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을 이루게 하는 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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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568회 작성일 2009-05-2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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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7:8-13 구원을 이루게 하는 근심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그 소녀는 벽을 향하여 답답해하며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나는 당신을 미워합니다, 정말 당신은 있습니까 ?
있다면 왜 나 같은 사람을 이렇게 두십니까 ?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하였잖아요 ?
그런데 왜 나에게는 사랑대신 저주만 주십니까 ?
몸을 제대로 움직이게 하시든지, 말을 남들처럼 제대로 하게 하든지, 우리 아버지라도 건강하게 해서 남들처럼 돈을 잘 벌어 제대로 살게 하든지, 아니면 죽을 길을 열어 주든지, 이것도 저것도 아니잖아요.
이도 저도 아니라면 내 앞에 하나님의 얼굴이라도 나타내어 보세요.
당신은 정말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고, 믿을 수도 없고, 안 믿을 수도 없는 존재이면서, 왜 나를 이렇게 비참하게만 만듭니까 ?
하나님 !
난 어찌해야 합니까 ?
혼자서 학교도 갈 수 없고, 학교를 간다해도 누가 나를 가르쳐 주겠습니까 ?
말도 제대로 못하고,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며, 글씨도 앉아서는 쓸 수도 없는데….
나는 어떻게 해야 좋겠습니까 ?.
하늘의 시인으로 알려진, 선천성 뇌성마비 소녀 송명희 자매의 부르짖음이었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은 것 있으니 남이 못 본 것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것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닫았네......
지금은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찬송시집을 비롯해서 여덟 권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송명희 시인이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하기 이전 비참하고, 불행했던 장애인으로서의 자신의 애환을 폭로한 탄식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아픔이 있다는 것을 불행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인생의 길에 장애가 있다는 것을 실패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근심과 걱정이 있다는 것을 고민만 해서는 안됩니다.
근심 걱정이 있다는 것은 곧 우리가 진정 살아있다는 확실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떠나서 싸늘하게 굳어버린 시체는 결코 아픔을 느끼지 않습니다.
정상적인 인간의 의식이 없는 식물인간은 어떤 문제에 대해서 결코 근심하거나 고통스러워하지 않습니다.
신체 마디마디가 썩어 문드러지는 나병환자들은 병이 깊어지면 감각이 무뎌진다고 합니다.
한번은 나병환자 한사람이 발바닥이 간질간질해서 보니까 굵은 대못이 발에 박혀 있더랍니다.
대못이 발에 깊이 박혔는데도 잘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건전한 정신과 육체를 가진 사람은 조그마한 가시에 찔려도 아파하며, 걱정거리가 있을 때는 잠 못 이루고 고민하고 근심하는 것은 정상입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고민을 하느냐 ? 고민을 하지 않느냐가 아니라 고민을 하되 무엇을 고민하느냐 ? 하는 것입니다.
근심을 하되 무슨 문제 때문에 근심하느냐 ? 이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적인 일로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어떻게 살까? 에만 너무 고민하다가 비관해서 자신을 포기하게 되고, 어떤 이는 자신이 속이 좀 상 하다고 남을 원망하고 불평하다가 급기야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저주하기도 합니다.
이런 근심과 걱정은 하지 말아야 할 근심과 걱정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나는 과연 무엇을 고민하고 있습니까 ?
참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를 고민하고 있습니까 ?
나는 어떤 사람인가 ?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
인생의 근본 문제에 대해서, 그리고 자기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진지한 실존적인 고민을 해 보았습니까 ?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생명의 근원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의 죽음 이후에 있을 영원한 세계에 대해서,
죽고 난 다음에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이 신앙적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 보았습니까 ?
정말로 고민해야할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은 고민하지 않아도 될 문제는 결코 고민하지 않습니다.
고민하지 않아도 될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은 정말로 고민해야 할 문제는 고민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근심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해야할 근심과 하지 말아야할 근심이 있습니다.
세계 제2차 대전 때에 미군이 전쟁에서 잃은 생명이 35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2차 대전 때 전쟁에 대한 염려와 공포 때문에 심장 마비 등으로 죽은 사람이 그 보다 훨씬 더 많다고 합니다.
사람을 죽이는 전쟁보다 더 무서운 것이 염려와 근심의 병이라는 사실입니다.
하지 말아할 근심 즉 세상 근심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니 하지 말아야 하고 성경에는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이 무려 55O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해야할 근심 즉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니 해야 합니다.
10절을 보십시요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 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육적인 근심은 사망에 이르게 하지만 영적인 근심은 사람으로 하여금 회개하게 하여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게 합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에는 세상일로 인하여 근심과 걱정을 많이 하고 있는 줄로 압니다.
이 염려 걱정에서 벗어나 이 시간에 오히려 축복을 받을 비결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먼저 하나님에게서 내가 떨어져 나갈까 염려하라 하십니다.
히3:12에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말씀합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있어서 최대의 축복이 무엇입니까?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게된 것이 내 인생 최대의 축복인 줄로 믿으십니까?
이 축복의 대열에서 떨어질까 삼가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지는 것은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내 스스로가 하나님께로부터 떨어져 있음을 망각 할 때 죽음은 순식간에 찾아옵니다.
구약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생활 40년동안 하나님의 계속적인 기사와 이적을 체험하면서도 세상일 때문에 먹는일 마시는 일등으로 하나님을 시험하고, 원망하고,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행동만 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성도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은혜를 듬뿍 받고 살아가면서도 세상적인 일로 인하여 마음이 강퍅해져서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감을 염려해야 합니다.
히3:15-16에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주님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 할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듣고 격노케 하던 자가 누구뇨
하나님을 격노케 하고 하나님의 노하심을 입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이 아니라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은혜를 받은 사람들 이였습니다.
고전10:10-12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 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저희에게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우리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고 말씀하십니다.
넘어질까 조심하라.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의심하다가 떨어지고, 원망하다가 떨어지고, 교만하다가 떨어지고, 강퍅하여 떨어져 나갑니다.
우리는 세상적인 일로 인하여 불순종의 사람이 되어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 염려해야 할 것은 내 골육친척의 구원을 위하여 염려하라 하십니다.
롬9:1-3에 내가 그리스도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으니 --성령 안에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다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의 큰 감화 감동을 받고 보니 형제와 골육의 친척을 위한 큰 근심이 있었습니다.
내 부모 형제들의 구원을 위하여 근심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여인이 불이 난 자기 집에서 그녀의 그림들과 가장 애지중지하는 가구들을 바쁘게 끌어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오랜 시간 동안 열심히 수고했으나 그의 사랑하는 어린 자녀들의 생명을 구하지는 못했습니다.
갑자기 그녀의 머리에 자기 자녀 중 하나가 실종되었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그 한 아이를 불타는 집 속에 두고 나온 것입니다.
그 어머니가 황급히 다시 방안으로 돌진해 들어갔을 때 이미 그 방은 불이 활활 타고 있었고 아이는 죽어 있었습니다.
그때 그 여인은 비통한 나머지 양손을 비틀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탄식하며 통곡하였습니다.
그 하잘것없는 것들을 구하려다가 사랑하는 자식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혈육의 정 만을 나누다가 그들의 영혼을 잃어버리게 될까바 염려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주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라고 하십니다.
고후11:23-29에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많은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며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굶고 춥고 헐벗었었노라 이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고 사도 바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수고, 충성, 봉사하고 옥에 갇혀 수없이 고문을 당하여 죽을 고비를 많이 넘기고 많은 위험, 애씀, 주리고, 목마르고, 춥고, 헐벗었습니다.
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만은 이런 건 고사하고 이런 것은 아무 것도 아니란 말씀입니다.
오히려 그에게 속에 짓눌리는 염려가 있는데 그것이 주의 교회를 위하여 하는 염려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빌4:6에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하였습니다만 해야할 염려가 있는데 그것은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진실 된 성도라면 자기의 집안 살림 못지 않게 주님의 피로사신 몸 된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윗과 솔로몬이 성전을 지게 된 동기가 무엇입니까?
나는 내 집에 편안히 거하는데 하나님은 초라한 장막에 거하도록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것은 곧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위하여 근심하며 기도하고 봉사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주님과 교회를 결혼관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남녀간의 사랑은 결혼으로 그 열매를 맺습니다.
결혼할 수 없는 사랑은 불완전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을 진정 사랑한다면 우리도 주님과 결혼을 해야 합니다.
세례식이 바로 결혼식입니다.
결혼했으면 반듯이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가정을 이루지 못한 부부라면 어떤 이유가 있더라도 불행한 일입니다.
비록 부족한 것이 많을지라도 한 가정을 지키고 알뜰하게 살아가는 주부가 훌륭한 것처럼 우리교회가 완전하지는 못해도 교회에 몸담아 충성을 다한다면 그 신앙은 바르게 성장하고 하나님의 축복도 상급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우리 교회가 잘 되도록 염려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모든 성도들은 부흥에 염려하며 힘쓰셔야합니다.
우리 교회가 시대적인 사명을 다 할 수 있도록 염려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대구에 장로로 봉직하는 한 친구가 있습니다.
이 친구는 세계 각국에서 각종 천을 가지고 와서 나염을 하여 다시 수출을 하는 일을 하는데 얼마나 바쁜지 모릅니다.
그래서 하는 말이 자기 같은 경우는 주일날 좀 쉬어야 하는데 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주일 날 봉사를 통하여 자신에게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주일은 온전히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세상의 근심과 걱정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로 아뢰고 이 근심에서는 자유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진짜로 해야 할 근심은 내가 혹시나 믿음에서 떨어지는 일은 하지 않나 하는 근심을 하고 또 내 혈육의 구원을 위하여 염려하고, 내가 섬기는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상 염려는 여러분들을 죽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염려는 여러분들을 범사에 구원하고 이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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