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전파는 현세와 내세에 복 받을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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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604회 작성일 2011-03-25 19:59본문
마가복음 10:28-30 복음전파는 현세와 내세에 복 받을 일입니다
지진과 쓰나미로 원자로들이 방사선을 분출하고 있는 후쿠시마(福島) 제1원자력발전소 내에는 최후의 전사(戰士) 279명이 위험한 전장(戰場)에 스스로 지원해 목숨을 건 이들의 임무는 송전선 부설을 통한 전력(電力) 공급 재개. 전력이 다시 제대로 공급되느냐의 여부가 사고 수습의 중대한 고비로 떠오르는 가운데, 이번 주말 세계의 관심은 이 혈투에 집중되고 있다. 19일 해 뜰 무렵부터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는 파괴된 원자로 2호기에 송전선을 연결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요미우리신문은 보도했다. 전력을 공급받은 냉각장치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방사선의 추가 누출을 막으면서 사태는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게 될 가능성이 높다. 스스로 지원한 이들 279명은 작업반은 도쿄전력과 그 자회사, 원자로건설업체, 종합건설업체에서 일하다 지원한 279명은 한 가지 공통된 특징이 있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처자식이 없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들의 행하는 일들은 너무나도 귀한 일이고 누군간가 꼭해야 할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 만큼 자신의 신상이 위험하기 때문에 혹 어떤 일이 발생하더라도 처자에 대한 책임이 없는 자들이 스스로 지원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방사선의 위험에서 구원해야하는 중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이들보다 더 놀라운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처자가 없는 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처자가 엄연히 있는 자들에게 처자를 버리라는 것입니다.
29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육신의 멸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눅12:4-5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육신의 죽음은 사실 영원한 죽음에 비하여 아무 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죽음은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어떠한 모양으로 찾아오는 것입니다.
히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병들어 죽을 수도, 사고로 죽을 수도, 그리고 기력이 다하여 찾아오는 죽음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향간에 사람들이 일본 지진과 쓰나미 사건을 두고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자들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어찌 사람들이 죽어 가는데 심판이라는 모진 말을 하느냐고 거품을 풀고 그럴 수 있느냐?고 항의를 합니다.
한국 최대 교회의 원로목사님이 일본 집회를 앞두고 심판이라는 말을 하였다고 네티즌들이 들끓고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죽일 놈이라고 망 할 놈이라고 어찌 그런 말을 하느냐고 말입니다.
어떤 의미로 심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는지를 인식 하셔야 합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심판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살아 있는 다른 이들에게 하나님의 경고하심으로 볼 수도 있고 하필이면 그들이 당 할 수밖에 없는 억울하고 원통할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개중에는 내 인생에 새로운 소명의 기회가 다시는 주어지지 심판이 될 수도 있겠지요 한편으로는 육신의 죽음을 맞이하지만 살아남은 다른 이에게 전 세계적으로 인생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주는 여러 가지 교훈을 남기고 감으로 그 죽음이 헛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시90:5-13 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
죽은 후에 그 사람의 아름다움이 나타나는 자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을 두고 심판이다 아니다가 그 어떤 것도 포괄적으로는 말할 수가 없을 것이요 하나님만이 아실 일입니다.
우리의 생각에는 심판이라는 단어가 적용되는 것을 누구든지 좋아하지 않지 않습니까?
그러나 심판은 꼭 사람이 죽어야만 심판이 아닙니다.
이미 심판은 시작이 되었고 세상은 심판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심판의 기준이 무엇인 줄을 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심판의 기준입니다.
요3:16-18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육신의 죽음을 면하기 위하여 방사선 노출을 위하여 투신한 자들은 너무나도 칭찬하지 않습니까?
용사 전사 아마 이들은 후환 상과 이름을 길이 빛 넬 것입니다. 일본의 천황의 이름으로 간 총리이름으로
그런데 하물며 육신의 죽음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자신을 투자하는 자들에게는 그 얼마나 상급이 많고 그 이름이 빛이 날까요?
단12:2-3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본문에서도 복음을 위하여 자신을 드린 자들에게 자신들이 희생한 것에 100배의 축복을 주는 것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내세에 영생 즉 영원한 생명을 얻기 때문입니다.
이것보다 더 확실한 인생의 삶이 어디 있겠습니까?
복음을 위함은 곧 예수님을 위함입니다. 복음을 위함은 자신을 버림에 있습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른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마4:19-20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시몬과 안드레는 그들의 그물을 버렸다는 것은 생업보다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있어야 생업도 필요한 것이지 죽고 난후에 좋은 직장에 취직이 되었으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복음은 생업보다 우선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말들을 합니다. 예수 믿으면 밥 먹여 주느냐? 고 묻습니다. 네 예수가 밥 먹여 줍니다.
예수 믿다가 굶어 죽은 사람 없고 배불리 먹다가 죽은 사람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신8: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은 그물 정도가 아니라 가족을 버려두었다고 하였습니다.
마4:21-22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혈과 육이 구원의 조건이 아닙니다.
후쿠시마(福島) 제1원자력발전소 방사선 유출 막는 작업에 은퇴를 6개월 앞둔 분이 그 아내와 딸에게 보낸 메시지가 있습니다.
인생에 후회 안 남기겠다, 죽을 준비 됐다, 원자로와 싸우겠다, 열심히 살아라 비장하지 않습니까?
민족애 인간애 그것보다 사명감이 그를 사로잡았을 것입니다.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 할 일 다 하고 놀 것 다 놀고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세관 창구에 앉아 있었던 레위는 어떠했는가?
주님께서 그에게 나를 따르라 하셨을 때 눅5:28 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예수를 위하여 복을 위하여 뭘버렸습니까?
하다못해 사마리아 여인은 우물물을 길러러 왔다가 물동이 버려두고 예수를 쫒았습니다.
아직까지 자존심하나 못 버리고 세상의 이것저것 주렁주렁 달고 오니 어떻게 따라 오겠습니까?
살도 좀 빼고 냉장고도 비우고 옷장도 비우고 통장도 비우고 그래야지 가볍게 따라 올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이 먼저 모든 것을 다 버렸습니다.
하나님이라는 신분의 영광도 버리시고 자신의 목숨까지도 버리셨습니다.
요10:14-15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나같은 죄인을 위해 자신을 먼저 포기하신 주님은 이제는 주와 복음을 위해 나를 내 놓고 그 은혜와 복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데이비드 리빙스턴은 27세에 신학과 의학 공부를 마치고 아프리카 선교사로 자신의 전부를 투자한 사람입니다. 스탠리씨가 이끄는 탐험대가 아프리카로 오지 탐험을 겸하여 들어갔다가 1873년에 중앙아프리카 어느 마을에서 리빙스턴을 발견하였다. 이 때 리빙스턴은 이미 60세로 병들어 쇠약하였다.
그는 만 30년 동안 문명을 등지고 아프리카 오지에서 토인들과 생활을 함께 하고 있었다.
그래서 스탠리씨는 여러 말로 그에게 영국으로 귀국할 것을 설득하였다.
그런데 그는 아프리카에 머물렀고 같은 해에 별세하였다.
그의 마지막 일기는 1873년 3월 19일, 그의 생일에 쓴 것이었다.
오늘은 나의 생일이다.
나의 예수여, 나의 왕이여, 나의 생명이여, 나의 모든 것이여, 오늘을 기하여 다시 나를 바칩니다.
자비하신 아버지, 나를 받아 주소서.
독생자를 나에게 주셨는데 이 못난 것, 아무것도 아니지만 몽땅 바치오니 받아 주시옵소서. 아멘.
주님이시여, 아멘.
그의 시체는 무릎 꿇고 기도하는 자세 그대로 발견되었다.
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국장으로 장례를 치루었다
그의 묘비에는 이렇게 써져있다고 합니다. 이 사람에게는 조사가 필요 없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에 아멘하다 살고 아멘하다 죽었다. 라고 기록되었다
리빙스톤이라는 의사요 선교사인 한 사람의 인격이 드려진 모습에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복음에 의한 어려움만 말하였지 받은 은혜에 보답하는 일은 너무나도 대단한 것으로만 측정하고만 있으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놀라운 사실은 응당히 할 일을 했음에도 그 상을 주신다는 것은 나를 부려 먹기 위하여 부르신 것이 아니라 더 큰 은혜를 주시기 위하심이었습니다.
우리 가운데 주를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기도하고 물질로 도웁시다 라고 하면 거의 자신들을 죽이는 줄 알고 쌍심지를 켜고 있습니다.
죽이는 것 아니고 살리고요 빼앗아 가는 것으로 생각 말고 더욱 풍성하게 하십니다.
마가 당시의 로마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가족과 재산과 재물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기 위해서 가족과의 인연 끊고, 재산과 직업과 명예를 박탈당해야 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서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지금은 모든 것을 잃은 것처럼 보이지만, 장차 그들이 희생한 것을 백배로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희생한 것을 보상을 받지만 동시에 핍박도 함께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0절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성도들이 박해와 시련을 받는 것은 정상이며 이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세상과 가족을 포기한 사람은 이미 그 믿음이 확증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분명히 영생을 얻게 될 것입니다
지금이 바로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르는 때입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르는 일에 실패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소돔 성이 멸망하던 날, 그녀를 데리고 주께서 나가셨지만 그녀는 버리지 못한 미련으로 인해 뒤를 돌아다보았다. 소금기둥이 되어버렸다.
영원한 저주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주님은 심판 앞에 선 모든 사람들에게 롯의 아내를 기억하라는 말로 경고하셨다 눅 17:32 롯의 처를 기억하라
키프로스 출신의 바나바는 자기의 땅을 팔아서 사도들에게 내어주었다. 복음 사역과 가난한 자들을 위해 합당히 분배하기를 원하는 뜻에서였다
행4:36-37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이러한 일 가운데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등장했다. 그들도 소유 하나를 팔아 마치 그 전부를 드린 것처럼 행세하고자 했다. 하지만 성령께서 이들이 속이고 있음을 지적하셨고 그들 부부는 같은 날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행 5:1-11). 그들은 자기의 소유와 자기 명예에 관한 것들을 버리지 못한 사람이었다.
현대의 유명한 복음주의자인 죤 스타트(John Stott)목사는 전도하지 않는 죄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도하지 않는 것은 죄다. 그것은 마치 살인하는 것과 같다.
내가 조금만 손을 썼더라면 그 사람은 죽지 않고 살 수 있었을 텐데, 내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았기에 그 사람은 죽고 만 것입니다.
이것은 간접적으로 살인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기에 그런 내가 벌을 받는 것은 마땅합니다.
그렇습니다. 전도하지 않는 것은 직접적으로 죄를 짓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전도하지 않음으로 그 영혼이 지옥에 가게 되었다면 이는 간접 살인죄를 지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고전9: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주를 위하여 손해를 보지 않고 이익만 논하는 자들이 어떤 사람이 추운 겨울에 떨고 있는 거지를 보고, 하나님, 이 겨울에 떨고 있는 거지가 이 사람 하나가 아닐 텐데, 하나님, 거지 대책을 세워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정부는 뭐하고 재벌은 죽일 놈들 아닙니까? 미국은 뭐하고 있습니까? 하고 기도했답니다.
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답니다. 나는 이미 대책을 가지고 있다.
그 대책이 뭡니까? 바로 네가 그 대책이다.
지지리도 내 인생은 복이 없다고 치를 떨고 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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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과 쓰나미로 원자로들이 방사선을 분출하고 있는 후쿠시마(福島) 제1원자력발전소 내에는 최후의 전사(戰士) 279명이 위험한 전장(戰場)에 스스로 지원해 목숨을 건 이들의 임무는 송전선 부설을 통한 전력(電力) 공급 재개. 전력이 다시 제대로 공급되느냐의 여부가 사고 수습의 중대한 고비로 떠오르는 가운데, 이번 주말 세계의 관심은 이 혈투에 집중되고 있다. 19일 해 뜰 무렵부터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는 파괴된 원자로 2호기에 송전선을 연결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요미우리신문은 보도했다. 전력을 공급받은 냉각장치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방사선의 추가 누출을 막으면서 사태는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게 될 가능성이 높다. 스스로 지원한 이들 279명은 작업반은 도쿄전력과 그 자회사, 원자로건설업체, 종합건설업체에서 일하다 지원한 279명은 한 가지 공통된 특징이 있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처자식이 없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들의 행하는 일들은 너무나도 귀한 일이고 누군간가 꼭해야 할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 만큼 자신의 신상이 위험하기 때문에 혹 어떤 일이 발생하더라도 처자에 대한 책임이 없는 자들이 스스로 지원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방사선의 위험에서 구원해야하는 중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이들보다 더 놀라운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처자가 없는 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처자가 엄연히 있는 자들에게 처자를 버리라는 것입니다.
29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육신의 멸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눅12:4-5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육신의 죽음은 사실 영원한 죽음에 비하여 아무 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죽음은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어떠한 모양으로 찾아오는 것입니다.
히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병들어 죽을 수도, 사고로 죽을 수도, 그리고 기력이 다하여 찾아오는 죽음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향간에 사람들이 일본 지진과 쓰나미 사건을 두고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자들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어찌 사람들이 죽어 가는데 심판이라는 모진 말을 하느냐고 거품을 풀고 그럴 수 있느냐?고 항의를 합니다.
한국 최대 교회의 원로목사님이 일본 집회를 앞두고 심판이라는 말을 하였다고 네티즌들이 들끓고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죽일 놈이라고 망 할 놈이라고 어찌 그런 말을 하느냐고 말입니다.
어떤 의미로 심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는지를 인식 하셔야 합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심판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살아 있는 다른 이들에게 하나님의 경고하심으로 볼 수도 있고 하필이면 그들이 당 할 수밖에 없는 억울하고 원통할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개중에는 내 인생에 새로운 소명의 기회가 다시는 주어지지 심판이 될 수도 있겠지요 한편으로는 육신의 죽음을 맞이하지만 살아남은 다른 이에게 전 세계적으로 인생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주는 여러 가지 교훈을 남기고 감으로 그 죽음이 헛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시90:5-13 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
죽은 후에 그 사람의 아름다움이 나타나는 자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을 두고 심판이다 아니다가 그 어떤 것도 포괄적으로는 말할 수가 없을 것이요 하나님만이 아실 일입니다.
우리의 생각에는 심판이라는 단어가 적용되는 것을 누구든지 좋아하지 않지 않습니까?
그러나 심판은 꼭 사람이 죽어야만 심판이 아닙니다.
이미 심판은 시작이 되었고 세상은 심판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심판의 기준이 무엇인 줄을 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심판의 기준입니다.
요3:16-18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육신의 죽음을 면하기 위하여 방사선 노출을 위하여 투신한 자들은 너무나도 칭찬하지 않습니까?
용사 전사 아마 이들은 후환 상과 이름을 길이 빛 넬 것입니다. 일본의 천황의 이름으로 간 총리이름으로
그런데 하물며 육신의 죽음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자신을 투자하는 자들에게는 그 얼마나 상급이 많고 그 이름이 빛이 날까요?
단12:2-3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본문에서도 복음을 위하여 자신을 드린 자들에게 자신들이 희생한 것에 100배의 축복을 주는 것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내세에 영생 즉 영원한 생명을 얻기 때문입니다.
이것보다 더 확실한 인생의 삶이 어디 있겠습니까?
복음을 위함은 곧 예수님을 위함입니다. 복음을 위함은 자신을 버림에 있습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른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마4:19-20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시몬과 안드레는 그들의 그물을 버렸다는 것은 생업보다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있어야 생업도 필요한 것이지 죽고 난후에 좋은 직장에 취직이 되었으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복음은 생업보다 우선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말들을 합니다. 예수 믿으면 밥 먹여 주느냐? 고 묻습니다. 네 예수가 밥 먹여 줍니다.
예수 믿다가 굶어 죽은 사람 없고 배불리 먹다가 죽은 사람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신8: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은 그물 정도가 아니라 가족을 버려두었다고 하였습니다.
마4:21-22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혈과 육이 구원의 조건이 아닙니다.
후쿠시마(福島) 제1원자력발전소 방사선 유출 막는 작업에 은퇴를 6개월 앞둔 분이 그 아내와 딸에게 보낸 메시지가 있습니다.
인생에 후회 안 남기겠다, 죽을 준비 됐다, 원자로와 싸우겠다, 열심히 살아라 비장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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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자존심하나 못 버리고 세상의 이것저것 주렁주렁 달고 오니 어떻게 따라 오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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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이 먼저 모든 것을 다 버렸습니다.
하나님이라는 신분의 영광도 버리시고 자신의 목숨까지도 버리셨습니다.
요10:14-15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나같은 죄인을 위해 자신을 먼저 포기하신 주님은 이제는 주와 복음을 위해 나를 내 놓고 그 은혜와 복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데이비드 리빙스턴은 27세에 신학과 의학 공부를 마치고 아프리카 선교사로 자신의 전부를 투자한 사람입니다. 스탠리씨가 이끄는 탐험대가 아프리카로 오지 탐험을 겸하여 들어갔다가 1873년에 중앙아프리카 어느 마을에서 리빙스턴을 발견하였다. 이 때 리빙스턴은 이미 60세로 병들어 쇠약하였다.
그는 만 30년 동안 문명을 등지고 아프리카 오지에서 토인들과 생활을 함께 하고 있었다.
그래서 스탠리씨는 여러 말로 그에게 영국으로 귀국할 것을 설득하였다.
그런데 그는 아프리카에 머물렀고 같은 해에 별세하였다.
그의 마지막 일기는 1873년 3월 19일, 그의 생일에 쓴 것이었다.
오늘은 나의 생일이다.
나의 예수여, 나의 왕이여, 나의 생명이여, 나의 모든 것이여, 오늘을 기하여 다시 나를 바칩니다.
자비하신 아버지, 나를 받아 주소서.
독생자를 나에게 주셨는데 이 못난 것, 아무것도 아니지만 몽땅 바치오니 받아 주시옵소서. 아멘.
주님이시여, 아멘.
그의 시체는 무릎 꿇고 기도하는 자세 그대로 발견되었다.
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국장으로 장례를 치루었다
그의 묘비에는 이렇게 써져있다고 합니다. 이 사람에게는 조사가 필요 없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에 아멘하다 살고 아멘하다 죽었다. 라고 기록되었다
리빙스톤이라는 의사요 선교사인 한 사람의 인격이 드려진 모습에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복음에 의한 어려움만 말하였지 받은 은혜에 보답하는 일은 너무나도 대단한 것으로만 측정하고만 있으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놀라운 사실은 응당히 할 일을 했음에도 그 상을 주신다는 것은 나를 부려 먹기 위하여 부르신 것이 아니라 더 큰 은혜를 주시기 위하심이었습니다.
우리 가운데 주를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기도하고 물질로 도웁시다 라고 하면 거의 자신들을 죽이는 줄 알고 쌍심지를 켜고 있습니다.
죽이는 것 아니고 살리고요 빼앗아 가는 것으로 생각 말고 더욱 풍성하게 하십니다.
마가 당시의 로마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가족과 재산과 재물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기 위해서 가족과의 인연 끊고, 재산과 직업과 명예를 박탈당해야 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서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지금은 모든 것을 잃은 것처럼 보이지만, 장차 그들이 희생한 것을 백배로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희생한 것을 보상을 받지만 동시에 핍박도 함께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0절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성도들이 박해와 시련을 받는 것은 정상이며 이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세상과 가족을 포기한 사람은 이미 그 믿음이 확증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분명히 영생을 얻게 될 것입니다
지금이 바로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르는 때입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르는 일에 실패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소돔 성이 멸망하던 날, 그녀를 데리고 주께서 나가셨지만 그녀는 버리지 못한 미련으로 인해 뒤를 돌아다보았다. 소금기둥이 되어버렸다.
영원한 저주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주님은 심판 앞에 선 모든 사람들에게 롯의 아내를 기억하라는 말로 경고하셨다 눅 17:32 롯의 처를 기억하라
키프로스 출신의 바나바는 자기의 땅을 팔아서 사도들에게 내어주었다. 복음 사역과 가난한 자들을 위해 합당히 분배하기를 원하는 뜻에서였다
행4:36-37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이러한 일 가운데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등장했다. 그들도 소유 하나를 팔아 마치 그 전부를 드린 것처럼 행세하고자 했다. 하지만 성령께서 이들이 속이고 있음을 지적하셨고 그들 부부는 같은 날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행 5:1-11). 그들은 자기의 소유와 자기 명예에 관한 것들을 버리지 못한 사람이었다.
현대의 유명한 복음주의자인 죤 스타트(John Stott)목사는 전도하지 않는 죄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도하지 않는 것은 죄다. 그것은 마치 살인하는 것과 같다.
내가 조금만 손을 썼더라면 그 사람은 죽지 않고 살 수 있었을 텐데, 내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았기에 그 사람은 죽고 만 것입니다.
이것은 간접적으로 살인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기에 그런 내가 벌을 받는 것은 마땅합니다.
그렇습니다. 전도하지 않는 것은 직접적으로 죄를 짓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전도하지 않음으로 그 영혼이 지옥에 가게 되었다면 이는 간접 살인죄를 지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고전9: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주를 위하여 손해를 보지 않고 이익만 논하는 자들이 어떤 사람이 추운 겨울에 떨고 있는 거지를 보고, 하나님, 이 겨울에 떨고 있는 거지가 이 사람 하나가 아닐 텐데, 하나님, 거지 대책을 세워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정부는 뭐하고 재벌은 죽일 놈들 아닙니까? 미국은 뭐하고 있습니까? 하고 기도했답니다.
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답니다. 나는 이미 대책을 가지고 있다.
그 대책이 뭡니까? 바로 네가 그 대책이다.
지지리도 내 인생은 복이 없다고 치를 떨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 라도 당신의 전부를 투자하여 목숨까지라도 주와 복음을 위하여 사용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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