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성도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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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1651회 작성일 2009-05-27 09:41본문
잠 언 25 : 13
주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성도가 되자
요즈음과 같은 무더운 날씨에는 시원한 냉수가 참으로 그리워지는 계절입니다.
우리의 가슴속이 더위로 인하여 심한 갈증을 느끼고 열기로 타는 듯함을 느끼기에 충분합니다.
이러한 가운데 시원한 얼음 냉수 한 잔을 마실 때의 그 시원함이란 이루 말로 형용키 어렵습니다.
오늘 우리 하나님도 누가 복음 전파에 열심을 낼까? 하시고 그 복음에 충실한 자를 갈망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까지 희생하시면서 우리 죄인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주셨는데 얼마나 이 복음 전파에 대하여 큰 관심을 가지고
계시겠습니까?그런데 이 복음에 대하여 그 누구하나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으니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이 그 속에서 불붙은 심정이겠습니까?
누가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충성된 사자 곧 복음에 열심을 내는 자가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자입니다.
그 사람은 마치 추수 때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 고 했습니다.
이같이 무더운 날에 우리 모두가 시원함을 찾아 나서듯이 주님의 마음도 시원케 해드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은 주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도 시원함을 주는 사람이 됩니다.
또 더 놀라운 일은 주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시원함을 줄 뿐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도 시원함의 축복이 따르게 됩니다.
왜 내 마음에 시원함이 없느냐? 다른 이에게 시원함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요왜 다른 이에게 항상 답답함을 주는 사람인가?
그 이유 또한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복음의 일군으로 충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 내게 주어진 복음 사명에 충성을 다 하는 자입니다.
충성된 사자는 본질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기쁨의 좋은 소식 곧 복음을 그 백성에게 충실히 전하는 자입니다.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내신 이에게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여기 그를 보낸 이라고 하는 말은 사자에게 심부름을 보내는 주인을 가리키고 있는 말입니다.
본문 잠언은 솔로몬 왕인 자신을 뜻합니다. 왕이신 솔로몬에게는 수많은 경우에 사자들이 있었습니다.
국내외를 위시하여 여러 분야에서 왕의 어명을 전달하고 수행하는 사자들
이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경우에 여기 주인은 가정의 경우 자녀에게 있어서는 부모입니다.
나라에는 통치자입니다. 오늘의 세계 통치자들은 참으로 복합적인 정치 구조 속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다변화 되어가고 다양화되어 가는 세계 정치 추세의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하여, 많은 분야에, 많은 전문성을
띤 사자들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인 경우 뿐 아니라, 스포츠 외교, 환경 외교, 국제
여러 민간 사절 외교등 여러 경우의 사자들이 활동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경이 말하는 본질적이요, 근원적인 주인은 바로 인류를 세상
에 보내신 하나님 자신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하나님 자신은 인류의 주이십니다. 세계 역사의 주이십니다.
그는, 창조주이십니다. 존재의 근원이신 주이십니다. 통치와 섭리의 주이십니다.
구속 주이십니다. 죄인을 영원한 형벌 중에서 구원하신 주가 되십니다. 할
렐루야! 축복의 주가 되십니다. 그는 만복의 근
원이 되십니다. 그는 행복의 근원이십니다. 영
생의 주이십니다. 죽어도 다시 사는 부활 생명의 주이십니다. 그러므로 충성된 사자는 바른 주인 의식이 선결 조건이 됩니다.
내가 어떤 주인의 심부름꾼인가 따라서 사자의 존재 의의나, 가치나 목적이 결정지어 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바른 주인 의식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충성된 사자가 될 수 있음은 나를 보낸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바로 아는 자입니다.
충성되지 못함은 나를 보내신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충성된 사자는 복음에 대한 사명의식을 가진 자입니다.내가 전하지 아니하면 저 영혼이 구원을 받지 못하여 멸망에 이를 것이라
는 안타까움이 가득 찬 자입니다.바울 사도와 같이 내가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임 할 것이라는 사명감
에 충실했습니다. 본문의 중대한 교훈은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주인의 일에 충실하여 주인
의 마음을 기쁘시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예컨대, 아브라함의 늙은 종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아내, 곧 아브라함의 자부를 구하여 오라고 보냄을 받았습니다.
그때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식음을 전폐하는 마음으로, 오직 그가 맡은 소임의 성취를 위하여 신앙의 충성을 다하였습니
다.
그 결과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 이삭의 마음을 시원케 해 드렸습니다.
(창 24: ). 모세에게 보냄을 받은 열 두 정탐꾼 중 두 정탐꾼 갈렙과 여호
수아는 실로 광야교회의 지도자 모세를 시원케 하여 주었으나 나머지 열 정
탐꾼은 마음을 답답하게 하였습니다.
가이사랴의 로마의 백부장 고넬료의 심부름을 하던 사자들은 충성되어 그 임무를 감당하여 마침내 베드로를 안내해 오므로 그 주인과 온 집안 식구들
을 시원하게 해 주었습니다. (행 10: ).
빌립보 교회의 보냄을 받고, 감옥살이를 하고 있던 빌립보 교회의 설립자 바울을 위로하였던 에바드로디도는 빌립보 교회와, 바울을 모두 시원케 해
주었던 충성된 사자였습니다(빌 4:18)
이와 같이 충성된 사자는 바른 사명 의식이 투철한 자입니다. 그를 보낸 주인을 알고 그 주인의 부탁을 성실히 성취시켜 주는 자입니다.
우리 가운데 구원을 받고 그 사명을 받은 자리에 있지만 우리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답답하게만 하고 있는 자가 아니라 우리 주인인 하나
님을 바로 알고 그의 일에 충성된 자가 되셔서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답답한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을 시원하게 하는 자입니다. 여러분은 다른 이에게 주로 답답한 자로 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답답한 사람에게 시원함을 주는 자입니까? 잠25:25 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 같으니라
좋은 기별은 good news 곧 복음입니다.우리는 이 기쁜 소식을 우리만 간직하지 말고, 나아가 답답한 자들에게 증
거하며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근대 올림픽의 꽃은 마라톤은 B. C. 490년, 마라톤 전쟁시 그 승리를 알린
그리스의 용사 페이딥피데스를 기념하는 경주입니다. 페이딥피데스를 42.195km를 단숨에 달려 아군이 이겼습니다 라는 말을 남
기고 마침내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 승리의 기쁜 소식을 전쟁에 지쳐 피곤
해 있는 많은 이들에게 전하기 위해 그는 생명을 바쳤던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이 기쁨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조금의 수고도 아끼고 있지 않습니까?많은 이들이 이 세상의 삶으로 인하여 얼마나 목말라 하고 지쳐 있는지 아십니까?
복음은 목마른 자에게 냉수와 같은 소식입니다.여기 목마른 사람이란, 히브리어의 네페쉬아예타로서, 직역하면, 지
친 영혼을 의미합니다. 이는 영적으로 목말라 곤비(困憊) 해진 영혼, 죽기 직전의 상태에 있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먹을 것 입을 것이 없어서 죽게 생긴 것이 아닙니다.저는 집집마다 지친 영혼들이 많이 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의식주 생활이라고 말들을 하고, 그리고 사람들이 속을 썩인다고 할 것입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의식주와 세상에 그 무엇은 진실을 호도(好道)하는 위장을 하는데 불과하고 진정한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 없다 저거 없다하지 말고 돈 없다하면 되듯이 예수 그리스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복음의 기쁜 소식,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인생의 영혼을 새롭게 하는 생수요, 모든 답답함을 시원케 하는 생수입니다.
물은 더러운 것을 씻어내고, 온 몸을 새롭게 하며 활력이 넘치게 하는 것처
럼, 이 복음의 말씀도 온갖 불신 사상과 더러운 미신과 음란과 호색과 술 취함과 방탕과 번민과 의심을 씻어내고 추방하여 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영혼을 깨끗하게 하며, 시원하게 하며, 새롭게 하며, 활력이 넘치게 하는 것입니다.
하갈과 삼손은 목말라 죽어가며 부르짖어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창21:14-19, 삿15:18-19)
바울은 환상 중에 마게도냐 사람들이 도와 달라는 것을 보고 가서 많은 이들에게 복음으로 그들의 영혼을 살리는 일을 하였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서 여태까지 목말라하며 다섯 남편이 있어도 불만하고 살았던 삶이 그 마음속에서 생
수의 강이 터져 나왔습니다. 3. 자신의 마음까지도 시원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가장 가까운 사람들까지도 서로 서로가 마음이 통하지 아니하여 답답해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나 이 복음이 들어가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원수까지라도 화목하게 됩니다.
내 마음에 시원함을 얻지 못한 자는 내 주위에 그 만큼 원수가 많이 있습니다. 세상의 권력이 대단한 왕이 있었습니다.
무엇이든 좋다고 하는 것은 다 가질 수 있고 싫다고 하면 다 물리 칠 수 있는 왕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에게 병마가 찾아왔습니다.
병한테는 어쩔 수가 없어 자리에 눕게 되고 말았습니다. 용하다는 한 의사가 처방을 말했습니다.
가장 행복한 사람을 찾아내어 그 사람의 속옷을 얻어다 입으면 쾌차할 것입니다.
왕자와 신하들은 방방곡곡으로 행복한 사람을 찾아 나섰으나 그러나 행복한 사람은 좀 체로 찾아지지가 않았습니다. 사람이 이라고 하면은 누구에게
나 불만은 한가지씩 꼭꼭 있게 마련입니다.그런데 왕자가 외딴 두메에 있는 오두막을 지나가다 안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가 있어 발을 멈추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일거리가 넉넉하고 배부르니 더 바랄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하고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왕자는 귀가 번
쩍 띄었습니다.바로 이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구나 하고 왕자는 불문곡절 하고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당신의 소원을 다 들어드릴 터이니 속옷을 벗어주시오. 그러나 농부는 고개를 저으면서 말을 했습니다.
저는 지금에서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속옷도 입지 않았으니 당신의 원을 들어드릴 수도 없습니다.
속옷을 입어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편해야 행복해 지는 것입니다.왜 여러분들의 마음에 답답함을 가지고 살아가십니까?
다른 이에게 시원함을 주지 못하고 답답함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요?더 나아가서 예수님의 마음을 시원케하는 마음에 드는 복음의 일에 머뭇거
리고 있고 아니 전혀 생각이 없음에 있지 않습니까?
주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성도가 되자
요즈음과 같은 무더운 날씨에는 시원한 냉수가 참으로 그리워지는 계절입니다.
우리의 가슴속이 더위로 인하여 심한 갈증을 느끼고 열기로 타는 듯함을 느끼기에 충분합니다.
이러한 가운데 시원한 얼음 냉수 한 잔을 마실 때의 그 시원함이란 이루 말로 형용키 어렵습니다.
오늘 우리 하나님도 누가 복음 전파에 열심을 낼까? 하시고 그 복음에 충실한 자를 갈망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까지 희생하시면서 우리 죄인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주셨는데 얼마나 이 복음 전파에 대하여 큰 관심을 가지고
계시겠습니까?그런데 이 복음에 대하여 그 누구하나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으니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이 그 속에서 불붙은 심정이겠습니까?
누가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충성된 사자 곧 복음에 열심을 내는 자가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자입니다.
그 사람은 마치 추수 때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 고 했습니다.
이같이 무더운 날에 우리 모두가 시원함을 찾아 나서듯이 주님의 마음도 시원케 해드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은 주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도 시원함을 주는 사람이 됩니다.
또 더 놀라운 일은 주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시원함을 줄 뿐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도 시원함의 축복이 따르게 됩니다.
왜 내 마음에 시원함이 없느냐? 다른 이에게 시원함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요왜 다른 이에게 항상 답답함을 주는 사람인가?
그 이유 또한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복음의 일군으로 충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 내게 주어진 복음 사명에 충성을 다 하는 자입니다.
충성된 사자는 본질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기쁨의 좋은 소식 곧 복음을 그 백성에게 충실히 전하는 자입니다.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내신 이에게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여기 그를 보낸 이라고 하는 말은 사자에게 심부름을 보내는 주인을 가리키고 있는 말입니다.
본문 잠언은 솔로몬 왕인 자신을 뜻합니다. 왕이신 솔로몬에게는 수많은 경우에 사자들이 있었습니다.
국내외를 위시하여 여러 분야에서 왕의 어명을 전달하고 수행하는 사자들
이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경우에 여기 주인은 가정의 경우 자녀에게 있어서는 부모입니다.
나라에는 통치자입니다. 오늘의 세계 통치자들은 참으로 복합적인 정치 구조 속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다변화 되어가고 다양화되어 가는 세계 정치 추세의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하여, 많은 분야에, 많은 전문성을
띤 사자들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인 경우 뿐 아니라, 스포츠 외교, 환경 외교, 국제
여러 민간 사절 외교등 여러 경우의 사자들이 활동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경이 말하는 본질적이요, 근원적인 주인은 바로 인류를 세상
에 보내신 하나님 자신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하나님 자신은 인류의 주이십니다. 세계 역사의 주이십니다.
그는, 창조주이십니다. 존재의 근원이신 주이십니다. 통치와 섭리의 주이십니다.
구속 주이십니다. 죄인을 영원한 형벌 중에서 구원하신 주가 되십니다. 할
렐루야! 축복의 주가 되십니다. 그는 만복의 근
원이 되십니다. 그는 행복의 근원이십니다. 영
생의 주이십니다. 죽어도 다시 사는 부활 생명의 주이십니다. 그러므로 충성된 사자는 바른 주인 의식이 선결 조건이 됩니다.
내가 어떤 주인의 심부름꾼인가 따라서 사자의 존재 의의나, 가치나 목적이 결정지어 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바른 주인 의식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충성된 사자가 될 수 있음은 나를 보낸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바로 아는 자입니다.
충성되지 못함은 나를 보내신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충성된 사자는 복음에 대한 사명의식을 가진 자입니다.내가 전하지 아니하면 저 영혼이 구원을 받지 못하여 멸망에 이를 것이라
는 안타까움이 가득 찬 자입니다.바울 사도와 같이 내가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임 할 것이라는 사명감
에 충실했습니다. 본문의 중대한 교훈은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주인의 일에 충실하여 주인
의 마음을 기쁘시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예컨대, 아브라함의 늙은 종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아내, 곧 아브라함의 자부를 구하여 오라고 보냄을 받았습니다.
그때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식음을 전폐하는 마음으로, 오직 그가 맡은 소임의 성취를 위하여 신앙의 충성을 다하였습니
다.
그 결과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 이삭의 마음을 시원케 해 드렸습니다.
(창 24: ). 모세에게 보냄을 받은 열 두 정탐꾼 중 두 정탐꾼 갈렙과 여호
수아는 실로 광야교회의 지도자 모세를 시원케 하여 주었으나 나머지 열 정
탐꾼은 마음을 답답하게 하였습니다.
가이사랴의 로마의 백부장 고넬료의 심부름을 하던 사자들은 충성되어 그 임무를 감당하여 마침내 베드로를 안내해 오므로 그 주인과 온 집안 식구들
을 시원하게 해 주었습니다. (행 10: ).
빌립보 교회의 보냄을 받고, 감옥살이를 하고 있던 빌립보 교회의 설립자 바울을 위로하였던 에바드로디도는 빌립보 교회와, 바울을 모두 시원케 해
주었던 충성된 사자였습니다(빌 4:18)
이와 같이 충성된 사자는 바른 사명 의식이 투철한 자입니다. 그를 보낸 주인을 알고 그 주인의 부탁을 성실히 성취시켜 주는 자입니다.
우리 가운데 구원을 받고 그 사명을 받은 자리에 있지만 우리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답답하게만 하고 있는 자가 아니라 우리 주인인 하나
님을 바로 알고 그의 일에 충성된 자가 되셔서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답답한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을 시원하게 하는 자입니다. 여러분은 다른 이에게 주로 답답한 자로 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답답한 사람에게 시원함을 주는 자입니까? 잠25:25 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 같으니라
좋은 기별은 good news 곧 복음입니다.우리는 이 기쁜 소식을 우리만 간직하지 말고, 나아가 답답한 자들에게 증
거하며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근대 올림픽의 꽃은 마라톤은 B. C. 490년, 마라톤 전쟁시 그 승리를 알린
그리스의 용사 페이딥피데스를 기념하는 경주입니다. 페이딥피데스를 42.195km를 단숨에 달려 아군이 이겼습니다 라는 말을 남
기고 마침내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 승리의 기쁜 소식을 전쟁에 지쳐 피곤
해 있는 많은 이들에게 전하기 위해 그는 생명을 바쳤던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이 기쁨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조금의 수고도 아끼고 있지 않습니까?많은 이들이 이 세상의 삶으로 인하여 얼마나 목말라 하고 지쳐 있는지 아십니까?
복음은 목마른 자에게 냉수와 같은 소식입니다.여기 목마른 사람이란, 히브리어의 네페쉬아예타로서, 직역하면, 지
친 영혼을 의미합니다. 이는 영적으로 목말라 곤비(困憊) 해진 영혼, 죽기 직전의 상태에 있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먹을 것 입을 것이 없어서 죽게 생긴 것이 아닙니다.저는 집집마다 지친 영혼들이 많이 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의식주 생활이라고 말들을 하고, 그리고 사람들이 속을 썩인다고 할 것입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의식주와 세상에 그 무엇은 진실을 호도(好道)하는 위장을 하는데 불과하고 진정한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 없다 저거 없다하지 말고 돈 없다하면 되듯이 예수 그리스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복음의 기쁜 소식,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인생의 영혼을 새롭게 하는 생수요, 모든 답답함을 시원케 하는 생수입니다.
물은 더러운 것을 씻어내고, 온 몸을 새롭게 하며 활력이 넘치게 하는 것처
럼, 이 복음의 말씀도 온갖 불신 사상과 더러운 미신과 음란과 호색과 술 취함과 방탕과 번민과 의심을 씻어내고 추방하여 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영혼을 깨끗하게 하며, 시원하게 하며, 새롭게 하며, 활력이 넘치게 하는 것입니다.
하갈과 삼손은 목말라 죽어가며 부르짖어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창21:14-19, 삿15:18-19)
바울은 환상 중에 마게도냐 사람들이 도와 달라는 것을 보고 가서 많은 이들에게 복음으로 그들의 영혼을 살리는 일을 하였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서 여태까지 목말라하며 다섯 남편이 있어도 불만하고 살았던 삶이 그 마음속에서 생
수의 강이 터져 나왔습니다. 3. 자신의 마음까지도 시원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가장 가까운 사람들까지도 서로 서로가 마음이 통하지 아니하여 답답해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나 이 복음이 들어가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원수까지라도 화목하게 됩니다.
내 마음에 시원함을 얻지 못한 자는 내 주위에 그 만큼 원수가 많이 있습니다. 세상의 권력이 대단한 왕이 있었습니다.
무엇이든 좋다고 하는 것은 다 가질 수 있고 싫다고 하면 다 물리 칠 수 있는 왕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에게 병마가 찾아왔습니다.
병한테는 어쩔 수가 없어 자리에 눕게 되고 말았습니다. 용하다는 한 의사가 처방을 말했습니다.
가장 행복한 사람을 찾아내어 그 사람의 속옷을 얻어다 입으면 쾌차할 것입니다.
왕자와 신하들은 방방곡곡으로 행복한 사람을 찾아 나섰으나 그러나 행복한 사람은 좀 체로 찾아지지가 않았습니다. 사람이 이라고 하면은 누구에게
나 불만은 한가지씩 꼭꼭 있게 마련입니다.그런데 왕자가 외딴 두메에 있는 오두막을 지나가다 안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가 있어 발을 멈추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일거리가 넉넉하고 배부르니 더 바랄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하고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왕자는 귀가 번
쩍 띄었습니다.바로 이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구나 하고 왕자는 불문곡절 하고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당신의 소원을 다 들어드릴 터이니 속옷을 벗어주시오. 그러나 농부는 고개를 저으면서 말을 했습니다.
저는 지금에서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속옷도 입지 않았으니 당신의 원을 들어드릴 수도 없습니다.
속옷을 입어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편해야 행복해 지는 것입니다.왜 여러분들의 마음에 답답함을 가지고 살아가십니까?
다른 이에게 시원함을 주지 못하고 답답함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요?더 나아가서 예수님의 마음을 시원케하는 마음에 드는 복음의 일에 머뭇거
리고 있고 아니 전혀 생각이 없음에 있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