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중보자이신 성령의 인도함을 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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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529회 작성일 2009-05-2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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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4:16-24 또 다른 중보자이신 성령의 인도함을 받자
오는 6월 첫째 주는 성령강림 주일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후 7주 째가 되는 날로서 초대 교회에 성령이 임한 사실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교회도 성령의 은혜를 힘입어 살아가야 하는 것을 일깨워 주는 날이기도 합니다.
어떤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성령을 보내 주신다는 약속하신 날이 이르매 사람들이 다락방에 모여서 열심히 기도를 하는 가운데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할렐루야!
그 성령은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임하였습니다.
갑자기 하늘로부터 강한 바람이 불어오는데 그 소리가 온 집에 가득 하였습니다.
성령은 다른 말로 바람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흙으로 빚어 놓으시고 그 코에다가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후하고 불어넣었을 것입니다.
그 사실은 우리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숨을 후하고 내시고는 성령을 받으라고 했습니다.(요2;20)
그리고 성령이 임하는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였다고 했습니다.
불이 이글이글 탈 때에 보면 혀 바닥 같이 불꽃이 널름널름 하는 것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이같이 성령은 소리가 나며, 볼 수 있도록 임하였는데 그 때에 모여서 기도하는 자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습니다.
이렇게 성령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을 통하여 교회가 세워지는 원동력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 역시 성령의 역사 하심을 따라 주님의 교회가 세워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튼튼히 세워지고 바르게 나아 갈 수 있는 길은 이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성령 충만한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의 결정적인 잘못은 성령을 인정도 환영도 아니하고 모셔들이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 와 계셔도 인격적인 대우를 하지 않고 무시하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가 전혀 없고 인본주의적인 교회가 되어 제도와 조직만 살아 있는 냉랭한 교회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할렐루야!
다른 보혜사란 곧 예수님과 똑같이 그 제자들을 위로하고 인도하고 도와주시고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는 그런 역할을 하는 인격을 가진 예수님의 연 성령을 보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냥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영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알코올 중독자는 알코올에 사로잡히고 마약을 맞은 자는 마약 중도자가 되고 귀신에 사로잡힌 자는 귀신들린 자가 되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에 사로잡히는 자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그 속에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했습니다.(로마서 8:9)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영의 인도하심을 받지 않으면 정상적인 신앙 인으로 살수가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다른 말로 바꾸어 말씀을 드리면 그리스도 영의 인도함을 받을 때에 정상적인 신앙 인으로 살아 갈 수가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 누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오늘날은 성령의 시대가 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성령은 오늘 저와 여러분 가운데 함께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자리에 임재 하시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성령은 충만하게 임하여 계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입을 열기만 하면 공기 속의 산소가 우리 입을 통하여 가슴속으로 들어가 우리 육신에게 생명을 주듯이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르고 입을 열어 기도하기만 하면 성령이 여러분의 가슴속에 충만하게 임하는 것입니다.
시편 말씀에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81:10)라고 했으니 영혼의 입을 크게 열어 기도하면 성령은 우리 안에 가득 차게 들어오십니다.
또한 성령은 인격적으로 우리를 감화 감동을 시키십니다.
사도행전 13장 2절에도 보면 안디옥 교회 성도들이 금식하며 기도하는데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하는 말씀이 있는데 이는 성령께서 당신의 뜻에 따라 일을 시키시는 결단의 의지를 가지셨음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이 인격자인 것을 알면 인격자로 대접해야 됩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영접할 때에 우리 속에 오셔서 우리를 인격적으로 도우시는 하나님이시니 이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감사하고 모셔들이지 아니하고 무시하면 성령은 슬퍼하시고 소멸되고 진노하시며 떠나시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집에 키우는 개도 얼마나 대접을 잘 해 주는지 모릅니다.
절대로 개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아야 개가 그 집에 붙어있지 천대해 보십시오
그러면 그 개는 그 집을 박차고 나가 버리고 맙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이 땅에 강림해서 우리 가운데 일하고 계신 성령님은 우리처럼 육신은 가지고 있지 않으나 지식과 감정과 의지를 가진 인격적인 존재임으로 늘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는 삶을 살아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공연히 이곳에 와 계시는 분이 아니라 성령은 여러분과 함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이곳에 와 계신 분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적인 구주일 뿐 아니라 우리 육신의 삶의 동업자이기도 하십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은 우리를 영생으로 이끌어 나갈 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서 인생 동업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고기 잡은 배를 빌려서 그 곳에 오셔서 말씀을 증거 하시고 난 다음에 베드로의 동업자가 되셨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깊은 곳에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으라고 하시고는 친히 베드로와 함께 일을 해 주신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반드시 성령님과 동업을 했었습니다.
예루살렘 공 의회에서 이방인에게 율법을 지키게 해야 될 것이냐? 아닐 것이냐? 라는 문제를 놓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이때 그들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가 한 줄 알았노니...(행 15:28). 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공 의회에서 그들만 의논한 것이 아니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함께 계셔서 이러한 진리에 도달하게 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은 이와 같이 여러분들의 삶에 아주 좋은 상담자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입을 열어 구하기만 하십시오 아주 좋은 동업자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혼자 고민하지 마시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스승 되셔서 진리로 인도하시니 그 말씀 한 절 한 절이 내 맘에 교훈 되도다 할렐루야!
또한 성령은 우리의 약함을 잘 아시고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대신 간구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를 도우실 때 우리는 세상의 어느 누구보다도 더 강한 자가 될 수가 있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은 아주 미미한 우리의 존재를 아주 능한 전혀 새로운 존재로 바꾸어 놓습니다.
약하였던 자들이 강하여지고, 무능한 자들이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게 되고, 미련하던 자들이 지혜롭게 되고, 두려워하던 자들이 용기를 얻게됩니다.
세상 근심에 사로잡혀 염려만 하든 자들이 변하여 하나님 나라의 귀한 일군이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약속이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 속에 그대로 성취된 것입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기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시41:10). 할렐루야!
성령이 우리 안에 충만히 거하심으로 우리는 두려움과 모든 공포에서 벗어나 강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빌4:13)고 자신 있게 말하지 아니하였습니까?
성령은 우리의 약함을 도우려 오신 분입니다.
이제 우리 영혼의 입을 크게 벌려 성령을 호흡합시다.
인생은 혼자서는 여기까지 오지 못하고 결코 살지 못했습니다. 누군가의 도우심으로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한결같이 부모님의 도우심, 선생님, 선배, 후배들의 밀어줌을 통하여 삶을 살아왔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도우심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그 때문에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님을 보내 주실 것을 거듭거듭 강조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고 라고 하셨으며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라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혜사라고 부르심은 우리 곁에 부름을 받아 돕기 위하여 항상 함께 계신 이란 뜻으로 쉽게 말씀을 드리자면 성령께서는 우리들의 연약함을 도우시기 위하여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신 분이시라는 것이다. 할렐루야!
이러므로 오늘날 우리의 삶의 모든 결정은 내가 단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과 함께 결정하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은 성령님께서 책임을 지고 이끌어가고 계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인생에 실패하는 이유는 성령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음성을 회피하며 하는 사역은 육의 일에 불과하고 아무런 결과도 맺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영의 인도함이 없이 인간의 힘으로 하려고 하는 모든 일은 종국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아무 의미도 없고 인간으로서는 실패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기다리고 그 음성에 귀를 기울이면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지혜와 지식과 총명을 주시고 깨달음을 주셔서 여러분의 갈 길을 환하게 보이도록 인도해주십니다.
꿈과 환상을 보지 못했다 할지라도 성령을 기다리면 성령은 여러분에게 깨달음을 주셔서 여러분을 이끄시고 여러분의 마음속에 소원을 일으켜서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여러분을 이끌어가고 도와주기 위해서 와 계시는 내 인생의 동업자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성령은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십니까?
마음에 말씀으로 감동 감화를 주십니다.
말씀을 가르치고 말씀이 생각나게 하며 말씀을 순종하게 하십니다.
세상과 성도의 구분은?
성령의 말하심에 따라 순종하느냐? 하지 않느냐? 의 차이입니다.
사람이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자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세상으로는 아무리 희망이 없는 자라 할지라도 예수 안에서 그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희망 있는 자가 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세상적으로는 다 실패해도 믿음의 실패를 결코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조그마한 문제가 있으면 신앙 생활을 등한시하려고 하지 말고 더 열심히 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살지 못하니까 이 세상에서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이 고달픈 짐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속에 충만하셔서 우리를 참 진리의 세계로 인도하여 주시므로 근심 덩어리가 바뀌어 기쁨과 활기가 넘치는 즉 우리의 이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성령과 함께 하는 자의 특징은 무엇이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자에게는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의 영혼이 살아갈 수 있는 대기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기가 없으면 우리가 숨을 쉴 수 없듯이 성령의 바람이 없으면 우리의 영은 질식하게 마련입니다.
대기가 온 지구를 둘러싸고 있듯이 오순절 이후 성령을 대기와 같이 우리를 둘러싸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깨닫고 언제 어디든지 숨을 크게만 쉬면 성령은 우리 안에 가득하게 들어와 계시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호흡작용과 같아서 숨을 깊이 들이 마시면 많은 산소가 우리의 폐 속에 들어와 피를 맑게 하는 것과 같이, 우리가 영의 호흡을 깊이 하면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의 영혼을 맑게 하십니다. 할렐루야!
여기서 우리는 힘을 얻고 하나님 아버지를 알고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생명의 의미를 깨닫게 되어 그를 위해 헌신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성령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성령의 대기 안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숨을 쉬는 것입니다.
숨을 크게 쉬므로 곧 입을 열어 기도하므로 성령을 우리 안에 받아들일 일만이 남아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미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받아 드리는 일이 문제입니다.
영혼의 호흡 즉 기도하는 일입니다.
호흡이란 계속적이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가 꾸준히 기도할 때 성령은 우리 안에 새로운 능력으로 함께 하실 것입니다.
구하는 자에게 구하는 것을 주시며, 찾는 자에게 찾게 하시며, 두드리는 자에게 열어주시는 하나님께서 영혼의 문을 여는 자에게 성령으로 충만케 하시지 않겠습니까?
특별히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할 때 성령은 우리 가운데 들어오십니다.
갈라디아서 3장 14절에 보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오순절에 예루살렘 다락방에 모였던 사람들은 그곳에서 기도에 힘썼다고 하였습니다.
요한 복음에 보면 지금까지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16:24)고 하였습니다.
결국 믿음으로 기도하는 자에게 성령이 오시고 그가 우리 속에 기쁨을 넘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번 성령 강림절을 맞이하여 우리가 기도함으로서 우리와 함께 동업하시고 도와주시고 응답하시는 성령의 충만한 역사가 일어나는 기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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