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만나 최고의 삶을 산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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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590회 작성일 2010-12-26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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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2:36-39 예수님을 만나 최고의 삶을 산 여인
유대인 랍비 시드니 그린버그는 정신적인 청년과 정신적인 노인의 차이를 이렇게 구별했습니다.
믿음을 가진 자면 청년이요 의심으로만 산다면 노인이다.
주고자 한다면 청년이다 그러나 받기만을 기대한다면 노인이다.
즐길 줄 안다면 청년이다. 그러나 인생이 뜻대로 안된다고 해서 꿈을 포기한다면 노인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고 있다면 청년이다. 그러나 예로부터 존재한 편견에만 사로잡혀 있다면 노인이다.
아직도 성공을 위하여 일하고 있다면 청년이다. 그러나 공상만 일삼고 있다면 노인이다.
매력적인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면 청년이다. 그러나 더 이상 아름다움에 관심이 없다면 노인이다.
아직도 사랑을 찾고 있다면 청년이다. 그러나 고독을 떠나지 못한다면 노인이다.
아직도 행복을 추구한다면 청년이다. 그러나 대가를 지불하려 하지 않고 행복만을 찾는다면 노인이다.
사랑을 주고받을 줄 안다면 청년이다. 그러나 사랑을 받기만을 기대한다면 노인이다.
모든 것은 나의 성실성에 달려 있다고 믿고 아직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면 청년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면 노인이다.
나이가 젊어도 노인이 되어 아무런 일을 못하는 사람이 있고 비록 나이가 많아도 청년이 되어 오늘도 열심히 새 일을 창출하는 자도 있습니다.
본문에 나이 106세 되었지만 노인이 아닌 청년으로 살아간 한 여인이 있습니다.
그녀는 결혼을 해서 남편과 함께 살다가 결혼한 지 7년 만에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후에 그녀는 재혼하지 않고 여생을 독신으로 지냈습니다.
몬테피오레는 안나가 15세에 결혼했을 것으로 보고 이때에 그녀의 나이를 106세로 추정했습니다.
그녀는 22세에 홀로 되어 그녀는 남편에게 두었던 소망을 접고 남은여생을 오직 구세주를 기다리며 성전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84년의 세월을 보내 나이 106세의 노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를 가리켜 나이만 들은 노인으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녀 스스로가 노인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위한 사역자이었습니다.
긴 세월의 인생을 홀로 보내었다고 생각을 하면 상당히 불쌍하게 느껴지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 문제에 고민을 하였다면 왜 나를 결혼한 지 7년 만에 남편 죽고 내 청춘을 잃어버리고 늙은이가 되게 한 그 무엇이냐? 하고 원망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남들은 불쌍히 여기고 자신은 분함에 가득한 자라면 틀림없이 그녀는 초라한 노인 정도가 아니라 노파(老婆)라 참으로 몰골이 볼품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나간 세월을 한 할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의 여인은 더 이상 몰골이 볼품이 없는 노파가 아니라
마치 남편을 잃어 버렸던 그 때의 그 나이 22세에 머물러 있는 청춘이 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나이를 벌써 잊어버리고 그녀가 행할 일만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자를 기다리는 삶이었습니다.
노병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맥아더(Douglas MacArthur 1880∼1964) 장군이 평소에 애송하던 Samuel Ulman이 쓴 청춘이라는 시에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한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그것은 장미 빛 뺨, 앵두 같은 입술, 하늘거리는 자태가 아니라 강인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는 열정을 말한다.
청춘이란 인생의 깊은 샘물에서 오는 신선한 정신, 유약함을 물리치는 용기, 안일을 뿌리치는 모험심을 의미한다.
때로는 이십의 청년보다 육십이 된 사람에게 청춘이 있다.
나이를 먹는다고 하여 우리가 늙는 것이 아니다. 이상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는 것이다.
세월은 우리의 주름살을 늘게 하지만 열정을 가진 마음을 시들게 하지는 못한다.
사40:30-31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가나안 정복 시에 갈렙은 나이 85이었지만 모든 40대 미만의 젊은이들이 기피했던 헤브론 산지를 점령 할 때에 그 또한 유명한 말을 하였습니다.
수14:10-12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60, 70, 80, 아니 안나 나이 106세이지만 그녀는 노파가 아니라 22세에 머물러 있는 꿈도 있고 사랑도 있고 사명감도 있는 아니 지금 내게 주어진 일에 충실한 꿈이 있고 실현을 가져오는 여성이었습니다.
이제 한 해가 지나갑니다.
사람들은 또 이런 말을 할 것입니다.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이 한 해가 지나간다는 무미건조한 말을 합니다.
이런 말을 한 사람은 또 다시 새해가 주어져도 아무 한 일도 없다고 할 것이며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인생이 되어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는 회환과 허무를 남기는 후회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난 내 인생 최고의 삶을 살았다고 하는 자가 되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기 위하여 올 한해가 내 인생의 최고의 한 해이었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최고 삶이란 어떤 환경이 그렇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환경에 내가 어떤 자세로 살았는가? 입니다.
안나는 22세에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은 최악의 순간이었습니다.
남편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이제 남은 인생은 최악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환경이 그녀를 최악으로 만들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 남은 삶은 최고의 삶이 되었습니다.
성전을 떠나지 않은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36-37절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김동신작 기도하는 섬, 소록도에 이런 글이 쓰여 있습니다.
새벽 3시, 카메라 장비를 들고 부랴부랴 소록도 중앙교회로 향했다. 섬 전체가 부슬부슬 내리는 겨울비에 젖어 들고 있었다. 교회에 도착하자마자 뒤편에 자리를 잡았다. 잠시 후에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맨 앞줄에 앉아 계신 한 할아버지의 팔과 다리가 모두 없었기 때문이다. 바깥에 겨울비가 내리고 있어 스산하고 추운데, 게다가 새벽이라 깜깜하기까지 한데 어떻게 이곳까지 나오셨을까. 너무나 의아했다. 아마 누군가가 업어서 모셔 왔겠지. 나는 예배가 끝난 후 그분의 뒤를 따라가 봤다. 그분은 혼자서 예배당 문까지 천천히 기어가셨다. 그뿐 아니었다. 문턱을 넘어 빗물이 흥건한 차가운 시멘트 바닥을 배로 밀며 나아가고 계셨다. 나와 그분과의 거리가 한두 걸음 정도로 좁혀졌을 때 나는 더욱 놀랐다. 그분이 낮은 목소리로 찬송가를 부르고 계셨기 때문이다.
나는 다가가 물었다. 할아버지, 비가 오는데 교회에 오시는 게 힘들지 않으셨어요? 힘들긴요. 예배도 드리고 하나님을 만나서 매우 행복하지요. 할아버지는 웃으며 가던 길을 재촉하셨다.
집으로 돌아가는 그분의 모습, 그 와중에도 찬송을 부르고 계셨다. 지금 내가 환청을 듣고 있나? 저런 불편한 몸을 하고서 도대체 무엇이 감사하단 말이지?
소록도는 정말 특별한 세상이다. 성경에서 봤던 믿음의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곳이다.
제가 소록도를 두 번을 다녀왔는데 사실 가보면 그들이 얼마나 성전을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아픔을 잊어버리고 무엇인가 자신들이 주를 위하여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안나는 84년 동안 성전을 떠나지 않고 밤낮으로 금식하며 기도로 섬겼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에 그녀는 영적으로 매우 밝은 상태에 있었을 것입니다.
22세의 그 꽃다운 마음을 유지하고 있는 줄로 믿습니다.
믿음은 나를 얼마나 젊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그녀는 제사장이나 레위인처럼 말씀을 가르치지 않았고, 또 군인처럼 전쟁터에 나가서 싸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전심으로 금식하고 기도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그녀는 여호수아가 성막을 떠나지 않고 있었던 것처럼, 성전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이러한 기도 생활로 인해 그녀는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이스라엘을 인도하는 선지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날마다 성전을 떠나지 않고 무너져가는 이스라엘을 위해서 금식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녀가 성전을 떠나지 않은 것은 그녀가 일편단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금식과 기도의 섬김은 84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아마도 그녀는 로마에 짓밟힌 이스라엘과 헤롯의 폭정을 마음 아파하면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아를 보내달라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자신의 뜻대로 여러 가지 은사들을 주시고 그 은사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섬기게 하십니다.
이러한 은사들 중에서 기도의 등불을 끄지 않고 깨어 기도하는 영적인 파숫군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교회에 꼭 필요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영적인 파수꾼으로 성도들이 사단의 공격에 무너지지 않도록 깨어서 알리는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그녀를 부르시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소중한 일을 맡겨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들을 불러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귀중한 곳에 사용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하나님과 성전을 사랑하며 깨어 기도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으며, 영적으로 완전 무장하고 사단의 궤계를 무너뜨리는 일에 결정적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영적인 눈이 멀어서 메시아를 죽였지만, 연약하고 힘이 없는 한 여인은 영적으로 깨어서 메시아를 증거하는 증인의 역할을 했습니다.
이러한 일은 지금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는 영적인 전쟁에 패배하고 넘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연약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깨어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귀중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성전을 떠나지 않고 기도하는 자들이 얼마나 보배이고 든든한 일군인지 모릅니다.
오늘 새벽에도 몇 명의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안나가 최고의 삶이 될 수 있었음은 구원이 주께 있음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84년을 한결같이 고백하며 기다림은 이스라엘의 구속자를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기도와 금식을 하며......
2008년 9월 이산가족 면회를 신청한 자 중에 100세를 넘은 할머니 3명이 계셨습니다. 이 할머니들이 100살이 넘게 산 이유는 이북에 있는 자녀를 꼭 보고 죽고 싶다는 소망때문이었음이 밝혀졌습니다. 허 여년 할머니는 지금 106살인데 이북 남포에 살고 있는 아들을 보고 싶은 소망에 악착같이 살았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속초에 살고 있는 102살 이상옥 할머니는 이북에 살고 있는 외아들 김정우가 보고 싶어 꼭 보고 죽어야겠다는 소원이 그를 그렇게 오래 살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의정부에 살고 있는 서 동명 할머니는 100살인데 평양에 살고 있는 딸 현성애가 보고 싶어 그렇게 악을 쓰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안나는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고 금식하고 기도하며 100살 이상을 살았습니다.
안나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안나는 성령님을 통해서 약속된 메시아가 오실 때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오실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녀는 성전에서 시므온이 아기 예수님을 안고 축복하면서 약속된 구원이 이루어졌다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성령님의 감동으로 자기가 본 아기가 기다려왔던 메시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그 사실을 깨닫고 약속을 이루어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녀는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메시아를 직접 보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녀를 사랑해 주셨고 성령님과 동행하게 하셨으며, 마침내 살아서 메시아를 볼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녀는 아기 예수를 보고 감격하여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시40:1-2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시130:5-6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최고의 삶은 나누는 삶입니다. 예수님을 나누며 살았습니다.
그녀는 예루살렘의 구원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그 아기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여기에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기다리는 사람은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아를 고대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안나는 아기 예수님을 본 후에 감격해서 메시아를 고대하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자기가 목격한 일에 대해서 전해주었습니다.
당시에 시므온과 안나의 주변에는 메시아를 고대하던 경건한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이와 같이 입을 닫고 가만히 있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너무나 기뻐서 자기가 본 사실을 이웃에게 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행4:18-20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이 좋은 소식을 전하지 아니하는 자는 최악의 삶이 될 것입니다.
왕하7:9 나병환자들이 그 친구에게 서로 말하되 우리가 이렇게 해서는 아니되겠도다 오늘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거늘 우리가 침묵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알리자 하고
전하는 자는 최고의 축복입니다.
사52:7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후에 자기가 만난 예수님을 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안나는 100살이 넘은 노인이었지만 메시아를 만난 후에 기쁨으로 그 사실을 사람들에게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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