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무거운 짐을 가볍게 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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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580회 작성일 2009-05-2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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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11:28-30 예수가 무거운 짐을 가볍게 해 드립니다
제가 10여 년 전에 어네스트 헤밍웨이가 바다와 노인이라는 글을 쓴 서재를 방문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그는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무기여 잘 있거라 등 유명한 글을 남겼습니다
그 서재는 2층에 자리를 잡아있었고 대서양이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미국의 휴양지 마이애미에서 차로 거의 반나절이나 되는 플로리다주의 끝에서 섬으로 섬으로 다리를 연결시켜 미국의 끝인 키 웨스트라는 곳입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그는 상당히 낭만이 있는 인물로 평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정원에는 그가 다니는 술집의 소변기를 떼어와서 장식을 할 정도로의 괴짜이기도 했습니다.
그 누가 보아도 그는 멋있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말년에 지병 등으로 여러 번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고 1961년에 그의 아버지와 함께 엽총으로 자살하여 그의 생애를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바다와 노인은 퓰리처상과 노벨 문학상까지 타는 문학인으로서의 최고의 명예를 누렸고, 그의 삶은 참으로 아름다운 자연으로 둘러 싸여 있었습니다 만은 그의 마음은 자살을 해야 할 만큼 심히 무거워져 있었던 것이 분명하였습니다.
아니 그의 최고의 영광과 주위의 아름다운 환경이 그의 마음하나를 평안하게 해주지를 못하였습니다.
노인과 바다에 나타난 그 노인의 고뇌는 헤밍웨이의 자신의 고뇌라고 평론가들이 말을 하기도 합니다.
소설 속의 노인은 손수 열심히 일을 해서 자신의 필요한 것을 벌여 들였습니다.
그러나 장래를 대비할 여유는 없었습니다.
매일매일 호구지책(糊口之策)일 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바다에서 평생에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훌륭한 고기를 만나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노인은 고기와 필사적인 싸움을 하게되는데 고기와 싸움을 하는 동안 자기가 늙었음을 한탄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작살로 그 고기를 잡는 데 성공을 했습니다.
순간 그의 얼굴은 밝은 빛으로 떠오르고, 이제 나는 부자가 되었다. 다른 어부들도 나를 부러워할 것이다. 이제는 자고, 쉬고, 안정을 취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참 행복해 하는 그 때에 상어가 나타났습니다.
상어와의 사투를 벌렸지만 아무런 승산이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항구로 돌아왔을 때에는 앙상한 뼈대만 남아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 순간 모든 것을 잃었다는 것을 예감을 했고 꿈도, 행복도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노인은 스스로 자기를 두고 독백을 하기를. 늙은 친구여, 너는 피곤하구나. 너는 정신적으로 피곤하구나. 그는 인생을 허무하고, 무의미하고, 피곤한 것으로 결론지었습니다.
이것이 헤밍웨이의 만의 고백이 아니라 오늘날 현대인의 고백이라 하겠습니다.
직장과 사업 터에서 돌아온 남편들이 아내들에게 들려주는 첫 소리가 무엇입니까?
아이고 피곤해라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모두가 짐이 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뿐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피곤하겠습니까?
그러면 남편들만 그렇게 피곤하십니까?
아내들은 남편보다 더 스트레스 받고 있습니다.
다른 남편들은 다 잘하는 것 같은데 내 남편은 능력이 없는 것 같아요
오늘 이 시간에 제가 여러분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다 바라보지만은 삶의 짐에 지쳐있는 얼굴들뿐입니다.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다 짐이 되는 것밖에 없지요
그러니 얼마나 무거워 지치겠습니까?
모두가 짐을 벗어버리려고 하고 짐을 안 지려고 하는데 어디 마음대로 됩니까?
오히려 짐은 더 지워지고 무거워지고 있습니다.
허지만 그 누구도 여러분의 짐을 져 줄 사람이 없습니다.
인간 그 누가? 어떤 친한 사람이 내 짐을 져 줄 것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기대했다가 여러분은 더 초라해지고 실망을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짐을 져 줄 분이 따로 있습니다.
아무도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우리 예수님만이 여러분의 짐을 져 주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그러면 왜 우리에게 짐이 있기는 있는데 가볍지 못하고 왜 그렇게도 무겁습니까?
내가져야 할 짐은 안 지고 지지 않아도 될 짐을 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운동 경기를 하는 선수들의 복장을 보셨습니까?
밍크 코트나 도포자락 걸치고 합니까?
하이힐이나 멋쟁이 구두를 신고합니까?
한 사람도 그런 사람이 없습니다.
모두가 할 수만 있으면 가장 간편하게 복장을 합니다.
워커를 신고 마라톤을 해 보십시오
죽을 지경일 것입니다.
코트를 걸치고 수영을 해 보십시오
물에 안 빠져 죽은 것이 다행입니다.
그리스 아테네 시대에는 아 예 옷을 입지 않고 경기를 하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이와 같이 우리의 삶의 짐이 무거울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내 욕심과 정욕에 따라 생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의 삶의 짐이 가벼우려면 먼저 욕심과 정욕을 버리야만 가능합니다.
사람이 욕심을 버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버려야 만 살 수가 있습니다.
지금은 남북이 서로 조약을 맺어 그렇지 않겠습니다 만은 작년까지만 해도 눈이 녹은 봄 건조한 봄철이 오면은 휴전선 일대에는 산불이 많이 일어납니다.
이 산불은 자연적으로 발생하기보다는 인위적으로 산불을 놓습니다.
저 북한의 북쪽의 초소에서 남쪽으로 바람이 부는 날을 타서 산불을 지릅니다.
그러면 이 불은 큰불이 되어 남쪽으로 남쪽으로 연기를 내면서 타들어 옵니다.
그 불 속에서 노루들이 뛰어다니다가 타 죽기도 합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땅에 묻어 놓은 지뢰들이 소리를 내면서 터지기 시작합니다.
진짜 무서운 장면입니다.
그냥 가만히 놔두면 이 불이 남쪽의 초소를 불태우고 그 주위의 지뢰를 다 터트릴 것이며 급기야는 그 초소에 있는 병사들도 다 죽을 것입니다.
그러면 가만히 바라다보기만 하고 있으면 되겠습니까?
이 때에 남쪽의 병사들은 일제히 앞으로 나아가 맛 불을 놓기 시작합니다.
그 큰불이 오기 전에 주위의 불탈 것을 미리 다 태워버립니다.
이렇게 해 놓으면 큰 불길이 왔다가도 이미 다 타버렸으니 더 이상 타 들어오지 못하기 때문에 그 초소는 안전하게 됩니다.
그래서 봄이 되면은 휴전선 일대는 산불이 끊어지지 않고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리 타 버린 곳은 더 이상 탈 곳이 없기 때문에 가장 안전합니다.
그 영역이 바뀌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불 탈 것이 불 탈 것이 없는 영역으로 말입니다.
주위에 불이 일어나도 안전한 것입니다.
내가 중심이 되어 내 짐을 내가 지고 있던 영역이 그리스도의 중심으로 되어 내 짐을 지는 자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힘입어 그리스도의 짐을 지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의 능력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별로 질만한 힘이 없으면서도 모두가 그 짐을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 만사의 짐을 다 지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니 말도 많고 걱정도 많고 그러니 삶에 조그마한 여유도 안식도 없는 삶이었습니다.
얼굴은 항상 퉁퉁부어 언찮타는 표정이요
웃음을 잃어버린 무표정의 얼굴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살아가니 살아왔던 생활이 참으로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이 세상의 짐을 연약한 우리 사람들이 지고 갈 짐이 아닙니다.
그 방범도 욕심과 정욕을 가지고 지고 갈 짐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짐을 지고 가시는 분이 계십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우리 예수 그리스도이신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오늘날 우리에게 지금도 큰 소리로 외치시고 계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세상의 모든 짐은 예수님이 다 지시겠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무슨 걱정을 한다고 해서 흰머리를 검게 할 수가 있고 키를 한자나 더 할 수 있느냐? 고 주님은 지금도 반문하고 계십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는 모두가 무거운 짐을 지고 있습니다.
이 짐은 더 이상 여러분이 지실 짐이 아니시니 내려놓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발 주님 앞에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딸의 혈우병으로 찾아온 여인에게 그 짐을 내려놓게 하시고 그 짐을 예수님이 대신 지시고는 그 여인에게 들려주시는 주님의 음성은 딸아 안심하고 돌아가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그 괴로운 짐을 주님께 맡기고는 더 이상 자신이 지지 않고 이제 그 여인은 예수님을 믿고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주어졌습니다.
여인이 집으로 가보니 그 아이가 나은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날마다 우리의 짐을 져 주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를 지금까지 믿으면서도 아직도 하지 못하는 가장 어려운 일이 있다면 나의 짐을 아직도 내가 지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을 아직도 못 믿겠다는 것이라기 보다는 내 짐을 내려놓고 난 후에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고 그리고 행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또 다시 자신들이 내려놓은 짐을 지고 가는 것입니다.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할렐루야!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지워주는 짐은 결코 무거운 짐이 아닙니다.
할 수 있는 내짐보다 가벼운 일을 시키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할렐루야!
이제 주님은 다시 한번 여러분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들의 그 무거운 짐을 이 시간에 더 이상지지 말고 내려놓으라고 하십니다.
그렇게도 무거운 짐이 무엇이십니까?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이 여러분이 지실 수 있는 기분 좋은 짐을 주실 것입니다.
그 짐은 예수님을 위한 짐이요 선을 위한 짐입니다.
여태까지 내 짐을 지느라고 정신이 없으니 솔직히 예수님이 원하시는 짐을 지지는 못하였지요
이제 예수님이 여러분의 짐을 져 주시기로 약속하셨으니 이제는 주를 위한 일을 할 것만 남으신 것을 명심하십시오
주의 일이란 여러 가지로 나타납니다.
나만을 위하여 사용한 물질을 주를 위하여 사용하는 일입니다.
나만을 위하여 사용한 시간을 주를 위하여 사용하는 일입니다.
더러운 생각으로 가득찬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교만이 겸손으로 성질이 더러운 자가 온유한 자로
남을 미워하고 사랑하지 못한 자가 사랑과 용서의 사람으로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여태까지 내가 내 짐을 지느라고 하지 못했던 일을 이제는 예수님이 내 짐을 다 져 주시니 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지난 철야 기도 시간에 주신 말씀과 같이 우리가 우리 몸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를 위하여 있고 그러면 주는 우리의 몸을 위하여 주신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여러분은 머리와 생각과 행동은 바꾸어 져야 합니다.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이러한 것을 더 이상 하는 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주의 뜻을 따라 살 것이가?가 먼저 생각하는 자가 여러분이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의 일을 먼저 하는 자는 자기의 무거운 짐에서 자유 하는 자입니다.
우리 주님이 대신 져 주시니 얼마나 행복한 사람이 되겠습니까?
그러나 주의 일을 아직도 하지 않는 자는 아직도 그 사람은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불행한 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는 주의 일을 찾아 나서야 할 때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삶은 더욱 가벼워지고 안식과 평안이 함께 하는 축복을 받을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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