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에 인내하는 삶은 백배의 결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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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616회 작성일 2011-03-25 19:57본문
누가복음 8 : 9-15 말씀에 인내하는 삶은 백배의 결실이 있습니다.
오늘도 하늘에서 왜 비가 내립니까?
사55:10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하늘에서 왜 태양이 빛을 발하고 있습니까?
신33:14 태양이 결실하게 하는 선물과 태음이 자라게 하는 선물과
왜 전라도 경상도 땅이 있습니까?
창8:22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왜 나를 불러 주셨습니까?
요15:1-2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관심사는 은혜를 받았다면 열매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도 성도들을 가리켜 백배나 열매를 맺을 자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과나 귤나무를 심으면 3년이 지나야 열매를 맺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0년생 정도 된 나무는 500여개씩 열매가 열린다고 합니다. 또 옥수수씨 한 개를 심으면 줄기가 자라서 둘 또는 세 자루의 열매를 맺는데 한 자루에 적어도 200-300알 정도의 옥수수가 달리게 된다고 합니다. 이 경우 씨 하나가 약 600배 정도의 결실을 한 셈입니다. 겁나게 열려 버립니다
하나님께 부름을 받아 헌신한 사람도 이와 같은 결실이 그의 생애를 통해 나타납니다.
은혜는 받았다고 하지만 열매가 없다면 은혜는 결코 은혜가 되지 못합니다.
그 열매로 나무를 말해 주기 때문입니다.
마7:16-20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창26:12-13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성도들의 삶에 풍성한 열매가 영육간에 결실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결실은 어떻게 가져 옵니까? 결실의 근거는 말씀입니다 열매를 가져오게 하는 씨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11절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말씀의 특성은 누구에게나 뿌리어집니다. 오늘도 뿌립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대한 반응이 다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의 성도들에게 뿌려지지만 그것을 받는 사람들은 무관심하거나, 일시적이거나, 혹은 지속적으로 반응하지 않기에 결국 말씀이 열매 맺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이 없기 때문도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이 없기 때문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류가 새롭게 출발 할 때마다 들려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에게 창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만물을 심판 후에 노아에게 창9:1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아브라함에게도 야곱에게도 출애급시에도 번성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시간에도 영육 간에 번성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말씀으로만 그 뜻을 이루십니다.
사55:11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마 5: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참으로 하나님의 뜻은 열매가 풍성하시기를 원하실 뿐만 아니라 그 뜻은 이루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고 말씀을 잘 받아 드리면 그대로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편에는 문제가 없으시는데 사람인 내가 문제가 됩니다.
사람 마음의 밭이 여러 가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두에게 열매를 맺도록 씨를 뿌렸습니다.
길 가에 있든지 바위 위에 있든지 가시떨기에 있든지 말씀을 들은 자입니다.
그런데 반응이 제 각각입니다.
길가와 같은 사람은 육적인 본능으로 사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본능적이다 함은 동물의 의식수준에서 별로 나아가지 못한 사람입니다.
쇠귀에 경 읽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일러도 알아듣지 못하는 아둔한 사람이나 관심 없는 사람에게 이르는 말입니다 개돼지가 말씀을 듣고 변화되었다는 것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성경에는 짐슴을 가리켜 유1:10 그들은 이성 없는 짐승 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시49:20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이들은 영적이고 내적인 감각이 마비되어 있어서 진리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며 마귀가 그 진리를 가져가도 전혀 눈치 채지 못합니다.
이들은 오랫동안 교회에 다니고 오랫동안 기도를 하고 기적을 경험하고 응답을 받을 수 있지만 은혜는 많이 받았다고 하지만 그 가치관도 잘 바뀌지 않으며 의식도 거의 없는 상태입니다.
그 사람의 마음에는 말씀이 없습니다.
바리새인과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마음에서 선과 악, 의와 불의를 구분 짖고 율법이 정한 자신들만의 의로운 길을 가고 있었다.
이들의 마음에는 다른 길이 나있으므로 예수의 말씀을 받을 수 없고 말씀이 그들 마음에 떨어질 때 그들의 길위에 떨어진 말씀은 마귀가 주워 먹어 버렸다. 말씀을 듣기는 듣지만 그 마음은 사탄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10-20년 평생을 신앙생활을 해도 은혜는 많이 받았다고 하지만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열매는 전혀 기대하지 못합니다.
어떻게 신앙 생활하는데 세상 사람들과 똑같습니까?
돌밭 이 밭에 속한 사람은 감정적인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말씀을 받을 때 즉시 기쁨으로 받습니다.
그들은 쉽게 주님의 은총을 체험하며 그것을 기뻐하고 찬양을 하고 무엇이든지 다 할 것 같이 말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기쁨은 그리 오래 가지 않습니다.
말씀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하여 육적인 것에 익숙한 내가 영적인 사람으로 바뀌려고 하니 육적인 내가 힘이 드는 것입니다.
영적인 사람이 힘든 것이 아니라 육신적인 삶에 찌든 내가 바뀌려고 하니 환란입니다.
술에 찌든 자가 담배 골초가 어디 하루아침에 술 담배 끊지 못합니다. 건강에 적신호가 오고 다른 사람들이 싫어하니 끊어야 되는데 힘이 드니 이것이 힘드니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항상 은혜를 받지만 그 후에는 항상 은혜를 받은 만큼 실족합니다.
은혜 받은 만큼 시험에 드는 자입니다. 은혜를 베풀어도 겁이 나요 그 만큼 시험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약1:12-14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삶에서 고난의 시련을 겪지 않으려고 하는 자들의 마음은 부와 명예와 권력에 굳어져 말씀의 씨가 자랄 수 없는 황폐한 심령입니다.
고생해보지 않고 자란 자 사람 안 된다 하지 않습니까? 북쪽의 김씨집 아들들 사람들이 아닙니다.
고생해 보지 않고 제 멋대로 자랐습니다. 지금 과수나무 가지치기 적기가 왔습니다. 그래야 실한 열매가 열립니다.
삶 속에서 고난을 겪어보지 아니하므로 이세상의 삶의 안일과 평안을 좇는 자들의 마음은 하나님 편에서 보면 말씀의 씨를 뿌릴 수 없는 개간되지 않아 말씀을 받아 싹을 낼 수 없는 땅이다.
개간되지 않은 땅에는 뿌리를 내릴 수 없어 즉시 말라 버린다.
인간은 삶 속에서, 희로애락의 고난 속에서, 마음의 세계는 개간된다.
시편119:71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고난을 싫어하는 오늘의 현대인들 아니 그리스도인들 문제가 많습니다.
고난을 피하여 편하기 위하여 종교 생활하는 그들은 정작 고난이 오면 예수를 배신하는 사이비 신자들이다.
기쁨으로 받았지만 시련을 피하면 가륫유다 같지 예수를 배신하는 자가 됩니다.
13절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련을 당할 때에 배반하는 자요
은혜 받았다고 좋아라고 만 하지 말고 받은 은혜 감당하는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더 은혜로운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자는 억지로라도 고난을 감당하게 하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인내의 명수 욥은 23:10-12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
복잡하게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14절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좋은 것 다하고 할 것 다하고 예수를 따르려고 하니 언제 열매 맺겠습니까?
염려 할 것 다하고 돈도 좋아하고 즐길 것 다 즐기고
염려 주께 맡기고 벧전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돈을 사랑하지 말고 딤전6: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딤전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향락에 빠지면 죽습니다. 딤전5:6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그런데 기도의 제목이 또 내 육신을 위한대로 가버린답니다.
북쪽 이스라엘이 성전에 가면 하나님은 없고 금송아지만 있는 것입니다. 성전에 와도 하나님 한번 못 만나고 갑니다. 성전 뜰만 밝고 가는 셈이 됩니다.
진정한 예배가 무엇입니까? 내 자신을 하나님의 뜻에 드리는 것이지 나의 필요만 구하는 것이 예배가 압니다.
이방인들의 예배는 자신들의 필요를 구하는 것입니다.
애매한 돼지머리 콧구멍에 신사임당 쑤어 놓고 무엇을 구합니까? 왜 굿을 합니까? 조상에게 왜 제사를 드립니까? 자기가 효도하려고 부모 살아 게실 적에 전혀 돌보지 않는 자도 제사 제사 열 올립니다.
복 받겠다고 하는 것 아닙니까?
우상으로 섬기는 마음 위에 물질 축복, 사업 축복, 영혼 축복을 빌어 복음의 씨를 곁들여 심으니 잘 믿는 듯 하나 궁극에 가서 물질 시험이 오면 예수를 떠난다.
복음의 결실이 맺히지 않는다.
돈이 있어야 구제도 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다는 변명 뒤에 재물로 인한 시험이 오면 등을 돌리는 출애급 광야 백성들과 같다.
저는 우리 성도들에게서 이런 좋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돈으로 교회를 섬기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만약에 돈으로 하는 자들은 시험을 당해도 벌써 당하였을 것이요
내 형편에서 하지 못하겠다고 악을 쓸 것입니다.
히11:24-26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예수가 온 것은 세사의 것을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마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대부분의 교인들은 죄 사함의 은혜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더욱이 구원하심을 감사하지도 않고 구원에 합한 삶은 아예 생각지도 않고 무엇을 안 주시나 하고 고래고래 소리치고 있으니 열매는 무슨 열매 항상 거두지 못하는 쭉정이만 있을 뿐이니 불면은 다 날라 가 버릴 것입니다.
그래서 각종 유혹에 시달립니다.
길바닥도 돌짝도 가시밭도 쓸모없는 땅이 아닙니다. 잘 가꾸면 옥토가 됩니다. 많은 결실을 가져옵니다.
열매 맺는 마음 밭. 이는 좋은 땅이며 옥토(沃土)이다. 이러한 마음은 어떠한 사람들일까?
말씀을 받고 그 말씀이 결실하기까지 인내합니다.
인내라는 말뜻은 whipo + mene, 아래에 머문다 입니다. 아래 머무는 일은 결코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비록 힘들고 어렵고 답답하고 아프고 갑갑할지라도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들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약1:2-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식물들은 그 뿌리가 유난히 길다고 합니다. 어떤 뿌리는 식물 크기의 8배나 되는 것들도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땅 속 깊은 곳에 있는 지하수의 물을 얻으려는 까닭입니다.
그 뿌리가 바로 성도의 신앙 인내심입니다. 인내는 믿음의 다른 얼굴입니다.
인내는 어느 정도가 인내입니까? 열매 맺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약5:7-8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어느 예수님을 잘 믿는 처녀가 중매를 통해서 어느 믿지 않는 총각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을 믿기로 하면 시집을 가겠다고 하자, 총각이 약속하고 결혼했는데 몇 번 교회를 나가더니 어느 날부터 자기 어머니는 불교의 보살이므로 교회 나가는 것을 반대한다고 하면서 막기 시작합니다. 그래도 교회를 나가니까 한잔씩 먹고 와서 때리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맞으면서 30년을 교회를 다녔답니다. 어느 토요일 날은 말하기를 ‘내일 친구들이 온다.’고 하면서 대접할 준비를 하라고 하더랍니다. 그러나 주일을 범할 수 없어서 술상을 차려 놓고 교회로 가 버렸습니다. 교회를 갔다 오니 죽도록 때립니다. 그러나 그 여집사는 온 몸이 멍이 들고 쑤시었으나 찬송을 부르면서 닭장에 가서 닭을 잡아 통닭을 만들어 남편에게 가져와서 말하기를 오늘 내가 매를 맞아 보니 당신이 50세가 넘으니 옛날과는 달리 너무 힘이 없는 것 같습니다. 보신하십시오. 라면서 저녁상을 디밀고는 다시 주일 밤예배에 나갔답니다. 교회 갔다 오니 남편이 한다는 소리가 니는 천사고, 나는 마귀재라더랍니다. 결코 아니다고 했더니 다음주부터 나도 교회 나가겠다고 하더랍니다. 그 때부터 교회를 열심히 다니더니 나중에는 훌륭한 장로님이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도 하늘에서 왜 비가 내립니까?
사55:10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하늘에서 왜 태양이 빛을 발하고 있습니까?
신33:14 태양이 결실하게 하는 선물과 태음이 자라게 하는 선물과
왜 전라도 경상도 땅이 있습니까?
창8:22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왜 나를 불러 주셨습니까?
요15:1-2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관심사는 은혜를 받았다면 열매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도 성도들을 가리켜 백배나 열매를 맺을 자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과나 귤나무를 심으면 3년이 지나야 열매를 맺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0년생 정도 된 나무는 500여개씩 열매가 열린다고 합니다. 또 옥수수씨 한 개를 심으면 줄기가 자라서 둘 또는 세 자루의 열매를 맺는데 한 자루에 적어도 200-300알 정도의 옥수수가 달리게 된다고 합니다. 이 경우 씨 하나가 약 600배 정도의 결실을 한 셈입니다. 겁나게 열려 버립니다
하나님께 부름을 받아 헌신한 사람도 이와 같은 결실이 그의 생애를 통해 나타납니다.
은혜는 받았다고 하지만 열매가 없다면 은혜는 결코 은혜가 되지 못합니다.
그 열매로 나무를 말해 주기 때문입니다.
마7:16-20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창26:12-13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성도들의 삶에 풍성한 열매가 영육간에 결실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결실은 어떻게 가져 옵니까? 결실의 근거는 말씀입니다 열매를 가져오게 하는 씨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11절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말씀의 특성은 누구에게나 뿌리어집니다. 오늘도 뿌립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대한 반응이 다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의 성도들에게 뿌려지지만 그것을 받는 사람들은 무관심하거나, 일시적이거나, 혹은 지속적으로 반응하지 않기에 결국 말씀이 열매 맺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이 없기 때문도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이 없기 때문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류가 새롭게 출발 할 때마다 들려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에게 창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만물을 심판 후에 노아에게 창9:1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아브라함에게도 야곱에게도 출애급시에도 번성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시간에도 영육 간에 번성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말씀으로만 그 뜻을 이루십니다.
사55:11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마 5: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참으로 하나님의 뜻은 열매가 풍성하시기를 원하실 뿐만 아니라 그 뜻은 이루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고 말씀을 잘 받아 드리면 그대로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편에는 문제가 없으시는데 사람인 내가 문제가 됩니다.
사람 마음의 밭이 여러 가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두에게 열매를 맺도록 씨를 뿌렸습니다.
길 가에 있든지 바위 위에 있든지 가시떨기에 있든지 말씀을 들은 자입니다.
그런데 반응이 제 각각입니다.
길가와 같은 사람은 육적인 본능으로 사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본능적이다 함은 동물의 의식수준에서 별로 나아가지 못한 사람입니다.
쇠귀에 경 읽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일러도 알아듣지 못하는 아둔한 사람이나 관심 없는 사람에게 이르는 말입니다 개돼지가 말씀을 듣고 변화되었다는 것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성경에는 짐슴을 가리켜 유1:10 그들은 이성 없는 짐승 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시49:20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이들은 영적이고 내적인 감각이 마비되어 있어서 진리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며 마귀가 그 진리를 가져가도 전혀 눈치 채지 못합니다.
이들은 오랫동안 교회에 다니고 오랫동안 기도를 하고 기적을 경험하고 응답을 받을 수 있지만 은혜는 많이 받았다고 하지만 그 가치관도 잘 바뀌지 않으며 의식도 거의 없는 상태입니다.
그 사람의 마음에는 말씀이 없습니다.
바리새인과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마음에서 선과 악, 의와 불의를 구분 짖고 율법이 정한 자신들만의 의로운 길을 가고 있었다.
이들의 마음에는 다른 길이 나있으므로 예수의 말씀을 받을 수 없고 말씀이 그들 마음에 떨어질 때 그들의 길위에 떨어진 말씀은 마귀가 주워 먹어 버렸다. 말씀을 듣기는 듣지만 그 마음은 사탄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10-20년 평생을 신앙생활을 해도 은혜는 많이 받았다고 하지만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열매는 전혀 기대하지 못합니다.
어떻게 신앙 생활하는데 세상 사람들과 똑같습니까?
돌밭 이 밭에 속한 사람은 감정적인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말씀을 받을 때 즉시 기쁨으로 받습니다.
그들은 쉽게 주님의 은총을 체험하며 그것을 기뻐하고 찬양을 하고 무엇이든지 다 할 것 같이 말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기쁨은 그리 오래 가지 않습니다.
말씀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하여 육적인 것에 익숙한 내가 영적인 사람으로 바뀌려고 하니 육적인 내가 힘이 드는 것입니다.
영적인 사람이 힘든 것이 아니라 육신적인 삶에 찌든 내가 바뀌려고 하니 환란입니다.
술에 찌든 자가 담배 골초가 어디 하루아침에 술 담배 끊지 못합니다. 건강에 적신호가 오고 다른 사람들이 싫어하니 끊어야 되는데 힘이 드니 이것이 힘드니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항상 은혜를 받지만 그 후에는 항상 은혜를 받은 만큼 실족합니다.
은혜 받은 만큼 시험에 드는 자입니다. 은혜를 베풀어도 겁이 나요 그 만큼 시험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약1:12-14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삶에서 고난의 시련을 겪지 않으려고 하는 자들의 마음은 부와 명예와 권력에 굳어져 말씀의 씨가 자랄 수 없는 황폐한 심령입니다.
고생해보지 않고 자란 자 사람 안 된다 하지 않습니까? 북쪽의 김씨집 아들들 사람들이 아닙니다.
고생해 보지 않고 제 멋대로 자랐습니다. 지금 과수나무 가지치기 적기가 왔습니다. 그래야 실한 열매가 열립니다.
삶 속에서 고난을 겪어보지 아니하므로 이세상의 삶의 안일과 평안을 좇는 자들의 마음은 하나님 편에서 보면 말씀의 씨를 뿌릴 수 없는 개간되지 않아 말씀을 받아 싹을 낼 수 없는 땅이다.
개간되지 않은 땅에는 뿌리를 내릴 수 없어 즉시 말라 버린다.
인간은 삶 속에서, 희로애락의 고난 속에서, 마음의 세계는 개간된다.
시편119:71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고난을 싫어하는 오늘의 현대인들 아니 그리스도인들 문제가 많습니다.
고난을 피하여 편하기 위하여 종교 생활하는 그들은 정작 고난이 오면 예수를 배신하는 사이비 신자들이다.
기쁨으로 받았지만 시련을 피하면 가륫유다 같지 예수를 배신하는 자가 됩니다.
13절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련을 당할 때에 배반하는 자요
은혜 받았다고 좋아라고 만 하지 말고 받은 은혜 감당하는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더 은혜로운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자는 억지로라도 고난을 감당하게 하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인내의 명수 욥은 23:10-12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
복잡하게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14절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좋은 것 다하고 할 것 다하고 예수를 따르려고 하니 언제 열매 맺겠습니까?
염려 할 것 다하고 돈도 좋아하고 즐길 것 다 즐기고
염려 주께 맡기고 벧전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돈을 사랑하지 말고 딤전6: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딤전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향락에 빠지면 죽습니다. 딤전5:6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그런데 기도의 제목이 또 내 육신을 위한대로 가버린답니다.
북쪽 이스라엘이 성전에 가면 하나님은 없고 금송아지만 있는 것입니다. 성전에 와도 하나님 한번 못 만나고 갑니다. 성전 뜰만 밝고 가는 셈이 됩니다.
진정한 예배가 무엇입니까? 내 자신을 하나님의 뜻에 드리는 것이지 나의 필요만 구하는 것이 예배가 압니다.
이방인들의 예배는 자신들의 필요를 구하는 것입니다.
애매한 돼지머리 콧구멍에 신사임당 쑤어 놓고 무엇을 구합니까? 왜 굿을 합니까? 조상에게 왜 제사를 드립니까? 자기가 효도하려고 부모 살아 게실 적에 전혀 돌보지 않는 자도 제사 제사 열 올립니다.
복 받겠다고 하는 것 아닙니까?
우상으로 섬기는 마음 위에 물질 축복, 사업 축복, 영혼 축복을 빌어 복음의 씨를 곁들여 심으니 잘 믿는 듯 하나 궁극에 가서 물질 시험이 오면 예수를 떠난다.
복음의 결실이 맺히지 않는다.
돈이 있어야 구제도 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다는 변명 뒤에 재물로 인한 시험이 오면 등을 돌리는 출애급 광야 백성들과 같다.
저는 우리 성도들에게서 이런 좋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돈으로 교회를 섬기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만약에 돈으로 하는 자들은 시험을 당해도 벌써 당하였을 것이요
내 형편에서 하지 못하겠다고 악을 쓸 것입니다.
히11:24-26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예수가 온 것은 세사의 것을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마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대부분의 교인들은 죄 사함의 은혜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더욱이 구원하심을 감사하지도 않고 구원에 합한 삶은 아예 생각지도 않고 무엇을 안 주시나 하고 고래고래 소리치고 있으니 열매는 무슨 열매 항상 거두지 못하는 쭉정이만 있을 뿐이니 불면은 다 날라 가 버릴 것입니다.
그래서 각종 유혹에 시달립니다.
길바닥도 돌짝도 가시밭도 쓸모없는 땅이 아닙니다. 잘 가꾸면 옥토가 됩니다. 많은 결실을 가져옵니다.
열매 맺는 마음 밭. 이는 좋은 땅이며 옥토(沃土)이다. 이러한 마음은 어떠한 사람들일까?
말씀을 받고 그 말씀이 결실하기까지 인내합니다.
인내라는 말뜻은 whipo + mene, 아래에 머문다 입니다. 아래 머무는 일은 결코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비록 힘들고 어렵고 답답하고 아프고 갑갑할지라도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들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약1:2-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식물들은 그 뿌리가 유난히 길다고 합니다. 어떤 뿌리는 식물 크기의 8배나 되는 것들도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땅 속 깊은 곳에 있는 지하수의 물을 얻으려는 까닭입니다.
그 뿌리가 바로 성도의 신앙 인내심입니다. 인내는 믿음의 다른 얼굴입니다.
인내는 어느 정도가 인내입니까? 열매 맺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약5:7-8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어느 예수님을 잘 믿는 처녀가 중매를 통해서 어느 믿지 않는 총각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을 믿기로 하면 시집을 가겠다고 하자, 총각이 약속하고 결혼했는데 몇 번 교회를 나가더니 어느 날부터 자기 어머니는 불교의 보살이므로 교회 나가는 것을 반대한다고 하면서 막기 시작합니다. 그래도 교회를 나가니까 한잔씩 먹고 와서 때리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맞으면서 30년을 교회를 다녔답니다. 어느 토요일 날은 말하기를 ‘내일 친구들이 온다.’고 하면서 대접할 준비를 하라고 하더랍니다. 그러나 주일을 범할 수 없어서 술상을 차려 놓고 교회로 가 버렸습니다. 교회를 갔다 오니 죽도록 때립니다. 그러나 그 여집사는 온 몸이 멍이 들고 쑤시었으나 찬송을 부르면서 닭장에 가서 닭을 잡아 통닭을 만들어 남편에게 가져와서 말하기를 오늘 내가 매를 맞아 보니 당신이 50세가 넘으니 옛날과는 달리 너무 힘이 없는 것 같습니다. 보신하십시오. 라면서 저녁상을 디밀고는 다시 주일 밤예배에 나갔답니다. 교회 갔다 오니 남편이 한다는 소리가 니는 천사고, 나는 마귀재라더랍니다. 결코 아니다고 했더니 다음주부터 나도 교회 나가겠다고 하더랍니다. 그 때부터 교회를 열심히 다니더니 나중에는 훌륭한 장로님이 되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