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십자가를 져야만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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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520회 작성일 2009-05-27 09:41본문
로마서 5:6-11 누가 십자가를 져야만 하나
이번 주일은 예수님께서 스스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시는 종려주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겉옷을 벗어 길에 깔고 종려가지를 꺾어들고 길에 깔기도 하며 호산나, 호산나하며 주님을 영접하였다고 해서 종려주일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리고 이번 주간은 예수님이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저 무덤에서 장사지내기까지 하신 고간 주간이기도 합니다.
왜 이 땅에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어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셔야만 하는가? 입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그 누구도 십자가를 지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 어떤 사람도 십자가를 질만큼 잘 못 한 일을 자신에게서 찾아 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상담자에게 결혼하여 4개월이 된 아이를 둔 한 여인이 상담을 하려 찾아 왔습니다.
이 상담의 요지는 대략 다음과 같았습니다.
자신은 잘 못을 한 것이 하나도 없고 오히려 다른 이에게 최선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정죄의 대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미워 죽겠다는 것입니다.
소위 말하면 시어머니도 시누이도 시자 달린 사람모두가 정죄의 대상이 되고 보니 심지어 남편도 정죄를 하는 것입니다.
이 여인을 바라보던 상담자가 말하기를 참으로 당신이 모든 것을 잘하였다는 것은 인정이 되나 당신에게 전혀 잘 못이 없다는 생각하는 그것이 큰 잘 못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사람의 특징은 자기 자신을 바로 보지 못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의로운 자라고 여기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신학을 7개 부위로 나눠 설명하는 조직 신학이 있습니다.
서론, 신론, 인간론,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 이렇게 나눠지는데 인간론을 다른 말로 이렇게 부르기도 합니다.
인죄론이라고 부릅니다.
곧 인간은 죄인이라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의 모습에서도 우리의 인간의 모습을 여러 모양으로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6절에 연약하다라고 표현했는데 이 말은 스스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어떤 조건도 찾아 볼 수 없는 그런 소망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8절에는 죄인이라고 하였으며 의롭지도 선하지도 못하였다는 말입니다.
10절에는 도리어 하나님과 원수가 된 상태에 놓여 있으니 저주와 사망 아래 있을 뿐입니다.
죄인이 자기가 죄인이라고 하는 사람 보았습니까?
사람이 가장 듣기 싫은 소리가 당신이 잘 못했다 당신이 죄인이라는 소리입니다.
왜 그렇게 듣기 싫은 줄 아십니까?
자신이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죄인을 보고 죄인이라 하면 듣기 싫어합니다.
사람이 악하면 악할수록 절대로 자신을 가리켜 죄인이라 하지 않습니다.
무슨 변명을 하든지 어떻게 하든지 자신의 의로움을 들어내려고 하는 그런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절대로 죄인임을 말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죄인이라는 결정적인 단서가 들어 나면 그 때에 가서 비로소 고개를 숙이고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하고 죄인임을 시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전까지는 죽어도 의로운 자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모두가 의롭다 하니 예수님 당신이 죄인이 되신 것입니다.
대제사장 가야바의 뜰에서 종교 재판이 벌어졌습니다.
누가 죄인이냐 입니다.
어떤 결론이 났습니까?
대제사장도 의롭고, 백성의 장로들도 의롭고, 그리고 서기관들도 의롭고, 구경나온 사람들 그 누구도 의롭지 않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로마의 교황이 지금도 있습니다.
교황은 세계의 대통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의 인자한 모습에 모두가 감격을 자아냅니다.
그래서 교황청은 교황 무오설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교황은 죄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들 중에 그 누구도 예수님 앞에서 자신이 죄인이라고 말하는 사람 없었습니다.
그러면 누가 죄인입니까?
다 의로운 자들뿐이니 예수님이 정죄를 당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예수 당신이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빌라도의 법정에서 정치적인 재판이 벌어졌습니다.
역시, 누가 죄인이야? 입니다.
최고의 권력자 로마 황제 가이샤가 어찌 죄인이겠습니까?
세상의 권력을 가지면 아무도 죄인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의 대통령이 죄인입니까?
북한의 국방 위원장이 그 나라에서 죄인입니까?
그 이름만 들어도 온 국민은 눈물을 흘립니다.
그렇다고 유대의 분봉왕 헤롯이 죄인이라고 하겠습니까?
그렇다고 재판을 집행하는 빌라도 입니까?
아닙니다.
그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을 박게 내어주며 그 손을 씻으면서 예수의 죽음의 피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하며 자신의 죄 없음을 말하였습니다.
또한 그 곳에 모인 온 군중들은 모두가 목에다가 핏줄을 세우면서까지 외쳐 대기를 예수가 죄인이라고 소리를 질러 대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을 목격한 자요 3-4일 전까지만 해도 호산나하고 우리를 구원해 달라고 했던 자들입니다.
저 흉악한 살인 강도 바라바는 용서 할 수 있지만 예수는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흉악한 살인 강도 바라바 보다 더 흉악한 죄인으로 전락이 되고 붉은 죄수복을 입고 채찍에 맞으며 저 영문 밖으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올라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세상 사람모두가 다 의롭다고 하니 예수님은 죄인이 되어 십자가를 지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아직도 우리는 우리 가운데서 스스로 가장 의로운 자라 생각을 하고 있으니 또 다시 예수님은 우리 가운데 죄인이 되시어 십자가를 지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십자가를 보고 한결같이 외치기를......
예수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고 하였습니다.
아마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예수의 십자가의 고난은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십자가요 그리고 그 십자가는 저주스럽고 부끄러운 십자가로만 여겨 질 것입니다.
영광과 자랑스러운 십자가는 되지를 못 할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셔야만 합니까?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기 때문에 우리 죽을 죽음을 대신 십자가를 지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아침에 우리 죽을 대신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여 예수여 나의 죄 위하여 보배 피를 흘리니 죄인 받으소서
노예시대에 어떤 사람이 깊은 산림지대를 가족들과 함께 지나게 되었습니다.
맹수들이 많으므로 충성스런 마부는 총을 준비하고 갔습니다.
한참을 가다가 갑자기 말이 놀라서 멈춥니다. 뒤를 보니 늑대들이 쫓아옵니다.
채찍을 휘둘렀지만 말들이 늑대보다 빨리 달리지를 못했습니다.
늑대는 점점 다가오고.... 어쩔 방법이 없었습니다. 온 가족이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총을 쏘아도 워낙 많은 늑대들이 쫓아옵니다.
아직도 마을은 먼데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때에 마부가 주인에게 말하기를 주인님, 여기는 제게 맡기시고 힘껏 달리십시오... 하는 수 없이 주인은 마부만을 남겨두고 가족들을 태운 말을 몰아 힘껏 달렸습니다.
그들은 겨우 마부의 희생을 통하여 살아 남을 수가 있었습니다.
나중에 마을 사람들을 동원하여 와 보니 마부는 죽고 그 시체는 다 뜯겨서 앙상한 뼈만 남았습니다.
마부는 주인의 가족을 위해서 생명을 바친 것입니다.
마부 때문에 주인 가족은 살게 된 것입니다.
죄의 삯는 사망입니다.
이 엄연한 사실 앞에 우리 모두는 그 누구도 부정 할 수가 없습니다.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그리고 우리의 몸은 이 산천에 한 줌의 흙이 되어 뿌려 질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영혼은 지옥의 형벌을 면치 못 할 것입니다.
사망의 화살은 우리의 죄를 향하여 마구 쏘아 됩니다.
모두가 죄로 인하여 죽을 지경입니다.
감히 이 죄악의 짐을 지고 갈 사람은 그 누구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 없으신 예수님을 죄 있는 자로 정하시고 우리의 죄를 대신지게 하시고 우리의 죽음을 대신 죽게 하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더 이상 사망의 화살을 우리에게 쏠 수가 없습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입니다.
죄인된 우리가 예수님 때문에 의롭게 되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자리를 옮긴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자 여러분은 여러분 스스로를 보실 때에 이제 의롭다고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죄인이라 하시겠습니까?
아니 의인이라는 소리가 듣기 좋습니까?
아니면 죄인이라는 소리도 은혜 스럽습니까?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이 아니라 내 스스로가 나를 볼 때에 말입니다.
아직도 내 스스로 잘난 의인이라고 여기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입니다.
예수 십자가의 효험이 되지 못하니 모든 생활이 부정적으로 보며 불만스러운 삶을 살 것입니다.
어찌 모든 일들이 제대로 되겠습니까?
그러나 참으로 내가 죄인임을 느끼는 자는 이번 고난 주간에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며 감사하는 자가 될 수 있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늘 울어도 그 큰 은혜 다 갚을 수 없네 나 주님께 몸 바쳐서 주의 일 힘쓰리 할렐루야!
이제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하여 고난받으심을 믿는 자의 삶은 한없는 긍정적인 삶을 살아 갈 것입니다.
모든 일이 합력 하여 선이 되고 화가 변화여 복이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동화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임금님이 한가로이 정원을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온 식물들이 모두다 시들고 풀이 죽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떡갈나무에게 물어보니 나는 아무리 봐도 못생겼는데, 저기 옆에 있는 저 전나무보다 더 못생겼으니 어떻게 살맛이 나겠습니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전나무에게 물어보니 나는 저기 있는 포도나무처럼 열매도 못 맺는데 나 같은 것이 어디에 쓸모가 있겠습니까?하고 풀이 죽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포도나무에게 물어보니 포도나무는 나는 저기 있는 장미꽃처럼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도 못 피우고 사람들이 좋아하지도 않는데 무슨 살맛이 있겠습니까?하고 탄식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장미꽃에게 물어 봤더니 장미꽃은 자기는 가시 투성이라 고 하면서 저기 피어 있는 제비꽃만도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비꽃을 바라보니 제비꽃은 웃음을 머금고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너는 어찌하여 다른 식물들은 다 풀이 죽어 있는데 왜 너만 활짝 웃고 있느냐하고 물었더니, 제비꽃이 말하기를 저는 키가 작고 볼품은 없지만 임금님이 오실 때 활짝 핀 모습을 보이려고 이렇게 피었습니다 하면서 활짝 웃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11절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할렐루야!
이번 고난 주간을 맞이하여 아직도 내 의만 열거하며 부정적인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불만에 가득 찬 자가 한 사람도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이번 고난 주간에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하며 자신의 부족함을 시인하는 자가 되어 긍정적인 삶에 긍정적인 축복의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번 주일은 예수님께서 스스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시는 종려주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겉옷을 벗어 길에 깔고 종려가지를 꺾어들고 길에 깔기도 하며 호산나, 호산나하며 주님을 영접하였다고 해서 종려주일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리고 이번 주간은 예수님이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저 무덤에서 장사지내기까지 하신 고간 주간이기도 합니다.
왜 이 땅에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어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셔야만 하는가? 입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그 누구도 십자가를 지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 어떤 사람도 십자가를 질만큼 잘 못 한 일을 자신에게서 찾아 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상담자에게 결혼하여 4개월이 된 아이를 둔 한 여인이 상담을 하려 찾아 왔습니다.
이 상담의 요지는 대략 다음과 같았습니다.
자신은 잘 못을 한 것이 하나도 없고 오히려 다른 이에게 최선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정죄의 대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미워 죽겠다는 것입니다.
소위 말하면 시어머니도 시누이도 시자 달린 사람모두가 정죄의 대상이 되고 보니 심지어 남편도 정죄를 하는 것입니다.
이 여인을 바라보던 상담자가 말하기를 참으로 당신이 모든 것을 잘하였다는 것은 인정이 되나 당신에게 전혀 잘 못이 없다는 생각하는 그것이 큰 잘 못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사람의 특징은 자기 자신을 바로 보지 못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의로운 자라고 여기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신학을 7개 부위로 나눠 설명하는 조직 신학이 있습니다.
서론, 신론, 인간론,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 이렇게 나눠지는데 인간론을 다른 말로 이렇게 부르기도 합니다.
인죄론이라고 부릅니다.
곧 인간은 죄인이라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의 모습에서도 우리의 인간의 모습을 여러 모양으로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6절에 연약하다라고 표현했는데 이 말은 스스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어떤 조건도 찾아 볼 수 없는 그런 소망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8절에는 죄인이라고 하였으며 의롭지도 선하지도 못하였다는 말입니다.
10절에는 도리어 하나님과 원수가 된 상태에 놓여 있으니 저주와 사망 아래 있을 뿐입니다.
죄인이 자기가 죄인이라고 하는 사람 보았습니까?
사람이 가장 듣기 싫은 소리가 당신이 잘 못했다 당신이 죄인이라는 소리입니다.
왜 그렇게 듣기 싫은 줄 아십니까?
자신이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죄인을 보고 죄인이라 하면 듣기 싫어합니다.
사람이 악하면 악할수록 절대로 자신을 가리켜 죄인이라 하지 않습니다.
무슨 변명을 하든지 어떻게 하든지 자신의 의로움을 들어내려고 하는 그런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절대로 죄인임을 말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죄인이라는 결정적인 단서가 들어 나면 그 때에 가서 비로소 고개를 숙이고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하고 죄인임을 시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전까지는 죽어도 의로운 자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모두가 의롭다 하니 예수님 당신이 죄인이 되신 것입니다.
대제사장 가야바의 뜰에서 종교 재판이 벌어졌습니다.
누가 죄인이냐 입니다.
어떤 결론이 났습니까?
대제사장도 의롭고, 백성의 장로들도 의롭고, 그리고 서기관들도 의롭고, 구경나온 사람들 그 누구도 의롭지 않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로마의 교황이 지금도 있습니다.
교황은 세계의 대통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의 인자한 모습에 모두가 감격을 자아냅니다.
그래서 교황청은 교황 무오설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교황은 죄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들 중에 그 누구도 예수님 앞에서 자신이 죄인이라고 말하는 사람 없었습니다.
그러면 누가 죄인입니까?
다 의로운 자들뿐이니 예수님이 정죄를 당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예수 당신이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빌라도의 법정에서 정치적인 재판이 벌어졌습니다.
역시, 누가 죄인이야? 입니다.
최고의 권력자 로마 황제 가이샤가 어찌 죄인이겠습니까?
세상의 권력을 가지면 아무도 죄인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의 대통령이 죄인입니까?
북한의 국방 위원장이 그 나라에서 죄인입니까?
그 이름만 들어도 온 국민은 눈물을 흘립니다.
그렇다고 유대의 분봉왕 헤롯이 죄인이라고 하겠습니까?
그렇다고 재판을 집행하는 빌라도 입니까?
아닙니다.
그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을 박게 내어주며 그 손을 씻으면서 예수의 죽음의 피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하며 자신의 죄 없음을 말하였습니다.
또한 그 곳에 모인 온 군중들은 모두가 목에다가 핏줄을 세우면서까지 외쳐 대기를 예수가 죄인이라고 소리를 질러 대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을 목격한 자요 3-4일 전까지만 해도 호산나하고 우리를 구원해 달라고 했던 자들입니다.
저 흉악한 살인 강도 바라바는 용서 할 수 있지만 예수는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흉악한 살인 강도 바라바 보다 더 흉악한 죄인으로 전락이 되고 붉은 죄수복을 입고 채찍에 맞으며 저 영문 밖으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올라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세상 사람모두가 다 의롭다고 하니 예수님은 죄인이 되어 십자가를 지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아직도 우리는 우리 가운데서 스스로 가장 의로운 자라 생각을 하고 있으니 또 다시 예수님은 우리 가운데 죄인이 되시어 십자가를 지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십자가를 보고 한결같이 외치기를......
예수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고 하였습니다.
아마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예수의 십자가의 고난은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십자가요 그리고 그 십자가는 저주스럽고 부끄러운 십자가로만 여겨 질 것입니다.
영광과 자랑스러운 십자가는 되지를 못 할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셔야만 합니까?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기 때문에 우리 죽을 죽음을 대신 십자가를 지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아침에 우리 죽을 대신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여 예수여 나의 죄 위하여 보배 피를 흘리니 죄인 받으소서
노예시대에 어떤 사람이 깊은 산림지대를 가족들과 함께 지나게 되었습니다.
맹수들이 많으므로 충성스런 마부는 총을 준비하고 갔습니다.
한참을 가다가 갑자기 말이 놀라서 멈춥니다. 뒤를 보니 늑대들이 쫓아옵니다.
채찍을 휘둘렀지만 말들이 늑대보다 빨리 달리지를 못했습니다.
늑대는 점점 다가오고.... 어쩔 방법이 없었습니다. 온 가족이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총을 쏘아도 워낙 많은 늑대들이 쫓아옵니다.
아직도 마을은 먼데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때에 마부가 주인에게 말하기를 주인님, 여기는 제게 맡기시고 힘껏 달리십시오... 하는 수 없이 주인은 마부만을 남겨두고 가족들을 태운 말을 몰아 힘껏 달렸습니다.
그들은 겨우 마부의 희생을 통하여 살아 남을 수가 있었습니다.
나중에 마을 사람들을 동원하여 와 보니 마부는 죽고 그 시체는 다 뜯겨서 앙상한 뼈만 남았습니다.
마부는 주인의 가족을 위해서 생명을 바친 것입니다.
마부 때문에 주인 가족은 살게 된 것입니다.
죄의 삯는 사망입니다.
이 엄연한 사실 앞에 우리 모두는 그 누구도 부정 할 수가 없습니다.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그리고 우리의 몸은 이 산천에 한 줌의 흙이 되어 뿌려 질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영혼은 지옥의 형벌을 면치 못 할 것입니다.
사망의 화살은 우리의 죄를 향하여 마구 쏘아 됩니다.
모두가 죄로 인하여 죽을 지경입니다.
감히 이 죄악의 짐을 지고 갈 사람은 그 누구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 없으신 예수님을 죄 있는 자로 정하시고 우리의 죄를 대신지게 하시고 우리의 죽음을 대신 죽게 하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더 이상 사망의 화살을 우리에게 쏠 수가 없습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입니다.
죄인된 우리가 예수님 때문에 의롭게 되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자리를 옮긴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자 여러분은 여러분 스스로를 보실 때에 이제 의롭다고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죄인이라 하시겠습니까?
아니 의인이라는 소리가 듣기 좋습니까?
아니면 죄인이라는 소리도 은혜 스럽습니까?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이 아니라 내 스스로가 나를 볼 때에 말입니다.
아직도 내 스스로 잘난 의인이라고 여기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입니다.
예수 십자가의 효험이 되지 못하니 모든 생활이 부정적으로 보며 불만스러운 삶을 살 것입니다.
어찌 모든 일들이 제대로 되겠습니까?
그러나 참으로 내가 죄인임을 느끼는 자는 이번 고난 주간에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며 감사하는 자가 될 수 있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늘 울어도 그 큰 은혜 다 갚을 수 없네 나 주님께 몸 바쳐서 주의 일 힘쓰리 할렐루야!
이제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하여 고난받으심을 믿는 자의 삶은 한없는 긍정적인 삶을 살아 갈 것입니다.
모든 일이 합력 하여 선이 되고 화가 변화여 복이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동화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임금님이 한가로이 정원을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온 식물들이 모두다 시들고 풀이 죽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떡갈나무에게 물어보니 나는 아무리 봐도 못생겼는데, 저기 옆에 있는 저 전나무보다 더 못생겼으니 어떻게 살맛이 나겠습니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전나무에게 물어보니 나는 저기 있는 포도나무처럼 열매도 못 맺는데 나 같은 것이 어디에 쓸모가 있겠습니까?하고 풀이 죽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포도나무에게 물어보니 포도나무는 나는 저기 있는 장미꽃처럼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도 못 피우고 사람들이 좋아하지도 않는데 무슨 살맛이 있겠습니까?하고 탄식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장미꽃에게 물어 봤더니 장미꽃은 자기는 가시 투성이라 고 하면서 저기 피어 있는 제비꽃만도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비꽃을 바라보니 제비꽃은 웃음을 머금고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너는 어찌하여 다른 식물들은 다 풀이 죽어 있는데 왜 너만 활짝 웃고 있느냐하고 물었더니, 제비꽃이 말하기를 저는 키가 작고 볼품은 없지만 임금님이 오실 때 활짝 핀 모습을 보이려고 이렇게 피었습니다 하면서 활짝 웃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11절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할렐루야!
이번 고난 주간을 맞이하여 아직도 내 의만 열거하며 부정적인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불만에 가득 찬 자가 한 사람도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이번 고난 주간에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하며 자신의 부족함을 시인하는 자가 되어 긍정적인 삶에 긍정적인 축복의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