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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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637회 작성일 2010-11-01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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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5: 10-11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The Endurance 인듀어런스라는 책에는 영국인 어니스트 섀클턴이 1914년에 남극을 탐험하려고 떠났다가 1915년 1월에 배가 남극 얼음에 갇혀서 좌초되었습니다. 1년 8개월간의 남극 부근에서 처절한 생존투쟁 끝에 섀클턴과 27명의 대원 모두가 생존하여 귀환하였습니다. 이 책은 그 당시 상황의 생생한 사진과 일기를 인용하여 기록한 것입니다. 섀클턴이 사고를 당하기 1년 전인 1913년에 캐나다의 스태팬슨이 이끄는 11명의 원정대는 북극 탐험을 위하여 출발했다가 배가 파선하여 고립되었습니다. 그들은 고립이 장기화되자 체념과 분노, 절망과 좌절, 원망과 불평, 거짓과 싸움질로 팀워크가 깨져서 11명 전원이 얼음덩이 속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무엇이 동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운명을 갈라놓았는가?
무엇이 한 사람은 처절한 실패로 목숨을 잃게 만들고, 한 사람은 위대한 실패를 하여 영웅이 되게 만들었을까?
1914년 8월 섀클턴 경과 스물일곱 명의 대원들은 인듀어런스 호를 타고 영국을 출발하여 남극 탐험을 떠나 남극의 웨들 해에 들어서는 순간, 인듀어런스 호가 부빙에 포위당하여 표류하더니 마침내는 부빙의 압박에 선체에 금이 가면서 물이 새어 들어오기 시작하고 구멍을 막으려는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배는 서서히 침몰해 가고 섀클턴 대장은 대원들에게 배를 탈출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들은 최소한의 짐을 챙긴 채 개들이 이끄는 썰매를 타고 554킬로미터를 행군하여 얼음 위에 첫 기지를 세우고 고래 기름으로 스튜를 만들고 바다표범과 펭귄고기를 먹으며 대원들은 추위와 이기며 적응력을 가지는데 문제는 그들이 머물고 있던 얼음이 조금씩 조금씩 부서지기 시작한다. 결국 그들은 얼음이 아닌 육지를 찾아 두 대의 돛배와 한 대의 고래잡이배를 띄운다. 험난하다는 남극해를 가까스로 빠져 나온 그들은 엘리펀트 섬에 도착하게 된다. 허나 엘리펀트 섬 역시 안전한 은신처는 아니었다. 섀클턴은 구조 요청을 위해 다섯 명의 대원들과 함께 고래잡이배를 타고 남극해를 건너 사우스조지아 섬으로 항해해 간다. 이때부터 남아 있는 스물두 명 대원들의 지루한 기다림이 시작된다. 한편 가까스로 사우스조지아 섬에 다다른 섀클턴과 다섯 명의 대원들은 세 명만 구조 요청을 위해 떠나기로 한다. 최후의 구조 요청을 위해 길을 떠난 섀클턴과 두 명의 대원들은 달빛을 받으며 36시간 동안 쉬지 않고 험준한 절벽들을 달린다. 1916년 5월 20일, 그들은 마침내 포경 기지인 스트롬니스 만에 도달한다. 섀클턴과 다섯 명의 대원들은 엘리펀트 섬을 떠난 지 4개월 만에 스물두 명의 동료들을 구하러 나타나 그들을 전원 구원하게 됩니다.
그 전에 남극을 탐험했던 사람들이 생존에 대한 극도의 불안감으로 인해 정신이상이나 질병에 많이 걸린 데 반해 남극 횡단 탐험대 대원들은 가장 힘든 상황에서도 축제를 가지며 함께 축하하고 웃을 일을 찾았다. 매사를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그들의 사고방식이 결국 생존에 결정적인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긍정적인 사고가 인내를 할 수 있었으며 그 결과는 구원을 가져 오게 한 것입니다.
당시 남극 탐원 선발시 5000명의 응시자 중에서 대원을 뽑을 때 섀클턴은 이런 질문을 하기를 노래를 부를 수 있느냐?, 다른 대원들과 함께 마구 소리를 지를 수 있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개개인의 뛰어난 능력보다는 긍정적인 마음의 자세와 남극이라는 거칠고 험한 환경에서도 긍정적인 생각으로 아주 극한 상황에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사건이 많은 후대의 귀감이 되었고 어려움에 처한 자들의 새로운 희망을 주었습니다.
본문에도 인생의 좋은 결말을 본 자들을 본받으라고 욥이라는 신앙의 선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10절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고 합니다.
11절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욥에게서 배울 것은 인내이고 그 인내가 하나님이 주신 결말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욥은 그의 글에서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태어난 자와 같다고 비유했습니다.
욥14:1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생애가 짧고 걱정이 가득하며
사실 자신이 당한 경험을 말하는 것입니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그냥 소리 없이 죽어버렸으면 낮지 않을까? 도 생각하였습니다.
욥기10:18 주님께서 나를 이렇게 할 것이라면 왜 나를 모태에서 살아 나오게 하셨습니까? 차라리 모태에서 죽어서 사람들의 눈에 띄지나 않았더라면, 좋지 않았겠습니까?
욥기 7:15 차라리 숨이라도 막혀 버리면 좋겠습니다. 뼈만 앙상하게 살아 있기보다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그런데 욥은 죽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혈기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혈기대로 했더라면 죽었을 것입니다.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을 보면 욕망과 인내라는 두 소년이 상징적 인물로 등장합니다. 욕망은 아버지가 주기로 한 선물을 당장 달라고 하며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앉아있고 인내는 아버지가 선물을 주기로 한 때까지 묵묵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곧 욕망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보물을 한 자루를 받습니다. 욕망은 그것을 마구 쓰고 즐기면서 옆에 아무 것도 없이 앉아 있는 인내를 조롱하고 비웃습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욕망은 받은 것을 모두 소비해 버립니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 누더기뿐입니다.
하지만 인내는 참고 기다린 후 아버지의 선물을 받고 영원히 그것을 누립니다.
욕망은 처음에 좋은 것을 차지했지만 결국 나중에 인내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욕망이 지혜로운 것처럼 보였지만 나중에는 인내가 지혜로웠다는 것이 드러나게 됩니다.
이처럼 인내는 나중에 웃습니다. 인내는 참된 보상을 얻습니다. 이것이 욕망과 인내가 주는 교훈입니다.
인내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오는 온전한 결실을 하기 위한 기간입니다.
하나님이 의지로 허락되는 결말을 기다리는 과정입니다.
욥의 고난이 어떠한지 아시지 않습니까?
찰스 스윈돌의 성경인물연구에서 욥에 대하여 말하기를 인생은 힘들다는 말로 이 책을 시작한다. 그리고 이 말을 인생은 부당(不當)하다는 뜻으로 귀결시킨다.
그리하여 인생의 부당성을 느끼는 사람들은 모두 욥의 세계를 살아가는 이들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유진 피터슨의 올바른 삶을 사는데도 종종 고난이 찾아오는 것을 볼 때는 놀라움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다가 정당한 삶의 보상을 받으려는 찰나에 갑자기 예상치 않은 고난을 당하게 되면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욥의 재난은 재산을 모두 잃어버린 것과 이에 더하여 자녀를 모두 잃는 아픔과 시련, 자신의 몸에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이 난 것, 아내의 믿음 없는 말로 괴롭힘을 당하는 것, 그리고 고통을 겪고 있는 동안에 지인들의 배척을 당하는 것과 그동안 친분을 쌓아왔던 신앙의 친구들이 모두 적 아닌 적들로 변하게 된 것 등등 말로 형언하기 조차 어렵다. 이렇듯 물밀 듯 밀어닥치는 시련은 직접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도무지 헤아릴 수 없는 엄청난 고통임이 분명하다. 오로지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는 중에 닥치는 시련이라니!?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이 모든 시련과 재난이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대적자인 사탄 사이에 이루어진 합의에 의한 결과라는 것, 욥1:12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탄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
욥2:4-7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사람이 그의 모든 소유물로 자기의 생명을 바꾸올지라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를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지니라 사탄이 이에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서 욥을 쳐서 그의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게 한지라


이러한 시련 중에 하나님은 아무런 말이 없으시다는 것,
그리하여 이러한 시련 중에 욥은 하나님과의 단절을 경험함으로써, 더욱 깊은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진 점 등이다.
이 모든 일들이 욥을 둘러싸고 일어난 현실이었다.
사람으로 당 할 수 있는 고난은 다 경험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인내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을 가져 오기에 충분하였을 것입니다.
아내의 말대로 인내를 끝장내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욥2:7-10 사탄이 이에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서 욥을 쳐서 그의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게 한지라 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질그릇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더니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
아내는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죽었으면 딱 좋을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죽을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결말을 봐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
인내는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인격이 단련되고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사랑을 당겨오게 됩니다.
약1:3-4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참은 것도 한계가 있지 하고 참은 것만큼 폭발을 해 버리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족을 살해하고 불 질러 버립니다. 달리는 차에 뛰어듭니다.
폭발하면 그 수습하는 손해가 어마어마합니다.
가족과 가정을 잃어버리고 잃어버릴 정도가 아니라 평생 회한(悔恨)의 아픔을 가지고 살 것이며 다시는 돌아 올 수 없는 사망에 머무는 자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욥의 인내를 배우라고 했습니다.
결말은 주께서 주십니다.
자신을 위한 변론이 잠시의 위안이 될지는 모르나 완전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을 여기까지 오게 한 하나님을 변론하십시오
욥은 견디기 어려운 고난과 고통과 슬픔과 아픔을 당한 다음 그는 자신을 변호하기에 급급(急急)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변호가 하나님 앞에 아무런 가치가 없음을 알았습니다.
욥40:1-5 여호와께서 또 욥에게 일러 말씀하시되 트집 잡는 자가 전능자와 다투겠느냐 하나님을 탓하는 자는 대답할지니라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나는 비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 내가 한 번 말하였사온즉 다시는 더 대답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욥42:3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자기 자랑이 많고 자기변명이 많습니다.
욥은 자기가 미천한 죄인이고 무지한 죄인이고 쓸데없는 말을 많이 지껄인 수다쟁이 죄인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손으로 입을 가리게 되었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바로 아는 것은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그것도 죄인임을 아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을 받을 근거가 됩니다.
베드로도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떠나소서
사도 바울도 죄인 중에 괴수라고 하였으며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을 뵈옵고 하는 말이 나는 망할 자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자기를 잘 모릅니다.
모두 자기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착각을 합니다. 그래서 말을 많이 합니다. 자기가 옳다는 말을 많이 하고 남이 잘못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아마 자기를 아주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 대표적인 또 한 사람은 바로 여기서 설교하는 저 자신일 것입니다.
욥은 아마 자기를 아주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욥이 말을 잘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말을 많이 했습니다. 자기가 의롭고 순전한 사람이라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욥은 자기를 의롭고 순전한 자라고 말하고 또 말했습니다.
욥이 고난과 인내를 통해서 얻은 귀중한 결말 중의 하나는 자기 자신이 미천하고 무지한 죄인임을 보다 정확하게 알게 된 것이었습니다.
욥이 인내하면서 얻은 결말은 물론 물질적 축복과 자녀 손들의 축복과 장수의 축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고난을 잘 견디고 인내하므로 물질적 축복과 자녀 손들의 축복과 장수의 축복을 받게 되기를 소원하며 축원합니다.
그런데 욥이 얻은 결말이 그것만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보다 더 값진 결말을 주님께서 욥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보다 깊이 알게 된 것과 하나님을 보다 깊이 알게 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욥16:19-21 지금 나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나의 중보자가 높은 데 계시니라 나의 친구는 나를 조롱하고 내 눈은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니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와 인자와 그 이웃 사이에 중재하시기를 원하노니
욥이 고난과 인내를 통해서 새롭게 발견한 하나님은 자기를 변호해 주시는 구속주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래서 욥은 구속주 하나님을 향해서 달려가게 되었습니다.
욥이 극심한 고통 중에서 발견하고 향해서 달려간 하나님은 자기를 변호하시고 변백하실 보증인이 되시는 구속주 하나님이셨습니다.
욥19:26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욥이 극심한 고통 중에서 사모하며 바라본 하나님은 사실은 후일에 죽음에서 부활하실 구속주 되시는 예수님이셨습니다.
욥은 극심한 고통 중에서 죽음에서 부활하실 구속주 예수님을 초급한 마음으로 사모하면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욥은 구속주 예수님을 알게 된 다음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통치하시고 섭리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보다 깊이 알게 되었고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볼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너무 무지합니다. 우리는 너무 미천합니다. 우리는 너무 교만합니다. 우리는 너무 잘난 척 합니다. 우리는 너무 말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환난을 통해서 자기의 무지함과 미천함을 보게 하셨고, 인생의 허무함을 보게 하셨고, 그리고 하나님만이 욥의 구속주이심을 깨닫게 하셨고 하나님만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통치하시고 섭리하심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며 평화롭게 살았던 삶을 무참히 파괴해버린 재난 앞에서, 부당한 운명에 시달린 무기력한 희생자로 끝나지 않고, 고결한 신앙으로 하나님을 향해 자신의 순전함을 지켰던 욥은 진정 우리의 본이 되기에 충분한 신앙 인격을 지닌 또 한 명의 영웅임을 확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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