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주의 교회에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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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573회 작성일 2009-05-27 09:41본문
고린도전서 12:12-27 당신은 주의 교회에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올 한해가 시작된 지 벌써 한 달이라는 세월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제 이 한 해도 많이 남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또 휙하고 눈 깜짝하는 사이에 지나 갈 것이 뻔한 사실입니다.
벌써 그냥 또 보내지 하며 하나님을 향하여 아주 게으르고 나태한 신앙의 모습들이 보여지기 시작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대단히 죄송하지만 이런 자세를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께 무엇을 얻기를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인가? 가 잘되기를 바라는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졌지만은 역시나로 끝나고 말 것입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이 이 한 해 만큼은 또 여느 해와 같이 그냥 보내지 않기를 기도해 왔습니다.
한 사람도 이 축복의 대열에서 낙오되는 자가 없기를 진심으로 원하며 힘쓰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하여 교회는 송구영신 예배 시부터 새해 한 달 동안에 복 받을 지침을 설교하였습니다.
그 주제가 무엇입니까?
교회 표어도 아직 모르고 있는 분들이 계십니다.
성령으로 새힘받아 복음위해 일어서자입니다.
올해는 우리 성도 모두가 아니 내가 복음의 일군으로 되셔야 합니다.
그래야만 내가 축복을 받고 사는 한 해가 되고 한 해를 이렇게 보내고 나면 여러분들에게는 놀라운 기적 같은 축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 첫째가 무엇입니까?
내 자신에게 먼저 체질 개선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성령의 사람으로 체질 개선이 있어야 합니다.
이 말씀에 동의를 하시고 여러분 자신들의 영적인 기갈을 느끼십니까?
이제 내가 더 이상 육적으로 살아서는 안되 하는 마음이 내 마음 중심에 실감이 되셔야 합니다.
내 힘으로 능으로 할 수 없어 오직 여호와의 신으로만 할 수 있어 하는 마음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육적으로만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황폐케 된 내 심령을 보아야 합니다.
빈들에 마른풀같이 시들은 나의 영혼 주님의 허락한 성령 간절히 기다리네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시듯 성령의 단비를 부어 새 생명 주옵소서
이같이 성령의 은혜를 갈급하는 심령에게는 반드시 성령의 충만함을 내리어 주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지금까지 굳어온 체질을 개선한다는 것은 결코 싶지 않을 것입니다.
술 하나 끊고 담배하나 끊기도 얼마나 힘이 드는데
손을 벌벌 떨면서도 술을 마시고 기침을 콜록콜록 하면서도 담배를 피웁니다.
노름 도박쟁이가 쪽박을 차고 아내와 자식들이 죽겠다고 해도 그것을 끊지를 못합니다.
육식 체질이 채식 체질로 바뀌고 산성 체질이 알칼리성 체질을 바뀌는데는 조금씩 조금씩 오랜 시간을 거쳐서 변화가 되어집니다.
그렇듯이 혈과 육의 체질에 강성반응을 보이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성령의 체질로 바뀌는 데에는 결코 쉽지를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변 할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할 수가 있습니까?
말씀과 기도로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할렐루야!
그러기 위하여는 올해는 교회 예배시간마다 참석하여 말씀을 듣고 기도를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예배시간마다 올라오십시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에 인도함을 받고 기도하십시오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일어 날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체질은 서서히 육적인데서 영적으로 바꿔질 것입니다.
그 둘째가 무엇입니까?
예배드릴 때마다 솔로몬이 드리는 천번의 제사정신으로 드려야합니다.
마음의 정성이 없는 예배는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는다고 합니다.
마음이 없는 예배는 하나님이 먼저 아십니다.
예수님은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을 가장 싫어하셨지만은 마음을 내어놓은 사기꾼 세리는 축복하셨습니다.
지닌 철야기도 시간에 여러분들을 통성기도를 시켜 놓고 제가 앞에서 기도를 드리는데 제 입에서 어떤 성도를 향하여 축복이 나아가는데 그 내용은 화가 변화여 복이 되고 좌절되는 것 같지만은 더 유익 되게 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할렐루야!
왜 그 사람에게는 이 철야시간에 축복이 되었을까요?
무슨 인간적인 선한 행위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마음이었습니다.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우리 사람에게 있어서는 물질이 생명만큼 귀한 존재가 되어있지 않습니까?
300데라리온이나 되는 향유를 예수님의 장사를 위해 소비한 이 여인을 주님은 결코 있지 말라고 하시면 예수님께 예배를 드릴 때마다 이 여인이 행한 일을 기념하라고 하였습니다.
입술로만이 아니라 그 마음의 표가 300데라리온이나 되는 물질을 드리는 예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배에는 물질이 결코 무시되지 않았습니다.
결코 하나님께 마음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그 귀중한 물질을 드릴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 향한 마음을 가진 자는 그의 물질도 하나님께 함께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난 한 해 동안 하나님께 받은 은혜는 얼마큼 되며 하나님께 드려진 것은 얼마나 됩니까?
어떤이는 너무나도 귀한 예물로 보여지지만 어떤이는 참으로 부끄러운 모습이 있습니다.
그것은 모두가 그의 믿음의 증거가 되고 있었습니다.
물질과 함께 드려지는 천번의 제사는 그 예배 시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축복의 예배가 될 것입니다.
그 셋째가 무엇입니까?
나의 상식을 초월한 순종이 요구가 된다고 했습니다.
나의 상식에 수긍이 가는 순종은 더 이상 믿음이 아닙니다.
그러니 전혀 진전과 발전이 없는 믿음의 자리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순종이 없으니 믿음이 자라지 않고 삶의 역사가 없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아브라함과 같이 갈 바를 알지 못했지만은 말씀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상식으로는 더 이상 나아 갈 수 없는 길이었지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는 아브라함이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모세가 홍해를 앞두고 길이 없어 고민하며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를 할 때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기도만 하지 말고 이 백성을 바다 길로 몰아넣으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상식이 통하는 응답을 요구했고 하나님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 믿음의 순종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모세가 모세다울 수 있음은 인간의 상식을 초월한 순종으로 그의 믿음을 들어내었을 때에 홍해가 길을 내고 말았습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길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예비된 길이 있습니다.
다만 나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순종이 없을 뿐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은 내 앞에 나아가는 길로 언제든지 제시되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올 항해를 어떻게 하면 축복의 한 해로 출발이 되겠습니까?
이제 마지막으로 나의 존재를 재확인하는 가운데 출발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글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참으로 유명한 글을 남겼습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더 멋있는 말을 하였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위한 일이라면 나를 위한 일들을 기꺼이 배설물과 같이 버리노라고 하였습니다.
더욱 더 멋있는 말이 있습니다.
사나 죽으나 다 그리스도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자신을 위한 그리스도의 신앙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한 자신의 존재를 말하였습니다. 할렐루야!
이와 같은 삶이 바울의 존재의 의미요 또한 그의 보람이요 생명이요 축복이었습니다.
왜? 우리 가운데 삶의 의미를 상실하고 삶이 허무해 지고 날마다 죽을 맛이요 그리고 비참해 지고 있습니까?
우리의 삶이 솔직히 그렇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모든 삶의 영역이 나를 위하여만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우리가 가진 신앙까지도 나를 위한 믿음으로만 여기기 때문입니다.
어떤 성도에게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 성도는 참으로 영 육간에 어려움에 놓여있습니다.
삶의 짐으로 인하여 피곤하고 지칠 지경입니다.
참으로 많은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아마 그의 기도의 제목도 응당히 하나님께 그의 필요에 대한 부족을 구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성도의 필요를 채워주시지 않으시고 자신의 소욕의 충족을 위한 그 방편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먼저 하라고 일러 주셨습니다.
마치 사르밧 과부에게 떡을 요구하시는 엘리야와 같은 모습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같이 하나님이 몰인정하시기 때문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이 순간까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살아온 결과가 오히려 자신을 망쳐 놓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이라도 이 모습, 이 형편에서 벗어나려면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일에 내 모습이대로 사용되어짐으로 그 순간부터 그 성도는 살아나는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르밧 과부는 자신만을 위하였다면 그 흉년에 그 가족은 굶어 죽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떡이 엘리야에게 대접이 되었을 때에 그 집의 양식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할렐루야!
이제 여러분의 생각과 사고를 바꾸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밥을 빌어먹기 위해 일을 하는 처량한 인생으로 스스로를 전략시키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처한 그 형편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내게 주어진 일을 한다는 정신을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세계적 설교가인 매킨토시(H.R Mackintosh)박사가 스코틀랜드에서 목회할 때 친구가 방문을 했습니다.
그날 예배 때 한 장로가 기도를 인도했는데 이 저명한 학자가 그 기도에 큰 감동을 받아 매킨토시 목사에게 오늘 기도한 장로가 어떤 사람인가? 라고 물었습니다.
그 장로의 직업은 구두 수선공이네. 그 장로는 날마다 냄새나는 남의 구두를 수선할 때마다 예수님의 신발이라고 생각하며 일한다고 하네.
이 말을 듣고 학자 친구는 왜 그 장로의 기도가 남에게 감동을 주는지를 깨달았습니다.
그 장로는 구두를 수선하는 것이 평생의 일이었으나 구두 한 켤레 한 켤레를 대할 때마다 이 냄새나는 구두 바 빌어먹기 위해 할 수없어 하는 마음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맡겨주신 부르심으로 알고 성심껏으로 기쁨으로 일을 했던 것입니다.
오늘 왜 여러분들이 복되지 못하십니까?
여러분들이 하시는 일이 훌륭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돈을 많이 벌어드리는 직업이 아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아니면 남의 인정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결코 이런 것들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마음에서가 아니라 자신만을 위하여서 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지 하나님을 위한 다는 마음으로 하십시오
곧 이러한 마음들이 모여서 하나님의 나라는 든든히 세워져 갈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주의 교회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건설을 위하여서 없어서는 안될 한 지체로 부름을 받았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한사람 한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와 주의 교회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꼭 필요한 인물들입니다.
우리는 오늘 지난 일년을 살펴보십시다.
주의 교회에 있으나 마나한 그런 교인으로 남아 있었습니까?
그러한 생활이 여러분의 삶을 얼마나 복되게 해 주었습니까?
마음의 풍요로움을 잃어 버렸고 삶의 풍성함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자타가 공인하는 주의 제단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인물로 자리를 잡았습니까?
그 일이 어떤 일이든지 괜찮습니다.
주를 위한 일이 라면 말입니다.
고라 자손의 말과 같이 주의 집에 문지기로 있는 것도 악인의 궁전의 생활보다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이제 올 한해는 김목사 볼 때에 아니 우리 주님이 보실 때에 너는 주의 교회에 없어서는 안될 인물이야 하는 인정을 받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 우리 모두가 그렇게 되어야 할 자 뿐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을 통하여 주의 교회가 든든히 세워져 갈 때에 올 한해는 여러분의 인격과 삶은 더욱 존귀해지는 축복의 한 해가 반드시 될 줄을 믿습니다.
올 한해가 시작된 지 벌써 한 달이라는 세월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제 이 한 해도 많이 남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또 휙하고 눈 깜짝하는 사이에 지나 갈 것이 뻔한 사실입니다.
벌써 그냥 또 보내지 하며 하나님을 향하여 아주 게으르고 나태한 신앙의 모습들이 보여지기 시작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대단히 죄송하지만 이런 자세를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께 무엇을 얻기를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인가? 가 잘되기를 바라는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졌지만은 역시나로 끝나고 말 것입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이 이 한 해 만큼은 또 여느 해와 같이 그냥 보내지 않기를 기도해 왔습니다.
한 사람도 이 축복의 대열에서 낙오되는 자가 없기를 진심으로 원하며 힘쓰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하여 교회는 송구영신 예배 시부터 새해 한 달 동안에 복 받을 지침을 설교하였습니다.
그 주제가 무엇입니까?
교회 표어도 아직 모르고 있는 분들이 계십니다.
성령으로 새힘받아 복음위해 일어서자입니다.
올해는 우리 성도 모두가 아니 내가 복음의 일군으로 되셔야 합니다.
그래야만 내가 축복을 받고 사는 한 해가 되고 한 해를 이렇게 보내고 나면 여러분들에게는 놀라운 기적 같은 축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 첫째가 무엇입니까?
내 자신에게 먼저 체질 개선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성령의 사람으로 체질 개선이 있어야 합니다.
이 말씀에 동의를 하시고 여러분 자신들의 영적인 기갈을 느끼십니까?
이제 내가 더 이상 육적으로 살아서는 안되 하는 마음이 내 마음 중심에 실감이 되셔야 합니다.
내 힘으로 능으로 할 수 없어 오직 여호와의 신으로만 할 수 있어 하는 마음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육적으로만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황폐케 된 내 심령을 보아야 합니다.
빈들에 마른풀같이 시들은 나의 영혼 주님의 허락한 성령 간절히 기다리네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시듯 성령의 단비를 부어 새 생명 주옵소서
이같이 성령의 은혜를 갈급하는 심령에게는 반드시 성령의 충만함을 내리어 주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지금까지 굳어온 체질을 개선한다는 것은 결코 싶지 않을 것입니다.
술 하나 끊고 담배하나 끊기도 얼마나 힘이 드는데
손을 벌벌 떨면서도 술을 마시고 기침을 콜록콜록 하면서도 담배를 피웁니다.
노름 도박쟁이가 쪽박을 차고 아내와 자식들이 죽겠다고 해도 그것을 끊지를 못합니다.
육식 체질이 채식 체질로 바뀌고 산성 체질이 알칼리성 체질을 바뀌는데는 조금씩 조금씩 오랜 시간을 거쳐서 변화가 되어집니다.
그렇듯이 혈과 육의 체질에 강성반응을 보이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성령의 체질로 바뀌는 데에는 결코 쉽지를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변 할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할 수가 있습니까?
말씀과 기도로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할렐루야!
그러기 위하여는 올해는 교회 예배시간마다 참석하여 말씀을 듣고 기도를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예배시간마다 올라오십시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에 인도함을 받고 기도하십시오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일어 날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체질은 서서히 육적인데서 영적으로 바꿔질 것입니다.
그 둘째가 무엇입니까?
예배드릴 때마다 솔로몬이 드리는 천번의 제사정신으로 드려야합니다.
마음의 정성이 없는 예배는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는다고 합니다.
마음이 없는 예배는 하나님이 먼저 아십니다.
예수님은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을 가장 싫어하셨지만은 마음을 내어놓은 사기꾼 세리는 축복하셨습니다.
지닌 철야기도 시간에 여러분들을 통성기도를 시켜 놓고 제가 앞에서 기도를 드리는데 제 입에서 어떤 성도를 향하여 축복이 나아가는데 그 내용은 화가 변화여 복이 되고 좌절되는 것 같지만은 더 유익 되게 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할렐루야!
왜 그 사람에게는 이 철야시간에 축복이 되었을까요?
무슨 인간적인 선한 행위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마음이었습니다.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우리 사람에게 있어서는 물질이 생명만큼 귀한 존재가 되어있지 않습니까?
300데라리온이나 되는 향유를 예수님의 장사를 위해 소비한 이 여인을 주님은 결코 있지 말라고 하시면 예수님께 예배를 드릴 때마다 이 여인이 행한 일을 기념하라고 하였습니다.
입술로만이 아니라 그 마음의 표가 300데라리온이나 되는 물질을 드리는 예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배에는 물질이 결코 무시되지 않았습니다.
결코 하나님께 마음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그 귀중한 물질을 드릴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 향한 마음을 가진 자는 그의 물질도 하나님께 함께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난 한 해 동안 하나님께 받은 은혜는 얼마큼 되며 하나님께 드려진 것은 얼마나 됩니까?
어떤이는 너무나도 귀한 예물로 보여지지만 어떤이는 참으로 부끄러운 모습이 있습니다.
그것은 모두가 그의 믿음의 증거가 되고 있었습니다.
물질과 함께 드려지는 천번의 제사는 그 예배 시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축복의 예배가 될 것입니다.
그 셋째가 무엇입니까?
나의 상식을 초월한 순종이 요구가 된다고 했습니다.
나의 상식에 수긍이 가는 순종은 더 이상 믿음이 아닙니다.
그러니 전혀 진전과 발전이 없는 믿음의 자리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순종이 없으니 믿음이 자라지 않고 삶의 역사가 없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아브라함과 같이 갈 바를 알지 못했지만은 말씀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상식으로는 더 이상 나아 갈 수 없는 길이었지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는 아브라함이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모세가 홍해를 앞두고 길이 없어 고민하며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를 할 때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기도만 하지 말고 이 백성을 바다 길로 몰아넣으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상식이 통하는 응답을 요구했고 하나님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 믿음의 순종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모세가 모세다울 수 있음은 인간의 상식을 초월한 순종으로 그의 믿음을 들어내었을 때에 홍해가 길을 내고 말았습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길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예비된 길이 있습니다.
다만 나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순종이 없을 뿐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은 내 앞에 나아가는 길로 언제든지 제시되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올 항해를 어떻게 하면 축복의 한 해로 출발이 되겠습니까?
이제 마지막으로 나의 존재를 재확인하는 가운데 출발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글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참으로 유명한 글을 남겼습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더 멋있는 말을 하였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위한 일이라면 나를 위한 일들을 기꺼이 배설물과 같이 버리노라고 하였습니다.
더욱 더 멋있는 말이 있습니다.
사나 죽으나 다 그리스도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자신을 위한 그리스도의 신앙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한 자신의 존재를 말하였습니다. 할렐루야!
이와 같은 삶이 바울의 존재의 의미요 또한 그의 보람이요 생명이요 축복이었습니다.
왜? 우리 가운데 삶의 의미를 상실하고 삶이 허무해 지고 날마다 죽을 맛이요 그리고 비참해 지고 있습니까?
우리의 삶이 솔직히 그렇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모든 삶의 영역이 나를 위하여만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우리가 가진 신앙까지도 나를 위한 믿음으로만 여기기 때문입니다.
어떤 성도에게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 성도는 참으로 영 육간에 어려움에 놓여있습니다.
삶의 짐으로 인하여 피곤하고 지칠 지경입니다.
참으로 많은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아마 그의 기도의 제목도 응당히 하나님께 그의 필요에 대한 부족을 구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성도의 필요를 채워주시지 않으시고 자신의 소욕의 충족을 위한 그 방편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먼저 하라고 일러 주셨습니다.
마치 사르밧 과부에게 떡을 요구하시는 엘리야와 같은 모습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같이 하나님이 몰인정하시기 때문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이 순간까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살아온 결과가 오히려 자신을 망쳐 놓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이라도 이 모습, 이 형편에서 벗어나려면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일에 내 모습이대로 사용되어짐으로 그 순간부터 그 성도는 살아나는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르밧 과부는 자신만을 위하였다면 그 흉년에 그 가족은 굶어 죽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떡이 엘리야에게 대접이 되었을 때에 그 집의 양식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할렐루야!
이제 여러분의 생각과 사고를 바꾸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밥을 빌어먹기 위해 일을 하는 처량한 인생으로 스스로를 전략시키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처한 그 형편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내게 주어진 일을 한다는 정신을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세계적 설교가인 매킨토시(H.R Mackintosh)박사가 스코틀랜드에서 목회할 때 친구가 방문을 했습니다.
그날 예배 때 한 장로가 기도를 인도했는데 이 저명한 학자가 그 기도에 큰 감동을 받아 매킨토시 목사에게 오늘 기도한 장로가 어떤 사람인가? 라고 물었습니다.
그 장로의 직업은 구두 수선공이네. 그 장로는 날마다 냄새나는 남의 구두를 수선할 때마다 예수님의 신발이라고 생각하며 일한다고 하네.
이 말을 듣고 학자 친구는 왜 그 장로의 기도가 남에게 감동을 주는지를 깨달았습니다.
그 장로는 구두를 수선하는 것이 평생의 일이었으나 구두 한 켤레 한 켤레를 대할 때마다 이 냄새나는 구두 바 빌어먹기 위해 할 수없어 하는 마음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맡겨주신 부르심으로 알고 성심껏으로 기쁨으로 일을 했던 것입니다.
오늘 왜 여러분들이 복되지 못하십니까?
여러분들이 하시는 일이 훌륭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돈을 많이 벌어드리는 직업이 아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아니면 남의 인정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결코 이런 것들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마음에서가 아니라 자신만을 위하여서 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지 하나님을 위한 다는 마음으로 하십시오
곧 이러한 마음들이 모여서 하나님의 나라는 든든히 세워져 갈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주의 교회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건설을 위하여서 없어서는 안될 한 지체로 부름을 받았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한사람 한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와 주의 교회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꼭 필요한 인물들입니다.
우리는 오늘 지난 일년을 살펴보십시다.
주의 교회에 있으나 마나한 그런 교인으로 남아 있었습니까?
그러한 생활이 여러분의 삶을 얼마나 복되게 해 주었습니까?
마음의 풍요로움을 잃어 버렸고 삶의 풍성함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자타가 공인하는 주의 제단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인물로 자리를 잡았습니까?
그 일이 어떤 일이든지 괜찮습니다.
주를 위한 일이 라면 말입니다.
고라 자손의 말과 같이 주의 집에 문지기로 있는 것도 악인의 궁전의 생활보다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이제 올 한해는 김목사 볼 때에 아니 우리 주님이 보실 때에 너는 주의 교회에 없어서는 안될 인물이야 하는 인정을 받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 우리 모두가 그렇게 되어야 할 자 뿐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을 통하여 주의 교회가 든든히 세워져 갈 때에 올 한해는 여러분의 인격과 삶은 더욱 존귀해지는 축복의 한 해가 반드시 될 줄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