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생사와 화복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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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574회 작성일 2011-03-25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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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2:1-7 당신의 생사와 화복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올해 신수나 운수나 점을 본 사람 있습니까? 손금을 보고 관상을 보았습니까? 스포츠 신문에 재미로 보는 운수는 어땠습니까? 오늘 확실히 보여 드리겠습니다.
사람의 운명은 어떤 해에 태어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또한 어떤 지역에 태어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창조주 되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 하나님의 주권에 순응하는 삶을 사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인생들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갈 때 그 인생은 복 있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2:6-7 하나님은 우리 인생들을 죽이기도 하시며 살리기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며 높이기도 하시고, 가난하게도 하시며 부하게도 하시고, 음부에 내리기도 하시며 올리기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주권에 전적으로 순응하는 삶을 살아갈 때 운수대통하게 됩니다.
본문의 한나라는 여인은 하나님 때문에 팔자를 고쳤습니다.
그녀의 운명이 바뀌어졌습니다.
그녀의 말과 같이 5절 전에 임신을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다고 하였습니다.
요사이는 자녀에 대한 관심이 뜨겁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때 당시만 해도 자녀를 생산하지 못하면 천벌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애매한 여자 분들이 곤욕을 치르게 됩니다.
우리나라도 애매한 여자 분들이 소박맞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사실 그 부분에 대하여 하나님이 주관하고 계심을 성경에는 여러 군데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것 뿐만 아니라 만사가 하나님이 주관하고 계신다고 하십니다.
지금 세계는 민주화 바람이 거세계 불고 있습니다.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중동지역 아프리카에서 수십 년 독재 정치를 한자들을 몰아내는 시민저항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집트 리비아 시리아 예멘 등등 하나님이 세계 정치사에 새로운 바람을 불고 있습니다.
저 북쪽에도 하나님이 불게 하시면 김 씨 정권 무너질 것을 믿습니다.
하여튼 결혼한 여자로서 자녀가 없었기에 슬픔의 삶을 살았습니다.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죽을 맛입니다. 성경에서는 생산의 능력이 없으면 죽은 자라고 하였습니다.
살아 있지만 죽은 것 같은 …….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 역시 생산하지 못했음을 가리켜 죽는 자라고 했습니다.
히11:12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그러니 이게 얼마나 힘이든 인생입니까?
모든 인생은 죽은 자입니다. 무엇으로 죽었는가? 죄로 죽었습니다.
모든 인간은 죄의 결과로 죽을 수밖에 없다. 이것은 인간의 한계이다.
창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롬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고전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여기의 죽는 것이라는 원어는 자연적인 죽음을 가리켜 영과 육의 분리 상태를 가리킨다.
하나님이 한 번 결정하신 것이 결코 변경될 수 없음과 인간은 누구나 예외 없이 죽음의 형벌 속에 있음을 보여 준다.
이 죄악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가리어져 있고 단절되어 있습니다.
사59:1-2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죽을 것만 같은 삶을 살다가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후에는 다른 죽음이 남아 있습니다.
롬5:12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영원한 죽음이 아직 남아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 둘째 사망 이라고 부르고 있다.
계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죽은 자를 한 번 더 죽이는 꼴이 됩니다.
죽으면 끝나는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의 죽을 고생은 여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죽음은 육체의 한계성이 확연히 드러난 상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우리 육체의 한계성은 인생의 한계성과 직결이 됩니다.
그래서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라는 성경 말씀을 알지 못하는 사람일지라도 자신의 죽음을 무의식적으로 준비하며 삽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세상만을 논하는 자는 살아 있지만 죽은 자입니다.
딤전5:6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자신의 죽음의 일반적인 요인이 되는 육체의 한계성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계성을 가져 온 요인
생명을 얻을 기회를 상실하였습니다.
원래 창조 받았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육체도 영생 불사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 분명합니다.
창2: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창2:16-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 복판에 생명나무를 준비해 놓으시고 첫 조상들에게 네가 임으로 먹으라고 허락하셨음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은영생불사의 호기를 따르기를 싫어하고 사망을 가져오는 선악과를 취함을 더 좋아하는 것입니다.
롬1: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이제라도 그러므로 우리의 육체를 선용해야 합니다.
이 땅에 있는 동안 우리의 육체로 의의 도구가 되게 해야 합니다
롬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롬6: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롬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몸을 하나님의 의의 도구로 드릴 때 얼마든지 영생을 얻을 수 있는 몸으로 회복될 수 있습니다
주여 나의 죽을 몸을 통하여 주의 종을 생산하기를 원하나이다
이게 한나의 기도입니다.
여태까지 자식이 없어서 한탄도 하고 투기도 하고 자녀가 없다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었지 왜 나에게 자녀가 있어야 하는지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왜 라는 동기 부여가 되지 않으면 육체적으로만 움직이게 됩니다.
주일 학생들에게도 동기가 부여되지 않는 질문을 주었을 때에 참으로 우스운 결과를 초래합니다.
지혜로움과 친구들과의 교제 오래삶등을 선택 할 때에 오래 사는 것을 선택하였다는 것입니다.
오래 사는 것이 동기와 목적이 없으면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됩니다.
100세를 산다고 좋아 할 일이 아닙니다.
당장 뭐하고 살고, 뭐 먹고 살고, 이 고민이 앞서고요 100세 장수가 걱정입니다.
한나는 자녀에 대한 동기부여를 하였습니다.
삼상1:11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삼상1:28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가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잘 키워 하나님을 위한자로 세우겠습니다 입니다.
여러분은 왜 자녀를 얻으려고 하십니까? 노후보장, 대리만족, 엄청 실망 할 것입니다.
처음 다 장군감 대통령감 출발하다가 나중에는 제발 사람 구실하고 네 밥 벌이나하라 너희들 끼리나 싸우지 말고 잘 살아라 아닙니까?
한나는 그 동기부여 끝에 사무엘을 얻고 그 목적대로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죽은 자가 산 자가 된 것입니다.
죽음은 하나님과의 단절
인간은 원래 무한 영원하신 하나님과 교제해야만 하는 상대적 존재로 지음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유일한 피조물이 인간이며 이는 영생하시는 하나님과 교제를 나눠야만 영생을 누릴 수 있는 존재로 그 숙명을 지니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 스스로 영생자 하나님을 배신하고 불신한 대가로 오늘날까지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자연인들은 무한자이신 하나님과 단절된 삶을 살아오고 있기에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영혼의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의 생명을 상실한 인간의 육체는 하나의 물질적이 의미밖에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한번 대화해 보세요
세상 이야기뿐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육체는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지 않는 한 본질적으로 낡고, 쇠하며, 결국은 죽음을 당해야 하는 한계성을 지닌 것입니다.
시89:48 누가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자기의 영혼을 스올의 권세에서 건지리이까 라고 슬퍼합니다.
육체의 한계를 극복하는 길은
갈6:7-8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성령님의 내주하심
롬8:11-13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서 거듭난 성도의 몸을 생명의 성령님이 내주하시는 성전입니다.
성령은 살리는 영입니다.
롬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말씀 안에서 행함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육체의 한계는 예수만으로 극복된다
십자가에 옛사람을 못 박음으로
롬6:6-8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줄을 믿노니
구원은 하나님께
삼상2:1 한나가 기도하여 이르되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
6-7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상당히 깊숙이 들어간 농촌에서 전도하던 선교사 스미스 부인이 심한 병에 시달리게 되어 선교 본부에 자기 병의 증상을 낱낱이 보고하고 돈이 오기를 기다리는데 돈이 오질 않아 안달을 하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음식도 넉넉하지 못하고 약이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었다.
한 달 가량 고생을 하고 있는데 송금이 도착했다. 참으로 원망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이듬해 안식년을 맞아 본국으로 돌아간 스미스 선교사는 건강진단을 받게 되었는데 1년 전 몹시 앓았던 병의 증상을 설명하자 의사는 빙그레 웃으며 선교사님. 선교사님의 병을 알겠군요. 그 병은 오트밀 정도의 부드러운 식사로 조금씩 영양을 섭취해가며 한 달 정도를 거의 굶는 식이요법으로 음식을 조절해야 낫는 병이었는데 송금한 것이 꼭 한 달 늦게 도착했다니 그 늦게 도착한 것이 선교사님의 생명을 구한 것입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참으로 하나님은 모든 것을 뜻 깊게 이뤄나가시는 것을 알고 스미스 선교사는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바로 모든 것을 다 보시는 하나님과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인간들이 가지는 생각의 차이이다.
수돗물 꼭지를 틀면 물이 쏟아져 나오듯 모든 것이 즉각 응답이 되어야 직성이 풀리고 믿음이 있는 것같이 보이나 하나님의 주판에는 그런 계산으로 나타나 있지 않다.
때와 장소는 물론 응답되고 안 되는 것까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눈에는 다 다르게 비치고 있을 경우가 허다함을 알아야 한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적극적인 사고방식이란 책을 써서 유명한 노만 빈센트 필 목사님에 대한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필 목사님이 길을 가는데 한 중년 남자가 인사를 합니다. 목사님, 자고 일어나면 문제, 문제 속에서 살다가, 문제 속에서 하루를 마치는데, 좀 문제가 없는 곳이 없습니까? 목사님이 대답합니다. 여기 가까운 곳에 3,4천의 인구가 있는데, 그 중에 문제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아니, 그곳이 어디입니까? 가르쳐주십시오. 제가 거기 가서 살겠습니다, 바로 이 언덕 넘어 공동묘지입니다라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문제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죽은 사람만이 문제가 없을 뿐입니다.
그러기에 문제를 담담히 받아들이고, 그 문제 많은 삶을 하나님의 동기를 부여하고 죽을 것 같지만 살고 화를 받는 것 같지만 복이 됩니다.
그래서 그녀는 하나님을 가리켜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사실 그녀는 죽었다가 살아난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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