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당신이 울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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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543회 작성일 2009-05-2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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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애가 2:11-19 이제는 당신이 울 차례가 되었습니다
혹시 여러분들 가운데 눈물을 흘려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만약에 눈물을 흘려본 경험이 없는 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사람이 아닙니다.
인정 사정이 없는 짐승과 같은 자입니다.
눈물은 보약입니다.
눈 속의 이물질과 이산화 탄소 등을 씻어내고 산소와 포도당을 공급한다고 합니다.
우리의 아픔을 감하여 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선한 의지를 가지도록 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눈물은 많이 흘리는 사람일수록 복된 사람이 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주위에 웃음을 가져 올 일도 두시지 만은 눈물을 흘려야 하는 일을 훨씬 더 많이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 눈물을 흘리므로 많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하시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눈물을 흘릴 일이 생겼다고 해서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눈물을 흘리시기를 축원합니다.
한번은 어떤 사람이 눈에 병이 걸려서 병원에 열심히 다녔습니다.
눈알이 건조하여지는 병인데 고통이 매우 심하였다고 합니다.
아무리 치료를 해도 잘 낫지를 않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의 눈은 적당한 수분이 항상 있으므로 인하여 윤활제 역할을 하여 눈동자를 잘 굴려가게 하는 것입니다.
눈을 굴리게 하는 윤활제 역할을 하는 눈물샘이 말라 버렸으니 눈동자가 잘 굴려가지도 않을 뿐 아니라 눈동자를 굴리려하면 눈꺼풀로 인하여 저항을 받으니 심히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었습니다.
한번은 의사가 그 사람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혹시 최근에 들어 당신이 한번 울어 본 경험이 있습니까? 하였더니 그 사람의 대답이 전혀 울어 본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그의 삶 자체가 인정도 사정도 없고 눈물도 없는 아주 냉정한 그런 생활을 자랑삼아 살아온 사람이었습니다.
바늘을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날 사람입니다.
그랬더니 의사의 말이 당신에게 지금 이 눈을 치료하는데 가장 필요한 약은 당신이 눈에서 흘리는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눈물이 없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다른 이의 아픔에 함께 아파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오히려 더욱 냉정해 지고 뻔뻔해 지고 강퍅해 지고 있습니다.
사도 누가는 이 세대의 사람을 이렇게 비유하였습니다.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슬퍼 애곡을 하여도 울지 아니함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감동과 감화가 통하지 않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동질 감과 동질성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우리말에 열 손가락 물어 안 아픈 손가락 있는가? 라는 한 핏줄의 동질 감을 표현하는 아름다운 글귀가 있습니다 만은 이제는 그렇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물어도 안 아픈 손가락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동질이 아니니 때문에 안 아픈 것이 아니라 동질 감을 가졌지만은 손가락마다 병이 들어서 아픈 감각을 모두 상실하였다는 것입니다.
저는 세상에서 별별 일이 다 볼 수 있지만 중등 학교에 다니는 형이 어찌 초등 학생인 동생을 다만 살인을 하고 싶다는 그 동기하나 때문에 죽일 수 있다는 것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이렇게 인정도 사정도 없는 이런 무서운 세상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나 계십니까?
저는 간혹 휴전선을 두고 이런 생각을 합니다.
어찌 한 민족이 저렇게 원수가 되어 남북을 갈라놓고 반세기가 지나도록 살 수 있을까?
한시 바삐 통일을 할 수도 있는 일인데 라고 생각을 했는데 지금에 와서는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제 주위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상을 볼 때에 왜 남북이 갈리어서 살아야 하는가를 이해 할 수가 있겠더라고요?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동질 감의 교류가 상실되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다시 동질 감을 회복하는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기뻐 할 때에 함께 기뻐해 주지 못하고 슬퍼 할 때에 함께 슬퍼해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가끔 제 아내에게 이런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당신은 참으로 냉정한 사람이야
저도 제 자신을 볼 때에 참으로 냉정한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당신이 내가 헌신적으로 잘 해 줄 때에 좋아하지만 만약에 내가 어찌 되어 들어 누우면 쳐다보지도 않을 사람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었을 때에 아니다라는 변명을 하기보다는 얼마든지 내 속에 그러한 요소가 충분히 있는 것 같아서 마음속으로 그래서는 안되지 하고 그 마음을 회개를 하고 아니야 내가 진심으로 돌봐 줄 거야 하고 다짐을 해 보기도 했습니다.
부부가 같이 살다가도 돌아 설 때에 언제 그랬는가 하고 돌아서 버립니다.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도 함께 피를 나눈 형제간에도 서로가 맞지 않아 돌아 설 때는 그렇게 원수가 되어 잇습니다.
목사와 성도 사이에도 뭔가 맞지 않아 돌아 설 때에도 과연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렇게 하여도 되는가 할 정도입니다.
천국에 가서 함께 살 사람인데 어찌 천국에서 같이 살 수 있을까?
형제와 화목하고 하나님께로 나오라고 했는데 그렇지 않으면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천국에 가지 못하거나 아니면 둘이다 천국에 가지 못 할 사람 일 것입니다.
천국에 가보면 놀라운 일이 한가지 있는데 이 사람은 꼭 천국에서 만날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무리 찾아보아도 안 보인다는 것 아닙니까?
제가 예수님 때문에 이 만큼이라도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은 어떠하십니까?
내게 유익이 되지 않고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여기면 내 지체라도 잘라 버리고는 무조건 버리는 냉정한 사람이 아닙니까?
어떤 사람은요 군에 가지 안으려고 이 검지 손가락을 잘라버리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결코 그래서는 안 될 일입니다.
함께 마음 아파하며 함께 울어야 합니다.
동질성을 회복시켜야 합니다.
그것은 함께 마음 아파하며 흘리는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인간적인 정을 호소하는 눈물이 있어야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흘리는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인간의 정으로 흘리는 눈물은 그 효과를 많이 발휘 할 수가 없지만 하나님 앞에서 흘리는 눈물은 많은 효과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무너져 내리고 망한 이스라엘을 두고 눈물을 흘리는 한 사람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참으로 한 민족이라는 한 지체라는 동질 감을 가지고 흘리는 눈물이 강물이 되어 쉬임없이 흘려 내렸습니다.
그의 표현을 빌면은 눈이 눈물로 상하고 창자 끊으며 간이 땅에 쏟아졌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내 속의 내장이 파열하는 듯한 아픔을 표현하였으며 내 몸의 모든 기관이 함께 슬픔에 사로잡혔다는 것입니다.
우리말에 애 간장을 다 녹인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실제적으로 원숭이 새끼를 그 어미에게서 빼앗아 가지고 갔더니 그 어미가 음식도 먹지 않고 시름시름 알다가 죽었습니다.
왜 그 어미가 죽었는가 하고 배를 갈라 보았더니 이게 웬일입니까?
그 어미의 창자가 실제적으로 녹아 붙어버렸다는 것 아닙니까?
오늘 우리는 내 주위를 둘러 볼 때에 참으로 안타까워하며 마음 아프해 하며 내가 흘려야 할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내 사랑하는 남편을 위하여 내 사랑하는 아내를 위하여 내 사랑하는 부모 자식 형제를 위하여 흘려야 할 눈물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우리의 눈에는 눈물이 메말라 있는지 오래 되었습니다.
지금 하나님 앞에서 흘리는 눈물이 없어서 상처가 치유가 되지 않고 더욱 우리의 삶은 황폐해지고 시련의 파고는 높아지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눈물이 없는 이 민족에게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라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도 장차 무너질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민족이 모두가 불평과 원망만을 했지 그 아픔을 애통해 하는 눈물이 없었습니다.
눈물이 강이 될 정도로 울어야 하며 밤잠을 설치면서 울어야만 살 길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여 이 민족에게 눈물을 돌려주옵소서 라고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내 자신의 챙길 것 다 챙기기고 내 편안함만을 생각하고 안락하게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이스라엘을 위하여 우는 울음을 이제는 내가 울어야 하는 울음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을 내어놓고 내 부모 형제를 위하여 엉엉 우는 일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의 남편들을 위하여 울어야 합니다. 아내를 위하여 울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참으로 남편을 사랑하십니까?
그러면 남편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내 애 간장이 끊어지도록 울어 보았습니까?
저는 남편이 교회에 출석하지 못하는 이유는 남편에게 있지만은 그기에 못지 않게 아내에게도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여러분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사는 재미는 서로 서로가 통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말이 통해야 하고 특히 부부간에는 육체적으로 통해야 합니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목석과 함께 사는 것 같을 것입니다.
육체적으로 궁합이 맞지 않으면 살지 못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영적으로 서로 통하는 일입니다.
성령의 교통이 없으면 참으로 답답합니다.
말이 안 통하고 육체적으로 통하는 것이 없어도 성령으로 하나가 되면 이것은 찰떡 궁합이 됩니다.
부부가 온전히 하나가 될 수 있음은 육신적인 교통과 더불어 영적인 교통이 있어야 합니다.
이 영적인 교통이 없는데 별로 답답함을 느끼지 못하고 살수가 있다면 이것보다 더 큰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의 몸에 어떤 부분이 몸과 교통이 없는 부위가 있으면 그냥 가만히 나 두겠습니까?
이 지체 때문에 내 몸이 먼저 불편을 느낄 것이요 그리고 계속적으로 그냥 방치하면 그 지체는 몸과 상관이 없어 질 것입니다.
그래서 그냥 놔두지를 않는 것입니다.
귀가 들리지 않아 말을 하지 못하는 자가 있으면 수화를 해서라도 통해야 하며 앞을 못 보는 자가 있으면 점자를 통해서라도 뜻이 통하게 하지 않습니까?
예레미야가 왜 이토록 눈물을 흘리며 눈물을 요구하고 있습니까?
이스라엘이 멸망한 사실만을 두고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았음을 통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가 없었기 때문에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이제 더 이상 방치하여 두지 말아야 합니다.
어떠한 비극이 생길지를 모릅니다.
하나님과 완전히 단절되어 버리는 고통이 따르게 될 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내 사랑하는 남편 아내 부모 자녀 형제를 위하여 눈물을 흘려야 할 때 인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보다 더 급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눈물의 기도를 반드시 들어주십시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그 단을 거두리로다
눈물을 흘릴 때에 하나님은 잠잠하지 않으시고 다 들으시고 심지어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의 양을 보시기까지 하신다고 합니다.
한가지 확신 할 수 있는 것은 오늘 우리에게는 하나님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안심과 평안을 얻은 것에만 만족하고 안타까워하여 흘리는 눈물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있다고 한다면 얼마나 흘렸습니까?
우리의 주위를 살펴 볼 때에 하나님과의 교통을 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망하게 된 내 사랑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사업과 생업이 문제가 아닙니다.
다른 육체적인 문제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아니하는 그들의 마음이 큰 문제입니다.
이들의 강퍅한 마음을 위하여 이제 우리가 울 일 만이 남았습니다.
밤낮으로 주의 앞에서 울기를 시작합시다.
하나님의 위로와 기적 같은 치료가 있을 것입니다.
이제 부활절기를 앞두고 여러분의 눈덩이는 퉁퉁 부어져 있어야 합니다.
울기만 하기만 하면 구원의 역사가 일어 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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