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승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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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711회 작성일 2011-03-25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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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17:45-49 인생의 승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어!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어!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어!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어!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어! 사랑하던 그 사람이어! 시인 김소월의 초혼이라는 시입니다.
이 시에서 소월이 표현하고 있는 죽은 대상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소월이 설움에 겹도록 부르고 있는,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시인이 애타게 부르고 있는 이름의 주인공은 소월이 사랑했던 삼순이도 아닌 오순 이라는 이름의 여인어었다고 한다. 소월과 오순은 사랑하지만 만날 수 없는 사이가 되고 소월이 22세 되던 해에 오순이는 대꼬챙이처럼 말라죽었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소월에 대한 상사의 아픔 때문이었다고 한다. 소월은 33세가 되던 해 마약덩이를 먹고 자살한다 소월은 초혼에서 산산히 부서진 이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을 노래하기도 했습니다. 진짜 죽어버렸습니다.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들은 갈멜산에서 여호와와 바알이 어느 신이 참 신인가 엘리야와 대결이 붙었는데 바알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왕상18:26 그들이 받은 송아지를 가져다가 잡고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러 이르되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하나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으므로 그들이 그 쌓은 제단 주위에서 뛰놀더라
바알 선지자 역시 바알의 이름을 부르다가 아무대답이 업고 부르다가 기손시내가에 가서 엘리야에게 목베임을 당하였습니다. 본문의 골리앗 역시 자신의 신 다곤의 이름으로 나오다가 다윗에게 목베임 당하고 죽었습니다.
43절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의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51절 다윗이 달려가서 블레셋 사람을 밟고 그의 칼을 그 칼집에서 빼내어 그 칼로 그를 죽이고 그의 머리를 베니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용사의 죽음을 보고 도망하는지라
이런 인생의 한계를 경험할 때 정말 불러야 할 이름이 있다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그 이름은 바로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본문에 그 유명한 다윗과 골리앗의 전투가 있습니다. 말 그대로 골리앗은 그의 육체적인 장대한 조건을 가지고 키가 2미터 70센티 정도 칼과 창과 단창으로 골리앗이라는 이름으로 나아왔습니다. 반면에 다윗은 자신의 이름으로 골리앗 앞으로 나아 갈만한 것이 없었지만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감으로 골리앗의 목이 달아나 버렸습니다.
45절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이름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잡히십니까? 그 하나님의 이름이 어떠한지 그 위력을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여러 이름 가운데서 가장 대표적인 여호와라는 이름입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에는 두 가지 뜻이 들어있다고 했는데, 영원자존자라는 의미가 있다고 했습니다. 곧 여호와란 이름의 뜻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뜻으로 모세가 바로왕 앞에 설 때에 소개한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출3:13-14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그리스도인-아담 그 이상은 하나님이시니라.
불신자-아담 이상은 원숭이요 그 이상은 연체동물이요 그 이상은 아메바요 함
그리고 여호와라는 이름은 한 번 언약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신다는 의미가 있다고 했습니다.
복음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핵심적인 진리, 열쇠처럼 중요한 진리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언약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구약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사 율법을 중심으로 하신 옛 언약이고, 신약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고 세우신 새 언약이니, 곧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는 언약입니다.
신. 구약 성경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32000번이나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언약이나 마찬가지라는 의미라고 했습니다.
민23:1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엘이란 의미는 능력있다 강하다는 뜻입니다.
이 엘이란 명칭은 강한 사람에게 사용된 경우도 있고, 또 권능있는 천사들에게도 사용된 이름입니다.
시 89:8 여호와 만군의 하나님이여 주와 같이 능력 있는 이가 누구리이까
하나님의 이름 엘이란 뜻은 모든 권능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나타내는 명칭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엘로힘 성경이 제일 처음으로 소개하는 하나님의 이름, 곧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이름은 엘로힘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신의 명칭은 바로 이 엘로힘의 하나님을 말합니다. 구약 성경에만 약 2천 번 이상 사용된 것으로 봅니다.
이 엘로힘이란 명칭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뜻이 들어 있습니다.
경외자라는 의미로 하나님은 인간들이 두려워해야 할 창조주로서, 경외의 대상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시2:10-11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성경은 인생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말씀합니다.
인생 위에 높이 계신 창조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인생의 본분이요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잠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엘로힘이란 강하고 초인적인 능력을 소유하신 위엄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도 큰 죄이지만,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평가절하 하는 것도 죄요, 무지임을 알아야 합니다.
골리앗이 자기가 죽을 줄도 모르고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45절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절대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주관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 세상과 삶의 주권이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그 길을 복되게 인도해 주십니다.
잠3: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엘리욘 하나님의 이름은 지극히 높으신 자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이 호칭은 주로 하나님의 지상 주권을 노래로 표현할 때 쓰여진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 46:4 하나님의 성 곧 지존하신 이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
개역 한글 하나님의 성 곧 지극히 높으신 자의 장막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
아도나이 주라는 뜻의 아도나이는 하나님의 대명사입니다.
여호와라는 성호를 직접 부르기를 두려워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함부로 쓰거나 무르지 못했습니다.
대신, 아도나이라는 대명사를 쓴 것입니다. 성경 필사 일을 하던 서기관들은 여호와라는 성호가 나올 때마다 붓을 일곱 번이나 다시 빨아서 아도나이라고 쓰기도 했습니다.
아도나이란 하나님께서 인류의 유일한 소유자시요, 통치자이시며, 주권자이심을 강조하는 이름입니다.
원래 이 주라는 명칭은 인격적으로 상대방에게 종속되겠다는 뜻을 나타낼 때 쓰이는 말입니다.
주라는 의미는 노예가 주인에게, 신하가 왕에게, 제자가 스승에게 경의를 표하며 부르던 칭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주여 주여라고 부를 때는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주인처럼 그 뜻에 순종하며, 스승처럼 섬기고 따르겠다는 것을 약속드리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시123:1-2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엘 샤다이 이 말은 엘과 샤다이라는 말의 복합어로 샤다이라는 뜻은 충분하다는 말로 엘샤다이는 곧 자족자라시라는 뜻인데, 우리말로는 전능자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이 엘샤다이라는 칭호는 특별히 하나님께서 언약을 세우실 때 나타내신 이름입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에 아들을 주시기 위해 그의 나이 99세 때 나타나셔서 일러주신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그 이름이 전능한 하나님 곧 엘 샤다이 하나님이십니다.
창17: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쯔바오트 라는 명칭은 만군의 하나님이라는 뜻으로 이스라엘의 지상군을 의미하고, 하늘의 별들의 무리를 의미하고, 천군 천사의 군대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만군의 여호와란 지상의 이스라엘의 군대와, 하늘의 별처럼 많은 천군 천사들의 총사령관 되시는 하나님, 악한 세력들을 쳐부수는 전쟁에 능하신 하나님을 강조하는 의미의 이름인 것입니다.
그러니 다윗이 쯔바오트의 하나님을 믿고 골리앗 앞에 가서 골리앗 목을 벤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역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하나님의 이름을 계시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노예 생활을 하면서 신음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이름을 여호와로 알려주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 언약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하시고자 할 때 그 이름을 여호와로 알려주셨습니다.
다윗은 이러한 하나님의 이름을 알기 때문에 골리앗 앞에 설 수 있었고 승리를 장담 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이런 하나님의 이름을 많이 알았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에 대하여 여러모양으로 기도 할 수 있었고 여러 환경에도 능히 극복 할 수가 있었습니다.
시 27: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시18:2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예수님도 놀라운 말씀을 하시지 않았습니까?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아마 이런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자들은 이 세상에서 주눅이 들지 않고 담대하게 살아 갈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세상에 겁을 크게 먹고 사는 것이 사실입니다. 무엇이 나를 제일 두려워하게 만듭니까?
2002년 얼마 전에 나이지리아 무기고 폭발사고로 수백명의 익사체가 발견된 오케아파운하 참사 현장을 취재중인 프랑스 AFP통신 사진기자 피우 오투미 에크페는 28일 너무 끔찍하다고 말했다. 나이지리아에 폭발사고가 일어 났습니다. 그런데 그 폭발로 인한 사망자 수는 수십명에 지나지 않았지만 폭발로 인하여 일어난 불을 피하기 위해 두려워 몸을 강에 던져 빠져 죽은 사람의 수가 수백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주님은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하십니다.
사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돈키호테를 쓴 세르반데스가 재산을 잃은 사람은 많은 것을 잃은 것이다. 친구를 잃은 사람은 더 많은 것을 잃어버린 것이다. 용기를 잃어버린 사람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이다.
로마의 정치가였으며 철학자였던 세네카도 힘들어서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용기를 내지 않기 때문에 힘든 것이다. 이런 사건을 통하여 발견하는 것은 인간이 가진 두려움이 사람을 죽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두려움을 물리쳐주신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요1서 5:4-5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나의 참된 용기를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이 나의 모든 어려움을 이겨 나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될 것입니다.
세상적인 조건이 아니고 범사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유대교 랍비이야기 한 부자가 예배 시간만 되면 늘 졸다가 성가대가 찬양을 하는데 레위기 24장 5-6절 말씀으로 그 내용은 12개 빵을 구어서 성전 안에 두라는 명령이 기록된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부자는 하나님께서 꿈속에서 나타나셔서 자기에게 빵 12개를 원하신다고 확신하고 집에 가서 빵을 구워 성전에 돌아와서 경전이 있는 궤에 빵을 넣어 두고 하나님께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을 기쁘게 해드리니 정말 기쁘군요 그리곤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얼마후 한 가난한 유대인이 회당에 들어와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주님, 저는 몹시 가난합니다. 저의 가족은 굶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습니다. 기적을 베푸시지 않으시면 우리는 모두 죽습니다. 그리고는 습관대로 성전 안을 정돈합니다. 단상에 올라가 궤를 열어 보았더니,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12개의 빵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이렇게 빨리 역사하실 줄이야! 그리고 집으로 가서 가족과 함께 나누었습니다. 얼마후 부자가 하나님께서 그 빵을 잡수셨는지 궁금해서 궤를 는데 빵이 없어졌습니다. 오, 하나님! 정말로 빵을 드셨군요! 다음에는 건포도가 든 빵을 만들어 오겠습니다. 그 다음 주에 부자는 다시 빵 12개를 만들어 와서 궤에 넣었습니다. 잠시 후 가난한 사람이 회당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어떻게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먹을 것이 다시없습니다. 7개는 먹었고, 4개는 팔았죠. 하나는 구제하기 위해 더 굶주린 사람에게 주었구요. 그러니 지금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또 다시 기적을 베푸시지 않으시면 우리는 정말 죽을 것입니다. 다시 궤에 가까이 갔습니다. 천천히 열었습니다. 또 다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번에는 건포도가 든 빵이군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매주 이러하기를 몇 년이 지났습니다. 어느 날 랍비가 보통 때보다 오래 회당에 머물렀습니다. 부자가 빵을 놓고 가고 가난한 자가 빵을 가져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랍비가 두 사람을 불러서 그동안 되어진 일을 말해 주었습니다. 부자가 슬픈 기색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그 빵을 드시지 않았군요. 가난한 자도 실망이제 알겠네요. 하나님께서 결코 나를 위해 빵을 구우시지 않으셨군요. 두 사람 모두 더 이상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시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 불안해합니다. 이때 랍비가 각자의 손을 보라고 합니다. 부자에게 당신의 손은 가난한 자들에게 음식을 만들어 주는 하나님의 손이요. 가난한 자에게 당신의 손은 부자로부터 선물을 받는 하나님의 손이요.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에 늘 함께 계십니다. 계속해서 빵을 구우시고, 빵을 받으세요. 당신의 손들은 하나님의 손입니다. 랍비는 실망한 부자와 가난한 자에게 놀라운 선언을 한 것입니다. 당신들의 손은 하나님의 손입니다.
교우여러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손도 하나님의 손인 것을 알고 계십니까?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에서 다윗이 이긴 이유는 간단합니다. 골리앗은 자기의 손이 바로 자기 자신의 손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전쟁놀이를 보면서 키워온 자신의 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손은 그 누구와도 비길 수 없는 무서운 손이었습니다. 스스로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이에 못지않게 다윗도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다윗은 일상생활 가운데서 자신의 손은 하나님의 손이라는 확신이 넘쳤습니다. 자신의 손은 하나님의 손이기에 목동 시절에는 사자와 곰을 찢고 전쟁터에는 골리앗을 쳐서 무찌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범사에 하나님의 인정하며 그 이름을 부르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범사에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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