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담당시키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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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564회 작성일 2015-03-30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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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3:4-6 죄를 담당시키셨도다
이번주일은 종려주일로 만왕의 왕이신,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에 나귀 새끼를 타시고, 입성하실 때에, 많은 무리들이 겉옷을 깔고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다가, 호산나, 호산나, 다윗의 예수여 하고 외치는 것으로 인해, 종려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마21:6-9 제자들이 가서 예수께서 명하신 대로 하여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특히, 이번 한 주간은 십자가를 앞두고 고민하시고 끝내는 십자가형을 받고 무덤에 장사를 지내 저 음부까지 내려가신 고난주간입니다.
이 고난을 통하여 인간의 죄악이 얼마나 무서운 것이며 죽어 마땅함을 보여 주었고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죄인이 죄악에서 벗어난 새 사람이 되는 큰 은혜를 받게 됩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은 이러한 아름다운 일을 행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그 누구도 이런 예수님을 알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구약에서 일러주시는 구원의 주 메시아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참 자유를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메시아를 대망해 왔으나 진작 메시아가 오셨을 때는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것은 메시아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고전2:7-8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그들은 메시아가 세상에서의 권력자의 모습으로 아주 당당하게 오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보기에는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2-4절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연한 순은 세상에서 가장 약한 것입니다.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는 얼마나 볼품이 없습니까?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실 당시 다윗의 왕으로 오신 왕가의 모습이었습니다.
다윗 왕의 후손이었던 요셉은 가난한 목수였습니다.
그가 가이사 아구스도의 명령에 의하여 나사렛에서 베들레헴으로 호적 하러 가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다윗의 집은 마치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와 같았고, 아무런 흠모할 만한 모양이 없었으며, 사람들이 그를 보고 기뻐할 만한 어떤 모습도 없었습니다.
예수 탄생 당시에는 해산 할 곳이 없어 말구유에서 해산하는 모습에서 어떻게 그들은 구원자 메시야를 상상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요1:9-11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메시야가 오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알아보지를 못했다는 것입니다
굉장히 중요한 말입니다.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을 박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 단어에는 하나님을 안다는 단어가 있는데 2가지로 해석이 됩니다
한 가지는 하나님을 알되 그 아는 지식은 하나님을 마음으로 영접하지 아니하는 지식입니다.
롬1:19-21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하나님에 대하여 알지만 그러나 그들의 그 지식이 하나님을 마음에 영접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아는 만큼 영접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그노시스일지라도, 그들은 그를 에피그노시스의 지식으로 갖지 못하였습니다.
알지만은 영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게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모릅니다.
오늘 성찬 예식에 참여하게 될 테인데 이 성찬에 대하여 알지만 그것을 내 것을 받아드리지 못한다면 참으로 위험한 일입니다.
고전11:24-30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유대인들은 구약에 정통한 사람들이었는데, 구약에 이렇게 예언된 메시아에 대해서 잘못 생각했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의 모습을 정치적, 또는 군사적인 영웅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 역시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셔야만 메시아를 알아보고 믿을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영웅을 높이고 숭배합니다.
그러나 이 땅에 오신 메시아에게는 아무런 영웅적인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스도는 고난 받는 종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이 땅에 사람이 되어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셨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희생이며 고난이었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성육신 자체가 큰 고난이요 희생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초라하고 볼품없는 모습의 예수님을 조롱하고 비방했습니다.
아무도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메시아라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하나님의 권세 있는 교훈을 말씀하셔도 인정하지 않았으며, 병자들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며 죽은 자를 살려내셔도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주님 오시기 약 600년 전에 이 모든 사실들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1절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그런데 하나님이신 주님께서 왜 이렇게 연약한 모습으로 고난의 종으로 오셨을까요?
그것은 연약한 우리를 체휼해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4-5절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만일 메시아가 위대한 왕으로 오셨다면 저는 만나 볼 수가 없습니다.
너무나도 먼 당신이 될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대통령을 만나 독대해 본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날마다 내가 원하기만 하면 만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시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는 나와의 간격을 없애시기 위해서 낮고 비천한 자리로 오셨습니다.
심지어는 내 마음에 좌소를 삼으시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나를 너무나도 잘 아십니다.
죄악으로 인하여 지친 나를 너무나도 잘 아십니다.
히4:15-16절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오신 메시아는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몸소 체험하셨습니다.
그 분은 우리의 슬픔과 눈물을 아십니다.
우리의 고통과 아픔을 아십니다.
우리의 가난함과 배고픔을 아십니다.
우리의 피곤함과 질병을 아십니다.
우리의 유혹받는 것과 실패하는 것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도우심을 기대하고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예수께서는 우리의 모든 연약함과 아픔과 슬픔을 다 아시고 얼마든지 우리를 도와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예수이름으로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와서 그 은혜를 받게 됩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6절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예수는 죄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당하신 모든 고난과 슬픔과 징벌은 오직 나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당할 자에서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징계를 대신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이 평화는 하나님과 화목된 것을 가리킵니다.
인간으로서는 구원이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칼빈은 세상 창조는 말씀 한 마디로 이루어졌으나, 우리의 구속을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는 아픔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당신의 아들에게 담당시키셨던 것입니다.
죄로 만신창이가 되어 아무 소망이 없던 우리의 저주와 형벌을 그리스도께서 다 담당하셨습니다.
허물과 죄악 때문에 징계를 받고 채찍에 맞으심
채찍에 맞았다는 말은 상처 입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우리의 죄와 연약함을 친히 담당하신 주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번 주간은 고난주간입니다.
이 한 주간에 우리는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드신 후 유대인들에게 잡히시고 대제사장들과 빌라도에게 심문을 당하신 모습, 그리고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로 가시는 모습,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모습을 묵상하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내가 당해 마땅한 모든 고난을 대신해서 다 당하셨던 것입니다.
우리의 연약한 것과 병까지 다 짊어지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무서운 죄와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제 하늘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깊은 고통 가운데서 드리는 기도를 듣고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겪고 있는 것들을 모두 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어떤 연약함과 고통도 주께 맡겨 해결 받을 수 있습니다.
주가 당하신 그 고통이 우리를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뜨거운 마음으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제사제도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죄를 지은 죄인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어야 하지만 죄인이 죽지 않고 살아날 수 있는 길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제물이 대신 죽는 제사제도였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양을 한 마리 성전에 끌고 와서는 그 머리에 안수하면서 자기 죄를 그 양에게 전가시킵니다.
그리고는 그 양을 하나님 앞에서 잡아 죽여서 그 피를 하나님 앞에 흘리고, 그 고기를 남김없이 불로 태워서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은 양을 하나님이 받으시고는 그 죄인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이 때 대신 죽는 양을 대속의 양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희생의 대속의 제물이 된 양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주님의 고난을 보면서 내 죄가 생각나고, 내 허물과 내 죄악이 주님을 저렇게 처절한 고통으로 몰아넣었는가를 생각하면서 그런 죄악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죄인 됨을 인하여 통곡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제 다시는 죄를 돌아보지도 말아야 합니다.
주님을 그렇게 고통스럽게 했던 것이 다름 아닌 내가 지은 죄때문이었습니다.
그 주님 때문에 구원받게 된 사람이 다시 죄를 돌아보고 싶겠습니까?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며 이제 죄와 상관없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고난이 왜, 나를 위한 고난임을 기억하면서 다시는 그런 죄에 이끌리지 않는 정결한 삶을 새롭게 결단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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