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에는 언제나 구원과 축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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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89회 작성일 2009-05-27 09:41본문
히브리서 11:7-12 믿음에는 언제나 구원과 축복이 있습니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과거의 사람들보다 풍부한 물질 문화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지런히 성실하게 일을 하면은 무엇을 하든지 간에 생활을 하기에는 큰 어려움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모든 사람들이 어려움이 없이 풍성하게 산다고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모두가 생활을 하기에 힘이 든다고 합니다.
요사이는 더욱 힘이 든다고 합니다.
제가 보기에도 모든 사람들이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바라보기에 참으로 안타깝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의 삶의 경험에도 그러한 것 같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면 살아 갈수록 세상사는 방법이 점점 쉬워져야 하는데 살아 갈수록 점점 더 어렵고 힘이 든다고 여겨집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한 우리 성도들은 또 어떠합니까?
제가 성도들을 잘 모를 때는 모르지 만은 조금씩 알아 가면 알아 갈수록 모두가 힘에 겨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왜 그렇습니까?
참으로 모든 사람들이 사랑하는 물질이 없기 때문입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돈 때문에 벌어지는 비극이 우리 주위에 엄청나게 많습니다.
이 돈이 사람들을 어떻게 몰아 부칠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돈이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고 풍요롭게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얼마 전에 아내가 처남에게 빌려준 돈 2천만원 때문에 부부가 말다툼을 하다가 아내를 살해 한일이 있습니다.
혈연의 관계보다 돈의 힘이 더 센 것입니다.
한국에서 취업하는 어떤 조선족 중국교포는 빌려간 돈 6만원을 갚지 않는다고 해서 동료를 살해 한 일도 있습니다.
이런 일은 얼마든지 많습니다.
참으로 돈의 힘이 대단하니 돈이 없어서 문제가 생기고 돈 때문에 살기 힘드는 세상이기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참으로 행복하게 사시려면은 물불을 가라지 않고 돈을 벌이시기를 바랍니다.
그 외에도 세상을 살아가는데 힘들게 하는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닐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나약한 인간이 극복을 해야 하는데 참으로 힘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하여 모두가 지쳐있고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고 슬픔에 가득차 있고 힘이 다 빠져 죽을상이 되어있습니다.
어떤 이는 제 정신이 아닙니다.
우울증에 걸려있고 어떤 이는 거의 미칠 것 같은 순간까지 온 자들도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도 예외인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만약에 자신이 세상에서 초월하여 그렇지 안타고 여기는 그 사람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고 신이든지 아니면 정신이 나간 사람이라고 하면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저 역시 사람이기 때문에 세상적인 일들로 인하여 얼마나 피곤해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일찍이 욥은 그의 글에서 우리 인생을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욥14:1-2 여인에게서 난 사람은 사는 날이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며 그 발생함이 꽃과 같아서 쇠하여지고 그림자같이 신속하여서 머물지 아니하거늘 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참 평안을 몰랐구나
이 세상에 곤고한 일이 많고 참 쉬는 날 없었구나
이 세상에 죄악된 일이 많고 참 죽을 일 쌓였구나
오늘 이 시간에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들의 삶의 무거운 짐을 들어주시려고 합니다. 할렐루야!
먼저 왜? 우리 사람들에게 이 모든 것들이 짐이 되어 다가오느냐? 는 것입니다.
그것은 간단합니다.
내 마음대로 내 방법대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나이 40이 되면 그 얼굴에 책임을 져라 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그 자신이 살아온 인생은 아무에게도 탓 할 수가 없고 자기 자신의 현재의 모습은 자신이 40년간 살아온 삶의 형태가 현재를 형성시킨 모습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어디에다가 불편이나 불만이나를 할 소지를 가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저 역시 제 자신을 바라보게 됩니다.
왜 내가 이것밖에 되지 않았을까? 답답해합니다.
우리 부모들이 능력이 없어서 라고 생각을 해 보기도 합니다
또 내 주위의 환경이나를 이렇게 밖에 만들지 못하여서 하고 불만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툭하면 주위의 사람을 나무라기도 하고 환경을 핑계 삼은 일은 고쳐지지 않고 있습니다.
눈이 오면 눈이 온다하고 비가 오면 비가 온다하고 말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렇지 않습니까?
잘 나면 내 탓이요 못나면 조상 탓 아닙니까?
그런데 조금 철이 들고 보니까요?
누구누구 탓이 아니라 제 탓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 탓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살아온 삶의 형태 모두가 내 욕심대로, 내 정욕대로, 내 마음대로,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모든 것의 표준이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알면은 얼마나 안다고, 내가 의로우면 얼마나 의롭다고, 이러한 잘난 나 때문에 나를 다 망쳐 놓았습니다. 이제는 아무도 탓 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도 속이 상하는 것은 아직도 못난 자 자신이나를 주장하고 주인이 되어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슬픈 일입니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사람이 자기 자신의 욕심 때문에 시험을 받게 되고 죄를 짖게 되고 결국은 망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마음대로의 생활은 아무런 것도 얻을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싸움과 다툼과 시기와 살인을 가져 올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나 마음 대로를 버릴 때가 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는 참으로 놀라운 구원과 축복을 가져온 인물 3명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들의 특징은 나 마음대로의 삶을 살지 않았다는데 그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 마음대로 살았다는데 있습니다.
곧 믿음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같이 믿음의 사람은 이 세상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이 세상이 감당 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이 주는 지혜로 살아가지 않고 하늘로부터 내려온 하나님의 지혜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더 이상 세상에서 구속되어 사는 사람이 아니라 이 세상의 삶에서 자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영국의 스트라칸 목사님이 어느 날 서재에서 친구와 심각한 토론을 하고 있을 때 그의 딸이 들어왔습니다.
딸의 줄넘기 줄이 엉망으로 엉켜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딸은 아무 말도 없이 엉긴 줄을 그의 아버지에게 건네어 주고는 방을 나가 버렸습니다.
그는 친구와의 이야기에 몰두하고있었으나 쉽게 그 엉긴 줄의 매듭을 하나 하나 다 풀었습니다.
잠시 뒤에 그의 딸이 들어와 아빠 고마워요!하고는 그 줄을 가지고는 총총히 뛰어 나갔습니다.
스트라칸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께 이와 같은 태도를 가질 수 없을까?
우리의 문제를 주님께 맡겨, 주님께서 그것을 다 해결하게 할 수 있는데 왜 우리 는 자기의 힘만으로 해결하려고 그토록 애를 쓰고만 있을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더욱 신뢰하고 의지하는 일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할렐루야!
바로 이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하나님께 구해야 하는 기도 제목이 있다면 모든 문제의 해결을 구하기 전에 믿음을 보이기는 것이 먼저인 것입니다.
우리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정신없이 일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렇게 할 것인가? 저렇게 할 것인가? 결정하지 못하여 우왕좌왕 하고 있습니까?
어떻게 하는 일이 잘하는 일인가? 번민하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 너무 많은 것들을 하고 있고 하려고만 하고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을 위하여 기도를 드릴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을 너무 잘 아시고 계셨습니다.
어떤 이는 머리에 생각이 너무 많이 하고 있는 자가 있었습니다.
이런 자들에게는 하나님은 단순 하라고 하십니다.
믿음은 우리의 생각을 아주 단순하게 합니다.
오직 믿음의 생각만 가지기 때문에 단순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떤 이는 인생의 짐을 많이 지고 있는 자들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이 삶으로 인하여 지쳐있고 피곤해 하고 있습니다.
그 외의 마음의 생각까지도 하나님은 너무나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네 마음대로 하지 말라
하나님의 마음에 맡기라고 하십니다.
곧 믿음으로 해결하면 아무런 문제도 해결하지 못 할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렇다면 지금 바로 이 순간부터 사소한 일까지도 주님께 맡기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노아는 아직 이루어지지도 않는 일에 경고를 받았을 때에 믿음으로 방주를 준비함으로서 온 나라가 다 물에 잠길 때에 그가 믿음으로 만들어 놓은 그 방주를 타고 구원함을 받았습니다.
제 마음대로 살았던 당시의 사람들에게 이 방주를 타라고 할 때에 아무도 타지를 않았습니다.
결국은 노아의 가족은 그 믿음이 구원함에 이르게 했지만 다른 이들은 구원의 방주가 잇었지만은 믿음이 없어서 구원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구원의 방주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 방주에 타는 믿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어떻게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받을지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믿음이 그 약속의 땅을 그 후손들과 더불어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허락하신 축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축복은 오직 믿음으로만 얻어지는 축복입니다.
저는 참으로 안타까운 사실이 하나가 있습니다.
믿음으로 돌아서기만 하면 받을 축복이 있는데 인간적으로 자꾸만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축복이 없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라는 인간사에서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약속하신 하나님은 믿을만한 분으로 알고 믿음으로 나아 갈 때에 인간의 역사를 초월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믿음으로 모든 삶을 살도록 허락하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믿음이 삶의 구원이 되고 그 믿음이 생활의 축복이 되고 그 믿음이 기적을 가져오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과거의 사람들보다 풍부한 물질 문화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지런히 성실하게 일을 하면은 무엇을 하든지 간에 생활을 하기에는 큰 어려움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모든 사람들이 어려움이 없이 풍성하게 산다고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모두가 생활을 하기에 힘이 든다고 합니다.
요사이는 더욱 힘이 든다고 합니다.
제가 보기에도 모든 사람들이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바라보기에 참으로 안타깝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의 삶의 경험에도 그러한 것 같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면 살아 갈수록 세상사는 방법이 점점 쉬워져야 하는데 살아 갈수록 점점 더 어렵고 힘이 든다고 여겨집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한 우리 성도들은 또 어떠합니까?
제가 성도들을 잘 모를 때는 모르지 만은 조금씩 알아 가면 알아 갈수록 모두가 힘에 겨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왜 그렇습니까?
참으로 모든 사람들이 사랑하는 물질이 없기 때문입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돈 때문에 벌어지는 비극이 우리 주위에 엄청나게 많습니다.
이 돈이 사람들을 어떻게 몰아 부칠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돈이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고 풍요롭게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얼마 전에 아내가 처남에게 빌려준 돈 2천만원 때문에 부부가 말다툼을 하다가 아내를 살해 한일이 있습니다.
혈연의 관계보다 돈의 힘이 더 센 것입니다.
한국에서 취업하는 어떤 조선족 중국교포는 빌려간 돈 6만원을 갚지 않는다고 해서 동료를 살해 한 일도 있습니다.
이런 일은 얼마든지 많습니다.
참으로 돈의 힘이 대단하니 돈이 없어서 문제가 생기고 돈 때문에 살기 힘드는 세상이기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참으로 행복하게 사시려면은 물불을 가라지 않고 돈을 벌이시기를 바랍니다.
그 외에도 세상을 살아가는데 힘들게 하는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닐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나약한 인간이 극복을 해야 하는데 참으로 힘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하여 모두가 지쳐있고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고 슬픔에 가득차 있고 힘이 다 빠져 죽을상이 되어있습니다.
어떤 이는 제 정신이 아닙니다.
우울증에 걸려있고 어떤 이는 거의 미칠 것 같은 순간까지 온 자들도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도 예외인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만약에 자신이 세상에서 초월하여 그렇지 안타고 여기는 그 사람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고 신이든지 아니면 정신이 나간 사람이라고 하면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저 역시 사람이기 때문에 세상적인 일들로 인하여 얼마나 피곤해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일찍이 욥은 그의 글에서 우리 인생을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욥14:1-2 여인에게서 난 사람은 사는 날이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며 그 발생함이 꽃과 같아서 쇠하여지고 그림자같이 신속하여서 머물지 아니하거늘 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참 평안을 몰랐구나
이 세상에 곤고한 일이 많고 참 쉬는 날 없었구나
이 세상에 죄악된 일이 많고 참 죽을 일 쌓였구나
오늘 이 시간에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들의 삶의 무거운 짐을 들어주시려고 합니다. 할렐루야!
먼저 왜? 우리 사람들에게 이 모든 것들이 짐이 되어 다가오느냐? 는 것입니다.
그것은 간단합니다.
내 마음대로 내 방법대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나이 40이 되면 그 얼굴에 책임을 져라 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그 자신이 살아온 인생은 아무에게도 탓 할 수가 없고 자기 자신의 현재의 모습은 자신이 40년간 살아온 삶의 형태가 현재를 형성시킨 모습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어디에다가 불편이나 불만이나를 할 소지를 가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저 역시 제 자신을 바라보게 됩니다.
왜 내가 이것밖에 되지 않았을까? 답답해합니다.
우리 부모들이 능력이 없어서 라고 생각을 해 보기도 합니다
또 내 주위의 환경이나를 이렇게 밖에 만들지 못하여서 하고 불만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툭하면 주위의 사람을 나무라기도 하고 환경을 핑계 삼은 일은 고쳐지지 않고 있습니다.
눈이 오면 눈이 온다하고 비가 오면 비가 온다하고 말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렇지 않습니까?
잘 나면 내 탓이요 못나면 조상 탓 아닙니까?
그런데 조금 철이 들고 보니까요?
누구누구 탓이 아니라 제 탓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 탓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살아온 삶의 형태 모두가 내 욕심대로, 내 정욕대로, 내 마음대로,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모든 것의 표준이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알면은 얼마나 안다고, 내가 의로우면 얼마나 의롭다고, 이러한 잘난 나 때문에 나를 다 망쳐 놓았습니다. 이제는 아무도 탓 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도 속이 상하는 것은 아직도 못난 자 자신이나를 주장하고 주인이 되어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슬픈 일입니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사람이 자기 자신의 욕심 때문에 시험을 받게 되고 죄를 짖게 되고 결국은 망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마음대로의 생활은 아무런 것도 얻을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싸움과 다툼과 시기와 살인을 가져 올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나 마음 대로를 버릴 때가 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는 참으로 놀라운 구원과 축복을 가져온 인물 3명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들의 특징은 나 마음대로의 삶을 살지 않았다는데 그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 마음대로 살았다는데 있습니다.
곧 믿음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같이 믿음의 사람은 이 세상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이 세상이 감당 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이 주는 지혜로 살아가지 않고 하늘로부터 내려온 하나님의 지혜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더 이상 세상에서 구속되어 사는 사람이 아니라 이 세상의 삶에서 자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영국의 스트라칸 목사님이 어느 날 서재에서 친구와 심각한 토론을 하고 있을 때 그의 딸이 들어왔습니다.
딸의 줄넘기 줄이 엉망으로 엉켜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딸은 아무 말도 없이 엉긴 줄을 그의 아버지에게 건네어 주고는 방을 나가 버렸습니다.
그는 친구와의 이야기에 몰두하고있었으나 쉽게 그 엉긴 줄의 매듭을 하나 하나 다 풀었습니다.
잠시 뒤에 그의 딸이 들어와 아빠 고마워요!하고는 그 줄을 가지고는 총총히 뛰어 나갔습니다.
스트라칸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께 이와 같은 태도를 가질 수 없을까?
우리의 문제를 주님께 맡겨, 주님께서 그것을 다 해결하게 할 수 있는데 왜 우리 는 자기의 힘만으로 해결하려고 그토록 애를 쓰고만 있을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더욱 신뢰하고 의지하는 일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할렐루야!
바로 이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하나님께 구해야 하는 기도 제목이 있다면 모든 문제의 해결을 구하기 전에 믿음을 보이기는 것이 먼저인 것입니다.
우리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정신없이 일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렇게 할 것인가? 저렇게 할 것인가? 결정하지 못하여 우왕좌왕 하고 있습니까?
어떻게 하는 일이 잘하는 일인가? 번민하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 너무 많은 것들을 하고 있고 하려고만 하고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을 위하여 기도를 드릴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을 너무 잘 아시고 계셨습니다.
어떤 이는 머리에 생각이 너무 많이 하고 있는 자가 있었습니다.
이런 자들에게는 하나님은 단순 하라고 하십니다.
믿음은 우리의 생각을 아주 단순하게 합니다.
오직 믿음의 생각만 가지기 때문에 단순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떤 이는 인생의 짐을 많이 지고 있는 자들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이 삶으로 인하여 지쳐있고 피곤해 하고 있습니다.
그 외의 마음의 생각까지도 하나님은 너무나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네 마음대로 하지 말라
하나님의 마음에 맡기라고 하십니다.
곧 믿음으로 해결하면 아무런 문제도 해결하지 못 할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렇다면 지금 바로 이 순간부터 사소한 일까지도 주님께 맡기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노아는 아직 이루어지지도 않는 일에 경고를 받았을 때에 믿음으로 방주를 준비함으로서 온 나라가 다 물에 잠길 때에 그가 믿음으로 만들어 놓은 그 방주를 타고 구원함을 받았습니다.
제 마음대로 살았던 당시의 사람들에게 이 방주를 타라고 할 때에 아무도 타지를 않았습니다.
결국은 노아의 가족은 그 믿음이 구원함에 이르게 했지만 다른 이들은 구원의 방주가 잇었지만은 믿음이 없어서 구원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구원의 방주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 방주에 타는 믿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어떻게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받을지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믿음이 그 약속의 땅을 그 후손들과 더불어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허락하신 축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축복은 오직 믿음으로만 얻어지는 축복입니다.
저는 참으로 안타까운 사실이 하나가 있습니다.
믿음으로 돌아서기만 하면 받을 축복이 있는데 인간적으로 자꾸만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축복이 없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라는 인간사에서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약속하신 하나님은 믿을만한 분으로 알고 믿음으로 나아 갈 때에 인간의 역사를 초월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믿음으로 모든 삶을 살도록 허락하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믿음이 삶의 구원이 되고 그 믿음이 생활의 축복이 되고 그 믿음이 기적을 가져오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