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주신대로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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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91회 작성일 2009-05-27 09:41본문
신 명 기16: 9-12 복 주신대로 감사하자
한번은 하나님께서는 두 천사를 세상으로 보내시면서 사람들의 기도를 모아오라고 하셨습니다.
한 천사에게는 바구니에 자신들의 소원을 담아오도록 하셨고 한 천사에게는 감사를 담아오도록 하셨습니다.
얼마 후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왔을 때 한 천사의 바구니는 하나님께 대한 무수히 많은 소원으로 철철 넘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천사는 슬프고 무거운 마음으로 거의 비어있는 바구니를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그 천사가 아무리 열심히 찾아다녔어도 세상의 사람들은 하나님께 대한 감사는 좀처럼 찾기 힘들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가운데서도 볼 때에도 감사가 너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이 되어집니다.
사실 나 자신을 한번 살펴보십시다.
하나님을 향한 감사는 아예 빠져있고 오직 하나님은 나의 소원만을 들어주는 대상으로만 그리고 들어주시지 않으면 불만의 대상으로 남아 있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감사 할 일이나 감사 할 사건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받은 은혜는 아주 당연하게 여기니 감사가 없고 내가 원하는 것만을 구하니 불평하고 당연히 불만해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불평과 원망이 우리들을 살리느냐? 하면 살리기는커녕 다 죽이고 망하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광야를 가던 이스라엘 민족이 먹을 것 입을 것이 없어서 죽고 망하였습니까?
그들의 잇틀 사이에는 잘 먹어 고기 점이 아직도 끼어 있었지만 다 광야에서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기는커녕 늘 불만과 원망이 전부였습니다.
그 불평과 원망이 그들을 망하게 했습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에서도 불평과 원망이 다 빠져나가야만 여러분이 살 수 있습니다.
나를 망하게 하는 불만이 빠져나가는 방법은 지금부터라도 감사를 찾아 감사를 하면 됩니다. 할렐루야!
내가 은혜 받은 대로 하나 하나 기억하여 감사해 보십시오 그러면 그 불만이 빠져나가고 내가 복 받은 자 인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고 살리기 위하여 감사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범사에 복을 주시기 위하여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매일 매일 감사는 물론 이거니와 특히 일년에 3차례 큰 감사 제사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매년 삼차 하나님 앞에 감사의 절기를 지키라는 명령을 따라서 절기를 지켰습니다.
그 첫째는 유월절로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여 종살이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며 감사로 지키는 절기였습니다. 이 절기는 오늘날 마귀와 죄악의 종에서 해방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얻은 것을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두 번째 절기가 맥추절인데 이날은 오순절이라고도 하고 칠칠절이라고도 하는 절기로 유월절이 지난 다음 7주 후에 보리와 밀을 추수하고 나서 첫 열매를 볶은 후 가루로 빻아 기름과 유황을 얹어서 화제 즉 불로 태워서 제사를 드린 날입니다. 이 맥추절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려 감사하는 제사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탄생된 날이며 개인적으로는 처음 믿는 믿음, 처음 느낀 그리스도의 뜨거운 사랑에 감사하여 예물을 드리는 절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절기는 수장절로 흔히 말하는 추수 감사 절기로 일년 동안 농사를 지은 것을 감사하고 창고에 들여 저장하고 가을의 들판에 초막을 짖고 일주일 동안 생활하여 조상들이 광야에서 40년간 초막을 짖고 생활하던 것을 기념하며 지키던 절기입니다. 이 절기를 지킴으로 주님이 재림 시에 믿는 자들을 하늘의 창고에 다 거두어들인다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감사절기는 상당한 의미가 있기 때문에 즉 우리의 구원과 범사의 생활의 축복과 장차 천국에 들어갈 그러한 중요한 절기이기에 하나님은 이 감사절기를 지킬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감사 절기를 지켜야 합니까?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지키는 절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혜와 복을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신:16:3이같이 행하여 너의 평생에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온 날을 기억할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또 신15: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너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였나니 하셨습니다. 또 신16:12 에서도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 찌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수가 없었듯이 역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면 예수 믿고 구원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애굽의 바로와 같은 세상의 마귀가 얼마나 꽉 붙잡고 있든지 쉽게 세상을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전도를 하다 보면 우리는 이것을 느끼지 않습니까?
다른 이들이 예수 믿는 것을 왜 그렇게도 어렵게 생각을 하는 지, 정말로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맥추 감사절이란 그 동안 우리가 받은 구원하심의 은혜를 잊지 아니하고 기억하여 하나님께 감사로 영광을 돌리는 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고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고 특별히 감사하는 날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감사란 글자를 보면 느낄 감(感)자에 사례할 사(謝)를 쓰고 있습니다.
이는 은혜 받은 자들이 고마움을 느끼고 은혜를 베풀어주신 분에게 사례를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사란 은혜를 받은 자들이 마땅히 기억하고 취할 태도입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눅17:11-19를 보면 열 명의 문둥병자가 예수님을 만남으로 그 무섭고 더러운 문둥병에서 치료를 받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런데 아홉은 감사할 줄 모르고 집으로 돌아갔지만 사마리아 사람 하나만 예수님께 찾아와서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사례를 하며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때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않았느냐! 그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하시며 매우 서운해 하셨습니다.
세상에서의 구원의 특별한 은혜를 받고 살면서 감사를 잊어버린다면 하나님께서는 매우 서운해하실 것입니다.
지난 철야 기도 때에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빼앗을까? 을 기도하라고 했는데 무엇을 가지고 주님의 마음을 기분 좋게 할 수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까?
주님은 시몬에게 매우 당신의 섭섭하심을 말씀하시는 것을 보지 않았습니까?
저는 이 부분을 볼 때에 우리 주님도 얼마나 베풀어주신 은혜를 알고 그기에 합당한 감사를 받으시려고 하시는 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여태까지 감사를 하지 못하고 살았던 것이 아니 더 많이 감사하지 못했던 것이 심히 송구스럽습니다.
누가복음 7장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씻었으며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이 여자는 이렇게 감사 할 줄 아는데 너는 왜 이 여자같이 하지 못하느냐? 는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가 감사한다고 한다면 입술로가 아니라 진심으로 내 생명도 주님 앞에 바칩니다 라는 고백을 하는 자인 줄로 믿습니다.
제가 어제 동기 목사님 예배당 헌당 예배에 참석하였는데 참으로 교회를 잘 지어서요
그 건축 경과 보고를 하는데 어떤 성도는 자신이 집을 살려고 모은 돈을 교회 건축을 위해 다 드린 자가 있었습니다.
또 어떤 여 성도는 남편이 교통사고로 사망을 했는데 그 보상금을 교회를 짓는데 사용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야 참으로 주님은 쓰다 남은 것 찌꺼기를 받으시는 분이 아니라 가장 귀한 것 자신의 사랑하는 남편 죽음의 피의 보상을 받은 그런 귀한 것을 받으시어 주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주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분이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럴 수가 있나 할지를 모르지만 주를 위해 사용되는 것이 가장 값지고 귀한 것인 줄 알고 아니 비록 남편을 데리고 가셨지만 그래도 주가 베푸신 은혜가 감사하다는 표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아마 욥과 같이 주신 이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이도 여호와 시니 주는 영광을 받으시옵소서라고 할 수밖에 다른 무슨 말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감사를 하지 않고 감사를 잊은 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은 사람이며 교만에 빠진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시116:12에서 다윗은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나의 서원을 꼭 갚으리로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릴 뿐이니이다 하셨습니다.
우리가 감사하며 사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까지 아낌없이 주신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감사는 나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신 분께 이제는 내가 그리스도를 위한 자신을 드린다는 희생의 의미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호화 유람선이 세계의 각국에서 온 수 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세계를 여행하다가 대서양 한가운데서 암초에 부딛 쳐서 배에 큰 구멍이 났습니다. 얼마 지나면 배는 가라앉을 수밖에 없어 배에 있는 구명보트를 내리고 모두들 보트로 옮겨 탔습니다. 그런데 한 작은 보트에 네 명밖에 탈수가 없는 배인데 7명이나 탔습니다. 그냥 있으면 보트가 가라앉습니다. 3명이 바다로 뛰어 내려야 하는데 그 중에 누가 바다로 뛰어 내리겠습니까? 서로들 남의 눈치만 보고 있습니다. 아무도 내리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 때 영국 사람이 벌떡 일어서더니 대영제국 만세! 를 외치고 바다로 뛰어 내렸습니다. 모두들 역시 신사의 나라 영국 사람이라고 칭찬을 하였습니다. 아직도 두 사람이 더 내려야 합니다. 이어서 믿음이 있는 미국 사람이 일어서더니 위대한 미국 만세! 를 부르고 바다로 뛰어 내렸습니다. 이제 한사람만 더 내리면 나머지 네명은 무사히 구출 될 수가 있습니다. 그 보트에는 한국, 일본, 중국, 필리핀, 홍콩, 이렇게 아시아 사람들이 타고 있는데 아무도 내리려고 하지를 않고 다들 옆 사람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때에 성질이 급하고 의리에 죽고 산다는 한국 사람이 벌떡 일어났습니다. 모두들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그러면 그렇지 하고 있는데 이 한국 사람은 대한민국 만세! 3창을 외치고는 옆에 있는 일본 사람을 확 떠밀어 바다에 빠뜨렸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과연 여러분들 같으면 어떻게 하시렵니까? 이것이 오늘날의 세태입니다. 모두들 자신만은 가만히 있고 다른 사람들이 희생해 주기를 바라고 있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을 빠뜨리고서라도 자신이 살려고 하는 이와 같은 세상에 어찌 감사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온 세상 사람들이 이와 같이 마음이 강퍅하고 이기적이며 자신만을 아는 세상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을 희생시켜 하나님께 감사를 표하고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내 때문에 다시 한번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를 하는 자인 줄로 믿습니다.
저는 때때로 교회에 재정적으로나 혹은 무슨 일을 할 때에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고 있을 때에 그리고 모두가 눈치를 보고 있을 때에 어떤 성도가 나서서 그 재정을 맡고 그 일을 맡을 때에 저는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를 드리는지 모릅니다.
그 한 사람의 수고와 헌신 때문에 제가 감사를 올리게 되더라구요 이 감사가 얼마나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것이 되겠습니까?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 너무 너무 많아서 우리의 말로나 글로서 표현하기가 힘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햇빛과 공기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때를 따라서 내려 비를 주십니다. 우리들에게 자유와 평화를 주셨습니다. 가정을 주시고 자녀를 주시고 형제 자매를 주시고 또한 이웃을 주시고 건강과 직장과 생업을 주시고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주셨으므로 감사해야 할 것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또한 영적으로 죄악에서 구원하시고 믿음을 주시고, 하나님이 자녀가 되게 하셨고, 회개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셔서 언제든지 회개하면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니다. 그리고 회개하는 자에게 성령을 선물로 보내 주셔서 성령의 능력으로 늘 승리하게 하시고 성령 안에서 기쁘고 감사한 삶을 살게 하셔서 감사를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는 여러분을 살립니다. 마귀와 사탄은 감사하지 못합니다.
여기에 사로잡힌 자는 감사가 없습니다. 그러니 죽을 지경이지요
감사는 감사 할 일들을 불러 드립니다.
쉬지 않은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응답을 받게 되며 범사에 드리는 감사는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하며 더욱 풍성하게 만들에 주시는 것입니다.
칼.힐터는 그의 저서 [행복론]에서 감사하는 사람은 젊어진다고 하였습니다. 감사는 마음을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하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젊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아브라함 링컨은 감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발전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감사는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발전을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이 성공하는 비결 중에 하나가 바로 감사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은혜를 느끼지 못하고 감사를 잊어버리고 살 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캄캄한 밤에 정전만 되도 우리의 삶이 참으로 불편한데 우리들은 지금 온 세상을 밝히는 햇볕을 주신 고마움을 잊고 살아 나갑니다. 하나님이 햇볕 세를 받습니까? 이것 하나만 계산해서 받으면 여러분 수입을 다 드려도 모자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으면 한 시간도 살수 없는 것이 바로 우리 인간들인데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고 우리는 감사를 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번 감사절에 감사할 이유가 무엇인지를 다 찾아서 감사를 하시기를 바랍니다.
무엇을 가지고 감사를 해야 합니까? 물론 감사하는 마음이고요 그리고 그 표로 물질을 드리는 것입니다.
물질이 드려지지 않는 감사는 진정한 감사가 압니다.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함께 하는 법입니다.
하나님은 복 주신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빈손으로 올라오지 말라고 출애굽기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최선을 다 하면 됩니다.
하나님은 없는 것을 받지 아니하시고 인색함으로 하시는 것도 기뻐하시지 아니하시고 자원하여 드리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최용덕이라는 찬양사역자가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참 이상했습니다. 모두들 뜨거운 가슴으로 손뼉을 치며 찬양하고 있는 그 시간, 한 청년은 입으로는 열심히 찬송을 하는데 한 손으로는 자기의 뺨을 계속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진행하던 찬미가족들은 계속 그 청년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는 혹시 정신이 이상한 사람은 아닐까? 무슨 이유로 저렇게 자신을 학대해야 하는 것일까? 그는 조용한 찬송을 부를 때는 너무나 행복한 표정으로 눈을 지긋이 감고 노래를 하다가도 빠른 곡의 찬송을 부를 땐 영락없이 자신의 한쪽 뺨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경북 영덕시찰 산하 청년연합회 찬미초청 찬양집회는 큰 은혜와 감격 속에 끝이 났습니다. 자기의 뺨을 치던 청년도 다른 이들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그를 무심코 바라본 저희들은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는 한쪽 손을 못쓰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이들처럼 손뼉을 칠 수 없어 성한 한 손으로 자기의 뺨을 치면서라도 주님을 찬양하길 원했던 젊은이....! 돌아오는 길, 문득 나의 성한 두 손을 내려다보노라니 부끄러움과 수치가 폭풍처럼 휘몰아쳐 왔습니다. 육신이 멀쩡하냐 아니면 일그러져 있느냐? 하는 것은 하나도 문제가 아닙니다. 더 크고 심각한 문제가 남아있는 우리의 몸, 재능이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이번 추수 감사절에는 복 주신대로 힘껏 물질로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한 손뿐인 자가 빰을 치듯이 감사를 하는 자가 있어 하나님을 감동시키고 영화롭게 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두 손을 멀쩡히 가지고도 손뼉을 치지 않는 감사에 인색한 자가 되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번 감사를 통하여 또 다른 감사를 할 수 있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번은 하나님께서는 두 천사를 세상으로 보내시면서 사람들의 기도를 모아오라고 하셨습니다.
한 천사에게는 바구니에 자신들의 소원을 담아오도록 하셨고 한 천사에게는 감사를 담아오도록 하셨습니다.
얼마 후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왔을 때 한 천사의 바구니는 하나님께 대한 무수히 많은 소원으로 철철 넘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천사는 슬프고 무거운 마음으로 거의 비어있는 바구니를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그 천사가 아무리 열심히 찾아다녔어도 세상의 사람들은 하나님께 대한 감사는 좀처럼 찾기 힘들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가운데서도 볼 때에도 감사가 너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이 되어집니다.
사실 나 자신을 한번 살펴보십시다.
하나님을 향한 감사는 아예 빠져있고 오직 하나님은 나의 소원만을 들어주는 대상으로만 그리고 들어주시지 않으면 불만의 대상으로 남아 있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감사 할 일이나 감사 할 사건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받은 은혜는 아주 당연하게 여기니 감사가 없고 내가 원하는 것만을 구하니 불평하고 당연히 불만해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불평과 원망이 우리들을 살리느냐? 하면 살리기는커녕 다 죽이고 망하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광야를 가던 이스라엘 민족이 먹을 것 입을 것이 없어서 죽고 망하였습니까?
그들의 잇틀 사이에는 잘 먹어 고기 점이 아직도 끼어 있었지만 다 광야에서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기는커녕 늘 불만과 원망이 전부였습니다.
그 불평과 원망이 그들을 망하게 했습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에서도 불평과 원망이 다 빠져나가야만 여러분이 살 수 있습니다.
나를 망하게 하는 불만이 빠져나가는 방법은 지금부터라도 감사를 찾아 감사를 하면 됩니다. 할렐루야!
내가 은혜 받은 대로 하나 하나 기억하여 감사해 보십시오 그러면 그 불만이 빠져나가고 내가 복 받은 자 인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고 살리기 위하여 감사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범사에 복을 주시기 위하여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매일 매일 감사는 물론 이거니와 특히 일년에 3차례 큰 감사 제사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매년 삼차 하나님 앞에 감사의 절기를 지키라는 명령을 따라서 절기를 지켰습니다.
그 첫째는 유월절로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여 종살이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며 감사로 지키는 절기였습니다. 이 절기는 오늘날 마귀와 죄악의 종에서 해방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얻은 것을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두 번째 절기가 맥추절인데 이날은 오순절이라고도 하고 칠칠절이라고도 하는 절기로 유월절이 지난 다음 7주 후에 보리와 밀을 추수하고 나서 첫 열매를 볶은 후 가루로 빻아 기름과 유황을 얹어서 화제 즉 불로 태워서 제사를 드린 날입니다. 이 맥추절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려 감사하는 제사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탄생된 날이며 개인적으로는 처음 믿는 믿음, 처음 느낀 그리스도의 뜨거운 사랑에 감사하여 예물을 드리는 절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절기는 수장절로 흔히 말하는 추수 감사 절기로 일년 동안 농사를 지은 것을 감사하고 창고에 들여 저장하고 가을의 들판에 초막을 짖고 일주일 동안 생활하여 조상들이 광야에서 40년간 초막을 짖고 생활하던 것을 기념하며 지키던 절기입니다. 이 절기를 지킴으로 주님이 재림 시에 믿는 자들을 하늘의 창고에 다 거두어들인다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감사절기는 상당한 의미가 있기 때문에 즉 우리의 구원과 범사의 생활의 축복과 장차 천국에 들어갈 그러한 중요한 절기이기에 하나님은 이 감사절기를 지킬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감사 절기를 지켜야 합니까?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지키는 절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혜와 복을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신:16:3이같이 행하여 너의 평생에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온 날을 기억할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또 신15: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너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였나니 하셨습니다. 또 신16:12 에서도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 찌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수가 없었듯이 역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면 예수 믿고 구원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애굽의 바로와 같은 세상의 마귀가 얼마나 꽉 붙잡고 있든지 쉽게 세상을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전도를 하다 보면 우리는 이것을 느끼지 않습니까?
다른 이들이 예수 믿는 것을 왜 그렇게도 어렵게 생각을 하는 지, 정말로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맥추 감사절이란 그 동안 우리가 받은 구원하심의 은혜를 잊지 아니하고 기억하여 하나님께 감사로 영광을 돌리는 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고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고 특별히 감사하는 날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감사란 글자를 보면 느낄 감(感)자에 사례할 사(謝)를 쓰고 있습니다.
이는 은혜 받은 자들이 고마움을 느끼고 은혜를 베풀어주신 분에게 사례를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사란 은혜를 받은 자들이 마땅히 기억하고 취할 태도입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눅17:11-19를 보면 열 명의 문둥병자가 예수님을 만남으로 그 무섭고 더러운 문둥병에서 치료를 받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런데 아홉은 감사할 줄 모르고 집으로 돌아갔지만 사마리아 사람 하나만 예수님께 찾아와서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사례를 하며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때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않았느냐! 그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하시며 매우 서운해 하셨습니다.
세상에서의 구원의 특별한 은혜를 받고 살면서 감사를 잊어버린다면 하나님께서는 매우 서운해하실 것입니다.
지난 철야 기도 때에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빼앗을까? 을 기도하라고 했는데 무엇을 가지고 주님의 마음을 기분 좋게 할 수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까?
주님은 시몬에게 매우 당신의 섭섭하심을 말씀하시는 것을 보지 않았습니까?
저는 이 부분을 볼 때에 우리 주님도 얼마나 베풀어주신 은혜를 알고 그기에 합당한 감사를 받으시려고 하시는 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여태까지 감사를 하지 못하고 살았던 것이 아니 더 많이 감사하지 못했던 것이 심히 송구스럽습니다.
누가복음 7장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씻었으며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이 여자는 이렇게 감사 할 줄 아는데 너는 왜 이 여자같이 하지 못하느냐? 는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가 감사한다고 한다면 입술로가 아니라 진심으로 내 생명도 주님 앞에 바칩니다 라는 고백을 하는 자인 줄로 믿습니다.
제가 어제 동기 목사님 예배당 헌당 예배에 참석하였는데 참으로 교회를 잘 지어서요
그 건축 경과 보고를 하는데 어떤 성도는 자신이 집을 살려고 모은 돈을 교회 건축을 위해 다 드린 자가 있었습니다.
또 어떤 여 성도는 남편이 교통사고로 사망을 했는데 그 보상금을 교회를 짓는데 사용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야 참으로 주님은 쓰다 남은 것 찌꺼기를 받으시는 분이 아니라 가장 귀한 것 자신의 사랑하는 남편 죽음의 피의 보상을 받은 그런 귀한 것을 받으시어 주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주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분이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럴 수가 있나 할지를 모르지만 주를 위해 사용되는 것이 가장 값지고 귀한 것인 줄 알고 아니 비록 남편을 데리고 가셨지만 그래도 주가 베푸신 은혜가 감사하다는 표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아마 욥과 같이 주신 이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이도 여호와 시니 주는 영광을 받으시옵소서라고 할 수밖에 다른 무슨 말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감사를 하지 않고 감사를 잊은 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은 사람이며 교만에 빠진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시116:12에서 다윗은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나의 서원을 꼭 갚으리로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릴 뿐이니이다 하셨습니다.
우리가 감사하며 사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까지 아낌없이 주신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감사는 나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신 분께 이제는 내가 그리스도를 위한 자신을 드린다는 희생의 의미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호화 유람선이 세계의 각국에서 온 수 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세계를 여행하다가 대서양 한가운데서 암초에 부딛 쳐서 배에 큰 구멍이 났습니다. 얼마 지나면 배는 가라앉을 수밖에 없어 배에 있는 구명보트를 내리고 모두들 보트로 옮겨 탔습니다. 그런데 한 작은 보트에 네 명밖에 탈수가 없는 배인데 7명이나 탔습니다. 그냥 있으면 보트가 가라앉습니다. 3명이 바다로 뛰어 내려야 하는데 그 중에 누가 바다로 뛰어 내리겠습니까? 서로들 남의 눈치만 보고 있습니다. 아무도 내리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 때 영국 사람이 벌떡 일어서더니 대영제국 만세! 를 외치고 바다로 뛰어 내렸습니다. 모두들 역시 신사의 나라 영국 사람이라고 칭찬을 하였습니다. 아직도 두 사람이 더 내려야 합니다. 이어서 믿음이 있는 미국 사람이 일어서더니 위대한 미국 만세! 를 부르고 바다로 뛰어 내렸습니다. 이제 한사람만 더 내리면 나머지 네명은 무사히 구출 될 수가 있습니다. 그 보트에는 한국, 일본, 중국, 필리핀, 홍콩, 이렇게 아시아 사람들이 타고 있는데 아무도 내리려고 하지를 않고 다들 옆 사람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때에 성질이 급하고 의리에 죽고 산다는 한국 사람이 벌떡 일어났습니다. 모두들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그러면 그렇지 하고 있는데 이 한국 사람은 대한민국 만세! 3창을 외치고는 옆에 있는 일본 사람을 확 떠밀어 바다에 빠뜨렸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과연 여러분들 같으면 어떻게 하시렵니까? 이것이 오늘날의 세태입니다. 모두들 자신만은 가만히 있고 다른 사람들이 희생해 주기를 바라고 있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을 빠뜨리고서라도 자신이 살려고 하는 이와 같은 세상에 어찌 감사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온 세상 사람들이 이와 같이 마음이 강퍅하고 이기적이며 자신만을 아는 세상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을 희생시켜 하나님께 감사를 표하고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내 때문에 다시 한번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를 하는 자인 줄로 믿습니다.
저는 때때로 교회에 재정적으로나 혹은 무슨 일을 할 때에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고 있을 때에 그리고 모두가 눈치를 보고 있을 때에 어떤 성도가 나서서 그 재정을 맡고 그 일을 맡을 때에 저는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를 드리는지 모릅니다.
그 한 사람의 수고와 헌신 때문에 제가 감사를 올리게 되더라구요 이 감사가 얼마나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것이 되겠습니까?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 너무 너무 많아서 우리의 말로나 글로서 표현하기가 힘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햇빛과 공기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때를 따라서 내려 비를 주십니다. 우리들에게 자유와 평화를 주셨습니다. 가정을 주시고 자녀를 주시고 형제 자매를 주시고 또한 이웃을 주시고 건강과 직장과 생업을 주시고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주셨으므로 감사해야 할 것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또한 영적으로 죄악에서 구원하시고 믿음을 주시고, 하나님이 자녀가 되게 하셨고, 회개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셔서 언제든지 회개하면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니다. 그리고 회개하는 자에게 성령을 선물로 보내 주셔서 성령의 능력으로 늘 승리하게 하시고 성령 안에서 기쁘고 감사한 삶을 살게 하셔서 감사를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는 여러분을 살립니다. 마귀와 사탄은 감사하지 못합니다.
여기에 사로잡힌 자는 감사가 없습니다. 그러니 죽을 지경이지요
감사는 감사 할 일들을 불러 드립니다.
쉬지 않은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응답을 받게 되며 범사에 드리는 감사는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하며 더욱 풍성하게 만들에 주시는 것입니다.
칼.힐터는 그의 저서 [행복론]에서 감사하는 사람은 젊어진다고 하였습니다. 감사는 마음을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하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젊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아브라함 링컨은 감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발전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감사는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발전을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이 성공하는 비결 중에 하나가 바로 감사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은혜를 느끼지 못하고 감사를 잊어버리고 살 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캄캄한 밤에 정전만 되도 우리의 삶이 참으로 불편한데 우리들은 지금 온 세상을 밝히는 햇볕을 주신 고마움을 잊고 살아 나갑니다. 하나님이 햇볕 세를 받습니까? 이것 하나만 계산해서 받으면 여러분 수입을 다 드려도 모자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으면 한 시간도 살수 없는 것이 바로 우리 인간들인데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고 우리는 감사를 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번 감사절에 감사할 이유가 무엇인지를 다 찾아서 감사를 하시기를 바랍니다.
무엇을 가지고 감사를 해야 합니까? 물론 감사하는 마음이고요 그리고 그 표로 물질을 드리는 것입니다.
물질이 드려지지 않는 감사는 진정한 감사가 압니다.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함께 하는 법입니다.
하나님은 복 주신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빈손으로 올라오지 말라고 출애굽기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최선을 다 하면 됩니다.
하나님은 없는 것을 받지 아니하시고 인색함으로 하시는 것도 기뻐하시지 아니하시고 자원하여 드리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최용덕이라는 찬양사역자가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참 이상했습니다. 모두들 뜨거운 가슴으로 손뼉을 치며 찬양하고 있는 그 시간, 한 청년은 입으로는 열심히 찬송을 하는데 한 손으로는 자기의 뺨을 계속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진행하던 찬미가족들은 계속 그 청년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는 혹시 정신이 이상한 사람은 아닐까? 무슨 이유로 저렇게 자신을 학대해야 하는 것일까? 그는 조용한 찬송을 부를 때는 너무나 행복한 표정으로 눈을 지긋이 감고 노래를 하다가도 빠른 곡의 찬송을 부를 땐 영락없이 자신의 한쪽 뺨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경북 영덕시찰 산하 청년연합회 찬미초청 찬양집회는 큰 은혜와 감격 속에 끝이 났습니다. 자기의 뺨을 치던 청년도 다른 이들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그를 무심코 바라본 저희들은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는 한쪽 손을 못쓰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이들처럼 손뼉을 칠 수 없어 성한 한 손으로 자기의 뺨을 치면서라도 주님을 찬양하길 원했던 젊은이....! 돌아오는 길, 문득 나의 성한 두 손을 내려다보노라니 부끄러움과 수치가 폭풍처럼 휘몰아쳐 왔습니다. 육신이 멀쩡하냐 아니면 일그러져 있느냐? 하는 것은 하나도 문제가 아닙니다. 더 크고 심각한 문제가 남아있는 우리의 몸, 재능이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이번 추수 감사절에는 복 주신대로 힘껏 물질로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한 손뿐인 자가 빰을 치듯이 감사를 하는 자가 있어 하나님을 감동시키고 영화롭게 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두 손을 멀쩡히 가지고도 손뼉을 치지 않는 감사에 인색한 자가 되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번 감사를 통하여 또 다른 감사를 할 수 있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