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 것은 잊어버리고 상을 향해 달려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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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354회 작성일 2015-01-01 19:51본문
빌립보서 3:12-14 뒤에 것은 잊어버리고 상을 향해 달려가자
2014년 365일 한해를 잘 보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또 다시 2015년 365일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감사히 한해를 보내고 다시 받을 한해가 복되시기를 바랍니다.
독일 외무장관 요쉬카 피셔가 나는 달린다는 책에는 자신이 실제로 2년 동안 끝임 없이 달린 내용입니다.
피셔에게 48세였던 1996년에 아내와 이혼했고 75㎏이었던 몸무게는 112㎏으로 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목표를 정했습니다.
나의 삶 전체를 변화시켜야 했습니다. 체중을 줄이는 것도 중요했지만 삶을 재정립하는 것이 더욱 중요했습니다.
달린지 1년 만에 피셔는 75㎏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달리는 가운데 육체의 운동, 인내와 노력과 내적인 평온을 얻었다.
첫 발을 내딛는 순간, 나의 정체된 삶도 달리기 시작합니다. 나는 계속 달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에서도 사도 바울은 달려가노라고 하였습니다.
바울 시대에도 올림픽 경기가 있었습니다.
그 때도 달리기 시합은 인기 종목이었습니다.
달리기 시합이 끝나면, 승리한 선수의 이름이 불리어졌습니다. 그러면 그 선수는 시상대에 올라갔습니다. 그리고는 황제가 주는 상을 받았습니다.
마찬가지로 바울이 푯대를 향하여 달려갈 길을 마치면, 하나님이 위에서 바울을 부르실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에게 상을 주실 것입니다.
바울은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이 그에게 주실 상을 바라보며, 푯대를 향하여 달려갔습니다.
2014년 한 해를 감사히 보내고 2015년 새해를 주님의 상을 받은 한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기 위해서 예수님께 잡힌바 된 것을 잡자
12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이것은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신앙의 자세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발전하고 향상하고 전진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찾으라.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열릴 것이요 구하라 얻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그가 이미 얻었다고 말씀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직은 얻지를 못했다는 것입니다.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아직은 바울이 온전함을 얻지 못했습니다.
무엇을 얻지 못함은 아직 온전함을 이루지 못함을 말합니다.
그가 예수 안에서 얻은 것은 그리스도의 지식이었습니다.
고전13: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에 대해서도 알더라도, 어디까지나 부분적으로 알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를 더 많이 더 깊이 알기 위해서, 부단 없이 애쓰고 노력했습니다.
또한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얻은 것은 그리스도의 의였습니다.
요13: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이는 예수님이 베드로의 발을 씻겨주시면서, 베드로에게 하셨던 말씀입니다.
이미 목욕을 한 자는 또다시 목욕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미 목욕을 한 자라도, 필요할 때마다 계속해서 발은 씻고 또 씻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우리는 이미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연약한 육신을 갖고 살기에, 자주 넘어지며 죄를 범합니다.
그 때마다 우리는 계속해서 그리스도 예수의 보혈로 죄를 씻음 받아야 합니다.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얻은 것은 그리스도의 권능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권능으로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었습니다. 귀신도 쫓아내었습니다. 죽은 사람도 살렸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자신에게 있는 육체의 가시는 없앨 수가 없었습니다.
고후12: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은 그의 육체에 있는 가시가 그를 겸손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가시로 인해서, 오히려 기뻐하며 감사했습니다.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얻은 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함이었습니다.
물론 바울은 그 동안 그리스도를 위하여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빌립보서를 기록할 당시에도, 그는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10절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까지 본받기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까지 그는 단 한 순간도 자신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온전하게 참여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얻은 것은 그리스도의 영광이었습니다.
물론 바울은 하늘나라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나라의 모든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미래적인 일입니다. 아직까지는 실제적으로 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이미 모든 것을 온전하게 다 얻었다고는 자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늘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앞에 있는 온전함을 바라보면서 계속해서 나아갔습니다.
나는 이만하면 되었다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울을 잡으신 목적과 바울이 예수님에게 잡힌 후부터 그가 잡고자 했던 목적이 똑같았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그리스도 예수에게 잡힌바 되었습니다.
왜 예수님은 바울을 잡으셨습니까?
왜 나를 잡으셨을까요
하나님은 창세전에 바울을 미리 아시고,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바울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그를 의롭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영원하신 경륜 가운데서 그를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롬8:29-30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창세전에 나를 미리 아시고,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우리를 의롭다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섭리 가운데 이미 영화롭게 되기로 작정되었습니다.
그러면 이 모든 과정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입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예수님을 본받는 것을 그의 삶의 푯대, 곧 그가 추구하는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 푯대를 향하여 달려갔습니다.
내가 간절히 바라는 소원은, 또한 내가 마땅히 기도해야 할 제목은 무엇이 되어야 합니까?
예수님을 본받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학생은 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 힘써 예수님을 본받기 바랍니다. 주부는 가정에서 가사를 돌보면서, 힘써 예수님을 닮기 바랍니다. 직장인들은 직장에서 일하면서, 힘써 예수님을 본받기 바랍니다.
상을 위하여 달려가는 삶은 과거는 잊어버리고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13절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먼저 바울은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렸습니다.
뒤에 있는 것 때문에 앞에 있는 것을 잡는 일에 지장이 있으면 안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지나간 과거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오직 앞에 있는 것을 잡는 일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과거에 바울은 잘못한 일이 많았습니다.
그가 육체를 신뢰한 것도 잘못이었고, 특별히 그가 열심으로 교회를 박해했던 것은 아주 잘못된 일이었습니다.
반면에 바울은 잘한 것도 많았습니다.
그 동안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결과 여러 곳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것도 다 잊었습니다. 그런 것 때문에 자만해서, 앞으로 나가는 일에 지장을 받으면 안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혈통의 특권도 잊어버렸습니다.
5절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자신의 노력에 의한 업적도 버렸습니다.
6절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이렇듯 바울은 소극적으로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렸습니다.
바울은 잘못한 것도 잊어버렸고, 잘한 것도 잊어버렸습니다.
그는 언제나 새로운 마음으로 새롭게 출발하는 심정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오직 적극적으로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했습니다.
당시 유다 백성은 그들이 범한 죄 때문에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그들에게 구원을 선포하셨습니다. 분명 유다 백성은 자기들이 범한 죄 때문에, 깊은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유다 백성을 향하여, 하나님은 또한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사43:24-25 너는 나를 위하여 돈으로 향품을 사지 아니하며 희생의 기름으로 나를 흡족하게 하지 아니하고 네 죄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죄를 다 사함 받고,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음을 확신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새로운 피조물로서 오직 앞에 있는 것을 잡는 일에만 집중했습니다.
14절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실 때, 단순히 구원을 위해서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왜 구원받았을까요?
지옥만 안가기 위해서 불러주신 것이 아닙니다.
인간 존재의 비밀은 그냥 생존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인가 확실한 것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위해서 몸을 던져 죽을 수 있는 그 것입니다
이것을 소명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소명은 사람마다 다른 것입니다.
쫓아가노라 곧 달려가노라 는 아주 강력한 감성이 들어가 있는 그런 단어입니다.
영어에는 Press on !
아주 강력하게 집중하고 있는 그런 모습을 들어내어 주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헬라어에서 굶주린 사냥개가, 먹이를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이제는 그 먹이에 자기의 그 모든 시선, 존재의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고 아마 질주할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의 인생의 소명, 그 소명에 근거한 그 목표를 향하여 어떤 시련도 어떤 장애물도 뛰어넘을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함임을 말씀했습니다.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했습니다. 그에게는 확실한 푯대가 있었습니다.
이 때 동사 달려가노라의 시제가 현재형입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달렸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여기서 다시 한 번 그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했음을 밝혔습니다.
바울은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실 상을 바라보며 푯대를 향하여 달려갔던 것입니다.
딤후4:7-8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바울은 하나님이 주실 상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대적들에게서 박해를 받아도, 또한 로마 교회의 성도들 중 그를 비방하는 자들이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오직 그대로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위에서 우리를 부르시며 상을 주실 때까지,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야 합니다.
2014년 365일 한해를 잘 보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또 다시 2015년 365일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감사히 한해를 보내고 다시 받을 한해가 복되시기를 바랍니다.
독일 외무장관 요쉬카 피셔가 나는 달린다는 책에는 자신이 실제로 2년 동안 끝임 없이 달린 내용입니다.
피셔에게 48세였던 1996년에 아내와 이혼했고 75㎏이었던 몸무게는 112㎏으로 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목표를 정했습니다.
나의 삶 전체를 변화시켜야 했습니다. 체중을 줄이는 것도 중요했지만 삶을 재정립하는 것이 더욱 중요했습니다.
달린지 1년 만에 피셔는 75㎏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달리는 가운데 육체의 운동, 인내와 노력과 내적인 평온을 얻었다.
첫 발을 내딛는 순간, 나의 정체된 삶도 달리기 시작합니다. 나는 계속 달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에서도 사도 바울은 달려가노라고 하였습니다.
바울 시대에도 올림픽 경기가 있었습니다.
그 때도 달리기 시합은 인기 종목이었습니다.
달리기 시합이 끝나면, 승리한 선수의 이름이 불리어졌습니다. 그러면 그 선수는 시상대에 올라갔습니다. 그리고는 황제가 주는 상을 받았습니다.
마찬가지로 바울이 푯대를 향하여 달려갈 길을 마치면, 하나님이 위에서 바울을 부르실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에게 상을 주실 것입니다.
바울은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이 그에게 주실 상을 바라보며, 푯대를 향하여 달려갔습니다.
2014년 한 해를 감사히 보내고 2015년 새해를 주님의 상을 받은 한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기 위해서 예수님께 잡힌바 된 것을 잡자
12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이것은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신앙의 자세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발전하고 향상하고 전진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찾으라.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열릴 것이요 구하라 얻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그가 이미 얻었다고 말씀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직은 얻지를 못했다는 것입니다.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아직은 바울이 온전함을 얻지 못했습니다.
무엇을 얻지 못함은 아직 온전함을 이루지 못함을 말합니다.
그가 예수 안에서 얻은 것은 그리스도의 지식이었습니다.
고전13: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에 대해서도 알더라도, 어디까지나 부분적으로 알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를 더 많이 더 깊이 알기 위해서, 부단 없이 애쓰고 노력했습니다.
또한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얻은 것은 그리스도의 의였습니다.
요13: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이는 예수님이 베드로의 발을 씻겨주시면서, 베드로에게 하셨던 말씀입니다.
이미 목욕을 한 자는 또다시 목욕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미 목욕을 한 자라도, 필요할 때마다 계속해서 발은 씻고 또 씻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우리는 이미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연약한 육신을 갖고 살기에, 자주 넘어지며 죄를 범합니다.
그 때마다 우리는 계속해서 그리스도 예수의 보혈로 죄를 씻음 받아야 합니다.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얻은 것은 그리스도의 권능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권능으로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었습니다. 귀신도 쫓아내었습니다. 죽은 사람도 살렸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자신에게 있는 육체의 가시는 없앨 수가 없었습니다.
고후12: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은 그의 육체에 있는 가시가 그를 겸손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가시로 인해서, 오히려 기뻐하며 감사했습니다.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얻은 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함이었습니다.
물론 바울은 그 동안 그리스도를 위하여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빌립보서를 기록할 당시에도, 그는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10절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까지 본받기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까지 그는 단 한 순간도 자신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온전하게 참여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얻은 것은 그리스도의 영광이었습니다.
물론 바울은 하늘나라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나라의 모든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미래적인 일입니다. 아직까지는 실제적으로 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이미 모든 것을 온전하게 다 얻었다고는 자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늘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앞에 있는 온전함을 바라보면서 계속해서 나아갔습니다.
나는 이만하면 되었다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울을 잡으신 목적과 바울이 예수님에게 잡힌 후부터 그가 잡고자 했던 목적이 똑같았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그리스도 예수에게 잡힌바 되었습니다.
왜 예수님은 바울을 잡으셨습니까?
왜 나를 잡으셨을까요
하나님은 창세전에 바울을 미리 아시고,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바울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그를 의롭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영원하신 경륜 가운데서 그를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롬8:29-30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창세전에 나를 미리 아시고,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우리를 의롭다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섭리 가운데 이미 영화롭게 되기로 작정되었습니다.
그러면 이 모든 과정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입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예수님을 본받는 것을 그의 삶의 푯대, 곧 그가 추구하는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 푯대를 향하여 달려갔습니다.
내가 간절히 바라는 소원은, 또한 내가 마땅히 기도해야 할 제목은 무엇이 되어야 합니까?
예수님을 본받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학생은 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 힘써 예수님을 본받기 바랍니다. 주부는 가정에서 가사를 돌보면서, 힘써 예수님을 닮기 바랍니다. 직장인들은 직장에서 일하면서, 힘써 예수님을 본받기 바랍니다.
상을 위하여 달려가는 삶은 과거는 잊어버리고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13절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먼저 바울은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렸습니다.
뒤에 있는 것 때문에 앞에 있는 것을 잡는 일에 지장이 있으면 안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지나간 과거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오직 앞에 있는 것을 잡는 일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과거에 바울은 잘못한 일이 많았습니다.
그가 육체를 신뢰한 것도 잘못이었고, 특별히 그가 열심으로 교회를 박해했던 것은 아주 잘못된 일이었습니다.
반면에 바울은 잘한 것도 많았습니다.
그 동안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결과 여러 곳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것도 다 잊었습니다. 그런 것 때문에 자만해서, 앞으로 나가는 일에 지장을 받으면 안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혈통의 특권도 잊어버렸습니다.
5절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자신의 노력에 의한 업적도 버렸습니다.
6절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이렇듯 바울은 소극적으로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렸습니다.
바울은 잘못한 것도 잊어버렸고, 잘한 것도 잊어버렸습니다.
그는 언제나 새로운 마음으로 새롭게 출발하는 심정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오직 적극적으로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했습니다.
당시 유다 백성은 그들이 범한 죄 때문에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그들에게 구원을 선포하셨습니다. 분명 유다 백성은 자기들이 범한 죄 때문에, 깊은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유다 백성을 향하여, 하나님은 또한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사43:24-25 너는 나를 위하여 돈으로 향품을 사지 아니하며 희생의 기름으로 나를 흡족하게 하지 아니하고 네 죄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죄를 다 사함 받고,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음을 확신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새로운 피조물로서 오직 앞에 있는 것을 잡는 일에만 집중했습니다.
14절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실 때, 단순히 구원을 위해서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왜 구원받았을까요?
지옥만 안가기 위해서 불러주신 것이 아닙니다.
인간 존재의 비밀은 그냥 생존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인가 확실한 것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위해서 몸을 던져 죽을 수 있는 그 것입니다
이것을 소명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소명은 사람마다 다른 것입니다.
쫓아가노라 곧 달려가노라 는 아주 강력한 감성이 들어가 있는 그런 단어입니다.
영어에는 Press on !
아주 강력하게 집중하고 있는 그런 모습을 들어내어 주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헬라어에서 굶주린 사냥개가, 먹이를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이제는 그 먹이에 자기의 그 모든 시선, 존재의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고 아마 질주할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의 인생의 소명, 그 소명에 근거한 그 목표를 향하여 어떤 시련도 어떤 장애물도 뛰어넘을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함임을 말씀했습니다.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했습니다. 그에게는 확실한 푯대가 있었습니다.
이 때 동사 달려가노라의 시제가 현재형입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달렸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여기서 다시 한 번 그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했음을 밝혔습니다.
바울은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실 상을 바라보며 푯대를 향하여 달려갔던 것입니다.
딤후4:7-8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바울은 하나님이 주실 상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대적들에게서 박해를 받아도, 또한 로마 교회의 성도들 중 그를 비방하는 자들이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오직 그대로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위에서 우리를 부르시며 상을 주실 때까지,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