 있는 것 같아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어요. 혈액 암입니다. 림프암 4기 말기라는 판정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큰 바위가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은 고통과 싸워야 했다. 2초 정도 맥박이 멈출 때마다 숨이 막혀 미칠 지경이었다.
손가락을 얼음 통에 넣은 것처럼 아리고 쑤셨다. 팔과 다리는 저렸다. 화상 입은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손으로 문지르는 것 같은 아픔이었다. 페트병 마개도 딸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최근 그녀의 모든 것을 뒤흔드는 자살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행복 전도사의 극단의 선택 앞에서 그녀도 흔들렸다.
700가지 고통이란 말이 정말 이해가 가요. 전등 스위치 누르는 것도 아파서 싫을 정도였다니까요. 근육통에 헉헉 숨이 차고, 고통이 몰려오는데 정신이 없었어요.
그녀에겐 그동안 가족 외에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는데 세상이 무너지는 큰 고민이 있었다.
그날부터 정씨는 새벽기도를 희성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주님이 나를 버리시면 어쩌나? 라는 의심이 들었어요. 이렇게 세상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나기도 했어요.
그냥 기도만 하면 나을 줄 알았다. 2개월 동안 억지 미소를 짓고, 그냥 부르짖었다.
그런 가운데 이 사람에게는 죽어 이 현실을 피해야 한다는 생각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마 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그래서 내 안에 찾아온 손님을 그냥 막무가내로 무시하고 욕하고 저주하고 피하고 싶고 쫓아내려고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네게 주어진 그 사실을 받아 드리고 보니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마음의 안전을 찾았고
기적이 일어난 것일까. 정씨는 지난 5일 뜻밖의 검사 결과 앞에서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고합니다.
의학상 치료할 것은 다 끝났어요. 일단은 암 세포가 거의 사라졌어요. 3개월 후에나 봅시다.
정씨는 2010년 가을, 새롭게 태어났다고 말했다.
죽지 않고 살았기 때문에 새로운 사명도 생겼습니다.
밤이면 마약 등 환각의 바다로 변하는 홍대 문화를 바로 잡는 데 희성교회 방 목사님과 함께 헌신하겠다는 사명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본문에서도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의 선택이 놓여 있습니다.
창13:9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삼촌 아브람과 조카 롯의 선택이 펼쳐졌습니다.
그 선택의 결과는 이러 했습니다.
조카는 선택한 결과는 사망이었고 삼촌은 생명을 택하였습니다.
조카는 멸망당할 소돔과 고모라를 삼촌은 약속의 땅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택한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세상은 끊임없이 선택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때로는 긍정적인 일로 때로는 부정적인 일이라 할지라도 그 일로 선택이 요구됩니다.
좋은 일이 있어도 선택해야 하고 힘든 일이 있어도 선택을 하여야만 합니다.
본문에서는 좋은 일은 소유가 많아졌기 때문에 선택을 해야 합니다.
6절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힘든 일은 서로 다투기 때문에 선택이 요구되어 집니다.
7절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좋은 일도 더 좋게 할 수 있는 선택이 있어야 하고 나쁜 일도 복되게 하는 것이 믿음이 선택입니다.
좋은 일도 나쁘게 나쁜 것도 더 나쁜 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인간의 선택입니다.
조카는 인간의 소욕에 따른 선택이 좋은 일이 좋은 선택을 가지지 못하였습니다.
성경에는 이미 알려져 있습니다.
롬6: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전혀 하나님은 개입되지 않고 자신의 의지만이 충만합니다.
소알 땅을 바라보니 여호와의 동산과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이 판단은 삼촌 아브람의 판단도 아니요 더욱이 하나님의 의지도 아닙니다.
순수 자신의 욕심에 따른 의지입니다.
왜 에덴동산과 같이 좋았다고 했습니까?
하나님이 계셨고 그리고 하나님의 의지가 행해지는 곳이기 때문입니까?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에덴동산이었습니다.
무엇이 있었습니까?
소알까지 그렇게도 귀한 물이 넉넉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에덴동산이었다고 하는데 그 에덴동산이 애굽과 같다고 했으니 애굽은 세상 물질 만능이었습니다.
자신의 소욕을 충족 시킬 수만있다면 그것이 천국이고 하나님이었습니다.
이것이 멸망입니다.
10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멸망하기로 필연적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솔로몬 이후로 남북으로 갈립니다.
남쪽은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가 중심이 된 예루살렘 성전에는 다윗왕 시대에 산당에 방치 되었던 법궤를 매고와 거기에 모셨습니다.
곧 하나님 의지 말씀이 중심이 되었지만 북쪽 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이 왕이 되고 에브라임지파 등 10지파가 구성원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남자 14세가 되면 일 년에 3차례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드리게 되어있습니다.
정치적인 이유로 북쪽 백성들이 남쪽 성전으로 다니다가 마음이 남쪽으로 빼앗길까봐 여로보암 왕이 예루살렘의 성전으로 가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베델과 단에다 성전 두 개를 짓고 그 성전에 하나님의 의지가 있는 법궤가 없고 그 자리에 금송아지가 있습니다.
왕상12:28-29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금송아지가 하나님이 되니 멸망이 예고되어 있습니다.
이 후로 북쪽 이스라엘은 새로운 왕이 설 때마다 멸망을 당하는데 주로 쿠테타등으로 살해를 당하는데 그 이유는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였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소욕을 따르니 하나님이 금송아지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멸망이 예고되어 있습니다.
10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13절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소돔과 고모라는 죄로 인해서 망했습니다. 죄중에서도 특별히 성적인 죄입니다. 이것은 도둑질이냐, 살인이냐, 하는 류가 아닙니다. 더러운 성행위로 인한 죄, 그런 것입니다. 우상숭배는 음란과 통합니다.
Sodomite(sɑ́dəmàit)̀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Sodomite-소돔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남색자(男色者), 수간자(獸姦者), 이상(異常) 성행위에 빠진 사람. 거기에 설명이 붙습니다.
후천성면역결핍증이라고 하는 이 AIDS병에 대해서는 그 설명의 서두가 이렇습니다.
가장 예방하기 쉬운 병이다. 그러나 걸리면 결정적인 병이다
예방하기 쉽다는 것은 정상적으로 살면 그런 문제는 없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면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시37:25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떠나면 결정적인 멸망이 됩니다.
렘2:19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더러운 행위들이 결국은 세상을 썩게 만듭니다.
아프리카의 어떤 마을은 분명히 있던 마을인데 몇 달 후에 가보니 없어졌습니다. 다 죽어버렸습니다. 온 동네가 다 에이즈에 걸렸다가 말라리아나 감기 같은 작은 병 하나라도 걸렸다하면 이것을 이겨내지 못하고 일시에 온 마을이 다 죽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런 현상을 봅니다. 얼마나 무서운 이야기입니까.
어느 나라나 어느 사회나 어느 개인이나 망할 때는 반드시 하나님을 떠남으로 인해서 망합니다.
경제 때문에 망하는 것도, 정치 때문에 망하는 것도, 아니 전쟁으로 망하는 것도 아닙니다.
잠14:34 공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
하나님의 의지가 없어서 망하는 것입니다.
삼촌은 하나님의 의지에 따른 선택이 있습니다.
아브람에게는 언제든지 제단을 쌓았다는 내용이 따라 다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4절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18절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그러니 언제든지 하나님의 의지의 뜻에 자신의 의지를 드리는 것입니다.
14절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축복의 예고편입니다.
15-17절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여러분, 더러 세상을 탓하십니까? 내 의지가 묵살 당하고 서지 못함을 힘들어 하십니까?
그렇다면 나의 마지막관심은 무엇이어야 하겠습니까.
내가 하나님 앞에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그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의 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남편이 마음에 안 듭니까? 좋은 아내만 되십시오.
아내가 마음에 안 듭니까? 남편 된 구실만 제대로 하십시오.
자녀가 문제입니까? 잊어버립시다. 나만 하나님 앞에 똑바로 서면 자녀교육은 저절로 됩니다. 문제가 없습니다. 가장 절실한 말씀입니다.
세상 변화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정치가 어떻고 전쟁이 어떻고 - 잠깐 잊어버립시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의인처럼 바로 서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이 백성을 사하실 것입니다.
잘 아시는 대로 애굽의 보디발이라고 하는 사람은 우상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요셉이 그 집에 있음으로 해서 요셉을 말미암아 그 집에 은혜를 내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라반도 우상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집에 야곱이라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야곱으로 인하여 그 집에 복을 내리셨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 하나가 여기에 있음으로 해서 하나님께서 이곳에 복을 내리실 수 있도록 그러한 사람, 그런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그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하겠습니다.
세상을 비관하지 마십시오. 문제는 나 자신에게 있습니다.
고든 맥도날드는 당신의 무너진 세계를 재건하리라는 책에서 이런 감동 깊은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래전에 영국의 어떤 목장지대의 시골마을에서 청년 두 사람이 절도하다 붙잡혔다고 합니다. 그래서 재판을 받아서 몇 년간의 감옥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이 4년 정도의 감옥생활을 하고 나오게 되면서 법원에서 다시는 절도행각을 하지 말라는 의미로 S자 문신을 새겨주었다고 합니다. 이 S자가 의미하는 것은 Stealing 즉 도둑질했다는 뜻입니다. 이 사람이 도둑이기에 사람들이 조심하도록 다시는 도둑질을 못하도록 S자를 새긴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한사람은 나는 이런 낙인을 받고 여기서 살 수가 없다면서 하늘을 원망하고 사회를 원망하고 그 마을에서 떠나가고 다시는 그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또 한사람은 그 낙인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벌이 마땅하다 나는 여기서 반드시 재기하겠다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기로 하나님 앞에서 결심했다 고합니다. 그는 열심히 착하게 살면서 주위의 이웃들을 도왔습니다. 사람들은 서서히 그 사람의 과거를 잊어버리기 시작했습니다.
문신은 남아있었지만 사람들은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한참 흘러가서 어느 날 이 분이 길에 지나가는데 어린 소년 두 사람이 지나가는 이 사람을 붙들고 보면서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저기 우리가 좋아하는 할아버지가 지나간다. 그런데 너 저 할아버지 이마에 있는 S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니? 이 때 옆에 있는 꼬마가 이런 대답을 하였습니다. 나는 그 S자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우리가 좋아하는 할아버지로 미루어봐서 저 S자는 SAINT(성자)의 아마 첫 번째 글자일거야 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이 청년은 자신의 생의 과정을 통해 완벽한 회복을 이룬 것이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선택을 잘해야 합니다.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물론 경우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선택할 때 항상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과 현실의 차이를 예배를 통하여 극복할 수 있습니다.
온전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임재 하셔서 하늘의 신령한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이 땅에서 실망하고 현실에 부딪혀 힘들고 외로울 때 우리를 위로해주시고 힘을 주십니다. 비전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주십니다.
당신의 미래는 하나님께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비전을 바라보면서 끝까지 믿음의 길로 달려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